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is a Marionette RAW novel - 2m악녀는 마리오네트_chapter_33
악녀는 마리오네트 외전 3장. 이 정도면 아마도 화목한 가정?(33/33)
외전 3장. 이 정도면 아마도 화목한 가정?
새카만 머리카락, 시리도록 청명한 푸른 눈동자, 말랑한 볼과 어울리지 않는 근엄한 표정의 소년이 카예나를 찾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어머니.”
소년이 완벽하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리자 카예나가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어서 오렴, 루비.”
그 애칭에 루비라고 불린 소년이 입술을 삐죽 올렸다. 아무리 자신이 이제 막 10살이 되었다고는 해도 차기 대공가의 주인이 될 몸이었다. 루비는 자신에게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애칭이다.
“루드빌입니다, 어머니.”
소년이 정정하자 카예나가 의자를 빼내며 말했다.
“그래, 루비. 이리 와서 앉아. 쿠키 먹을래?”
카예나는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눈치 빠른 루드빌은 지금 카예나가 일부러 그를 루비라고 부르며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때 어린 소녀가 불꽃이라도 튈 것 같은 목소리로 빽 소리 질렀다.
“오빠!!”
루드빌이 찔끔했다. 재앙과도 같은 제 여동생이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멀리서부터 우다다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 설마…….”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카예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어머니가 자신을 제 동생에게 팔아넘긴 것은 아니겠지? 도망칠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이미 그의 여동생, 슈나가 붉은 불꽃을 매단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
“어… 슈나야…….”
그는 키드레이 대공가의 훌륭한 후계자였으나 동생은 조금 어려웠다. 성격이 어찌나 불같은지 카예나나 라파엘로가 대체 누구의 성격을 닮은 것인가를 두고 사흘 밤낮을 토론하기도 했다. 카예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루비. 왜 슈나에게 거짓말을 했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걸? 어디 변명이라도 해봐!”
슈나는 고작 다섯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을 지나치게 잘했다. 덕분에 카예나가 그녀를 상대하다가 지쳐서 슬쩍 루드빌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아카데미에 슈나도 데려가기로 했잖아!”
“하지만 슈나……. 수도까지 가려면 너무 힘들고…….”
루드빌은 제 여동생에게 쩔쩔맸다. 그는 도움을 구하려는 듯이 모친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카예나는 빙긋 웃으며 어서 네가 뱉은 말에 책임지라는 듯이 바라만 보았다.
‘네가 아카데미에 가 있는 동안 슈나가 얼마나 난리 쳤는지 모르지?’
가히 자식을 절벽으로 떨어뜨려 적자생존하게 만드는 맹수 같은 기세였다.
“슈나는 똑똑한데 왜 아카데미에 못 가는 거야? 오빠가 데려다준다고 했으면서 왜 혼자 갔어!”
루드빌은 슈나의 성화에 못 이겨 그런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입학할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은 슈나를 아카데미에 입학시킬 방법은 없었다. 루드빌이 울상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슈나의 뒤에 다가와서 그녀를 훌쩍 들어 올렸다.
“꺅!”
라파엘로가 슈나를 안은 채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으며 대신 변명해주었다.
“오빠도 슈나가 입학할 방법을 찾아봤지만, 아카데미에서 안 된다고 했다더구나.”
그 말에 슈나가 눈을 뾰족하게 뜨다가 이내 우울하게 시선을 떨어뜨렸다. 실의에 잠긴 아기 천사처럼 가녀린 모습이 절로 사람들의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카예나가 말했다.
“그래도 소용없어.”
그러자 슈나가 다시 씩씩대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슈나의 연기에 죄책감을 가졌던 루드빌이 퍼뜩 정신 차렸다. 저번에도 저 연기에 홀랑 넘어가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카예나가 루드빌을 살짝 끌어 그에게 귓속말했다. 루드빌은 긴가민가한 표정을 하더니 슈나에게 말했다.
“슈나.”
“흥!”
슈나는 제 오라비를 본 척도 하지 않고 아빠의 품에 휙 안겨 고개를 돌렸다.
“아카데미는 슈나가 8살이 되면 같이 가자. 대신 이번 방학 동안 황궁에 갈까? 세이라를 보고 싶어 했잖아.”
올리비아와 이델 사이에서 태어난 황녀, 세이라 이야기에 슈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세이라 언니? 세이라 언니는 공부하러 율령에 갔다고 했잖아.”
“이번에 황궁으로 돌아왔대. 같이 갈까?”
슈나의 표정이 환해졌다.
“응!”
방금까지 씩씩거리던 것을 완전히 잊은 사람처럼 슈나가 환하게 웃었다. 루드빌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슈나가 라파엘로에게 말했다.
“슈나는 오빠랑 놀래.”
방금까지 쥐잡듯했던 오빠에게 완전히 마음이 풀린 슈나는 천사처럼 방긋방긋 웃으며 루드빌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았다. 카예나는 바스턴을 불러 아이들의 수행을 맡겼다. 이로써 평화가 다시 찾아온 듯했다.
아이들이 떠나자 라파엘로가 그녀의 곁에 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루드빌에게 너무하셨습니다.”
“어머, 제 동생의 꾀도 못 이겨내어서야 장차 대공가를 이끌어가겠어요?”
“슈나가 보통 애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카예나는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인지 사람을 제 입맛대로 구워 삶아대는 슈나를 보면 머리가 아팠다.
“어쨌든 둘은 사이좋은 남매이니 슈나가 루드빌을 잘 보살펴주겠죠.”
그녀가 말했다. 보통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하겠지만 지금껏 지켜본 결과, 슈나는 장차 카예나의 명성을 따라잡을 정치력을 소유할 것 같았다. 벌써 지닌 미모도 천사처럼 아름다워 찬사를 자아내고 있었다.
카예나는 익숙하게 남편의 품에 몸을 기댔다. 라파엘로는 그녀를 안으며 더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쳤다.
“애들이 언제 크나 했더니 벌써 저만큼이나 컸네요.”
그들은 화기애애하게 나들이를 떠날 준비 중인 남매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카예나와 라파엘로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며 배려했다. 라파엘로는 여전히 여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바옐은 대공저에서 더부살이 중이었으나 마법사의 세계를 보살피느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종종 치즈 고양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라파엘로와 티격태격했다.
카예나는 여전히 일상다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완전한 행복으로 채워진, 영원하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그런 일상을.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