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56)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56화. 다치지 않을 겁니다(56/92)
#56화. 다치지 않을 겁니다
2024.06.25.
“칭찬할게. 요즘 꽤 용맹해. 이젠 나한테 잔소리까지 할 수 있고. 언성도 높이고, 응? 아주 그냥 실컷 까불어.”
아니. 조금 전에 체통 지키라고 했잖아아…….
왜 또 이 자세냐고.
내가 울상이 되자 에던이 벤치 등받이를 잡고 있던 커다란 손으로 내 뺨을 매만졌다.
“더 해. 계속해 봐. 더 하고 싶은 말 없어?”
내가 입술을 꾹 다물자 에던이 뺨을 만지던 손을 내려 턱을 붙잡고 왼편으로 돌렸다.
경사진 비탈길 아래로 위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할 수 있게 돌려 두었다.
“왼쪽으론 강이라서 아무도 없고, 오른쪽은 벤치에 가려져 있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엄지손가락으로 찬찬히 턱을 어루만지던 에던의 손가락이 차츰 입술 위로 올라왔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짓을 해도 다른 사람들은 모를 거라는 말이지.”
살짝 벌어진 입술 끄트머리가 슬며시 올라가고 있었다.
날 만지는 에던의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오늘따라 나는 이상하게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항상 조금은 에던이 다급하게 다가왔었는데, 왜지.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시선을 피하지 않자 에던이 콧잔등을 찡그렸다.
“라티. 너 말이야.”
“……?”
“그런 표정 짓지 마. 진심으로 잡아먹어 버리고 싶어져.”
에던은 그 말을 하고 내 입술을 매만지던 손을 제 입술로 가져갔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손끝을 살짝 핥았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행동을 했었는데 무의식적으로 하는 건진 몰라도 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알겠다. 그때처럼 무섭지는 않지만 에던은 여전히 너무, 너무 섹시하니까!
정염이 가득한 시선이 내 이마 위에 앉았다가 콧등과 뺨을 타고 서서히 내려와 내 입술에 닿았다. 그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숨을 꿀꺽 삼켰다. 어쩐지 조금 갈증이 나는 것 같았다.
에던의 몸의 무게가 적당히 날 짓눌렀다.
그가 고개를 숙여 내게 붙이려 할 때, 순간 하늘이 조금 더 어두워지며 상점가 쪽에서는 뿔피리와 북소리가 울렸다.
고요했던 주위가 시끄러워지며 에던은 순간 짜증이 치민 듯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
나도 어느새 잊고 있었던 현실로 돌아왔다.
“곧 시작할 시간이죠? 우리 풍등 사요.”
다시금 인파 속으로 끼어든 우리가 풍등이 늘어진 가게로 향하는 길이었다.
“대공님.”
그림자처럼 스리슬쩍 루벤이 에던의 곁으로 다가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짧게 눈짓으로 인사를 한 루벤은 에던의 귀에 대고 들리지 않는 말을 속삭였다.
그 잠깐 사이 바람은 조금 더 쌀쌀하게 뒤바뀌고, 달무리가 최고로 짙어졌다.
사람들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강가로 우르르 몰려왔다.
각자가 가진 풍등에 불을 붙이고, 폭죽 소리와 함께 동시에 어마어마한 수의 풍등이 차례차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싸늘한 공기에 습기를 머금은 밤 공기 냄새. 어두운 밤에 일정하게 올라가 밤하늘을 채우는 주홍빛 풍등의 흔들거리는 작은 빛은 절경이었다.
모두가 각자 자신이 올려보낸 빛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던 때였다.
“마, 마물이다!”
누군가 외친 날카로운 고함과 함께 사방에서 검은 전투복을 입은 이능력 기사들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휘익-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산맥의 저편에서 새카맣고 커다란 마물이 날아오고 있었다.
멀리서도 보일 만큼 거대한 날개에 용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날개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려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충격으로 사망할 것 같았다.
“루벤.”
“예, 대공님.”
에던이 재빠르게 검을 뽑았다.
기다리라는 듯 내 머리를 살포시 두어 번 두드린 그가 단숨에 강을 향해 튀어 나갔다.
루벤은 곧장 내 곁으로 와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러자 에던의 다른 부하 둘이 튀어나와 내 양 옆자리를 지켰다.
“절대 떨어지지 마라.”
“예!”
“예!”
루벤은 그들에게 나를 맡기고 에던의 뒤를 따랐다.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마물은 그새 강 하늘 위에 있었다.
휘이- 휘이- 스산한 바람 소리를 내며 마물이 정탐하듯 사람들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크르르릉-.
대지가 울리는 듯한 거친 숨소리와 바람을 일으키며 마물은 허공에서 풍등을 아그작 씹어뱉었다.
에던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고, 그의 부하들이 싸웠던 것을 봤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겠지만 다른 걱정이 일었다.
하늘을 나는 마물이잖아. 저런 괴물과 허공에서 어떻게 싸우는 거야?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렇게까지 겁을 먹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사람들은 조마조마한 안색으로 살피긴 했지만 크게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없고 서둘러 도망치는 사람도 없었다.
뭔데 이 상황? 보통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야 하는데…….
그리고 곧 나는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마물의 눈동자가 사람이 몰린 시장의 거리로 향한 순간 거대한 손 모양의 푸른 형상이 하늘을 덮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거대한 손은 마물이 절대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탄탄한 장막을 만들어 냈다.
기사들은 에던이 만들어 낸 푸른빛의 장막을 딛고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전부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에던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수십 명의 기사 중, 가장 높이 하늘로 뛰어오른 남자. 그가 에던이었다.
모두가 날렵하고 강인한 전사들이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불필요한 몸짓 따윈 전혀 없었다.
눈으로 좇기 힘들 만큼 재빠른 그들의 움직임에 마물은 삽시간에 움직임이 포박되었다.
기사들의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마물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날개와 팔, 다리, 머리, 등줄기를 푸욱 단번에 찔러넣었다.
키에에-!
피로 보이는 초록의 액체를 흩뿌리며 마물이 울부짖고, 에던이 마물의 머리 위로 올라가 섰다.
그리고 긴 검은 마물의 목과 거대한 몸체를 동강냈다.
퍼포먼스를 보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는 싸움이었다.
순식간이었다. 마물의 시체가 반대편 강가로 내던져진 것은.
“와아아아-!”
사람들은 환호했고, 나는 멍하니 그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담았다.
에던의 말대로였다. 짧은 시간에 피해 없이 마물을 해치웠다.
환희와 경이로움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원작에서 에던은 누군가를 지킨 적이 없었다. 고통에 시달려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계속 북부를 지켜 왔던 거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안다. 마물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축제에서 위험이 닥쳐도 이 땅의 주인이 결국 이렇게 용맹하게 나서 자신들을 지켜 주리라는 것을 그들은 신뢰하고 있었다.
에던은 학살자가 아니었다. 사람을 지킬 수도 있는 남자였다.
비록 쫓겨나듯 와서 살게 된 북부라고 해도, 남들 앞에서 티 내지 않을 뿐이었다.
사실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그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자신의 영지를 지키고 있었던 거다.
“에던…….”
순간 그가 진심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다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못된 황제와 황후 사이에서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마물이 사라진 밤하늘로 다시 힘차게 날아오르는 풍등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흡-!”
두터운 장갑의 감촉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쉿.”
굵은 저음의 남자가 귓가에 속삭였다.
“가만히 있으면 다치지 않을 겁니다. 아프게 하지 않을 테니 그대로 있어요.”
부드러운 미성의 목소리와 함께 달콤한 과일 향이 코끝을 스쳤다.
황급히 주위를 살피자 에던의 부하 둘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으읍……!”
입을 막은 손을 붙잡고 떼어 내려 했지만 당연히 내 마음대로 움직여질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소리를 내려 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껏 몸을 버둥댔다.
“라티에나 메리골드.”
날 알고 있다. 여전히 미성의 목소리였지만, 일순간 소름이 끼치며 동작을 멈췄다.
내 몸에 힘이 빠지자 남자가 되물었다.
“소리 지르면 더 이상 봐 드리지 않을 겁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가 손에 힘을 살짝 뺐고, 나는 그를 보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한 발자국만 나서면 축제의 불빛이 가득한 훤한 거리인데, 건물의 그늘에 가려져 남자의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새하얀 천이 머리부터 목과 어깨까지 돌돌 싸매져 있었다. 가려진 사이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빛나.’
어두운 곳인데도 태양처럼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였다.
이런 짓을 저지를 만한 납치범이라고는 생각도 안 될 만큼 선한 눈매의 사내가 날 향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또다시 과일 향이 훅 스쳐왔다.
그리고 그 순간 불꽃이 하늘로 치솟는 소리와 함께 펑하고 폭죽이 터지고, 남자가 미간을 구기며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라티에나 님!”
루벤! 나는 황급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을 뽑아 든 루벤이 이쪽으로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덤벼오는 루벤의 모습에 일순 겁이 났지만, 나는 남자의 손등을 있는 힘껏 끌어내렸다.
“루벤 경!”
내가 크게 소리를 외치자마자 몸이 그대로 허공에 날다시피 하며 시선이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자의 부하로 보이는 사람이 검을 가지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챙-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날 끌어안은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시야가 순간적으로 어두워지고, 곧 주위는 다시 환하게 밝혀졌다.
귀를 울릴 정도로 시끄럽던 폭죽 소리가 사라지고 삽시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