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Doesn’t Want Love RAW novel - chapter (60)
악녀는 사랑을 원치 않아요 61화. 둘만 보냈다고?(60/60)
61화. 둘만 보냈다고?
2024.07.31.
“재조사 결과를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론의 방문에 카리나는 테이블이 있는 소파로 자리를 옮기려 몸을 일으켰다.
양쪽으로 제레미아와 미하일이 부축해왔다.
덕분에 한쪽 팔은 제레미아, 다른 쪽 팔은 미하일에게 잡힌 카리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다친 곳은 목이지 다리가 아닌데요.”
항의를 담아 말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저번에도 멀쩡하다가 갑자기 쓰러지지 않았나.”
“가다가 넘어지시면 어쩌려고요.”
“…….”
어차피 소파까지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 상황을 본 론의 얼굴이 얼빠진 것처럼 멍하게 변했다.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조금 민망함을 느낀 카리나는 모르는 척 눈을 돌렸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론이 표정을 가다듬고 보고를 시작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인질로 잡혔던 그 ‘젠’이라는 하녀의 증언뿐인데, 아마 직접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론이 방문 앞으로 가서 문을 열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젠이 들어왔다.
“대공비님을 뵙습니다.”
젠이 공손하게 인사하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와.”
카리나가 젠을 반겼다.
“이쪽으로 와서 앉아.”
카리나는 제일 먼저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젠이 카리나가 권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깊게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대공비님. 그땐 정말 감사했습니다. 인질로 잡혀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대공비님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젠의 감사 인사를 받은 카리나는 작게 웃음 지었다.
“나야말로 고마웠어. 그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나서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었거든.”
이 말은 진심이었다.
뜻밖의 말에 젠이 놀란 눈빛으로 카리나를 쳐다보았다.
카리나는 바로 화제를 돌려 물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죽은 그 하녀와 친했다면서?”
젠은 여기 오기 전,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이런 질문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다만.
“그게…….”
젠이 카리나 옆에 있던 제레미아와 론의 눈치를 보았다.
“괜찮아. 그냥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뿐이니까.”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리던 젠이 이내 굳게 결심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 친구는 절대 자살할 애가 아닙니다. 사실은…….”
내용은 이러했다.
젠과 죽은 하녀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였다고 한다.
친밀했던 만큼 서로에게 비밀 이야기도 많이 터놓고 지냈다.
근데 평소와는 달리 죽은 하녀가 최근 겁에 질린 것처럼 이상하게 굴더니, 죽기 직전 날 새벽에 자신은 이제 죽을지도 모른다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젠이 대체 무슨 일이냐며 매섭게 캐묻자, 심부름을 갔다가 마실 것을 대접받아 마셨는데 거기에 독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참을 울던 그 하녀는 이내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살 수 있다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그날 자신이 말한 것들은 절대 비밀이라며 몇 번이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다짐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하녀는 다음날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이게 전부입니다.”
“네가 지금 한 말에 대한 증인이나 증거는 전혀 없다는 소리군.”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제레미아가 한마디 했다.
“네…….”
젠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이번에 고향으로 가서 제 친구가 가족에게 썼다는 이별 편지를 제가 직접 확인하고 오려고 했습니다. 원래 저희는 고향이 같아서 편지를 보낼 때에도 항상 같이 보냈었거든요. 갑자기 인질극에 휘말려서 다녀오진 못했지만…….”
젠이 뒷말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하녀가 ‘자신이 독을 먹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는 거죠? 먹은 거면 먹은 거지, 먹은 것 같다는 건 무슨 소리입니까?”
카리나 옆에 서 있던 미하일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카리나도 의문스러워졌다.
“독을 먹었으면 마비든 뭐든 증상이 나타났어야 했다.”
제레미아가 덧붙였다.
그런 증상이 있었냐는 시선을 받은 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죽은 하녀의 몸에서 독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독물 중독이 의심된다는 보고도 없었고요.”
그러자 젠이 다시 차분하게 대답했다.
“저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독을 먹고 3일 안에 해독제를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3일 안에 해독제를 먹어야 하는 독이라고?”
‘아, 설마.’
카리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카리나는 그 독을 알고 있었다.
독을 먹은 직후에는 아무 증상이 없지만, 3일이 지난 시점부터 폐에 있는 신경계를 마비시켜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독.
‘크로아나 독!’
과거에 루시아를 독살하려고 독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알게 된 정보였다.
크로아나는 주로 수도에서 정치적으로 대립 관계에 있는 정적을 암살할 때 많이 쓰이는 독이었다.
흰색 가루 형태인 크로아나는 한 티스푼 정도의 소량으로도 충분히 그 효력을 기대할 수 있었다.
물이나 액체에 타면 무색무취로 변했다.
그래서 휴대하거나 몰래 숨기기도 좋았고, 무색무취라 목표에게 몰래 먹이기도 수월했다.
심지어 독을 사용해도 몸에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기에, 암살에 있어서는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는 완벽한 물질이었다.
암살이 목적이 아니었어도, 특정 사람에게 먹이고 약점처럼 잡아서 해독제를 빌미로 사람을 이용하는 데에 자주 악용되기도 했다.
‘북부에서 이 독을 보게 될 줄이야.’
심지어 지금 이 시기엔 크로아나라는 물질에 대해서 아는 이들도 많지 않은 시점이었다.
원래 수도의 한 의원이 치료에 사용할 새로운 마취제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물질이었다.
독성을 제거하고 다른 약재들과 섞어서 사용하면 중독이나 환각의 부작용이 적은 효과적인 마취제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독성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쓰면 며칠 후에 호흡곤란으로 죽게 된다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게 돼버린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크로아나를 이렇게 악용하는 이들은 몇 명 없을 텐데.’
카리나의 고뇌가 깊어졌다.
“제 친구가 심부름을 다녀왔다고 했던 그날, 남쪽 마을에 다녀온 것 같았습니다. 겉옷 주머니에서 남부 통행증을 찾았거든요. 남부까지 다녀올 만큼 자리를 오래 비웠던 건 그날밖에 없습니다.”
젠이 챙겨온 통행증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남쪽 마을이면 람버다 가문이 세를 잡고 있는 곳이지.’
당연한 수순으로 케롤라인의 정부인 레발스가 떠올랐다.
카리나는 당연히 이 사건의 범인이 레발스일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연인인 케롤라인이 살인죄를 뒤집어썼는데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의도하고 꾸민 일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게넌 영식의 죽음만 놓고 본다면 단순히 입막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크로아나를 이용한 하녀의 죽음은 아니었다.
이맘때의 크로아나는 단순히 돈만 준다고 해서 살 수 있는 독이 아니었다.
돈도 돈이지만, 수도의 고위 귀족들과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맞아야 구할 수 있는 독물이었다.
‘레발스 람버다가 수도의 고위 귀족들과 뭔가 관련이 있다는 건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수도의 귀족과 북부는 적대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그리고 람버다가는 수많은 북부의 귀족 가문 중 하나일 뿐이었다.
수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위세가 큰 것도 아니었다.
“후우.”
카리나의 한숨이 깊어졌다.
일이 풀리지는 않고 계속 꼬여가는 느낌이었다.
‘셀레나에게도 이 사건을 따로 조사해달라고 맡겼으니까. 결과를 보고받기 전까진 속단하지 말고 기다려보자.’
카리나가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멀쩡하다가 섭취한 지 3일 후에 죽는 독물이라는 건가?”
제레미아가 되물었다.
“그건 저도 잘…….”
확신이 없는 젠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그런 독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론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미하일도 아는 바가 없는지 그저 멀뚱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여기에 카리나를 제외한 아무도 크로아나 독에 대해 아는 이들이 없었다.
‘조사가 이대로 흐지부지 끝나버리면 안 되는데!’
카리나는 이대로 재조사가 끝나버릴까 봐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정리되지 않은 말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방금 젠이 말했던 것과 비슷한 독이 있는지 따로 조사해줘요. 새로 생긴 독일 수도 있으니까. 북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일 수도 있으니 기왕이면 수도까지도요.”
“새로 생긴 독?”
“수도요?”
제레미아와 미하일이 각자 반문했다.
“…….”
제레미아와 미하일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카리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카리나는 순간 아차 했다.
자신이 너무 티 나게 말했나 싶어서 진땀이 났다.
하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모르는 척 굴었다.
“네. 그리고 비슷한 독이 있다면 재조사를 속행해 주세요.”
“…….”
잠시 뜸을 들이던 제레미아가 론에게 명령했다.
“론. 지금 들은 것과 비슷한 독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젠과의 대면 자리는 파했다.
젠은 방을 나서기 직전까지 카리나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 * *
에이든은 꽃집에서 돌아간 후, 동생들과 함께 매일매일 카리나의 무사 회복을 빌었다.
그리고 어제 카리나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아직 안정을 취하셔야 한다고 하니.’
몸을 다 회복한 카리나가 자신들을 만나러 와주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꽃집에 들렀다가 일을 마치고 온 에이든이 아이들부터 챙겼다.
“나 왔어.”
에이든이 겉옷을 벗어서 의자에 걸쳤다.
“아, 오빠. 어서 와. 오늘은 일찍 왔네?”
네이나가 방에서 나와 에이든이 온 것을 확인했다.
“미첼 상태는 좀 어때?”
고아원이 이사를 한 후 환경이 좋아지자 미첼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렇게 종종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곤 했다.
“약 먹은 후엔 좀 나아졌어.”
미첼은 어젯밤부터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해서 끙끙 앓았다.
꽃집에 미첼의 상태를 말하고 해열제도 받아오는 길이었다.
“혹시 몰라서 해열제도 받아왔어. 이따가 상태 보고 필요하면 먹이자.”
“알겠어.”
네이나가 해열제를 챙겼다.
“그런데 너 로베토 아저씨네 안 가봐도 돼?”
로베토 아저씨는 도기를 만드는 공방의 주인이었다.
이곳도 꽃집에서 연결해줘서 일손을 돕는 곳 중 하나였다.
해보니 일이 어렵지 않아서 에이든 말고 다른 아이들도 정기적으로 가서 심부름을 하고 푼돈을 받았다.
“오늘은 디노랑 필립만 갔어.”
“둘만 보냈다고?”
에이든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애들도 다 나가서 없고, 미첼이 아픈데 혼자 둘 수도 없어서.”
네이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심부름이야 이미 몇 번 해봤던 일이라 어떻게 하는지 잘 알 거고 필립도 디노가 잘 챙길 거야.”
네이나의 말에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올 때 됐네.”
네이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나는 나가서 애들 오는지 보고 올게.”
“응.”
에이든이 다시 겉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다시 보니 주변에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눈이라도 치워놔야겠다.’
혹시라도 눈 때문에 애들이 미끄러져서 다칠까 봐 신경이 쓰였다.
에이든이 구석에 세워두었던 눈삽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