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5)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5화. 못생긴 주제에(5/92)
#5화. 못생긴 주제에
2024.05.05.
내가 미래의 인내심까지 끌어와 에던의 정신상태를 이해해 보려는 동안 다행히 스미스가 절뚝이며 몸을 일으켰다.
“크흣, 라티에나 양…….”
“어! 스미스 씨! 괜찮아요?”
“이, 이 남자예요.”
스미스는 일그러진 얼굴로 비틀대며 손가락으로 에던을 가리켰다.
“뭐, 뭐가요?”
“항상 뒤에서 훔쳐보던……, 쿨럭!”
“꺅! 스미스 씨!”
순간 그가 피를 토하는 줄 알고 정말 깜짝 놀랐다.
“괘, 괜찮습니다. 라티에나 양.”
스미스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구기면서도 걱정해 주는 내가 고마운지 따스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곤 내 팔목을 잡아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라티에나 양. 어서 제 뒤로 오세요.”
몸에 힘을 빼고 있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는 스미스가 당기는 대로 몸을 기울이게 되었고, 뒤이어 스미스는 내 앞쪽으로 걸음을 옮겨 섰다.
그러니까, 마치 날 보호하듯이.
스미스의 마음은 고맙지만 목뒤에서부터 등줄기를 타고 주륵, 식은땀이 났다.
스미스…… 에던이 누구인지 모르는 건가. 생각하던 나는 절규했다. 그야 알 리가 없다.
마을에서 이 고성의 주인은 방구석 폐인으로 소문이 나 있으니까.
소문의 근원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나다.
한 달에 한두 번쯤 나는 옷이나 앞치마를 사러 마을에 내려가곤 했다. 워낙 한가로운 소도시라서 그런지 상점가 아주머니들은 내게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주인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아주머니들의 물음에 나는 방구석에서 나오지 않는 병약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땐 진짜 방구석 폐인인 줄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소문이 아니더라도 에던을 알 리가 없어.’
에던은 제국의 유명인이긴 하지만 이름이 알려져 있을 뿐이지 평민은 물론이고 귀족들도 황실과 가까운 상급 귀족이 아니면 그의 얼굴을 잘 모르는 게 정상이다.
그가 주로 활동하는 곳은 북부이고, 사교계에도 얼굴을 자주 내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을 말하면 알겠지만 그럼 스미스는 기절하겠지.
겁도 없이 대든 사람이 전쟁광이라니. 심지어 에던은 황제의 사생아…….
‘그래도 말해 주는 게 나을까?’
고민하던 나는 빠르게 관두기로 했다. 내키지 않았다.
북부의 성에 있어야 할 에던이 동부의 고성에서 지내고 있다는 건 스스로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거니까. 내가 굳이 그런 비밀을 알려서 목숨을 단축할 필요는 없잖아. 스미스도 모르는 편이 나을 테고.
“재밌는 짓을 하네.”
에던이 흥미롭다는 듯 눈웃음을 치며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스미스가 순간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에던에게서 소름이 돋을 정도의 한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서글서글한 척 웃고 있지만 내리깔아 보는 눈에서 나오는 특유의 위압감은 숨길 수가 없었다.
꿀꺽.
내게 들릴 정도로 침을 삼킨 스미스는 그제야 자신의 앞에 선 남자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는 것 같았다.
밝은 곳의 에던은 곱상한 얼굴부터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다른 부분을 잘 인식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긴장감 가득한 얼굴로 스미스는 천천히 위에서부터 아래로 에던을 살폈다.
고개를 꺾어 봐야 할 정도로 큰 키에, 너른 어깨. 편한 화이트 셔츠에 가벼운 조끼 하나를 걸치고 있었지만, 감춰지지 않고 드러나는 탄탄한 근육 라인.
특히 몇 번 접어 올린 소매 밑에 드러난 팔뚝은 힘을 주지 않아도 두꺼운 핏줄이 솟아 있었다.
일반인은 비교도 되지 않을 피지컬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얼굴이다.
셔츠 안쪽의 근육은 어떨지 몰라도 에던의 얼굴은 신기할 정도로 생채기 하나 없었다.
심지어 정오 햇살 아래의 에던은 머리카락이 금가루처럼 빛나기까지 해서 잘 빚어 놓은 조각상 그 자체였다.
예쁜 얼굴에 그렇지 못한 몸. 여러모로 충격에 휩싸인 스미스는 조금 위축된 듯했지만, 흘깃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더니 눈에 힘을 빡! 주었다.
“거, 걱정 마세요. 라티에나 양!”
“스미스 씨…….”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갑자기 안색이 나빠진 거 전부 이 남자 탓이죠? 맞잖아요. 그렇죠?”
“…….”
고마워요, 스미스. 하지만 입 다물어. 에던이 널 노려보잖아.
이러다간 정말로 네 옆구리가 두 동강 날 거야. 내장이 파열될 거라고!
“있잖아요…….”
이대로 있다간 스미스가 선을 넘어 버릴지도 모른다. 난처하게 서 있던 내가 어떻게든 상황을 정리해 보려 하는데, 에던이 끼어들었다.
의외로 부드러운 말투였다.
“어디가 좋지?”
스미스를 향한 질문이다.
“……무슨 말씀이시죠?”
옆구리의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는지 안색이 좀 편안해진 스미스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라티에나가 좋은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말해 봐. 스무디.”
“제, 제 이름은 스미스입니다!”
“그래. 스무디. 말해 보라고.”
“스무디가 아니라……!”
“뭐.”
“…….”
당차게 이름을 주장한 스미스는 다시 한번 말을 맞받아치려는 것 같더니 매서운 눈빛에 바로 실랑이를 멈췄다. 그러며 잠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듯했다.
에던의 질문의 의도가 이상하게 느껴지겠지. 나도 그렇거든. 당사자인 나도 안 묻는 걸 왜 굳이 물어보는 건지.
대답을 기다리던 에던의 고개가 옆으로 까딱 기울어졌다.
“없어? 그럼 거짓말이었나?”
“거짓말이라니……! 제 마음은 진심입니다!”
“그럼 말해 봐. 뭐가 좋은 건지.”
에던의 추궁에 스미스는 날 힐끗 바라보더니 곧 양 뺨을 화르르 붉혔다.
“항상 우, 웃고 계시는 게 너무 예뻐서…….”
그 말에 나도 덩달아서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딱히 스미스가 좋아서가 아니라 예쁘다는 칭찬이 기분 좋아서였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내가 혹시 아이비의 외모를 기준으로 삼아서 이 몸을 너무 저평가했던 건가?
사실 나 좀 예쁜가?
“그럴 리가.”
생각을 하자마자 0.1초 만에 에던이 내 착각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나는 붉혔던 뺨을 싸늘하게 가라앉힌 채로 에던을 몰래 흘겨보았다.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은 에던은 툭툭, 발끝으로 스미스의 정강이를 가볍게 치면서 그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아! 아픕니다! 이, 이봐요!”
스미스는 반항도 못 하고 뒤로 밀려나며 나와 떨어지게 되어 자연스럽게 내 옆에는 에던이 서게 되었다.
적당한 선에서 걸음을 멈춘 에던은 다리를 삐딱하게 짚으며 스미스에게 말했다.
“그딴 말도 안 되는 이유는 믿어지지 않으니 세밀하게 찾아서 말해 봐.”
“뭐, 뭘 말입니까?”
“예쁜 곳 1만 개쯤?”
“……예?”
“왜? 많은가? 그럼 많이 양보해서 1천 개는 어때.”
“제, 제가 왜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합니까?”
“역시 거짓말이었군. 좋아하는 여자의 예쁜 곳 1천 개도 못 찾아낸다니. 나라면 1억 개도 더 말할 수 있겠는데.”
거짓말을 하는 건 너잖아!
스미스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유치한 시비에 넘어갈…….
“차,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일단은 눈! 코! 입!”
……바로 넘어가 버리네.
“피부! 얼굴형! 손! 발! 다리! 발가락! 귀! 배꼽! 손톱! 발톱!”
“…….”
스미스는 본 적도 없는 나의 모든 신체 부위를 모두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내장, 위장, 혈관까지 다 나왔다.
하지만 당연히 1천 개는 무리였고, 얼마 가지 않아 스미스의 말문은 막혀 버렸다.
“그, 그러니까 라티에나 양. 그래도 제 마음은 진심이에요! 정말로 예쁘다고 생각하고 정말로 제가 많이 조…… 좋아하는데…….”
스미스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확연히 주눅이 들어 자그마해져 있었다.
패배감에 젖은 스미스를 만족스럽게 내려본 에던은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네 답은?”
에던의 말에 맥없이 고꾸라져 있던 스미스가 얼굴을 번쩍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나는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왜냐면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거든.
“고맙지만 미안해요. 나 약혼자가 있어요.”
“예에?!”
스미스의 얼굴은 에던에게 맞았을 때보다 더 충격으로 물들었다.
그래. 난 약혼했다.
약혼자 이름은 제널드 요한. 제널드는 마차에서 굴러떨어졌을 때 상처 입은 날 치료해 주었다.
우린 3개월 만에 결혼을 약속했고 날 위해 제국을 떠나 이민까지 계획한 제널드는 현재 수도에서 일하는 중이다.
눈에 띄게 잘생긴 건 아니지만 착하고 다정한 제널드와 함께 돈을 모아 제국을 뜰 예정이었다.
애초에 여기에 취직한 이유도 그거였고.
“그…… 그런…… 솔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미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배, 배신자…….”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로 날 확신의 솔로라고 생각한 거니, 스미스? 좀 기분이 나쁜데.
“라티에나 양 미워요!”
콰앙! 스미스가 서러운 외마디를 던지고 대문 밖으로 달아났다.
정원에는 에던과 나만 남겨졌다.
그런데, 뭘까. 어쩐지 옆을 바라볼 수가 없다.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에던이 엄청나게 짜증 난 것 같다는 게.
나는 땅에 떨어진 식료품 봉투를 품 안에 안아 들었다.
“드, 들어갈까요?”
이 상황을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에던이 해를 등지고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너, 약혼자가 있었어?”
“네…….”
“언제부터?”
“처음부터 있었는데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에던의 예쁜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말 안 해서 화났나? 하지만 근로 계약서에 약혼자 여부를 적는 칸은 없었잖아.
물어보지 않아서 말 안 했을 뿐인데…….
에던은 몹시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벌어진 앞머리 사이로 보인 이마에는 핏대가 좀 솟아오른 것도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거 없는 것 같은데 죄인이 된 심정으로 난 에던의 눈치를 살폈다.
해를 등지고도 형형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는 마주한 순간 피를 뒤집어쓴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싹한 느낌이 들어 나는 어색하게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그러자 에던이 입을 열었다.
“못생긴 주제에 잘도 했네?”
“…….”
이 남자가 웃는 얼굴에 침 뱉어 버리네!
에던은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푹, 짓누르고 먼저 걸음을 돌렸다.
나도 그를 따라 재빨리 몸을 돌렸다.
다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현관으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여유로워 보였다.
내 자존심을 박살 낸 발언을 해 놓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