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68)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68화. 괴짜의 공간(68/92)
#68화. 괴짜의 공간
2024.07.07.
맥시엄의 두 눈은 위대한 대마법사의 유산을 발견한 루벤을 향한 경외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게 부담스러운지 루벤은 얼굴을 찡그렸다.
“찾은 게 아닙니다.”
“그럼요?”
“최근 몇 년 사이, 주인이 가장 많이 바뀐 성을 구입한 것뿐입니다. 아무도 미련을 두지 않는 곳으로요. 대성녀가 나타나면 대공님의 상태가 다시 괜찮아질 수도 있었으니 쉽게 다시 처분할 수 있는 곳으로.”
맥시엄은 대충 예상이 간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대마법사님은 돌아가시기 전, 술과 도박에 빠지셨으니까요. 어쩌면 헐값에 팔아 버리신 걸지도 모르죠. 모르긴 해도 고성을 사들인 첫 주인을 찾으면 그 사람은 분명 알코올 중독자거나 도박쟁이일 거예요!”
어디서 외운 것처럼 대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술술 내뱉는 맥시엄을 루벤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잘 아는 거죠?”
“대마법사님은 위대한 저의 롤모델이셨으니까요! 마지막은 비록 쓸쓸했지만 제국에 지금껏 그보다 더 위대한 마법사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황제께서 황후 폐하의 꼬임에 넘어가 정치 싸움에 끌어들이지만 않았어도 훨씬 더……!”
말을 하다 맥시엄이 급하게 입을 막고 에던의 눈치를 봤다.
에던이 황제와 황후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황실 모욕과 같은 말이 될 테니까.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대화를 듣고 있던 에던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래서,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거리고 다니던 게 이 비밀 공간을 찾으려고 그런 거라고?”
“네.”
“무슨 일로?”
그건…….
날카로운 에던의 눈빛에 맥시엄과 나는 동시에 서로 눈을 마주쳤다.
“됐어. 들어가면 알겠지.”
우리가 선뜻 입을 열지 않자 에던은 성큼 포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맥시엄이 재빨리 그를 막아섰다.
“대공님! 자, 잠시만요!”
“뭐야?”
에던은 포털 안으로 크게 한 걸음 내딛던 발을 그대로 멈춰 세웠다.
“혹시 트랩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트랩? 그걸 어떻게 알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마법사는 제 롤 모델이셨습니다! 그래서 아주 잘 알고 있죠! 그분의 취미를요.”
에던이 짜증스럽게 고개를 좌우로 비틀어 돌렸다.
“대마법사가 사제의 롤 모델인 건 더 말 안 해도 아주 잘 알겠고, 스토커 수준으로 알고 있다는 것도 알겠는데.”
에던이 맥시엄을 향해 눈가를 찡그렸다.
“지금 이 타이밍에 그 노인네 취미 생활까지 알아야 하나?”
맥시엄이 어깨를 조금 움츠리며 답했다.
“그러니까…… 위험할지도 몰라서요.”
이번엔 내가 물었다.
“위험이라니요?”
맥시엄이 조금 긴장한 듯 포털을 바라보았다.
아니, 기대와 불안함으로 흥분되어 떨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취미라서 장난 수준이긴 했지만 트랩을 아주 좋아하셨던 분이거든요. 마탑에서 그분의 제자들이 아주 많이 당했다고 했어요. 어떻게 아냐고요? 저희 가문이 망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마탑에 계속…….”
“됐어.”
맥시엄은 정말 대마법사의 스토커 같았다.
다시 길어지려는 말을 인정사정없이 잘라 낸 에던이 툭, 맥시엄의 뒷무릎을 쳤다.
“내려가.”
그러며 에던은 또다시 툭툭, 맥시엄의 뒷무릎을 연이어 발끝으로 두드렸다.
“억.”
맥시엄은 휘청거리는 다리를 겨우 버티고 섰다.
“혹시 모르니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루벤이 먼저 포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우린 차례로 일렁이는 오렌지빛을 넘어갔다.
“세상에.”
난 충격으로 커다래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넘어간 포털 속은 잿빛 안개가 자욱한 곳이었다.
곳곳에 마른 나무들만이 자리 잡고 있는, 온통 회색으로 이루어진 곳.
마법으로 만들어 낸 밑도 끝도 없이 거대한 인위적인 공간은 바람도 소리도 전혀 없어서 굉장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라티, 내 옆으로 와.”
몇 발자국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에던이 날 불렀다.
쿵쾅.
오후에 그런 일이 있어서인지 평소엔 아무렇지 않았던 에던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귓불까지 뜨거워져 혹시 지금 내 상태를 들킬까 봐 가만히 있었더니, 에던이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안 와?”
그래도 내가 움직이지 않자 팔을 당겨 옆에 딱 붙여 세웠다.
“왜 그래?”
“아, 아니. 조금 놀라서요. 이런 공간일 줄은 생각 못 해서…….”
내 말에 에던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가볍게 훑었다.
“그렇긴 하네.”
루벤이 사방을 살펴보고 있었고, 맥시엄은 입을 떡 벌리고 놀라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간 마법이네요.”
“이 정도로 거대한 공간 마법은 대마법사님만 가능하신 거예요!”
대단하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너무 어둡고 음습하다. 실수로 들어온 거라면 어서 빨리 돌아서 나가라는 듯한 느낌.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공간 마법은 어디로 걸어가도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어 있어요. 물론, 마법사가 그렇게 만들어 놨을 경우의 이야기지만요. 일단은 대비를 해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에던의 말에 맥시엄은 주머니에서 실을 꺼내 포털 바깥쪽으로 놓아두었다.
그리고 실을 풀며 먼저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대마법사의 스토커치곤 꽤 고전적인 방법이군.”
에던이 어이없다는 듯 그걸 바라보던 때였다.
“사제님!”
루벤이 맥시엄을 향해 검을 꺼내 들었다.
“머리 숙이십시오!”
“네? 엑?”
어리둥절한 틈도 없이 맥시엄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루벤은 허공 저편에서 날아온 무언가를 검으로 내리쳤다.
쿵!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부딪힌 물체가 바닥으로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가까이 다가간 루벤이 그걸 집어 들었다.
“도끼, 네요.”
진짜다. 루벤의 손에는 잘 갈아진 손도끼가 있었다.
정말로, 진짜 도끼다. 아주 새것인 게 분명한 나무 손잡이가 달린 도끼.
나무 찍을 때 쓰는 바로 그 도끼.
“트랩이 취미라고?”
에던이 헛웃음을 내뱉고, 루벤과 나는 동시에 맥시엄을 바라보았다.
“어…… 아니. 그러셨던 분이라고 들었는데요.”
이건 취미나 장난 수준이 아니잖아.
맞았으면 죽었다고!
“계, 계속 가 볼까요? 이제는 나오지 않겠죠.”
맥시엄은 용기 있게 앞장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무언가 날아왔다.
“꺅!”
이번엔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에던과 루벤이 날 양쪽에서 보호하듯 서고, 정신없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것들을 빠르게 쳐냈다.
소란이 한바탕 지나고 고개를 드니 맥시엄이 한쪽에서 바닥에 철퍼덕 앉아 있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그의 주위로 화살이 사정없이 꽂혀 있었다. 사제복 끄트머리도 함께.
나는 화살을 뽑아 주며 물었다.
“사제님 괜찮아요?”
“우으…… 네. 괜찮습니다아…….”
눈빛에서 왜 나만 안 지켜 줘! 라는 외침이 들리는 듯했지만 맥시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로도 창, 검, 바늘이 촘촘히 박힌 돌멩이 등등.
무언가 계속해서 튀어나왔고, 에던과 루벤은 가뿐히 그것들을 쳐내었다.
“장난치고는 꽤 살벌하네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는 루벤은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았다.
되려 루벤의 뒤에서 바짝 숨어 따라가는 맥시엄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에던이 잘 지켜 주고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 무언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식은땀을 흘리기에 충분했다.
정말로 장난이 아니잖아.
비밀 공간을 발견했을 때 에던한테 들켰길 망정이지. 만약 정말 맥시엄과 단둘이 여기에 들어왔었다간 처음 발을 내디딘 순간 도끼에 머리를 맞아 죽었을 거야.
“대체 뭘 숨겨 놨길래 이렇게까지 감춰 놓은 거야?”
에던은 슬슬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쯤 되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요.”
루벤도 거들었다.
나와 맥시엄은 긴장감에 짜증이고 뭐고 빨리 이 공허한 길의 끝이 나길 비는데, 둘은 그저 대마법사의 트랩이 귀찮은 모양이었다.
“아! 저것 보세요!”
맥시엄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문이 나타났다. 정말 갑자기였다.
허공에서 갑자기 마법처럼. 애초에 이 공간이 마법이라 당연한 일이겠지만 한참을 아무것도 없는 곳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에던은 망설임 없이 그 문을 열었다.
안쪽은 지금껏 걸어온 흑색 공간과 전혀 다른 안락한 방이었다.
나무 기둥을 파내어 만든 것 같은 원형의 공간.
“이게 뭐야.”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방 천장에서부터 빛이 하나하나씩 켜졌다.
천장에 달린 거대한 원형의 아티팩트에서 시작된 불이었다.
방은 원형 벽을 따라 둥글게 책장으로 차 있었고, 그 가운데에 1인용 책상이 있었다.
“대마법사님의 책상이에요!”
또다시 정사각형 문양을 찾아낸 맥시엄이 감격한 듯 팔을 뻗어 책상을 쓰다듬었다.
새삼스러운 것도 없었다.
이 공간 자체가 전부 대마법사의 것이니까.
“엄청나.”
나는 원형의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을 전체적으로 훑어보았다.
대부분이 가죽 책에 금박으로 글씨가 덧입혀 있었다.
마법에 관한 책들이었다.
언뜻 봐도 천 권은 가까이 되어 보이는 책은 숫자 하나하나 오차 하나 없이 완벽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진짜 괴짜의 성이었어.’
에던과 루벤도 공간을 관찰했다.
잠시 모두가 말을 잃었고, 조용하던 침묵을 깬 건 에던이었다.
“그래서, 이 비밀 공간을 찾아서 뭘 하려고 했던 거지?”
책상에 엎드려 있던 맥시엄이 불쑥 정신이 든 듯 몸을 일으켰다.
“라티에나 님 이제 말씀드려도 되나요?”
에던의 시선이 맥시엄을 스치고 내게 머물렀다.
“사실은 에던.”
“응.”
“도서관에서 흑마법이 적힌 책을 발견했었어요.”
“흑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