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59)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59화. 도와줄게요(59/92)
#59화. 도와줄게요
2024.06.28.
“인생이 매번 계획대로 돌아가진 않아요.”
“아뇨. 그럴 겁니다. 난 실패하지 않을 거고, 상황은 제가 짜 놓은 대로 흘러갈 겁니다.”
“……왜 그렇게 확신해요?”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어서죠.”
물로 입을 축인 단테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저도 물어보죠. 대성녀와 가족 같은 친구라고 들었는데 왜 도망치려 하죠? 그녀가 보고 싶은 것 아닙니까?”
“…….”
또 그 소리. 가족 같은 소리 하네.
아이비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아났다.
단테는 정말로 아이비가 날 걱정해서 찾는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전에서 성녀 후보들이 죽어 나간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아니, 어쩌면 힐스타인과 같은 생각일 수도 있다.
겉으론 다정하지만 속내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특권을 얻기 위해 날 가져다 바칠 뿐이지. 내가 미라가 되든 말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 거다.
공감 능력 결여자들 같으니라고!
대답 대신 쿡쿡, 포크로 샐러드를 찔러 댔다. 그리고 곧 우리의 대화는 끊겼다.
“공작님.”
그의 부하가 왔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냐.”
천으로 얼굴을 가린 그의 부하는 날 스윽 쳐다보더니 다시 단테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보고해.”
그 말에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마물입니다.”
마물? 나는 밖을 바라보았다.
오전 햇빛이 쨍쨍하게 사막 위를 내리쬐고 있었다.
보통 마물들은 한밤중에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시간에 마물?
“가지.”
“집결은 어떻게 할까요?”
“최소한으로 간다.”
“네. 알겠습니다.”
단테가 냅킨으로 입을 닦고 일어섰다.
“먼저 갈 테니 천천히 식사하시죠.”
나는 단테의 음식을 응시했다.
깔끔히 스테이크를 썰어 놓은 것치고 많은 양이 남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 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제국에서 손꼽는 강인한 이능력자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이상하다는 걸 아는데, 단테의 등은 조금 지쳐 보였다.
***
사막 도시의 밤은 일찍 시작되었다.
낮에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불타던 태양은 동부보다 훨씬 일찍 저물었다.
그래서 밤이 되어도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왔다. 나오자마자 검은 실루엣이 훅 다가왔다.
“우힉!”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걸 참다 보니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어디 가세요?”
아침에 만났던 양 갈래 검은 머리 여자였다.
“산책을 하고 싶은데…… 안 될까요?”
“안 될 리가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함께 가요. 길이 미로처럼 복잡해서 자칫하면 잃을 수도 있거든요.”
“고마워요.”
사막은 무척 춥다고 했는데 성벽 안의 도시라서 그런지 온도가 알맞았다.
“공작님께서 갑자기 나가시는 바람에 하루 종일 심심하셨죠.”
“아. 그거 말인데, 원래 사막에서는 마물이 낮에도 나와요?”
“네. 아주 가끔이요. 보통은 밤에 나오는 게 정상이지만 수명이 다해 죽기 전의 마물은 그럴 수도 있대요.”
“으흠.”
그럼 단테는 밤이 아닌 낮에도 싸워야 한다는 거네.
그나마 북부처럼 마물의 수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오는 마물을 꾸준히 처리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치유력도 그만큼 꾸준히 공급받아야겠지만.
“아, 죄송해요. 이쪽은 안 돼요. 다른 길로 가요.”
빙글빙글 거리를 돌다가 갑자기 하녀가 창백한 얼굴로 길을 막아섰다.
“왜요? 사유지예요?”
그리고 건너편 건물에서 찢어지는 듯한 고통의 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귀를 세우는데 역시나 비명이 났다.
“아, 안 돼요. 실수에요. 이쪽은……!”
하녀는 안절부절못하고 그새 식은땀을 흘렸다.
얼핏 들어도 목이 쉴 대로 쉬어 버린 비명이었다.
‘어린애……?’
목이 쉴 대로 쉬어 서너 갈래로 갈라져 거칠었지만 얇은 고음의 목소리였다.
어린애가 저런 괴물 같은 고통의 소리를 낸다고? 어디가 아프길래?
너무 놀라서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는데 또다시 내장을 토해 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렸다.
불안이 엄습했다.
같은 건 아니지만 난 이 비슷한 괴로움을 알고 있었다.
하녀를 뒤로하고 다급히 건물로 달려갔다.
“라, 라티에나 님……. 걸리면 큰일이에요. 전 죽어요.”
“쉿.”
괜찮다며 하녀에게 손짓하고 까치발을 들어 창으로 방 안을 살폈다.
세상에.
“흡!”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단발머리의 가냘픈 여자아이였다.
단테와 같은 짙푸른 색 머리카락을 가진.
높게 봐야 10살 남짓해 보이는 여자애는 거대한 침대 위에서 발버둥을 치다가,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다가, 엉엉 울기를 반복했다.
곁에는 주치의로 보이는 어른들이 다섯이나 붙어 있었는데도 그 어떤 조치도 하지 못하고 손을 놓은 상태였다.
“누구예요? 저 애?”
어느새 나와 같이 방 안을 바라보고 있던 하녀가 울먹이며 속삭였다.
“노아 이안 님이세요…….”
이안이라면.
“공작의 동생인가요?”
“네…….”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듯 하녀는 붉어진 눈시울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일주일 전에 마물 토벌에 따라 나가셨다가 마물에게 공격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저 여리고 작은 분이 어딜 얼마나 다치셨는지…….”
마물? 아니야. 저건 이능력을 사용해서 오는 부작용이잖아!
나는 어둡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금 방을 바라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원피스.
건조하게 말라비틀어진 입술은 부르터서 피가 고여 있었다.
어떻게든 고통을 참아 보려 이를 악물었다가.
다시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내질렀다가.
아이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했다. 두 눈 뜨고 지켜보기 힘들 정도였다.
비슷한 나이대여서 그럴까.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에던의 어린 시절이 겹쳐졌다.
처음 토벌에 나가 이능력을 사용한 에던이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던 그 과거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입구가 어디예요? 안으로 들어가야겠어요.”
“네?”
“어서요!”
“아, 안 돼요! 여긴 그 어떤 분이라고 해도 절대 출입 금지…….”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어서 안내해요.”
그때였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단테가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당장 물약을 가져와!”
당장이라도 목을 베어 버릴 듯 분노가 가득한 명령이었다.
흠칫 몸을 떤 주치의들은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가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가장 길고 높은 모자를 쓴 의사가 단테를 향해 말을 걸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공작님. 이미 한 시간 전에 약물을 복용하신 상태입니다.”
아이를 향해 있던 단테의 서늘한 눈동자가 의사에게로 돌아섰다.
“효과가 없잖아! 더 가져와!”
“일주일 새에 노아 님께서 마신 물약이 수백 병이에요. 그리고 아직 신전에서 주기로 한 물약도 오지 않아서 물량이 모자랍니다. 만약 이 상황에서 마물이 나타나면 다른 기사님들은…….”
“그래서 다른 이능력자들을 대신해 내가 마물을 혼자 해치우고 온 것 아닌가. 당장 전부를 가져와.”
“공작님, 이해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냉정히 생각하시고 기다리는 것이…….”
단테가 주치의의 목을 쥐어 잡았다.
“부족하면 내 것이라도 가져와.”
“그건……!”
주치의가 말끝을 흐렸다. 당연히 안 될 말이었다.
단테가 낮에 혼자 마물을 처리하러 간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니.
동생을 위해서 제 물약까지.
부작용이 심할 텐데 어차피 자기는 신전으로 가서 아이비에게 치유받을 생각이었나?
“가져와.”
강압. 협박으로 들리는 명령이었다. 그제야 벌벌 떨고 있던 다른 주치의가 나섰다.
“공작님! 물약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 이상은 노아 님의 몸도 버티기가…….”
“닥쳐.”
단테는 신경질적으로 붙들고 있던 주치의의 목을 놓아주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뭘 더 버티라는 말이야!”
단테는 눈짓으로 노아를 가리켰다.
주치의들의 불안한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작은 체구의 어린아이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정도였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이능력의 부작용으로 일어난 고통은 절대 죽음까지 이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치의들도 그것을 알기에 최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한 것처럼 보였다.
물약을 수백 병이나 마셨음에도 효과가 없는 건 더 이상 물약으로 회복을 기대하기는 치유를 어렵다는 뜻이었으니까.
“대체 왜!”
단테가 머리를 거칠게 쓸었다.
“대체 왜 물약이 듣질 않는 거냐고!”
그 사이 노아는 손으로 제 몸을 긁어 내기 시작했다.
“으, 으흑…….”
아이는 쉬어 버린 목으로 가느다란 소리로 흐느끼며 온몸을 쥐어뜯었다.
핏줄이 터져 허공을 헤매고 있는 눈동자는 불안정하게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확 얼굴을 찌푸린 단테가 성큼 걸음을 옮겨 노아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하루면 돼. 하루만 참아. 노아.”
…….
단테가 날 납치한 이유가 이거였어.
날 아이비에게 데려다주고 특권을 사용하려 한 거야.
그래서 나를. 예상보다 빠르게 아이비를 위해서 움직인 거야.
“안으로 안내해 주세요, 어서!”
“하, 하지만…….”
“책임은 내가 질게요. 빨리요!”
내 강요에 하녀는 겁먹은 얼굴로 건물 안으로 날 인도했다.
바로 눈앞의 건물이었는데도 빙글 돌고 돈 후에야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방으로 향하는 복도에 막 첫발을 내디뎠을 때, 단테가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어깨를 감싸고 있는 천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노아가 살을 쥐어뜯어 나온 피겠지.
우뚝 서서 그걸 바라보고 있는데 단테가 나를 발견했다.
“라티에나?”
“제가 도울 수 있게 해 주세요.”
다짜고짜 쏟아진 내 말에 단테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찡그렸다.
이마에 손을 짚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가 다시 들어서 천장을 봤다가 결국에는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성큼, 긴 다리로 단숨에 내 곁에 다가왔다.
“대신 죽어 주기라도 할 텐가.”
진심으로 내뱉은 그 말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내가 겁에 질려 얼굴을 굳히자, 단테가 상체를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죽어서 저 아이의 고통을 없애 줄 거 아니면 닥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