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is a Marionette RAW novel - 2m악녀는 마리오네트_chapter_7
악녀는 마리오네트 7장. 악녀의 살림살이(1)(7/33)
7장. 악녀의 살림살이(1)
베라는 올리비아와 간단한 면담을 끝내고 한가롭게 책을 읽는 카예나를 힐끗 보았다. 그녀의 손엔 북부 지방에 대해 기술된 여행기가 들려 있었다.
‘하다못해 키드레이 경이라도 만나시지.’
황립 도서관에서 나란히 서 있던 그들은 동화에서 나오는 공주와 기사처럼 잘 어울렸다. 게다가 그날 카예나를 직접 찾아온 사람은 라파엘로였다.
그것이 어떤 감정의 전조가 아닐까? 하지만 최근 카예나는 그에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처럼 그가 얼마나 근사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북부는 더 볼 것도 없겠구나. 지내기 불편하겠어.”
읽던 책을 툭 내려놓으며 한가로운 이야기나 할 뿐이었다.
베라가 불쑥 물었다.
“전하, 진심으로 올리비아 양과 키드레이 경이 잘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진심으로 잘되길 바라냐고?’
카예나는 책자를 손으로 톡톡 두들기다가 어떤 결심처럼 첫 장을 펼쳤다.
“그럼.”
정확히 말하자면 어차피 잘될 사이에 숟가락이나 얹기를 바라는 거였다.
원작에서 라파엘로와 올리비아는 혼담 이야기가 나온 후 카예나의 성년식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다운 전개였다. 카예나에게는 비극의 서막이었지만.
베라의 질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만약 키드레이 경이 전하께 연심이라도 생긴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카예나는 뜬금없는 가정에 놀란 눈을 했다. 그녀는 책을 무릎 위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정이구나.”
그녀는 그렇게 일축했다.
“그리고 벌써 키드레이 경은 올리비아와 혼담이 오가는 중이잖니. 이 이야기는 그만했으면 하는데.”
“죄송합니다, 전하.”
카예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무라는 것이 아니야. 네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내가 어찌 모르겠니?”
그 다정한 다독임에 베라는 조금 쑥스럽게 입술을 꼭 다물었다.
이 분이 원하시는 분과 이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베라는 이전에 카예나가 라파엘로와 꿈꾸던 미래에 대한 계획을 대략 50년 치는 들었던지라 더욱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올리비아 양도 분명 미인이지만…….’
베라는 올리비아를 떠올렸다. 카예나는 그녀를 두고 상당히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아가씨라고 했다. 올리비아와 꽤 호흡이 잘 맞을 것이니 일하기 편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에서 베라는 황녀가 그녀를 상당히 중용할 것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그렇게 유능한 사람인가?’
물론 첫인상은 무척 괜찮았다. 집안을 제외한다면 딱히 흠잡을 곳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성품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사교계 평판은 나쁘지 않았다. 카예나가 그렇게 경계하고 싫어하는 티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계 평판이 나쁘지 않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베라, 네가 쓸 애들은 뽑았니?”
카예나의 물음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직무를 도울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네, 우선 애니를 중용할까 합니다.”
“괜찮은 생각이야.”
베라는 황녀궁을 오직 카예나의 영향력 아래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물밑에서 인력을 대거로 개편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나머지 두 사람이 도착하겠구나.”
카예나는 창밖을 보았다. 봄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그들보다 더 빨리 일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라.”
“네, 전하.”
카예나는 그들 사이에 서열을 만들어 낼 생각이었다.
서열은 곧 황녀의 총애가 어디에 더 기울어 있느냐를 보여주는 일이다. 카예나가 올리비아를 중용할수록 사람들은 어렵고 조심스럽게 대할 것이다. 올리비아에게 그럴듯한 영향력이 형성되면 레제프든 하인리히 대공자든 그녀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카예나는 이런 식으로 황궁을 떠나기 전에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작정이었다.
베라가 나가자 침실에는 카예나 홀로 남게 되었다. 그녀는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서부에 관련한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껄끄러웠다. 길리안 자작가가 서부에 연고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책에 가시라도 돋쳐 있는 듯 놓아 버렸다.
한숨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자신이 과거로부터 완전한 사람이 된 줄 알았다. 그런데 길리안과 마주치는 것으로 그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다음에 또 그렇게 마주하게 된다면 자신은 멀쩡할 수 있을까?
카예나는 아무것도 장담하지 못했다.
“역시 조치하는 게 나을까……?”
길리안 자작가를 한바탕 뒤집어 군마 사업을 사분오열 찢어 버릴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그렇게 해서 키드레이 공작가에 틈이 생기면 곤란해질텐데.’
섣부르게 키드레이 공작가의 세력을 건드리기는 어렵다. 그의 영향력에 문제가 생기는 걸 레제프와 하인리히가 더할 나위 없이 반길 게 뻔했다. 애초에 명분도 명확하지 않은데 공작가와 척지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래저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구나.’
길리안 자작가의 군마 사업은 상당히 영향력 있는 사업이다.
그것을 국가 산업으로 환수해서 길리안 자작가의 영향력을 낮추거나, 다른 사업을 키워 준다면…….
그녀는 이리저리 복잡한 가정을 해 보다가 생각을 멈췄다.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그냥 헨버튼의 자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대체하기만 하면 될 텐데.”
그리고 그게 카예나의 적성에 더 잘 맞았다.
다행스럽게도 헨버튼 길리안은 타고난 성품이나 능력이 별로였고 어울리는 친구는 더 별로였다.
“으음…….”
다만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라파엘로와의 협력이 필요했다. 키드레이 공작가의 가신을 함부로 내칠 수는 없었으니까.
어쩐지 자꾸만 그와 얽히게 된다. 라파엘로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자신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겁이 났다.
과거의 자신과는 어떻게든 다르게 살아 보고 싶었다.
카예나는 파르르 떨리는 제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헨버튼 길리안은 이번 생에서도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녀가 도망치듯 떠난 곳까지 찾아와 또 지난번과 같은 짓을 저지를 수도 있다.
학대당한 기억이 완전히 선명하진 않다. 살해당할 당시의 기억도 그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몸은 이렇게 영향을 받았다.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냉정하게 생각하는 것과 몸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없애야지.’
길리안은 통제할 수 없는 것.
그렇다면 없애는 것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악녀는 마리오네트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