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77)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77화. 나쁘지 않아(77/92)
#77화. 나쁘지 않아
2024.07.16.
황후의 서신을 받고 외출한 에던은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금방 돌아올 것처럼 말하더니 얼굴 보기 힘드네. 그런 생각을 하며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라티.”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에던이 앞에 있었다. 삼일 만이었다.
“에던?”
“응.”
“잘 다녀왔어요?”
“응. 다녀왔어.”
책상에 걸터앉은 그가 내 이마부터 머리칼까지 뒤로 쓸어 넘겼다.
“오래 걸렸네요.”
“어쩌다 보니. 그건 그렇고 뭘 얼마나 찾아본 거야?”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책들 중 하나를 집어 든 에던이 날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적당히 해, 공주님.”
그러며 툭, 검지손가락을 튕겨 이마를 가볍게 건드렸다.
다행이다. 대화를 나눠서인지 사이가 예전처럼 돌아온 기분이었다.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에던을 향해 헤- 하고 웃었다.
때를 봐서 치유하는 것도 당신만은 괜찮다고 확실히 얘기해 줘야지. 그러니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야지.
“얼마 못 봤어요. 내가 원하는 건 나오지도 않고.”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마법서는 많았고 원하는 정보는 아직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이비와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주술을 찾고 있는데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걸 잘 응용하면 나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남의 힘을 빼앗는 건 흑마법 같은 어둠의 마법에서나 허용되는 일인 것 같다.
어젯밤에는 솔직히 대마법사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비밀 공간을 몰래 뒤져서 미안하긴 하지만 지혜 좀 나눠 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마법서에 치유력에 대한 정보가 있어?”
“아마도 없을걸요. 그런 건 신전의 서고에 있어요.”
“그럼 정확히 뭘 찾고 있는 거야?”
“음. 있어요, 그런 거.”
그런데 에던은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데도 멋있네.
나 원 참, 책 보는데 팔근육이 저렇게 섹시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에던이 내 생각을 읽지 못하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방법 못 찾아내도 당신이 신전으로 갈 일은 없어. 내가 보내지 않을 거니까.”
에던은 느슨하게 어깨의 힘을 풀고 책장을 넘겼다. 그런 그를 멍하니 감상하고 있던 나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앗!”
시큰둥한 얼굴로 책을 내려보던 에던이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뭐예요, 그거?”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 에던이 홱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버렸다.
“뭐가.”
모르는 척하는 에던의 태도에 나는 그의 얼굴을 냅다 붙잡고 내 쪽으로 되돌렸다.
“입술 왜 이래요?”
삼일 만에 와서 겨우 얼굴 보나 했더니 잘생긴 입술 끝이 터져 있었다.
이제 막 생긴 상처 같지는 않고 아물 듯 말 듯 한 걸 보니 며칠은 된 상처다.
대충 이삼일…….
“아.”
일부러 내게 안 보이려고 피하고 있었으면서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한 목소리.
그가 들고 있던 책을 내려 두었다. 나는 얼굴을 구기며 그의 뺨을 놓았다.
“별거 아니야.”
에던이 책을 내려놓고 손으로 상처를 가볍게 매만졌다.
나는 더 묻지 못했다.
삼일 전 에던은 황후가 보낸 편지를 받고 나갔었다.
그녀가 때린 거야. 감히 에던을 때릴 용자도 없을뿐더러 때린다고 가만히 있을 그도 아니었다.
에던이 일부러 맞아 준 게 아니라면 말이 안 돼.
“약 가져올게요.”
“라티.”
“기다려요.”
“…….”
에던이 말리기 전에 나는 재빨리 응접실로 빠져나왔다.
헨젤라 황후. 그 여자 미친 거 아냐!
황후는 에던의 엄마를 싫어했다. 그녀가 단지 정부여서만이 아니었다.
에던의 엄마가 황제의 정부로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비천한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몰락한 귀족의 여식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그걸 인정할 증거가 없었다. 에던의 엄마는 황제가 노예 시장에서 주워 온 예쁜 인형이었다.
차라리 귀족 여식을 골라서 정부로 삼았거나 다른 제국의 귀족을 데려와 정부로 삼았으면 이해라도 했겠다는 게 황후의 입장이었다.
황제의 위신이 자신의 위신이기도 했기에 그녀는 노예 출신 정부의 존재가 끔찍했던 것이다.
자신과 정부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되는 것 같아서.
심지어 이능력자로서의 능력은 킬리언보다 에던이 더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어릴 때의 이야기지. 에던은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
북부를 지키는 영웅이라 불리고 있었다.
황실에서는 에던을 편할 대로 이용하고 있지만 그가 없으면 무너지지 않는 벽을 지키기 힘들다는 것을 제국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니까 원작에서 에던이 흑마법에 손을 대고 괴물이 될 때까지 미쳐 날뛰어도 곁을 지키는 수많은 부하가 있었던 거다.
그런 그를…….
함부로 얼굴을 때렸다.
대체 사람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다는 거야!
콘솔 안에 에던이 내게 발라 주었던 입술 약이 있었다.
나는 약을 손에 꼭 쥐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비밀 공간으로 들어갔다.
에던은 미동 없이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
혹시 다른 곳을 더 맞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입구에 서서 그를 빤히 관찰했다.
그러자 에던이 툭툭, 자기 허벅지를 두드렸다.
“의자 할래?”
말하는 그의 다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안 돼요. 이리 와요.”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 의자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전 같으면 꼼짝도 하지 않았을 에던은 가벼운 인형처럼 내가 시키는 대로 의자에 끌려와 앉아 주었다.
“가만히 있어요.”
“응.”
눈높이가 비슷해져서 발끝을 세우지 않아도 그의 얼굴을 쉽게 만질 수 있었다.
“실례할게요.”
“기꺼이.”
뚜껑을 열어 새끼손가락에 발랐다. 아프지 않게 그의 입술을 조심스레 쓸어 약을 발랐다. 간지러운지 에던의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어허. 얌전히 있어요.”
“무섭네.”
“진짜 무섭게 해요? 내가 얼마나 조심하고 있는 줄 알아요? 흉터 남으면 어쩔 거야.”
“그건 곤란하지. 누구한테 예쁨받아야 하거든.”
그럼 맞고 오지 마. 말을 삼키고 나는 바르는 것에 집중했다.
약을 좀 과하게 발랐나? 싶은 때에 손을 멈췄다.
“에던,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응.”
달칵. 뚜껑을 닫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왜 북부를 지키는 거예요?”
축제 때 가서 봤기 때문에 에던이 북부의 영지민들과 북부의 땅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근본적으로는 납득이 조금 어려웠다.
황자 자리를 버리는 게 어려웠던 걸까.
에던의 성격을 보면 그래 보이지도 않는데.
솔직히 나였다면 이 정도의 능력에 이 정도의 외모였으면 제국을 버리고 떠났을 것 같다.
이능을 사용하지 않으면 부작용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주기적으로 어느 정도 치유력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처럼 매일매일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킬리언이 그러고 있었다.
킬리언은 에던과 힐스타인, 단테와 같은 강한 이능력을 가졌음에도 황태자라는 이유로 이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황태자이니 몸을 사리고 주변에서 보호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 될 정도로 불공평했다.
상식적으로 힘의 능력치를 생각하면 신전에 가는 것도 우선 챙겨 줘야 할 사람은 에던이었다.
그런 에던만 신전에 출입 금지를 시키고, 이능력을 제일 사용하지 않는 황태자는 제멋대로 드나들고.
그러니까 이해가 되지 않는 거다.
그런 차별을 받으면서도 에던이 황실에 충성하는 것이.
오랫동안 지냈던 북부에 정이 들어서일까? 북부의 축제 때 봤던 모습을 보면 그럴 가능성도 조금 있었다.
아니면 나중에 황위라도 노리는 걸까? 때를 봐서 킬리언을 해치우고 황제의 자리에 오를 계획으로?
여러 가지 가설을 떠올려 봤는데, 에던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답이 나왔다.
“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땅을 지키면, 제국이 안전해지겠지.”
“……? 그렇겠죠?”
“그럼 킬리언 형님이 황위에 올랐을 때 제국을 다스리기 편할 거고.”
“네?”
“나는 킬리언 형님이 황제가 되길 바라. 그래서 지키고 있는 거야.”
무던하게, 평소하고 있던 생각 그대로를 툭 내뱉은 말.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당황스럽게 물었다.
“왜요?”
“왜라는 질문 좀 웃기는데.”
“황태자님과 사이가 나쁜 거 아니었어요?”
“글쎄.”
고개를 기울이며 에던은 자연스럽게 내 손에 제 손가락을 옭아맸다.
“미움받고 있으니 사이가 좋은 건 아니지만, 난 형님을 별로 싫어하진 않아.”
예? 엄청난 충격이었다.
뭐지? 에던에게 이 정도로 인류애가 있었나? 형제애? 아니면 제국을 위한 희생정신? 뭐 그런 거야?
왜 싫어하지 않는 거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에던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황궁의 가장 외진 곳에 갇혔었어.”
“…….”
내가 아는 이야기.
“루벤의 아버지와 루벤만 오는 아주 외진 곳이었지.”
난 모르는 척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외로웠어요?”
“뭐, 조금.”
에던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평생을 거기서 혼자 지내다가 죽어야 한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썩 외로웠어.”
덤덤히 말하는 그의 손을 꽉 쥐었다.
“그때 형이 일주일에 한 번씩 채찍을 가지고 날 찾아왔었는데.”
그랬지. 이것 또한 아는 이야기다.
황태자가 에던을 찾아가 몰래 괴롭히던 일.
채찍……. 루벤이 떠올랐다.
루벤의 눈가에 난 상처는 킬리언이 휘두른 채찍에 대신 맞아 줘서 생긴 거였다.
아는 이야기라서 나도 모르게 루벤의 상처를 입 밖으로 낼뻔했지만 참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형은 그때마다 울었어.”
에던이 씁쓸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
킬리언 디트리히. 사생아라 불리는 에던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순수 혈통의 황태자.
에던은 그런 형이 멋있었다.
황후와 엄마의 대립적인 관계 때문에 자주 만날 수 없었지만 때때로 둘은 서로를 보고 남몰래 장난치며 웃곤 했다.
황실은 헨젤라 황후의 측근들로 가득했고, 에던의 엄마를 비난하는 시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에던의 엄마를 따르는 무리도 생겨나긴 했지만 혈통 있는 귀족들은 헨젤라 황후의 편이었다.
황실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두 여자는 날이 선 상태로 서로를 마주했고, 그럴 때마다 에던은 구석에서 유령처럼 있어야 했다.
킬리언은 그때마다 장난스럽게 에던을 향해 웃어 주곤 했다.
“간식 정도는 알아서 챙겨 먹어.”
“고마워, 형.”
“우리 어머니 앞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고.”
“알겠어, 형.”
다른 배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엄마들의 관계만 아니면 다른 가족보다 훨씬 사이좋은 형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