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70)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70화. 같이 잘까?(70/92)
#70화. 같이 잘까?
2024.07.09.
과할 정도로 예의 바른 태도였다. 어색하게 입술을 끌어올려 미소 짓고 있는 나와 달리 맥시엄은 몹시 진지했다.
“라티에나 님이 진짜 대성녀님이십니다.”
알고 있어.
“아이비, 그 여자가 가짜라는 건 제가 책임지고 확인하겠습니다! 그 여자를 끌어내리면 더 이상 그 어떤 위협도 받을 일 없을 겁니다. 신전에서 책임지고 지켜 드릴 테니까요.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서 이걸 보여 주면…….”
맥시엄은 내가 신전으로 갈 거라고 오해한 것 같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생각이겠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맥시엄.”
“네.”
“난 신전으로 가지 않아요.”
“……네?”
벼락이라도 맞은 듯 맥시엄의 눈동자가 바보처럼 초점을 잃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대성녀 자리는 제국 최고의 자리다.
황제와 황후, 황태자 다음으로 원하는 일을 전부 해 볼 수 있는 위치기도 했다.
쥐어진 권력은 없지만 원한다면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그런 위치. 귀족들의 선망은 물론, 부도 명예도 전부 가질 수 있는 자리였다.
이능력자들을 치유해 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하, 하지만…… 어째서입니까? 라티에나 님이 진짜이지 않습니까. 확신합니다. 그 여자는 성녀가 아니에요. 라티에나 님을 조금 의심했던 건 사실이지만 방금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토록 밝은 빛은 대성녀님만이 가질 수 있는 치유력임이 틀림없어요.”
“알아요. 나도.”
“그럼…….”
내가 가진 치유력이 진짜라는 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에던을 바라보았다.
에던은 잠잠히 날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나오는지 기다려 주는 것처럼.
“맥시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비처럼 그런 치유를 해 줄 수가 없어요.”
맥시엄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생각지도 못한 답을 들은 사람처럼.
“물약을 만드는 것까지는 괜찮겠지만, 직접적인 치유는 생각만으로도 토할 것 같은 그런 지독한 기분이 들어요.”
맥시엄은 고심하는 듯 눈가를 찡그렸다. 노력해 봤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지금까지의 대성녀는 그런 일을 당연하게 해 왔었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하, 하지만 그 여자에게 계속해서 대성녀 자리를 내어 줄 수는 없어요. 이대로라면 그 여자가 성녀 후보들을 모조리 미라로 만들지도 모른다고요…….”
“알아요.”
“치유를 하는 것이 힘들어서 가기 싫어하시는 마음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게 밝혀지고 신전에서 라티에나 님의 정체를 알게 되면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신전으로 가게 되실 거예요.”
맥시엄은 정말로 날 걱정하고 있었다. 두 가지 마음이 섞인 듯했다.
내가 대성녀로서 본분에 충성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내가 원하는 대로 신전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게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표정에 드러났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맥시엄. 그래서 방법을 찾아낼 거에요.”
“방법이라니요?”
“신전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요.”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아니. 있을 거예요.”
아이비도 영원의 주술을 사용해 내 힘을 빼앗았다. 다른 식으로 이용한 것이.
그러니 나에게도 분명 해결책이 있을 거야.
나는 대마법사의 비밀 공간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제국의 가장 위대한 대마법사. 그가 비밀리에 숨겨 둔 마법서들.
이렇게 수많은 마법이 있는데 방법이 없을 리가 없어.
찾아낼 거야.
내가 신전으로 가지 않고도 이능력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그래야…….
내가 곁에 있어야 에던도 미치지 않을 테니까.
우리 둘 다 살 수 있을 테니까.
당장 필요해 보이는 책 몇 개만 챙겨서 우리는 비밀 공간을 벗어났다.
나올 때는 루벤이 또 책장을 만지다가 다른 입구를 찾아냈다.
허리를 숙여야 나올 수 있는 입구였는데 응접실의 사용하지 않는 벽난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어라?”
입구가 한 곳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빠져나온 입구를 다시 이용해 접근하니 곧장 비밀 공간으로 연결되었다.
“이쪽이 진짜 입구였네.”
아무래도 대마법사는 이쪽을 이용했던 것 같은데, 나는 가장 어려운 루트의 입구를 열어 버린 것이다.
어쨌든 목숨은 부지했고 원하는 책은 찾았으니 일단은 해결이었다.
맥시엄과 루벤이 돌아가고 고성에는 에던과 나와 단 둘뿐이었다.
내가 책을 정리해 두고 오는 사이 에던은 창가에서 쏟아지는 달빛을 받고 서 있었다.
손에는 유리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푸른색의 동그란 알약 하나가 들어 있는 병이었다.
대마법사의 비밀 공간에서 가져온 건가?
에던은 진지한 얼굴로 한참 동안을 그대로 멈춰 있었다.
병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모습에서 어쩐지 눈을 떼기가 힘들어 나도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불현듯 에던이 내용물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뜯어 버렸다. 그리고선 혹 누군가 그걸 읽기라도 할까 봐 절대 알아볼 수 없게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대체 뭐길래?
오뚝한 콧날 아래 다물려 있던 입가가 가만히 올라갔다. 에던은 유리병을 열더니 알약을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세상에! 뭔지 모르는 걸 저렇게 함부로 먹어도 되는 거야?
그곳에 있었던 재료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것들 뿐이었다. 멀쩡한 게 있을 리가 없는데.
“에던!”
꿀꺽, 목을 타고 내려가는 알약을 깊게 삼킨 에던이 날 돌아보았다.
“라티.”
해사한 미소가 날 향해 있었다.
“이리 와.”
나는 망설임 없이 에던에게 다가갔다.
마주 얽힌 우리의 시선은 서로를 향해 깊게 파고들었다.
“뭘 삼킨 거예요?”
“똑똑해지는 약.”
“그런 게 있었어요?”
“있었어.”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는 에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또, 아무렇지 않다. 이렇게나 함부로 만져 대는데 거부감은커녕 마음이 포근해진다.
시릴 만큼 눈부신 달빛이 에던의 금빛 머리카락과 뺨과 목덜미 라인을 따라 살포시 내려앉았다.
“졸리지 않아?”
나른한 듯 다정한 목소리.
“같이 잘까?”
에던이 장난스럽게 눈가를 살포시 찡그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평소보다 좀 더 느릿느릿하게-. 단 한 번도 망설인 적 없었던 에던은 조금 이상했다. 오늘따라 뭔가 고민하는 사람처럼 망설이는 듯 한참이나 손끝을 내 손가락에 머물렀다.
엄지와 검지, 그리고 손톱 천천히 손등. 그러다 내가 거부하지 않자 서서히 손가락을 옭아맸다.
자연스럽게 얽히며 닿는 그의 손가락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적당히 따스한 온도도 모두.
조금 더 이 시간이 지속되면 좋겠다.
그 생각이 든 순간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는 기분에 휩싸였다.
아…….
나 에던을 좋아하는구나. 좋아하나 봐. 좋아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을 깨닫자마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세상이 온통 내 심장 소리로 울려 대는 것 같았다.
이 남자가 좋아. 전부 좋아해. 하다못해 눈앞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모든 것이 좋아.
에던이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진 치유력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다정해 보이는 이 눈길도 손길도 전부 치유력을 받기 위해서 잘해 주는 것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게 섭섭하지만, 조금 무섭고 가슴이 따끔거리지만 그건 그것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난 에던을 만났고, 에던에게 지켜졌어.
그리고 에던을 좋아해.
“라티?”
내가 대답이 없자 에던이 고개를 비틀어 숙여 가까이 얼굴을 붙였다.
아주 옅은 비누 향이 코끝에 스쳤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만지려다가 치맛자락을 꾹 붙잡았다.
이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에던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그러니 에던이 내 치유력을 원한다면, 그래서 내게 집착한다면 나는 그걸로도 괜찮아. 난 에던의 곁에 있을 거야.
“있잖아요, 에던.”
“응.”
“우리 손잡고 잘래요?”
에던의 눈이 조금 커졌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내가 그런 게 가능한 신사로 보이나 봐?”
“전에는 그랬잖아요.”
“아팠던 날이라 봐준 거라는 생각은 안 하지?”
“싫으면 따로 잘래요.”
난 휙 뒤돌아섰고, 에던이 덥석 내 팔을 잡았다.
“라티.”
“응.”
좀 투정 부리는 듯 말을 놔 봤는데, 에던은 이제 진짜 미쳐 버리겠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중에 후회할 짓 하지 마.”
“안 해요.”
“조만간 밑에 깔려서 울어도 절대 안 봐줘.”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까분다.”
그러면서도 에던은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내 유치한 투정도 받아 주었다.
다정함과 비누 향이 곁에 가득했다.
‘에던을 만나서 다행이다.’
가능하면 언젠가 에던도 내 치유력이 아니라 날 있는 그대로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리베던 신전의 정원.
오색으로 빛나는 진귀한 보석이 달린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산책을 하던 아이비를 향해 하녀가 다가갔다.
“아이비 님, 단테 이안 공작님께서 오셨습니다.”
“어머. 어서 이쪽으로 모셔 와요.”
아이비는 화사하게 웃으며 정원의 퍼걸러에 서서 단테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천을 사선으로 둘러맨 단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큰 키에 알맞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오던 단테는 아이비의 몇 발자국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섰다.
“대성녀님을 뵙습니다.”
강인한 몸에서 나오는 다정하고 부드러운 음색. 단테의 주변만 태양의 온기가 더욱 따스한 것 같았다.
고개 숙인 단테의 구릿빛 피부를 살피던 아이비의 입술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상처마저 매력적인 저 탄탄한 몸을 볼 때마다 군침이 도는 것 같았다.
아이비는 늘 그래왔듯 단테의 팔에 손을 얹기 위해 한 걸음 다가가 팔을 뻗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단테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
의아하게 단테를 바라보던 아이비가 예쁘게 눈을 접었다.
“그럼 더 제 손길이 필요하시잖아요. 축복해 드릴게요.”
하지만 단테는 재차 걸음을 물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그 제안 없었던 일로 하고 싶습니다.”
단테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금 그의 팔로 향하던 아이비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