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61)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61화. 건드리지 마세요(61/92)
#61화. 건드리지 마세요
2024.06.30.
단테가 창가로 향하고, 나도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가 밖으로 시선을 내던졌다.
광활한 사막과 도시를 가로막는 흙색의 거대한 성벽 한 귀퉁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치솟은 연기에 가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얼핏 보기에도 성벽은 상당 부분이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포털까지 건드렸군요.”
“네?”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단테를 올려다보자 그는 성벽을 응시하던 시선을 돌려 나를 내려보았다.
“당신을 데려온 후 대공이 뒤쫓을 것을 우려해 도시로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포털 입구를 봉쇄했거든요.”
“……그렇게까지요?”
“대공님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이라서요.”
단번에 납득이 되는 이유였다.
“급하게 해 둔 조치이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뚫어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단테의 말에 다시금 사막을 바라보니 무너진 성벽의 뒤편으로 일그러진 빛의 파편이 언뜻 보였다. 위치상 내가 납치되어 넘어온 그 포털이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지만요.”
작게 목소리를 중얼거리는 단테가 날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걱정스럽게 성벽만 바라보았다.
“에던…….”
이건 뚫어 버린 정도가 아니라 그냥 파괴잖아.
망가진 포털에, 박살이 나 버린 성벽까지. 수습은 어떻게 해야 하지?
나 하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니까 왜 납치 따위를 해서! 아니, 뭐. 그때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겠지만.
단테도 노아를 위해서 그랬던 거니까.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나와는 반대로 단테는 몹시 차분한 낯빛이었다. 나보다 더 깊이 한숨을 쉬어야 할 사람은 이 남자인데.
아무리 내가 뭘 모른다고 해도 지리상 저 높고 거대한 도시의 성벽이 사막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쯤은 알고 있다. 마물뿐 아니라 값비싼 보석이 나오는 부유한 도시이기 때문에 도적 떼나 다른 침략자들로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이라는 건 뻔하니까.
그런 성벽이 무너졌다. 에던에게서 나를 강제로 데려온 것치고는 손해가 너무 컸다.
첫 식사 자리에서 나눴던 얘기를 떠올려 보면 단테는 날 납치한 후 에던이 어떤 식으로 나올 줄은 예상은 하고 있었다.
노아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면 에던이 어떤 식으로 나오든 그에 맞설 각오조차 되어 있어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체념한 모습인가?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원인은 저니까요.”
단테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성벽을 응시하며 너무도 쉽게 제 잘못을 인정했다.
“정중히 사과드릴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조금 많이 놀랐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노아가 치유를 받았으니 전부 되었다는 것처럼.
엄청난 동생 사랑에 난 바보처럼 입을 뻐끔거리다가 휙 고개를 돌려 다시 성벽을 응시했다.
쾅-! 빛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또다시 성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번에는 소리도 이곳까지 닿았고, 진동까지 느껴졌다. 처음보다 더 강한 파괴력이었다.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길가로 나오는 것도, 단테의 부하들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접근을 막는 것까지 전부 보였다.
성벽 근처는 다시 모래 가루와 뿌연 연기로 차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시야를 집중하니 흩어진 연기 사이로 어렴풋이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상황을 파악하려고 눈을 가늘게 접어 살피던 나는 곧 휘둥그레 눈을 키웠다.
자욱한 연기가 내려앉고 있는 성벽 너머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자들이 서 있었다. 보려 애쓰지 않아도 익숙한 그 실루엣들은 북부의 에던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의 허리춤에 있는 긴 검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을 뿜어 냈다.
명령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전투에 임할 기세였다.
“가야겠습니다.”
말리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단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만 몸을 돌렸다.
“저, 저도 같이 가요!”
“그러시죠. 같이 가지 않았다간 성벽을 다 부숴 버리실지도 모르니까요.”
방문을 나선 단테는 계단을 아래쪽이 아닌 위로 향했다.
아무리 성의 길이 미로처럼 꼬여 있다고 해도 이 길이 성의 아래편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저어, 이 길이 맞아요?”
“맞아요. 대공이 있는 곳으로 곧장 갈 겁니다.”
곧장? 어떻게 간다는 소리야? 맨 꼭대기 층에서 낙하하겠다는 말은 아니길 빌며 나는 뒤를 힐긋힐긋 바라보며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가장 꼭대기 층의 방에 도달했을 때 단테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뻔했다.
나는 움찔하며 걸음을 멈춰 섰다.
바로 지난밤 노아와의 접촉에 대한 불쾌감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함부로 피부를 닿는 건 피하고 싶었다.
내 행동에 단테는 순간적으로 한쪽 눈가를 움찔거리더니 말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겁니다.”
알고 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라는 건.
일단 난 노아를 구해준 은인이었고, 그는 꽤 이성적이었으니까.
치유력을 보여 준 지난밤만 해도 이 남자는 힐스타인과는 달랐다. 분명 유혹적인 치유가 분명했음에도 노아를 위해 이성을 잃지 않았고, 오늘도 섣불리 날 만지러 들거나 치유력을 다시 느끼려 하지도 않았다.
방에서의 대화도 마무리하진 않았지만 신전으로 가고 싶지 않다는 내 말에 단테는 기꺼이 응해 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에던이 오지 않았으면 대화는 내가 유리한 쪽으로 잘 마무리되었을 테고. 서로에게 아주 괜찮은 거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의도라고 해도 손은 잡고 싶지 않아. 솔직히 무섭기도 하고, 두려워.
줄곧 마음 깊은 곳에 미라가 되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있었다. 그 마음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진짜 대성녀의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남주들과 직접 피부를 맞닿는 치유를 해도 미라가 되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잔존해 있었다.
더불어 강제적인 쾌락의 불쾌함까지. 혹시 모를 불편한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싶어.
날 납치할 수밖에 없었던 단테의 사정도 알았고, 노아의 고통도 치유되었다.
모든 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단테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재차 내민 손을 거부했다.
“미안하지만, 손은…….”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제로 무언가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포털을 이동하는 도중 넘어질까 봐서 그래요.”
“그래도…… 미안해요.”
단테는 숨을 가볍게 내쉰 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안쪽으로 돌려 에스코트하듯 팔을 내밀었다.
“이 정도면 될까요? 손이 아니면 됩니까?”
아니. 손이 아니라도 피부를 맞닿는 건 매한가지잖아.
하지만 손보다는 나을지도.
나는 그의 팔에 조심스레 손끝을 얹었다.
단테가 헛웃음을 흘렸지만 나한테는 이게 최선이다.
이건 지팡이다. 햇빛에 잘 그을린 갈색 지팡이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사이 화려한 문양으로 디자인된 커다란 문이 열렸다. 안은 목소리가 울릴 만큼 아주 커다란 텅 빈 공간이었다.
“포털을 열어라.”
단테의 한마디에 방안이 푸른빛으로 하염없이 빛이 났다.
“세상에.”
아무것도 없던 텅 빈 공간에 수십 개의 포털이 동시에 생겨났다.
놀라서 감탄한 것도 잠시, 단테는 익숙하게 그 중 하나를 골라 향했다.
“조심하세요.”
단테의 팔을 붙잡은 손끝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장소는 순식간에 뒤바뀌었고, 일순 모래 바닥에 발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중심을 잃었다.
몸을 휘청거리자 단테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제 팔에 힘을 불끈 주었다.
덕분에 나는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이런 건 예상 못 했…….”
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다가 나는 그대로 몸을 굳혀버렸다.
예상 못 한 게 또 하나 있었다. 이동한 곳이 에던의 바로 앞이라는 것.
고개를 들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수십 명의 기사 사이로 단 한 명만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후드의 그늘과 콧등까지 가린 천이 얼굴을 어둡게 가리고 있었지만 저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를 헷갈릴 리가 없다.
놀라서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러자 적절한 습도로 잘 관리되고 있는 성안과는 다른 건조한 사막의 공기가 훅 들어왔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부하들이 좌우로 조금씩 이동해 틈을 벌리자 에던이 그 사이로 성큼 걸어 나왔다.
“…….”
아무 말 없이 무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왜 이렇게 무서울까.
에던은 나른하게 내리깐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예민하게 날이 선 눈동자가 단테의 팔에 닿은 내 손에 닿았다.
당황스러워서 시선을 피하자 바로 옆에 서 있던 루벤과 눈이 마주쳤다. 루벤은 미간을 있는 힘껏 찡그렸다. 정신 차리라는 듯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여 에던을 보라며 눈치를 주었다.
알아. 나도 안다고.
저 미치광이가 얼마나 질투심이 강한지 알아. 나한테 집착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
납치당해서 쫓아왔는데 내가 이렇게 있다는 게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도 이해해.
하지만 사람이 넘어질 것 같으면 뭐든 붙잡고 싶어지는 게 본능이잖아. 그래서 잡았을 뿐이라고.
나는 서둘러 단테의 팔을 잡았던 손을 놓으며 뒤로 성큼 물러났다.
그 바람에 다시 넘어질 뻔했다.
“괜찮아요?”
이번엔 급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지 단테가 날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재빨리 손사래 쳤다.
“네! 괜찮아요! 건드리지 마세요!”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그대로 모래 위로 철퍽 넘어졌다.
“으…….”
햇빛에 잘 달궈진 모래 덕분에 엉덩이가 뜨거워졌지만 에던의 저 화난 눈빛보다는 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