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87)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87화. 찢어진 드레스(87/92)
#87화. 찢어진 드레스
2024.07.26.
“……!”
놀란 아이비가 걸음을 멈추자 검은 안개도 함께 움직임을 멈췄다.
검은 정확하게 아이비의 목선을 베며 스쳐 지났고, 상처가 벌어지며 빨간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리고 허리까지 닿았던 아이비의 갈색 머리카락이 반이나 잘려 나갔다.
툭, 머리카락은 뭉텅이로 잔디 위에 떨어졌다. 시간이 멈춘 듯 삽시간에 주위가 고요해졌다.
“어, 어, 어, 어, 어떻게…… 내, 내게 무슨 짓을……!”
잘려 나간 갈색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이비는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크나큰 충격에 빠진 듯 아이비의 눈동자는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비는 고개를 휙 치켜올리더니, 밤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는 내 긴 머리카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비, 비, 비, 빌어먹을 라티에나!”
내가 뭘 했다고?
아이비가 다시 내게로 성큼 걸음을 뗀 순간,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에던이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포털 안에서 걸어 나왔다.
수십 명의 부하와 함께.
“그 이상 움직이면 목을 뚫을 것이다.”
아이비는 걸음을 멈추고 딱딱히 굳어 버렸다.
에던은 그 말이 허투가 아니라는 듯 부하에게 새로운 검을 건네받고 있었다. 그런 에던을 쳐다보는 아이비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에던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나타난 에던을 보자 순간적으로 눈시울이 시큰거릴 정도로 서러움이 밀려 왔다.
아이비의 정체를 저렇게 증명해 주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아서 혼자 싸우는 기분이었는데, 에던이 와 주었다. 완벽한 내 편이.
기분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에던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최악인 상황은 날 머뭇거리게 했다.
아주 잠시, 에던과 나의 시선이 마주친 찰나에 아이비가 다시 바락바락 소리를 내질렀기 때문이다.
“왜? 대체 왜? 내, 내가 뭘 잘못했어! 내, 내가 뭘 어쨌는데! 이게 다 라, 라, 라티에나 너 때문이야! 이, 이, 이, 이 나쁜 년! 나쁜 년!”
또 모든 게 내 탓이지. 자기가 한 짓도 생각 안 하고.
날 보고 잠시 느슨해졌던 에던의 눈빛이 차갑게 돌변해 아이비에게 향했다.
동시에 아이비는 악마처럼 변한 새카만 눈동자를 빛내며 거칠게 날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분명히 경고했는데.”
에던은 낮게 말을 내뱉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아이비를 향해 검을 날렸다.
검은 빠르고 정확하게 아이비의 목의 정중앙을 향해 날아갔다.
“안 돼!”
대사제의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그리고, 챙-! 또 다른 검이 날아와 에던의 검과 부딪혔다.
정말로 목으로 검을 날릴 줄 몰랐는지 겁에 질려 뻣뻣하게 굳은 아이비의 발 근처에 검 두 자루가 떨어졌다.
에던의 검을 튕겨 날려 버린 건 킬리언의 허리춤에 있던 금색 손잡이의 검이었다.
“…….”
차갑게 식은 눈으로 떨어진 제 검을 확인한 에던이 킬리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마녀를 도우신 겁니까, 형님?”
에던의 목소리는 내 생각보다 훨씬 차분했고 정중했다.
아직 에던이 킬리언을 위하고 있으니 그렇겠지.
하지만 킬리언은 달랐다.
그는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에던을 무시하는 투로 말을 내뱉었다.
“마녀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하고, 처분도 내가 할 것이다. 출입이 금지된 신전에 함부로 들어온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물러나.”
킬리언, 이 남자는 대체 왜 이렇게 에던을 싫어하는 거야?
두 사람 감정이 너무 상극이잖아.
방에 갇혀 그와 대면했을 때도 생각한 거지만 킬리언은 이상했다.
온 신경이 에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이비가 마녀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보다 눈앞의 에던을 어쩌지 못해서 안달이 난 모습이라니.
에던은 피가 묻어 있는 손으로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겼다.
이미 옷과 망토가 피투성이었지만 비교적 깨끗했던 금빛 머리카락에 마물의 검붉은 피가 묻었다.
“싫다면요?”
“명을 거절하고 금지된 곳에 출입까지 했으니 내게 반역을 품은 것으로 간주하겠다.”
그 말에 에던이 한쪽 입꼬리를 비웃듯 끌어올렸다.
“고작 이런 일로 반역이라…… 황실과 신전에서 마녀에게 속았다는 걸 비열하게 제 탓으로 돌리고 싶으신 겁니까?”
“비열?”
킬리언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내게 그 누구보다 비열한 짓을 저질렀던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무슨 말이지? 에던이 비열한 짓을 저질렀다니?
어떤 대답이 나올지 기다렸지만 에던은 입을 다물었다. 킬리언은 제 기사들에게 명했다.
“저것을 데려와라, 정확한 조사를 마친 후에 처벌할 것이니.”
아이비를 저것이라고 말한 킬리언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라티에나 메리골드, 너도 데려가겠다.”
그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에던의 눈가가 노골적으로 찌푸려졌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유가 뭐든 대성녀를 의심하고 고발했으니 진실을 밝힐 때까지 구금은 당연하다. 또 다른 확인을 해 볼 것도 있고.”
치유력에 관한 이야기겠지.
그런데 왜일까. 에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킬리언의 모습은 나보다 그를 자극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데려와.”
그 말에 에던의 표정이 뒤바뀌었다.
대화 내내 나름대로 킬리언을 배려하는 듯 미세하게 부드러운 태도였으나 순식간에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다.
입매가 단단히 다물린 그의 턱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무도 눈치 못 챘겠지만, 에던은 겉으론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속으로 화를 꾹꾹 눌러 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아이비를 바라보았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것처럼 굴던 아이비는 양손으로 목을 감싸고 공포심에 휩싸여 있었다.
쭉- 이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애정만 받아왔으니 처음 겪는 위협에 충격을 느낄 만도 했다.
뻔뻔하게 내 힘을 자기 것처럼 사용하며, 사랑받는 대성녀가 되었으니 말이다.
마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내 힘을 빼앗는 것에만 집중했나 보다. 정신을 잃은 사람을 패는 것 말고 다른 능력은 사용하지 못하는 걸 보니.
나는 눈을 치켜들고 아이비가 기분이 나쁘도록 일부러 흘겨보았다.
“라……!”
조금씩 흰자위가 돌아오던 아이비는 내 시선에 다시 소리를 내지르려 했고, 나는 성큼 사람들 사이로 걸음을 내디뎠다.
“따로 조사할 필요 없어요.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어요.”
금방이라도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눌 것 같았던 에던과 킬리언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뭐라고?”
킬리언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아이비는 흑마법을 사용했어요. 저 모습을 보고도 마녀라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면 쟤가 흑마법을 사용했다는 증거를 보여 주면 되는 거잖아요.”
“…….”
“흑마법을 사용한 자는 피부가 썩어 나가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가 술렁거렸다.
신전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흑마법의 부작용에 대해 알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내 말에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아이비의 반응도 확실했다. 날 바라보는 눈에서 일순 힘이 빠지더니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아이비의 옷을 벗겨 봐요. 확실한 증거가 나오겠죠.”
“아니야! 아니라고!”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비는 고성을 질렀는데, 꼭 진실을 감추기 위해 발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비가 흑마법을 사용할 때, 항상 가슴 안쪽에서부터 검은 것이 시작되었다.
그러니 내가 생각했을 땐 분명 가슴 정중앙, 혹은 그 아래의 복부가 가장 심하게 썩어 있을 거야.
“라티에나아-! 이 XX 년!”
에던이 내 옆에 있어서인지 아이비는 겁에 질려 소리치면서도 차마 날 향해 달려들지 못했다. 제자리에 서서 소리만 미친 듯이 질러댔다.
“XXX! 죽어! XXXX! XX 같은 계집애! XXX!”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아이비는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어디서 저런 큰 목소리가 나오는지 온 정원이 울리도록 나를 향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쩌렁쩌렁 쏟아 냈다. 나는 아이비에게 말했다.
“아이비, 이제 넌 두 번 다시 그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대성녀로 돌아오지 못해. 그런 꼴을 들켰으니 이젠 연기도 할 수 없겠지. 그러니까 포기해. 너 끝났어.”
“이 빌어먹을 년! 날 망친 건 너야! 내가 왜 끝나! 내가 왜!”
아이비의 모습은 흑마법을 손댄 자의 마지막 최후 그 자체였다.
나는 킬리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치유력을 느낀 후 킬리언은 날 대하는 분위기가 변해 있었다.
“대성녀의 옷을 벗겨라.”
황태자의 명이 떨어졌다.
조금 전 아이비를 끌고 오라는 그 때보다 훨씬 무겁고 차가운 명령. 그 어떤 배려도 담지 않은, 적을 대하는 듯한 그 단호한 명령에 황실의 기사들은 아이비에게로 뛰어갔다.
강하고 거친 손아귀에 아이비의 몸이 붙잡혔다.
“벗겨.”
단 한마디. 그 명에 기사들은 아이비에게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았다.
드레스가 자비 없이 잘려 나갈 위기였다.
“전하!”
불쑥 상황에 끼어든 건 대사제였다.
정말이지, 저 할아범.
“대성녀에 대한 예의를 지켜 주십시오!”
대체 아이비랑 무슨 짓을 했길래 이 상황이 되어서도 저렇게 쟬 감싸는 거지?
기가 막히네. 아이비가 잘 구슬린 건지 대사제가 제정신이 아닌 건지.
하지만 킬리언은 대사제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벗겨.”
다시 그가 명령하자, 아이비를 붙잡은 기사들은 그녀의 드레스의 복부 쪽을 세로로 잘라 찢어 버렸다.
“……!”
그 순간 나를 포함해 정원에 모여 있던 백여 명의 사람들의 얼굴이 충격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이비의 배는 새카맣게 썩어 구멍이 뚫리기 전이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건 나였다. 절로 벌어진 입을 틀어막기 위해 손을 올렸다.
이건…… 사람이 아니잖아.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왜, 왜? 나를, 나, 나, 나, 나를 워, 원한 건 당신들이잖아. 왜, 왜. 어, 어째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해!”
누군가는 싸늘하게, 누군가는 경악, 누군가에게는 공포, 온갖 좋지 않은 감정이 담긴 시선들이 쏟아졌다.
아이비는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비대칭으로 반쯤 잘린 머리카락, 끔찍하게 변한 피부, 가운데가 쭉 찢어져 가슴만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드레스를 입은 아이비.
그녀의 구멍 난 배에서부터 다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이, 이, 이게 저, 전부 라티에나 너 때문이야!”
마지막까지 아이비는 내 탓을 하며 소리를 내질렀고, 안개가 크게 피어오른 순간.
“닥쳐.”
에던이 아이비를 향해 이능의 푸른빛이 날려 보냈다.
콰앙!
아이비는 인형처럼 날아가 신전 벽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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