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63)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63화. 이상한 마음(63/92)
#63화. 이상한 마음
2024.07.02.
그는 셔츠 깃을 꼭 붙들고 있던 내 손을 아래로 내리더니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쳤다.
좀 전까지 잔뜩 화가 나 있었는데 눈꼬리가 조금 느슨해져 있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묻는 것 같아?”
“그럼 왜 물어요?”
“이상한 짓을 당했다거나 그걸 강제로 입은 거냐고 묻는 거잖아.”
뭐야. 단테가 내게 옷을 억지로 입힌 줄 알고 화가 났던 건가?
예상과 조금 다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하녀들이 입혀 준 거예요. 공작님은 한마디도 안 했어요.”
에던은 다시 실소를 흘렸다.
“정말로?”
“정말로요.”
양손을 그대로 내린 에던은 내 한 손은 여전히 잡은 잡았다. 그러곤 다른 한 손을 내 머리 위에 올리더니 휘적휘적 아무렇게나 헝클어트렸다.
“그럼 됐어.”
에던은 내 손을 잡은 채 몸을 돌려세웠다.
“공작.”
그 순간 단테의 시선이 바쁘게 이동했다.
“네, 전하.”
분명 단테의 눈길은 나와 에던이 잡은 손으로 향해 있었다. 그러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에던과 시선을 맞추고 대화를 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몸의 신경이 손끝으로 향했다. 에던과 단테가 바로 옆에서 사무적인 몇 마디를 나누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에던의 커다란 손이 내 손을 감싸 쥐듯 덮고 있었다.
맞잡았다기보다는 그가 붙잡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도 에던의 손을 잡고 있다.
괜스레 손끝을 움직여 보았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는데도 에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너무 강하게 쥐지 않아 아프지 않았다.
대검을 한 손에 쥐고 휘둘러 거대한 마물을 베는 만큼, 에던의 손에는 강한 힘이 있다.
내 손을 아프지 않게 쥐기 위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워 힘을 조절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무척이나 다정한 손이었다.
‘이상해.’
분명 이능력자들과는 그 어떤 접촉도 하기 싫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노아의 경우도 내가 스스로 원해서 치유를 했지만 마음과 생각과 달리 불쾌한 감각은 남아 있었다.
힐스타인이나 단테에게 그런 치유를 한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끔찍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생각만으로도 불쾌했고, 구토감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런데 에던은…….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안심이 돼.’
에던을 치유해 줬을 때 느꼈던 그 쾌락 때문일까?
아니다. 치유하면서 느끼는 쾌락은 정신적인 것과 전혀 관계가 없어.
그러니까 내가 힐스타인이나 단테에게 직접적인 스킨십으로 치유를 해도 그 쾌락은 찾아올 거라는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불쾌하다는 게 문제지.
‘에던은 확실히 달라.’
직접 치유를 원하긴 하지만 적정선을 지켜 조절한다. 강압적으로 내 치유력을 가져가려고 하지 않아.
단지 그것 때문일까? 이렇게 안도감이 드는 게?
이유는 모르지만,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에던과의 스킨십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다.
덥다. 달아오르는 체온 때문인지 괜스레 내 심장 소리마저도 불규칙하게 두근댔다.
혹여 그도 덥다는 이유로 내 손을 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잡은 손에 힘을 꾹 줬다.
그리고 에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눈을 내리뜬 에던이 날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
“놓을 생각 하지 마.”
그런 생각 안 했는데.
자세를 바로 세우려던 에던은 무심하게 방향을 틀어 내 오른편으로 조금 움직였다.
그러자 태양이 가려지며 그늘이 졌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더웠던 햇빛이 사라졌다.
“고마워요.”
작게 소곤거리자 에던은 아주 미세하게 입술을 살짝 올리며 씰룩거렸다.
그 후 다시 몸을 꼿꼿이 세워 단테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에던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단추 두어 개 풀어 놓은 셔츠 목덜미 사이에 눈길이 갔다.
햇빛 때문에 새어 나온 땀 한 방울이 그의 턱선 끝에서부터 목을 타고 쇄골로 흘러내렸다.
대화를 잇는 에던의 입술이 적당히 벌어졌다가 닫혔다.
날카로운 콧대 위로 햇빛이 맴돌고, 정리된 눈썹 사이로 미간이 슬쩍 구겨졌다가 펴졌다.
새삼스럽지만 정말이지.
외모만큼은 완벽한 내 이상형이다. 에던은.
‘에던이 날 아끼는 건 치유력 때문인데…….’
나는 다시금 붙잡은 손에 꼭 힘을 주며 들릴 듯 말 듯 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러보았다.
“에던.”
에던의 가지런한 속눈썹이 멈칫하며 고개가 내 쪽으로 움직였다. 황금 실타래 같은 부드러운 금빛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루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가 내 시선 끝에 닿았다.
“왜?”
단테와 대화를 하며 차갑던 시선은 날 돌아보는 잠깐 사이에 느슨해져 있었다.
줄곧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변화였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지금 내 행동이 이상하다는 걸 알지만 그냥 멍하니 에던을 응시했다.
단테와 루벤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어 있었지만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에던은 조용한 내가 정말로 이상했는지 손바닥으로 내 이마를 짚었다.
“어디 아파?”
미간을 찡그리면서 다정하게 묻는 그의 모습과 따뜻한 체온에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조금 무서워졌다.
평소 무섭다는 가벼운 감정이 아닌, 가슴 깊은 곳이 쿡쿡 쑤시면서 아파 왔다.
그의 곁에 있는 이 안도감이 좋은데, 조금 두려운 마음이 엄습했다.
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지?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나는 에던을 보고 환하게 웃어 버렸다.
“안 아파요.”
에던은 어이없다는 듯 잠시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한쪽 입술을 슬쩍 끌어올려 웃었다.
그리고 다시 단테를 바라보았는데, 단테는 그사이에 또 내 손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급히 에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튼 제 잘못을 모른 척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신 김에 안으로 드시죠.”
***
결국 단테의 성에 들어온 에던은 루벤과 부하 둘만 빼고 다른 부하들을 모조리 돌려보냈다.
그러곤 성안에 들어와 어제 단테와 함께했던 곳이 아닌 손님 접대용 커다란 응접실로 향했다.
긴 식탁에 마주 앉자마자 음식들이 빠르게 놓였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방문인데 단테의 지시 하나로 순식간에 준비된 것이다.
나는 에던과 단테의 관계를 떠올려보았다.
그들은 황태자 킬리언이나 힐스타인처럼 사이가 나쁘진 않았었던 것 같다.
단테는 마지막에 에던이 괴물이 되어 미쳐 버린 상태에서 그를 죽이기 위해 합세했으니까.
형제지만 정치적인 관계나 부모들 때문에 얽힌 관계인 킬리언과 다르게, 또 황후의 최측근인 힐스타인과 다르게 별개의 관계였던 거다.
그래서인지 에던도 단테가 정중히 사과하자 크게 화를 내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좋게 풀릴 수도 있겠어.
“드시죠.”
단테의 권유에 에던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공작은 내가 식사나 하러 여기까지 따라 들어온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네. 아니죠. 하지만…….”
단테가 날 바라보았다.
“라티에나 님은 드셔야 할 테니까요. 그렇죠?”
“아…….”
“간밤에 버텨 내느라 많이 힘드셨을 테니까요.”
“…….”
옆자리에서 에던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보지 않아도 비수같이 날아와 꽂히는 그의 매서운 눈길이 느껴졌다.
목적어를 붙이라고 이 인간아!
뭘 버티고 뭐가 힘들었는지를 말해야지. 오해하잖아!
“오해하지 마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어요.”
“무슨 일?”
“별거 아니었어요. 좀 피곤했다고 할까.”
“납치당한 곳에서 피곤할 일이 뭐가 있지?”
상식적으로 납치를 당하면 피곤한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내 모습이 그렇게 보이지 않기도 했고, 단테의 도발적인 말에 신경이 거슬렸는지 에던은 은근슬쩍 말을 비꼬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미 좋지 않은 그의 기분을 망치려는 건 아니지만 지난밤의 일을 솔직하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노아의 이야기는 대외적으로 비밀이니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어차피 에던이 확인할 것도 아니라 대강 둘러대야지.
그런데 단테가 와인이 채워진 잔을 내 앞에 툭 내려놓았다.
그리고 괜찮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여 신호를 주었다.
내가 곤란해하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제가 말씀드리죠.”
다시 자리에 앉은 단테는 루벤과 다른 부하 둘을 바라보았다.
“다만, 중요한 일이라 함부로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부하들을 물려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단테는 스스로 먼저 자기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그의 부하들은 군말 없이 몸을 숙였고 허리춤에 찬 검이 철컥 소리를 내며 방에서 물러났다.
“나가 있어.”
에던도 가벼운 턱짓으로 루벤과 부하 둘을 내보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넓은 공간에 세 사람만이 남았다.
“공작에게 얼마나 중요한 변명이길래 이렇게 날 귀찮게 구는 건지 궁금하군.”
“죄송합니다.”
“어서 말해. 남의 것을 납치해 놓고 사과 한마디와 이깟 음식들로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야.”
“네. 압니다.”
잠시 숨을 고른 단테가 잔을 매만졌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는지 이해도 가능하고요.”
에던이 고개를 기울였다. 언짢은 듯했지만 일단 계속 지껄여 보라는 시선이었다.
단테의 시선은 날 스쳐 지나가 다시 에던에게로 향했다.
“잠깐이었지만, 저도 라티에나 님의 치유력을 느꼈습니다.”
에던은 대꾸 없이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니 알 수 있었죠. 전하께서 그토록 라티에나 님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를요.”
“그래서.”
“저라도 절대 빼앗기고 싶지 않을 분인 것 같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말치고는 전혀 설득력이 없군.”
내 말이 그 말이다. 나는 단테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저렇게 말을 하는 거야? 오히려 도발하는 것 같은 분위기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단테는 제 할 말을 꿋꿋이 이어 나갔다.
“그러니 라티에나 님께 왜 그렇게 집착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상급 마물도 뚫기 힘든 아티팩트로 막아 둔 성벽을 부수고 오실 정도로 강한 이능을 사용하신 것도요.”
에던이 픽 웃었다. 절대 즐거워서가 아니었다.
네가 감히 내 생각을 어떻게 날 알아? 라는 싸늘한 눈빛이었다.
“이렇게 강력한 치유력이면 아이비 대성녀보다 훨씬 뛰어난데, 신전으로 보내지 않고 숨기는 이유는 있겠죠. 물론 라티에나 님이 가고 싶어 하지 않으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단테는 다시 날 응시하고 있었다.
“혹은 혼자 차지하고 싶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