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39)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39화. 벗겨졌다(39/92)
#39화. 벗겨졌다
2024.06.08.
진짜 또라이 자식! 뭐 하나 이해 가는 행동을 좀 해! 이건 협박이잖아!
에던의 예리한 눈빛이 날 잡아먹을 듯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든 머리를 굴렸다. 구슬리자, 구슬려 보자.
“주인님.”
“응.”
“제가 잘해 준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러니까, 절 위해서 생각해 주신 그 크고 배려심 깊은 마음 충분히 이해하고 감사하고 절이라도 하고 싶지만 괜.찮.습.니.다. 만져지는 걸 싫어하는 주인님의 얼굴을 굳이 이런 식으로 만져 보고 싶진 않…….”
“안 싫어하기로 했어.”
“…….”
거짓말이다. 어릴 때부터 싫어했다며? 전쟁터에서도 얼굴에 뭐가 닿는 게 싫어서 몸으로 막아 냈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없잖아. 애초에 내가 왜 이런 식으로 남의 얼굴을 만져야 하는 거지.
이게 도대체 누구에게 이득인 거냐고. 둘 다 마이너스 아니야?
“괜찮다고요?”
“응. 아. 이대로 내 다리 사이에 더 오래 있고 싶어서 이러는 거면 얼마든지 기다리고.”
“아니요!”
그럴 리가 있냐.
“그럼…… 지금 당장 만지겠습니다!”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던 나는 침을 꿀꺽 크게 한번 삼킨 후, 손을 들었다.
몇 번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손끝이 에던의 뺨에 닿았다.
툭 가볍게 소리 없는 웃음을 흘린 에던이 똑바로 마주하던 눈을 천천히 내리감았다.
생채기 하나 없는 에던의 얼굴은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그 누구라도 이 얼굴을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겠지. 애초에 굉장히 내 취향이기도 하고.
“기분이 어때?”
나른히 두 눈을 감고 있던 에던히 느슨히 시선을 들었다. 얌전히 잠들었던 맹수가 잠에서 깨어나는 걸 목격한 것 같았다.
이 타이밍에 왜 내 기분을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 더 만지라고 할까 봐, 이도 저도 아닌 듯한 적당한 선의 미소로.
“그럼 더 만져. 이젠 약혼자도 없으니까 괜찮잖아.”
슬그머니 빼내려는 내 손을 에던이 다시 잡아 제 뺨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가만히 날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그리고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뭐가 문제야.”
우리가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게 문제야. 네가 결국 아이비의 치유력을 느끼면 날 버릴 거라는 게 문제라고.
나는 에던의 시선을 피해 시선을 내렸다.
“있잖아. 라티.”
슬그머니 손을 내리고 떨어지려 하는데 에던이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한 손을 내 머리 위로 툭, 이젠 습관이 되어 버린 것처럼 올려 두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다시 시선을 올려 그를 마주 보았다.
에던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른히 내리뜬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가 느릿느릿 움직였다.
정수리, 이마, 눈썹, 뺨까지.
시야에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렬하고 집요하게 날 더듬고 있었다. 시선이 내 입술에 닿은 순간에는 진짜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사람 같았다. 에던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나와 부드럽게 쓸었다가 들어갔다.
“너 말이야.”
머리 위에 얹혀 있던 손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와 눈가에 닿았다. 눈 주위를 매만지는 손길에 조금 힘이 들어가는 듯도 싶고, 그걸 바라보는 에던의 눈동자에 서늘해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먹을까?”
에?
“가까이에 있으면 너무 달콤한 냄새가 나서, 먹으면 무슨 맛일지 정말 궁금하거든?”
“……네?”
“특히, 그 눈.”
이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심각하고 진지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 게 어딨어? 내가 음식은 아니잖아!
속으로 경악하는 찰나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스킨십 치유해 준 이후에 에던이 나한테 달콤한 냄새가 났다고 말 한 적이 있었지.
“지, 진짜 먹고 싶다 하는 말 아니죠?”
“진짠데?”
세, 세상 사람들 여기 미친놈이 있어요! 눈동자 살인마예요!
나는 흠칫하며 뒤로 힘주어 물러났다.
뭐, 언제나 그렇듯 날 확 끌어당긴 에던의 손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놔요. 내 눈 절대 못 먹어.”
에던이 큭큭, 고개를 뒤로 재치며 소리 내 웃었다. 웃기지만 꾹 참는다는 듯 어깨까지 들썩여 대며.
“라티.”
“왜요!”
이번에는 또 어떤 헛소리를 하려고. 용기 내어 언성을 높인 나는 사납게 눈을 치켜뜨고 에던을 바라보았다.
“대성녀, 만나게 해 줄게.”
갑작스러운 흐름이긴 하지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어…… 저, 정말요?”
“응.”
에던이 날 꽉 끌어안았다. 웃겨 죽겠다는 듯 환한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
며칠 후 나는 에던의 북부 대공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포털을 이용했지만 대공성 안으로 바로 이동하지 못했다.
“춥지만 조금 참아 주세요.”
루벤은 날 걱정하며 물었다.
“무너지지 않는 벽의 밤보다는 견딜 만해요. 괜찮아요.”
“대공님을 노리는 자객이 워낙 많이 있어서 안쪽은 포털을 설치하지 못하게 마법으로 막아둔 상태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네.”
지금 와서야 어떤 멍청한 사람이 에던을 노리는지 하며 혀를 차겠지만, 어릴 적의 에던은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짐작해 보건대, 킬리언의 친모 황후나 그녀를 따르는 세력이겠지.
다행히 포털은 성안으로만 들어가지 못했을 뿐이지 바로 앞이었고 나는 마차에 올라타 안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대공성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춥고 싸늘한 곳이었다. 한여름에도 초겨울의 온도를 유지하는 서늘한 북부이기에 훨씬 더 냉하게 느껴졌다.
어두운 회색의 성은 몹시 크고 높았는데 인공적으로 파낸 못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못과 성을 잇는 다리 입구 그리고 성문 양 벽으로 높은 방어 탑이 있었다. 다리를 건너 입구에 도착하자 거대한 성문이 열렸다.
‘와. 이건 완전히 누가 봐도 악역의 성이잖아.’
안쪽은 못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보이는 족족 전부 기사들이었다.
방어벽 안쪽 가장 중심에 진짜 대공의 성이 있었다.
못 밖에서 봤을 땐 한쪽 면만 보였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안쪽 공간이 큰 줄 몰랐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한참 지나 진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뾰족뾰족한 세모 탑이 멋들어지게 중앙에 위치한 성, 나는 루벤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이동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텅 비어 메마른 느낌을 주는 로비를 지나 에던과 루벤의 호의를 받고 성 가장 위에 있는 에던의 집무실로 향했다.
“대공님, 도착했습니다.”
루벤이 날 살짝 뒤로 세운 채 집무실 앞에 서자 창을 들고 양옆으로 서 있던 기사들이 보고했다.
곧장 문이 열렸다.
높은 층에 있어서인지 집무실은 커다란 창을 타고 밝은 햇살이 내려오고 있었다.
특별히 다른 곳과 인테리어가 다른 것도 아니었는데 유독 밝아 보였다.
에던의 금발이 찰랑였다.
안에는 다른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맙소사.”
날 보자마자 탄식을 뱉어낸 얼굴이 유독 하얀 사내는 눈을 휘둥그레 키웠다.
루벤이 날 처음 봤을 때처럼 놀란 반응이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나를 알고 있는 거야?
“라티에나 메리골드…… 맞죠?”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그를 빠르게 살폈다. 햇빛을 거의 받지 않은 것 같은 희멀건 피부와 마른 체형.
입고 있는 옷은 커 보였고, 키가 있어서 크게 티가 나진 않았지만 많이 말라 체력적으로 약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후드와 커다란 옷소매와 그리고 단 아래에 금박으로 무늬가 있는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오는 길에 미리 얘기를 들었지만 이 남자는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이비를 비밀리에 접견하고 싶다는 상대가 나라는 것을. 그러니 이렇게 놀랐겠지.
***
서고의 신인 사제로 위장한 나는 새하얀 사제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뒤집어썼다.
아이비가 혼자 있는 시간은 대부분 저녁이나 밤이었으므로 이게 가장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서고의 사제들은 대부분 책을 연구하느라 신전을 나다니지 않은 편이었으니 기사들을 만나도 크게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맥시엄의 계획대로 무사히 신전 입구를 통과한 우리는 아이비가 있다는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밤중에도 초록의 싱그러움이 잘 느껴지는 정원을 지나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신전은 온통 새하얀 색이었다.
그럼에도 화려하고 웅장한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성녀 후보들이 죽어 나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성녀 후보들은 어느 건물에 머무나요?”
맥시엄이 손끝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가로로 넓고 층수도 꽤 높은 탑처럼 생긴 건물이 있었다.
“저쪽입니다. 라티에나 님도 도망치지 않으셨으면 지금쯤 저쪽에 머물고 계시겠죠.”
그 말에 막연히 아름답다 생각하고 있던 건물이 공포스러워졌다.
……만약 그랬더라면 난 지금쯤 죽었을 거야. 흘깃, 건물을 바라보고 서둘러 맥시엄을 따랐다.
아이비의 건물 안으로 들어서 넓고 화려한 복도를 지나자 검을 들고 서 있는 성기사들이 보였다.
“수고하십니다.”
계단을 오르기 전 맥시엄은 수상해 보이지 않게끔 먼저 인사를 건넸고 성기사가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대성녀님께서 서고의 책을 빌려 가신 걸 찾으러 왔습니다. 늦은 시간에도 괜찮다고 하셔서요.”
신전이 폐쇄적이긴 했지만 입구는 사제복을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어려웠다.
시계를 확인한 성기사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유독 체구가 작고 얼굴을 완전히 가린 터라 일단 의심해 보는 느낌이었다.
“뒤에 그분도 서고의 사제님이십니까.”
나는 맥시엄이 미리 언급해 둔 대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차 얼굴 좀 보여 주시죠.”
“새로 들어온 신입인데 얼굴에 매우 흉한 상처가 있어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유독 고요한 건물의 분위기에 긴장감으로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의 묵직한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맥시엄과 나보다 빨리 상대를 확인한 성기사가 꾸벅 허리를 완벽히 굽혀 예를 갖췄다.
“단장님을 뵙습니다!”
뭐? 맥시엄과 내가 거의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은발을 찰랑이며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의 사내가 분위기를 살기를 풍기며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힐스타인이었다.
성기사의 커다란 목소리에 맥시엄과 나도 화들짝 놀라며 힐스타인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
손을 가운데로 모아 어깨와 고개를 숙였는데, 사제복이 온몸을 전부 가려 주어서 다행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머리카락을 묶어 두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워낙 특이한 색이라 가리는 게 더 나을 테니까.
숙인 고개 아래로 대리석 바닥에 힐스타인은 검은 그림자가 맥시엄과 나를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두어 발자국 더 멀어지자 맥시엄이 티나지 않게 나를 향해 눈짓했다.
아주 슬쩍 고개도 좌우로 흔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의미였다. 오늘은 실패라고.
이만 고개를 들고 뒤돌아서려던 때였다.
“거기, 너.”
갑자기 힐스타인이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두세 발자국 만에 힐스타인이 다시 내 앞에 오고, 불안한 느낌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제발 지나가 달라는 마음속 외침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순식간에 후드가 벗겨졌다.
질끈 눈을 감았다가 뜨자, 시선 끝에서 힐스타인이 비릿한 미소로 날 보고 있었다.
“하. 이것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