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65)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65화. 무서운 사람(65/92)
#65화. 무서운 사람
2024.07.04.
몸에도 흉터가 가득하겠지만 손등을 덮을 만큼 커다란 튜닉으로 가리고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행히 이능력의 부작용으로 생긴 발작이었으니, 치유력을 받고 하룻밤 새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상처도 금방 아물 테니 잘된 일이었다.
“다행이네요.”
내가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마주하며 웃자 노아의 입이 크게 벌어지더니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있잖아요. 주치의들이 말해 줬어요. 형의 손님으로 오신 귀한 분이 절 도와주셨다고요.”
“그래요?”
“네. 누나가 그 귀한 분이죠?”
“그런 것 같네요.”
난 다시 방긋 웃어 주었다. 손님으로 온 건 아니고 네 형이 날 납치한 거지만 말이야.
응? 잠깐만.
“……형?”
“에?”
노아의 오동통한 얼굴이 갸웃거렸다.
“방금 형이라고 했어요?”
노아의 커다란 눈이 깜빡거렸다.
“네! 단테 이안 공작이 내 형이에요! 멋있죠?”
잠깐만. 그럼.
남자애라고?
눈을 반짝이는 노아를 차근히 다시 살폈다.
그, 그러고 보니 단테가 가문에 대대로 형제가 태어난다고 했었나?
맙소사. 노아의 외모가 너무 여자애 같아서 깜빡하고 있었다.
단발이 너무 잘 어울리는 데다가 체구도 가녀리고 얼굴도 예뻐서 당연히 여자아이인 줄 알았는데.
목소리도 엄청 사랑스럽고 짙은 쌍꺼풀에 커다란 눈과 잘 자리 잡은 속눈썹까지. 천천히 다시 봐도 여자로만 보였다.
옷을 다시 보니 커다란 튜닉에 품이 큰 바지는 남자아이의 옷이긴 했다.
노아는 당황해하는 날 보더니 푸하! 하고 숨을 터트리듯 웃었다.
“누나, 저 여자아인 줄 알았죠?”
“아니, 그게…….”
그렇다고 하면 실례겠지? 차기 공작님이신데.
“괜찮아요. 그런 적 많아요. 여자용 목걸이랑 다이아몬드 왕관을 선물로 받은 적도 있어요.”
“너무 예쁘게 생겨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다시 보니 머, 멋진 미소년이시네요! 어른이 되면 인기가 아주 많겠어요.”
노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더니 루벤을 콕 집어서 가리켰다.
“전 여기 이 기사보다 훨씬 더 크게 자랄 거예요.”
“정말요?”
“네! 형만큼 커지고 싶어요. 힘도 어엄청! 세지고요!”
그렇게 아파하더니, 지난밤의 일이 없었던 것처럼 노아는 씩씩했다.
하룻밤 만에 이렇게까지 다른 아이가 되다니.
이능력 부작용은 정말 성녀의 치유력이 아니면 안 되는 거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물약을 그렇게 퍼부었어도 안 되던 게 스킨십을 통한 치유로는 순식간에 해결됐다.
“분명 그렇게 자라실 거예요. 기대할게요!”
나는 노아에게 힘껏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노아는 완전히 신이 났는지 날 소파 쪽으로 이끌며 재잘재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낯가림이 심한 것 같다고 한 건 취소였다.
“누나는 어디에서 왔어요? 형이 귀하다고 말하는 손님은 손에 꼽아요. 그리고 그동안 오래된 지인들만 왔는데 누나는 처음 봐요.”
“음. 저도 단테 공작님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럼 형이랑 이제 친해졌어요? 또 올 수 있어요?”
“글쎄요. 전 멀리 살아서요.”
“걱정 말아요. 포털이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내가 고민하자 노아는 불쑥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있잖아요. 사막 도시는 대마법사님께서 아주 사랑한 곳이에요.”
“대마법사님이요?”
“네!”
그러고 보니 하녀들도 내게 그런 말을 했었지. 욕실에서 사용했던 그 온도 조절 돌멩이도 대마법사가 특별히 만들어 준 거라고.
그런 대마법사가 사막을 사랑했다고……? 무슨 이유가 있었던 건가?
“그래서 남부의 포털은 아주 잘 만들어져 있어요. 도시가 미로처럼 지어져 있어서 그 안에서도 이동할 수 있게 설치되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성 맨 위층에서 성벽까지도 포털로 이동을 했었지.
다른 곳보다 유독 마법이 발달한 도시인 건 맞는 것 같다.
과연 차기 공작님. 노아는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는 듯 양팔을 벌려 사막을 소개했다.
그러다 문득 무너진 성벽을 발견하고는 눈꼬리를 내렸다.
“아.”
나는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아는 보여 주지 말아야 할 것을 실수로 들키기라도 한 듯 다급히 해명을 했다.
“저건! 실수에요. 사실 저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요.”
“성벽이 무너진 것요?”
“네. 제가 태어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에요! 오늘 누군가 불법 침입을 한 것 같은데, 제가 커서 공작이 되면 나쁜 놈들은 전부 처리할 거예요.”
노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무 귀여워서 말캉말캉한 볼을 마구 만지고 싶을 정도였다.
“노아 님이 공작 자리에 오르면 여긴 더 멋진 곳이 되겠네요. 그럼 또 놀러 올 수 있으면 오도록 할게요. 초대해 주시면요.”
“매일 초대해도 되요?”
“아……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아요.”
내 거절에 노아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요? 다른 사람들은 내가 초대하면 굉장히 기뻐하는데. 매일매일 초대해 달라고 하는데도요?”
“인기가 많으시네요.”
“네. 전 예쁘고 멋지거든요. 크면 더더욱 멋있어질 거예요.”
“맞아요. 노아 님은 예쁘고 멋져요. 하지만 아쉽게도, 전 함께 지내는 사람이 있어요.”
노아의 두 눈이 호기심으로 크게 깜빡였다.
“누구랑 살아요?”
“무서운 사람 있어요.”
말하며 나는 피식 웃었는데 노아는 충격을 받은 듯 눈과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왜, 왜요? 무서운 사람인데 왜 같이 살아요?”
“그건…….”
그 질문에 문득 대답을 잃어버렸다.
원래라면 도망에 실패해서, 가 맞는데.
이제는 단지 그 이유 때문이 아니니까.
무섭긴 하지만 에던은 날 지켜 주고 있고 난 그에게 보호받고 있고, 그리고 또…….
“누가 무섭다고?”
으힉! 또 갑자기 뒤에서 에던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는 점이 무섭다는 거야!
노아와 나는 화들짝 어깨를 움츠리며 동시에 뒤를 바라보았다.
루벤이 가장자리 쪽으로 옮겨 가고 있었고, 에던과 단테가 부하들을 거느리고 서 있었다.
“혀엉!”
노아가 제 형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단테는 자기와 똑 닮은 색을 가진 노아의 머리카락을 휙휙 휘저으며 쪼그려 앉았다.
“노아, 조금 더 쉬라니깐.”
“응! 쉬는 중이었어.”
흘깃 노아를 쳐다본 에던이 나에게 다가왔다.
“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아를 향해 걸어갔다.
“노아 님, 이거 줄게요. 아플 때마다 음식에 뿌려 먹으면 도움이 될 거예요.”
“이게 뭐예요?”
“멋진 공작님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요.”
노아는 내가 준 후추 통을 받았고, 단테는 의아하게 날 바라보았다. 그럴 만도 하지. 후추니까. 나는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헛기침하면서 일어나 말했다.
“물약처럼 그럴싸한 걸 드리고 싶지만 그런 걸 만들면 불법이잖아요. 같은 효과일 거예요. 이미 실험해 본 적도 있으니까 걱정 마요. 힐스타인 경도 같은 걸 가지고 있고요.”
단테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후추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였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멋쩍긴 하다.
그때 노아가 에던을 목을 쭉 빼고 올려다보았다.
“누나의 무서운 사람?”
에던이 스윽 노아를 내려다보았다.
단테가 몸을 일으켜 노아에게 에던을 소개해 주었다.
“노아, 정중히 인사드려. 에던 디트리히 황자님이셔.”
“황자님?”
“그래. 북부의 무너지지 않는 벽을 지키고 계시는 대공님이기도 하시지.”
그러자 노아의 두 눈이 아주 커다랗게 커지며 반짝거렸다.
“무너지지 않는 벽을?”
노아는 아주 정중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에던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황자님. 노아 이안입니다.”
철저하게 예의를 지킨 태도에 에던이 황자로서 인사를 받았다.
“고개를 드는 것을 허가하지.”
“무너지지 않는 벽을 지키는 분은 대대로 제국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이라고 들었어요. 그럼 황자님께서는 제국에서 가장 강한 분이신가요?”
고개를 들자마자 노아는 똘똘한 질문을 쏟아 냈고 에던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래. 그리고 무서운 사람이지.”
서늘하게 웃음 짓는 에던의 눈동자에서 순간 이채가 돌았다.
발밑에서부터 바람이 일어나더니 푸른색의 눈부신 힘이 치솟아 올랐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에던은 그 힘을 그대로 테라스 너머로 날려 보냈다.
수십 개의 화살처럼 나뉘어 날아간 이능력은 성벽을 그대로 강타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성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서 있던 보초들과 이미 무너진 부분을 수습하고 있던 기사들은 삽시간에 난리가 났고 사방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허억.”
노아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를 비롯한 주위에 있던 모두가 에던을 미친놈 바라보듯 쳐다보았다.
단테와 루벤만 빼고.
루벤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덤덤한 얼굴이었고, 단테는 각오했던 일이라는 듯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공의 동생이 이미 원하는 걸 얻었군. 나도 지난 일은 이 정도로 끝내 주지.”
조금 전 성벽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던 노아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오늘 아침 성벽을 부순 나쁜 놈의 정체를 알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에던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을 바라보던 눈빛도 흔들리고 있었다.
노아는 입을 딱 벌리고 성벽을 한 번 에던을 한 번 단테를 한 번, 그렇게 번갈아 보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혀, 형!”
그리고 결국 눈물을 울먹였다.
“괜찮아. 노아.”
단테는 노아의 어깨를 토닥이고 오히려 에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때가 아니야!
노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잖아! 저 예쁜 눈망울이……!
나는 에던의 뒤통수를 노려봤고, 에던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삐딱하게 고개를 휙 돌렸다.
윽. 나는 재빨리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 갈까요?”
그래. 여기서 더 기분 건드려 봤자 좋을 거 하나 없지.
최대한 빨리 여기서 벗어나는 게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