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74)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74화. 갑작스러운 연락(74/92)
#74화. 갑작스러운 연락
2024.07.13.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에던의 말에 환히 웃으며 어리벙벙하게 서 있던 맥시엄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예? 저…… 뭐, 뭔가 잘못했나요……?”
맥시엄. 신전의 서고에서만 지내더니 모솔인가. 그런 건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 순진한 모습을 노려보며 에던은 쯧, 혀를 찼다.
그리고 재빠르게 엄지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스치듯 매만지더니 작게 소곤거렸다.
“진정해.”
에던은 몸을 일으켜 맥시엄과 내 사이를 가로막아 섰다.
탄탄하고 넓은 등이 붉어진 내 얼굴을 맥시엄이 보지 못하게 가려 주는 듯했다.
짧은 사이에 입술을 스친 에던의 손가락 감촉과 내가 부끄럽지 않게 배려해 준 그의 행동에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무슨 일로 왔지?”
에던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셔츠 깃을 정리했다.
“그게…….”
맥시엄이 사제복 품 안에 숨겨 둔 책을 꺼내었다.
에던에게 그걸 내미는데 그 뒤에서 루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공님.”
“뭐야?”
루벤은 맥시엄과 나를 슬쩍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에던에게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급히 확인해 주셔야겠습니다.”
편지를 받아 든 에던이 미간을 구겼다.
그리고 내용을 확인하더니 편지지를 구겨 버렸다.
“외출해야겠어.”
루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던?”
“다녀올게.”
덤덤한 어투지만 확연히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는 목소리.
에던과 루벤이 돌아서 나가고 통로가 닫혔다.
뭐지? 무슨 편지였길래.
“황후 폐하께서 보낸 편지네요.”
“황후 폐하요?”
맥시엄이 책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봉투 맨 가장자리에 그려진 초승달 문양이요. 황후 폐하의 직인이었어요.”
황후라면, 킬리언 황태자의 친모 헨젤라다.
에던이 태어났을 때부터, 아니 에던이 엄마의 배 속에 있었을 때부터 끔찍하게 미워하고 증오했던 여자.
황제의 정부였던 에던의 엄마가 죽고 황제를 설득해 어린 그를 구석지고 외진 성으로 쫓아낸 여자.
편지를 주고받을 만한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실제로 에던의 표정도 편해 보이진 않았고.
“무슨 일로 서신까지 보내신 걸까요?”
맥시엄도 나만큼이나 궁금한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제님이 봐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죠?”
“음. 아무래도요.”
맥시엄은 고민하는 듯 턱을 쓸었다. 그러다 뭔가 생각난 듯 번쩍 고개를 들고 외쳤다.
“어쩌면 그것 때문 아닐까요?”
“그거라니요?”
맥시엄은 뭔가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빵을 응시했다.
나는 그에게 상자째로 빵을 내밀었다.
“한입 먹어요. 양이 많았거든요.”
“그래도 되나요? 감사합니다! 사실 저녁을 못 먹었거든요.”
“다 먹어도 돼요.”
“우와. 이거 정말 맛있네요! 어느 빵집에서 구입하신 거예요?”
“그렇죠? 에던이 가져왔어요. 북부에서 수확한 첫 밀로 만든 빵이래요.”
“오호. 북부에서 나온 이렇게 밀이 부드럽다니 의외네요.”
맥시엄은 연신 감탄하며 빵을 입에 집어넣었다.
“하던 얘길 마저 하자면요. 요즘 사교계 시즌이잖아요. 그것 때문에 불렀을지 모른다는 거죠.”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잘 이해는 되지 않았다.
애초에 에던은 사교계에 얼굴을 내비치는 일이 없을뿐더러 황후가 사생아 황자의 사교까지 신경 쓸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열리는 파티 때문에 요즘 신전도 좀 정신이 없거든요. 새벽 늦게까지 알약을 제조하느라 바쁘게 돌아가요.”
“알약이라뇨?”
“라티에나 님은 모르시겠구나. 수도 상급 귀족들 사이에서 치유력이 담긴 알약이 인기가 어마어마하거든요.”
“네?”
그게 무슨 말이야.
성녀의 치유력은 일반인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다. 이능력자들에게나 통하는 거지. 만병통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팔다리가 부러졌다거나 피부병이 있다고 해서 낫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물론 마탑의 마법사들이 제조한 특별한 약물과 섞이면 효과가 높은 해열제나 진통제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신전에서 만드는 물약이나 알약은 일반인에게 아무 쓸모도 없었다.
맥시엄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공감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기분상의 문제예요. 치유력이 담긴 알약을 먹으면 예뻐진다거나 키가 큰다거나 호감도 높은 얼굴 된다거나 하는 그런 헛소문 때문에 생겨난 거죠. 꽤 비싼 금액을 제시하는데도 약이 모자랄 정도로 구입해 가요. 되려 비싸니 가치가 있는 거라며 사치를 부려 대죠.”
“그건, 신전에서 사기 치는 거 아녜요?”
맥시엄이 빵을 입에 물고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장사죠, 장사. 양심만 좀 속이면 돈이 쏠쏠하니까. 대사제님은 돈을 많이 밝히시거든요. 모르긴 해도 대성녀님이 나타나셔서 가장 이득을 본 사람 중 한 명일 거예요.”
뭐, 어느 집단이든 돈에 찌든 인간은 있기 나름이니까.
나는 이만 맥시엄이 가져온 책으로 시선을 두었다.
고대 성물들의 정보가 담긴 새하얗고 두꺼운 책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황후 폐하가 대공님의 신붓감을 고른 건 아닐까 해서요.”
책장을 몇 장 넘기다 말고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네?”
심장이 쿵 떨어지는 소리가 밖으로 들리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깜짝 놀랄 말이었다.
황후가 굳이 에던의 신붓감을 골라 준다고?
급작스러운 말에 당황해 창백해진 나를 눈치채지 못한 맥시엄이 빵을 삼키며 웅얼거렸다.
“하녀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들은 거지만, 동제국에서 정략결혼을 청하는 서신이 왔다고 들었거든요. 스치듯 들은 거지만 킬리언 황태자님이 아니면 에던 대공님 둘 중 한 분에게 온 걸 텐데 말이죠.”
정략결혼?
“이 타이밍에 딱 대공님에게 서신이 왔다는 건 의심 갈 만하죠.”
“킬리언 황태자님께 갔을 수도 있잖아요.”
맥시엄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아닐 거에요.”
“왜요?”
“몇년 전에 황태자님은 황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으니까요.”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정보였다.
원작에서는 없었던 이야기. 물론 아이비와 나의 과거 얘기도 숨겨진 부분들이 있었으니까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나와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어째서요?”
“지금은 망해서 없어졌지만, 지금 저희 제국과 동제국 사이에 왕국이 하나 있었어요. 황태자님께서 그 나라 공주님에게 청혼을 하셨었는데, 거절당하셨죠. 많이 좋아하셨던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에 황제가 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킬리언의 결혼이나 공주 얘기는 전혀 모르던 내용이었다.
“어쩌면 황제가 되어 다시 그 공주님에게 청혼하실 생각일지도 모르죠. 쉽진 않겠지만…….”
“황후 폐하 때문인가요?”
맥시엄은 마지막 빵을 삼키며 눈을 크게 한번 깜빡였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이 이야기들도 전해 들은 이야기라 확실치는 않고요. 신전 하녀들은 소식에 빠르지만 입은 가벼워서 소문이 부풀려지기도 하거든요. 아무튼 그러니까 에던 황자에게 이번 혼인 건이 돌아갈지 모른다는 얘기죠.”
순간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왜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지? 에던은 황자고, 언제든 정략결혼을 할 가능성은 있는데.
내가 아는 건 에던이 황실에서 미움을 받고 자랐고, 킬리언과 사이가 좋지 않고…….
그러고 보니 킬리언과 최악으로 사이가 나빠진 건 어떤 사건이 있었던 후로 그랬다고 했었나.
외전까지도 풀리지 않았지만 어차피 에던은 악역이었다. 그가 괴물이 되어 사형당한 후 독자들이 아예 잊어버린 내용이었는데.
설마 킬리언과 에던이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정말로 그런 일 때문에 에던을 부른 걸까.
나는 복잡한 마음에 책장을 의미 없이 계속해서 넘겼다.
***
제국의 수도, 알케다니아의 조각가가 혼을 갈아 깎아 만든 듯한 황궁에 에던이 발을 내디뎠다.
금빛 머리카락 한쪽을 말끔히 쓸어 넘기고 제복을 갖춰 입은 단정한 차림이었다.
포털을 나와 제복 깃을 가볍게 정돈하는 에던의 앞에 마차가 한 대 멈춰 섰다.
새하얀 바탕에 황금 라인이 디자인된 황후의 손님맞이용 마차였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깍듯한 예의를 차린 시종의 환영이었지만 에던은 그의 인사를 받지 않고 그대로 마차에 올라탔다.
한점의 오차도 없이 반듯하게 잘라낸 잔디들과 보기만 해도 향내에 취할 것 같은 엄청난 양의 꽃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먼지 하나 없이 정리된 대리석 길 위를 마차가 일정한 속도로 달렸고, 곧 황후궁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에던은 복도를 걸어가 황후의 응접실 앞에 도달했다.
문이 열리자 황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시오, 대공.”
놀랍게도 그녀는 응접실의 소파에 누워 시녀들에게 손톱 관리를 받고 있었다.
한껏 모아 치켜올린 머리에는 깃털이 꽂혀 있었고, 그녀의 눈에는 긴 속눈썹이 붙어 있어 고고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리고 황후의 목에는 무거워 보일 정도로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목걸이가 걸려 있어, 그녀에게 화려함을 더해 주었다.
퍽 마음에 드는 모습은 아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살갑게 구는 황후의 태도도.
무도회장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에던을 아예 없는 사람인 척 무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다른 의미로 무시하는 행위였지만 에던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옅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숙였다.
“인사드립니다, 황후 폐하.”
인사를 받는 황후의 보랏빛 입술이 찌푸려졌다.
“이만 되었다.”
에던의 인사를 자연스럽게 무시한 뒤 그녀는 시녀들을 귀퉁이로 내보내고 커다란 부채를 천천히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빨리 와 주었군요.”
“네. 갑작스러운 말씀을 하셔서요.”
에던이 고개를 들자, 황후는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그를 바라보았다.
죽은 정부와 닮은 예쁜 얼굴을 싸늘하게 관찰하던 황후는 눈썹을 내리깔고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그리 갑작스러운 것도 없죠. 대공도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그에 맞춰 청이 들어온 것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