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37)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37화. 예쁘고 좋아하는 것(37/92)
#37화. 예쁘고 좋아하는 것
2024.06.06.
“뭐야. 무슨 말이야?”
“기록에 보면 빛으로 방 하나 정도는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힘이어야 하잖아. 오늘 대성녀님의 빛은 높이 솟아오르긴 해도 주위 정도만 퍼져나간 정도의 빛이었어.”
맥시엄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지만 콜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아, 그거. 난 또 무슨 일이라고. 아티팩트가 매번 그런 식으로 빛나는 건 아니야. 대성녀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그러기도 해.”
“그러니까 그게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해. 이미 검증 다 받아 대성녀 자리에 올랐어. 1년이 되어 간다고.”
맥시엄은 의심스럽게 눈을 흘겼다. 그런 말로 넘어가기에는 꺼림칙했다. 콜은 그런 맥시엄이 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이봐, 맥시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이비 님이 대성녀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치유력을 보였을 때 그 자리에 사람이 몇 명이 있었는 줄 알아? 대신관님과 사제들이 열 명이 넘게 모여 확인했어. 그날 아이비 성녀님은 엄청난 빛을 뿜었다고. 넌 서고에 있어서 몰랐겠지만 그날 빛은 신전 전부를 뒤덮을 정도로 아주 크고 아름다웠어. 모두가 다 안다고.”
물론 맥시엄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니까 더 말이 안 된다는 거다! 이 답답아! 맥시엄은 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키웠다.
“그때와 지금의 빛의 크기가 너무 차이가 나잖아. 이상하다고.”
“너 몰라? 대성녀님이 친구를 애타게 찾고 있잖아.”
“친구랑 컨디션이랑 무슨 상관이야?”
“너무 착하신 분이라 그렇지. 친구 걱정에 잠도 잘 못 자고 마음이 항상 불편하다고 했어. 대성녀님이 말하길 친구를 찾으면 컨디션도 돌아올 거라고 했어.”
그러기엔 상태가 너무 좋아 보이던데. 웅얼거리는 맥시엄의 말을 듣지 못한 콜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아무튼 도와줘서 고맙다. 다음에 맛있는 거 살게!”
콜은 아티팩트를 받아 들고 대사제의 방으로 가 버렸다.
맥시엄은 꺼림칙한 기분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그대로 걸어 서고에 도착하자 자리에 작은 쪽지가 놓여 있었다. 에던 대공의 연락이었다.
***
“대공님.”
팔짱을 끼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에던이 뒤돌아섰다.
“루벤.”
허리춤에 검까지 반듯하게 찬 루벤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약속한 금요일, 맥시엄이 온다고 합니다.”
“얘기는 전달했고?”
“정확한 것은 만나서 설명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아이비 대성녀를 몰래 접견하고 싶다는 얘기만 전달해 두었습니다.”
“답은?”
“손을 써 두겠다고 하더군요. 나머지 얘기는 금요일에 마무리 짓기로 했습니다.”
원하는 대답이었는지 만족한 듯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 에던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루벤의 시선도 에던을 따라 앞마당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에던의 시선 끝에는 라티에나 메리골드가 있었다.
무슨 고민에 빠진 건지 라티에나는 정원에 웅크리고 앉아서 무너진 성벽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언뜻 괴로워 보이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하는 복잡한 모습이었다.
제널드의 사기 행각이 드러난 후로 벌써 며칠이 지나가고 있었다.
에던을 따라 가만히 그 모습을 응시하던 루벤이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신전으로 보내실 겁니까?”
기다리고 기다렸던 말도 안 되는 완벽한 치유력을 가진 유일한 여자였다.
라티에나의 치유력의 힘이 뭐든지 간에 에던에게 있어서 그녀는 이제 절대 놓고 싶지 않은 존재였고, 루벤 역시 그랬다. 목숨을 바칠 수도 있는 제 주인의 고통을 없애 주는 소중한 여자였기 때문에.
“원하니 보내 봐야지.”
“혹시 잘못될 수도 있잖습니까. 대성녀가 힐스타인 단장을 보낸 것을 봐선 절대 만만히 볼 사항이 아니에요.”
“루벤.”
“네, 전하.”
에던이 창밖을 그대로 응시한 채로 말을 이어 나갔다.
“라티에나가 알고 있었어.”
“알고 있다니…… 무엇을 말입니까?”
“신전으로 가면 죽는다는 것.”
“네?”
극비인 그 사항을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이지? 도망쳤던 것도 죽을까 봐 그랬던 건가?
친구인 대성녀와 달리 보잘것없는 치유력인 걸 알아서?
“그렇다면 더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글쎄. 문제가 달라졌거든. 힐스타인 경이 아이비가 찾고 있다는 걸 말해 버려서.”
“그럼 전부 아는 겁니까? 아이비 대성녀가 그런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도?”
“거기까진 모르는 것 같지만, 신전으로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내 예상이지만 대성녀와 만나면 더 이상 자길 찾지 말라고 부탁할 셈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쉽게 해결이 될까요?”
그럴 리가 있나. 에던이 한쪽 입술을 비릿하게 끌어올렸다.
대성녀는 거짓말을 했다.
친구 하나 데려오자고 본인이 내걸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내걸었다.
말이 되나. 아이비의 말과 라티에나의 말은 완전히 상반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에던이 믿는 건 라티에나였다.
심란한 얼굴로 라티에나를 응시하던 루벤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심각한 얼굴을 말을 꺼냈다.
“기운이 없어 보이네요. 대체 몇 시간째 저러고 있는…….”
“두 시간째.”
“예?”
황당하다는 듯 루벤은 에던을 봤다가 다시 라티에나를 바라보았다.
몸을 웅크리고 앉은 탓에 더욱 작아 보이는 라티에나의 등 뒤로 벚꽃색 머리카락이 가볍게 오후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온통 초록인 정원에 유일하게 따스한 채색을 가진 여자. 때마침 그녀의 위로 내리쬐던 햇빛이 커다란 구름에 가려 그늘을 만들었다. 그래서 더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
“역시 충격이었겠죠. 순진하게 생긴 분이라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그런 사기를 당했을 줄이야. 돈은 크게 털리지 않았다고 해도 몇 달이나 약혼자라고 믿었던 사내에게 배신을 당했으니 후유증은 좀 가겠네요.”
“역시 밟아 죽일 걸 그랬나?”
제널드를 떠올린 에던의 미간이 불쾌한 듯 구겨졌다.
“……이미 충분히 밟아 주셨던데요.”
“죽진 않았잖아.”
“네. 그렇지만 죽기 직전이었죠.”
루벤은 잠시 제널드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마물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평소 에던의 후처리에 비하면 몸풀기도 되지 않을 마무리였지만, 상대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그날 라티에나에 대해 함부로 지껄였던 제널드의 입방정을 떠올리면 에던이 꽤 너그러이 넘어가 준 건 사실이었다.
아쉽다는 듯 옅은 조소를 흘린 에던이 말했다.
“돈 정도의 사기로 끝나서 살려 둔 거야. 건드렸으면 죽여 버렸을 텐데.”
“네. 잘 참으셨습니다. 라티에나 양도 대공님의 자비에 안심할 겁니다. 사기꾼이라고는 해도 정말로 죽었으면 죄책감이 생겼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런가.”
“네. 사기 정도의 죄는 보통 죽음이 아니라 형벌로 처리하거든요.”
“아쉽군.”
루벤은 다시금 라티를 바라보았다.
“가서 위로라도 해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위로라…….
“어떻게?”
줄곧 라티에게 가 있던 에던의 시선이 루벤에게 옮겨졌다.
“네. 뭐…… 좋아하는 걸 사주면 기분이 풀린다고 듣긴 했는데. 여자들은 예쁜 걸 좋아하니 선물을 해 줘도 되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선물인데.”
에던만큼이나 여자를 멀리하고 마물과의 전쟁에만 빠져 있던 루벤이었기에 그렇게 물어도 답을 알 리는 없었다. 루벤은 다른 기사들이 나누던 대화들을 떠올려 더듬더듬 답했다.
“뭐. 목걸이나 귀걸이 같은 반짝거리는 보석들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에던이 스윽 라티에나를 내려다보았다. 월급을 꽤 넉넉히 줘서 모자랄 리가 없는데 반짝이는 주얼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라티에나가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진 않은데.”
“뭐, 대공님의 공주님은 물건도 별로 없고 수수하긴 하시죠. 그래도 그런 거 싫어하는 여자는 못 보긴 했습니다.”
에던이 고심하는 듯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반짝거리는 거라, 뭐 부티크라도 통째로 쓸어와야 하나.
“혹시 뭐 라티에나 양이 평소에 예쁘다고 했던 거라든지, 기억하시는 거 있으시면 더 좋을 테고요.”
그 말에 에던이 미소를 띠며 눈동자를 반짝였다.
예쁘고 좋아하는 거라. 마침 아는 거 하나 있지.
***
할 일이 없다. 에던이 아이비와 날 만나게 해 줄 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
누가 지금 날 보면 사기당해 무척 슬픈 줄 알겠지만. 슬프냐고? 아니.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지금 나는 제널드의 사기 행각 때문에 받은 상처로 슬퍼할 시간조차 없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인데 제널드의 사기 쯤이야, 오히려 보란 듯이 잘 살아야겠다는 내 의지를 불태웠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며칠째 에던이 던져 준 숙제의 답을 생각해 보는 중이다.
‘나쁘지 않네. 그래서 뭘 얼마나 어떻게 잘해 줄 건데.’
딱히 생각해 놓은 방법은 없었다. 그냥 잘 보이면 하루라도 빨리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까 해서 한 말인데.
매일 정원에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을 고민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에던보다 돈을 많이 가진 것도 아니고, 뒷배경이 빵빵한 것도 아니고, 힘이 센 것도 아니라 평소처럼 치유력을 부어 주는 게 답이었다.
하지만……. 생각이 깊어질수록 내 마음은 심란해졌는데, 그 이유는 에던은 잘해 준다는 의미를 나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평소 에던이 했던 행동들을 보면…….
에던과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설마! 진짜로 설마! 내가 잘해 준다는 말에 그런 의미를 포함한 건 아니겠지?
나는 아이비가 아니란 말이야.
한 번씩 이곳이 19금 소설 속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을 때가 있는데 에던이 그런 식으로 내게 자꾸 다가올 때마다였다.
에던 뿐만이 아니다. 다른 남주들인 힐스타인도 킬리언 황태자도 단테도 원작 내에서 모두 그랬다.
처음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다음엔 아이비의 치유력에 빠져들어서, 마지막엔 그저 그녀와 함께하는 그 쾌락 자체가 좋아서. 그들은 망설임 없이 밤낮으로 서로를 탐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곳에서 아이비는 대성녀에 최적화된 주인공이었다.
애초에 치유력이라는 건 스킨십이나 그런 행위가 있어야 완전히 이루어지니까.
흑마법에 영혼을 판 뒤에 미쳐 날뛰는 에던을 제압한 후, 치료 목적으로 시간을 보낸 외전에서도 온통 그런 장면이었다.
다른 남주들과 돌아가면서 밤을 보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