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50)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50화. 고성의 진짜 주인(50/92)
#50화. 고성의 진짜 주인
2024.06.19.
맥시엄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화들짝 놀라면서도 책을 냉큼 집어 들었다.
“이런 책이 어떻게 이런 곳에! 봐, 봐도 됩니까?”
“네.”
고개를 끄덕이자 에던은 허겁지겁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서고의 사제라더니 책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 보였다.
흑마법의 책이라고 하면 신전에서는 볼 수 없을 테니 귀한 레어템 같은 거일 테고.
순식간에 책을 읽어 내려가는 맥시엄의 표정은 처음으로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책을 어디서 난 건지 물어봐도 됩니까?”
정신없이 책을 넘기다 말고 맥시엄이 불현듯 어두워진 안색으로 날 바라보았다.
뭐, 이해는 한다. 흑마법은 명백히 불법이니까.
나는 검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검은 책이 있었던 자리를 가리켰다.
“저기 저 구석에 있었어요.”
맥시엄은 내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제야 도서관을 차분히 둘러보았다.
“엄청난 양의 책이네요. 오는 길에 힐스타인 님께서 여기가 대공님의 숨겨 둔 집이라고 하셨는데 책을 구입하는 취미가 있으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에던에게 그런 취미가 있다고는 생각 안 해요. 왜냐면 에던은 책을 읽지 않거든요.”
“예? 그럼 이 많은 책은 다 뭐죠?”
황당하다는 맥시엄에게 충분히 그 심정 이해한다는 듯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고성의 원래 주인이 수집해 놓은 것 같아요.”
“원래 주인이 누구인데요?”
“모르겠어요. 종잡을 수가 없거든요. 흑마법에 관한 책은 그거 하나뿐이고, 다른 책들은 식물 키우기부터 어린이 동화책, 로맨스…… 때론 엄청난 빨간 책까지 나오기도 하니까.”
말하면서 에던의 손에 들려 있던 불타는 밤을 위한, 어쩌고 책을 떠올린 나는 얼굴을 붉혔다.
고개를 내저으며 떠오른 기억을 지워 내려 하고 있는데 맥시엄이 갑자기 책상 모서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왜 그래요?”
“이, 이, 이거 대마법사의 문양이잖아요!”
“네?”
대마법사의 문양? 그런 건 못 봤는데.
다가가 살펴보니 정말로 작은 문양이 있었다.
하지만 대마법사의 문양이라기에는 너무나 심플한 정사각형의 표식이었다.
“이게요?”
진짜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맥시엄은 책장 사이를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보세요! 여기도! 여기도, 여기도! 책장에 전부 그 문양이 찍혀 있다고요!”
잔뜩 흥분한 듯 양팔을 벌려 외치는 맥시엄은 엄청난 보물 창고라도 발견한 듯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러다 휙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라티에나 님.”
“네?”
“대공님도 알고 있습니까? 이곳이…….”
“대마법사의 성이었다는 거요?”
“아니오. 저도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여길 구입한 건 루벤 경이고, 두 사람은 고성에 크게 관심이 없던걸요.”
애초에 그저 예민해진 에던을 잠시 쉬게 할 목적으로 구입한 거니까.
맥시엄이 머리를 쥐어 잡았다.
“이런 귀한 유산을 차지하고 계셨다니. 과연 대공님.”
“하지만 이 책 말고는 별로 중요한 책은 없었어요. 특히 마녀에 관한 책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그럴 리가 없습니다. 분명 어딘가 비밀 공간이 있을 거예요.”
으흠. 대마법사라.
뭐,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고성을 생각하면 괴짜 대마법사가 머물렀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다.
“마법과 흑마법, 마녀의 주술 등등 가리지 않고 습득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셨던 분이에요. 정치 싸움에서 빠졌다는 이유로 배척당해 지금은 비록 돌아가셨지만 마법사나 사제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전설이라고 불리는 어마어마한 분이죠. 그런 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이라니, 가능하면 사제직을 때려치우고…….”
건물 사방을 더듬거리며 매만지던 맥시엄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런데…… 마녀에 관한 책은 왜 찾으신 거죠?”
“그게 말이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 할까? 에던의 스파이로 몇 년을 활동하면서 비밀을 지켜 줄 정도면 신뢰해도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신전의 사제니까 아이비에 대한 말은 조심해야 할 테다. 거기에 내가 가진 치유력에 대한 것도…….
내가 조금 머뭇거리자 맥시엄이 훅 다가왔다.
“사실 저도 라티에나 님께 묻고 싶었던 게 있습니다.”
“뭐죠?”
“그날, 대성녀의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이비 대성녀는 어떤 사람인 거죠?”
“……네?”
그날 맥시엄과 힐스타인은 아이비가 내 힘을 빼앗아 가던 걸 보지 못했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혹시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는 건가?
“우선 그 전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두 분은 가족 같은 사이가 맞나요?”
가족 같은 사이라……. 그냥 X 같은 사이겠지.
걔는 그냥 날 호구로 본 거라고.
정신을 잃었을 때 기억해 낸 과거를 떠올려본 나는 미간을 구겼다.
“아니오. 전혀요.”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냐는 듯한 차가운 내 대응에 맥시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거짓말이었군요.”
“의심하고 계셨던 거예요?”
“사실 신전으로 모셔다드릴 때까지도 몰랐습니다. 대공님이 부탁한 일이라 했을 뿐이니까요. 그런데 분명 그날…….”
맥시엄이 시선이 내 손으로 향했다.
“미라가 되어 있던 라티에나 님 손을 봤죠. 그리고 사실 이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봤습니다.”
“뭘요?”
“아이비 대성녀가 성녀 후보들을 미라로 만든 것을요. 그러니까.”
“……그날 아이비의 방에서 봤던 내 손과 성녀 후보들이 미라로 죽어 나가는 게 아이비의 짓이라는 거죠?”
“아, 아마도요.”
큰 비밀이라고 털어놨는데 너무나 침착한 내 모습에 맥시엄은 좀 당황한 듯했다.
나는 그에게 내 손을 활짝 펼쳐 보여 주었다.
“아마도가 아니에요. 아이비는 그날 내 손을 미라로 만들었어요. 다행히 멀쩡히 되돌아오긴 했지만 에던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전 다른 성녀 후보들처럼 미라가 되어 죽었을 거예요.”
“역시! 제 예상이 맞았던 거군요!”
이럴 줄 알았다며 맥시엄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잠깐만, 그럼…… 어떻게 된 거죠? 대성녀는 충분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데…….”
맥시엄은 말꼬리를 흐렸다. 곰곰이 무언가 생각하다가 번뜩 눈을 키웠다. 무언가 짐작 가는 곳이 있다는 듯 고개를 치켜든 그가 날 뚫어져라 응시했다.
“혹시, 대공님께 치유력을 사용한 적이 있으십니까.”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아이비의 치유력에 대한 의심도 한 스푼, 보잘것없다고 알려진 내가 가진 치유력에 대한 호기심도 한 스푼 담긴.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맥시엄이 소리를 지르려다 말고 입을 텁, 틀어막았다.
“그, 그러니까 대공님이 요즘 들어 기분이 좋아 보였던 게, 라티에나 님을 구하러 신전까지 쳐들어왔던 게 전부…….”
내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는지 맥시엄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제라니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성녀 후보들이 미라로 죽는 이유는 치유력을 빼앗겨서이다.
그리고 그날 내 손이 미라로 변했었고, 에던은 날 구하러 왔다.
바꿔 말하면 아이비가 내 치유력을 빼앗으려 했고 에던이 그걸 막은 것이다.
에던의 스파이였던 맥시엄은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
힐스타인과 같은 생각을 했던 거다. 부작용에 시달리는 에던이 아이비가 아닌 나를 챙긴다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거다. 그리고 아이비는 날 간절히 찾았고.
맥시엄은 내가 아이비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가능성이 높았다.
“실례가 아니라면 라티에나 님의 치유력을 다시 측정해 보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내 예상대로였다. 맥시엄은 내가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기꺼이요.”
단숨에 이곳이 대마법사의 성이라는 것을 알아낸 맥시엄.
사제라서 정보도 얻을 수 있는 데다가 아이비의 정체를 드러내도 괜찮을 충분한 신뢰를 줄 수 있는 남자.
게다가 이곳보다 훨씬 더 방대한 양이 있을 신전 서고의 책을 관리한다.
여러모로 손을 잡으면 이득일 거야.
나는 언제든 그러겠노라는 의미로 협상을 하듯 맥시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
내 의도를 모르는 맥시엄은 의아해하면서도 덥석 손을 잡아 악수했고, 그 순간 쾅쾅! 하며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 에던?”
깜짝이야.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
“갑자기 무슨…….”
“노크.”
“…….”
어딜 봐서 방금 그게 노크라는 거야?
또 뭐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에던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리고 그 뒤에서 힐스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도 악수해 주세요.”
“…….”
두 남자의 매서운 눈빛을 본 맥시엄이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그,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고 싶습니다만. 제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맥시엄.
나는 울상을 지으며 이마를 짚었다.
하여간 저 또라이들만 나타나면 머리가 아파 온다.
***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냉혈한 표정으로 방으로 돌아온 아이비가 옷을 집어 던졌다.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깊은 새벽 시간이었기에 옷가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불이 꺼진 커다란 방 안으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아이비는 알몸으로 달빛을 받으며 창을 향해 손을 올려보았다.
진주와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손톱이 달빛에도 눈 부실 만큼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가녀린 손가락에 잘 어울리는 화려한 손톱이었다.
투명하리만큼 점점 더 하얘지는 부드러운 피부, 누구나 아름답다 칭송하는 대성녀의 모습.
휙, 몸을 돌려 커다란 거울을 응시하는 아이비의 모습 그 어디에도 조금 전의 잔인한 여자는 없었다.
“쓸모없는 것들.”
잠시나마 매끄러운 입술을 끌어올렸던 아이비가 빠르게 얼굴을 구겼다.
오늘 밤에도 성녀 후보들의 힘을 흡수하고 돌아왔다. 내일 아침 또 몇 구의 미라가 발견되겠지만 그녀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없다.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까.
신전에서 성녀 후보들이 죽어 나가는 원인이 대성녀인 자신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