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42)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42화. 그 여자가 뭐길래(42/92)
#42화. 그 여자가 뭐길래
2024.06.11.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에던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후드 아래로 금빛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신기하리만큼 안도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시선을 내린 순간 나는 또다시 온몸을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환영이길 바랐던 내 오른손이 미라가 된 채로 손목까지 말라 있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내, 내 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을 떨고 있는데 에던이 커다란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내 손을 움켜쥐었다.
“아무렇지 않아.”
에던은 진짜 미친 것 같다. 농담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진짜로 충격으로 인해 두려움이 온몸에 가득 차올랐다. 아무렇지 않다고? 노인처럼 말라비틀어져 쭈그러지다 못해 괴물처럼 변해 버린 내 손이?
에던은 내 스스로도 닿는 것조차 소름 끼치는 손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손을 빼내려 힘을 주었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았고, 에던은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충격으로 인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눈물을 그렁그렁 가득 채우고 그를 바라보자, 에던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며 다정히 말했다.
“날 봐, 라티. 괜찮아.”
한없이 다정한 한마디였다. 더 이상 입을 떼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날 가라앉히려는 듯 에던은 미라가 되어 버린 내 손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그 덕분에 겨우 진정이 되어 거칠었던 숨이 돌아왔다.
초점이 돌아온 날 확인한 에던이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돌변한 흔들림 없는 날카로운 시선이 아이비를 향했다.
“읏…….”
잠시 정신을 잃었는지 꼼짝하지 않고 쓰러져 있던 아이비의 몸이 움찔거렸다.
“……때, 때렸어요?”
“네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떼어 냈을 뿐이야. 스스로 튕겨 나갔어.”
하긴 에던에게 던져져서 저렇게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에던은 태연하게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비는 빠르게 정신을 되찾았다.
가녀린 몸에 카디건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로 맨살을 보이며 일어나는 아이비는 누가 봐도 피해자였다.
그녀는 조금 전 내게 보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모두가 알고 있던 청순가련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강하게 날 보호하며 끌어안은 에던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듯싶더니 아이비는 갑자기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단언컨대 그건 내가 태어나서 듣는 비명 중 가장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다.
쾅-!
밖에 있던 힐스타인이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성녀님 무슨 일……!”
우릴 발견한 힐스타인의 얼굴이 굳었다. 뒤이어 들어오던 맥시엄은 입을 틀어막았다.
잠시 힐스타인에게 향했던 에던의 시선이 맥시엄을 스쳐 다시 아이비에게로 향했다.
아이비는 힐스타인이 들어온 걸 확인하더니 천천히 에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 손과 달리 그녀의 손은 여전히 하얗고 적당히 살이 올라 있었으며 뽀얬다.
나는 왼손으로 다급히 내 오른손을 감추었다.
“제 친구, 이리 주세요.”
말하는 아이비의 입꼬리가 화사하게 올라갔다. 차분하게 페이스를 찾은 그녀는 악마 같은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알던 원래 아이비의 모습 그대로였고, 남주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름다운 대성녀의 모습이었다.
에던이 말이 없자 아이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전하께도 부탁드렸었잖아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 어서, 이리 주세요.”
홀릴 것처럼 우아한 눈빛과 말투와 몸짓으로 아이비의 모습은 정말 원한다면 그 누구라도 조종할 수 있을 것처럼 아름다웠다.
내 힘을 흡수한 그녀는 내가 이 방에 막 들어와서 아이비를 봤을 때보다 더 빛이 나고 있었다.
에던이 정말로 날 넘기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손끝을 움찔했다.
“사람을 무슨 물건 찾아가듯 달라고 하네.”
혼잣말인 듯 중얼거린 에던이 냉정한 시선으로 답했다.
“글쎄. 쓸데없는 장면을 봐 버려서요.”
“……대공님.”
“그리고 내가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조를 했었던가요? 기억이 안 나는데?”
같잖지도 않다는 듯 피식 가볍게 조소를 흘린 에던의 모습에 아이비가 짧게 입술을 짓이겼다.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표정을 돌변하더니 힐스타인을 향해 울먹였다.
“힐스타인 님! 도와주세요! 어서요! 제 친구가 붙잡혔잖아요. 도와주세요. 제발.”
허. 기가 막혀. 내가 붙잡혔다고? 누가 봐도 에던이 날 구하러 온 거 아냐!
아이비는 이해가 가지 않는 언행을 내뱉었다.
내 힘을 빼앗고 날 죽이려 한 주제에, 누가 누굴 도와 달라는 거야?
그녀가 이상한 소리를 할수록 나는 더욱 에던에게 꼭 달라붙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저에게 매달리는 아이비의 모습에 힐스타인은 곧장 검을 꺼내 들었다.
서늘한 검이 검집에서부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꺼내지고, 잘 갈아진 검날이 에던을 향했다.
“전하, 라티에나 양을 이쪽으로 보내 주시죠.”
전과 달리 힐스타인은 아주 여유만만했다. 지난번에 에던에게 무참히 당했던 기억 따위는 갖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오만하고 거만하게 눈꼬리를 휘었다. 에던은 그가 잡은 검을 스윽 눈으로 훑었다.
“내가 경을 너무 봐줬던가?”
에던의 낮은 목소리가 차분하게 흘러나오고, 힐스타인은 가볍게 웃으며 되받아쳤다.
“평소처럼 여유 부리고 계실 때가 아니실 텐데요. 여긴 전하의 성이 아닙니다. 신전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에던이라고 해도 이곳은 신전이었다.
지금 에던은 접근해서는 안 되는 곳. 신전 안으로 들어온 것만 해도 법을 어긴 것인데, 만약 신전의 기사들과 싸웠다는 게 알려지면 큰일이 날 거다. 게다가 최악의 경우 싸우는 도중 누군가가 죽는다면, 일반 기사가 죽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 일을 기회 삼아 황실에서 에던을 반역자로 몰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힐스타인도 자신이 우위에 있는 걸 알고 거만하게 구는 것이었다.
“아니면 저와 신전에 있는 성기사들을 전부 상대하시기라도 하겠다는 생각이십니까.”
힐스타인이 침묵하는 에던을 향해 놀리듯 말을 내뱉었다.
나는 에던을 올려다보았다.
조금이라도 난감한 기색을 보일 줄 알았는데, 에던은 여전히 태연했다.
“글세, 어떨까.”
미동도 없는 그의 태도에 힐스타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농담이 아닙니다. 아무리 대공님이라 하셔도 제 명령 한 번이면 지금은 신전 안의 모든 성기사들이 몰려올 겁니다. 신전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황실을 공격하는 것으로 치부하겠습니다.”
“그래서, 경은 내가 라티에나를 놔두고 돌아갔으면 하는 건가.”
“네. 그게 최선이지 않습니까.”
에던의 대답은 빨랐다.
“그건 경의 최선이지.”
“뭐라고요?”
“내 최선이 뭔지 말해 줘?”
정말로 에던은 대체 어쩌자고 여기까지 온 걸까. 날 구하려고?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내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던 찰나 잠시 몸을 숙이는 것 같던 에던이 공주님 안기로 날 안아 들었다.
‘잠깐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에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원작의 에던은 아이비의 치유력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에던은…….
“내 걸 빼앗으려 하는 자들을 죽이지 못할 것도 없지.”
비릿하게 웃는 에던의 얼굴에서 살기가 진동했다. 오싹할 정도로 서늘한 기운이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가벼운 말도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에던이 고성에서 내게 내뱉었던 그 모든 말들과 행동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내게 집착했었던 이유도 전부.
하지만 안 돼.
나는 다급히 힐스타인을 바라보았다. 저 남자도 만만치 않게 제정신이 아닌데, 당장이라도 싸움이 일어나면……!
‘어…… 라?’
유리한 위치이니 당장이라도 무어라 공격할 것 같았던 힐스타인은 어쩐지 미동이 없었다.
“힐스타인 님! 뭐 하고 계시는 거예요! 어서 제 친구를 데려와 주세요!”
아이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힐스타인은 무슨 생각인지 아이비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건드리면 죽는다고……. 신전과 황실의 반역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딘가 이상하다는 듯, 힐스타인은 혼잣말로 대화를 되새기며 뚫어져라 에던을 바라보았다.
에던이 날 끌어안은 모습을 눈에 새기기라도 하는 듯 찬찬히 지켜보던 힐스타인의 시선이 느릿하게 날 향해 움직였다.
“도대체 그 여자가 뭐길래 그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경이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만 알아 두면 돼.”
“하…….”
그 순간 날 보는 힐스타인의 눈빛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까까진 아이비에게 데려다 바칠 사냥감으로만 바라봤었는데 지금은 눈동자에 호기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에던이 내게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서 탐색하듯 힐스타인의 시선이 끈적하게 나를 샅샅이 뒤졌다.
미소인 듯 아닌 듯, 힐스타인이 입술을 비틀며 에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아이비 대성녀가 눈앞에 있습니다. 스파이까지 숨겨 두었으니 알고 있지 않습니까. 라티에나, 이 여자를 대성녀에게 넘기면 어떤 자격을 얻게 되는지. 몰래 빼내어 간 물약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치유력을 가진 대성녀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성녀가 아닌 이 여자를 보호하겠다는 겁니까.”
에던은 말해 줄 생각 따윈 전혀 없다는 듯 조소를 흘렸다.
“경은 남의 것에 욕심이 많아.”
끝내 답을 얻고야 말겠다는 듯 다시 입을 여는 힐스타인의 미간이 구겨졌다.
“대체 뭡니까. 이 여자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