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
악녀는 두 번 산다 10화
후작가에 도착하자 아르티제아는 키쇼어에게 축성받은 기도용 초를 나누어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로산 후작가의 고용인들은 황제의 왕림에도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제 할일을 하고 있었다.
황제는 간혹 밀라이라를 놀래고 기쁘게 해주기 위해 몸소 로산 후작가를 방문하곤 했다.
아르티제아는 들어가면서 앨리스에게 살짝 말했다.
“선물용으로 마련한 주머니들을 전부 하나씩 돌려.”
“준비해놓은 걸 거의 다 써버리게 될 거예요.”
앨리스가 당황하며 속삭였다.
아르티제아는 금화를 몇 개 넣은 작은 실크 주머니를 수십 개씩 만들어 개인 금고에 넣어두고 있었다.
선물이나 팁이라는 명칭의 뇌물을 건네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정보망을 관리하도록 앨리스를 교육했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평생을 시중드는 사람 속에서 살아가는 법이야. 황족쯤 되면 옷자락을 다듬는 사람부터 구두를 신겨주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냥 방에서 방으로 걸음을 옮기기만 해도 따라다니는 사람이 수십 명이지. 청소하고 방을 정돈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르는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고.」
「네.」
「하지만 그들을 부리는 이는 대부분 상대를 인간으로 인지하지도 못해. 꼭 비밀이 아니라도 엿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어.」
「음. 그건 저도 아는데요, 돈 될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보통 다 팔러 오지 않나요? 돈은 그때 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렇게 말했다.
많은 고용인들이 자기가 들은 이야기 중에 돈이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높은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해두었다가 적당한 때가 오면 팔아치우거나 직접 야심을 이루는 데에 사용하곤 했다.
「평소에 이렇게 해서 환심을 사 두면, 중요한 정보가 생겼을 때에 먼저 이야기하러 오지 않겠니?」
「아하, 우선권을 사는 거군요.」
「신뢰도, 돈 될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반드시 사준다, 얼마가 되더라도 지불할 능력이 있다. 그걸 평소에 증명해두는 거야.」
아르티제아는 중요하지 않은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도 일관된 태도로 뇌물을 주었다.
당장 필요할 때에만 돈을 써서는 마음을 살 수 없으니까.
「너도 알아둬. 돈을 쓰면서 부탁을 하지 않으면,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마음의 빚을 지울 수 있어. 이건 아주 중요해. 돈을 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으면 바로 거래 관계가 끝나버려. 다음을 장담할 수 없지. 하지만 대가를 받지 않으면 관계는 끝나지 않아. 언젠가는 뭔가를 해주어야 하지.」
가난한 사람만이 아니라 당장 입에 풀칠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르티제아가 건네는 금화는 몇 달 동안 숨통을 틔워 주고 자식들을 가르치는 데에 보탬이 된다.
그러면 자연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마련이었다.
만일에 그녀가 상대보다 지위가 낮다면, 돈을 받는 자들은 상납을 받은 것으로 여기고 눈을 감아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로산 후작이었다.
그녀가 주는 돈은 먼 미래를 내다 보고 주는 뇌물이지만, 받는 이는 자기가 매수된 게 아니라 윗사람의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윗사람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뇌물의 대가가 아니라 충성심이다.
「돈을 줄 때마다 자주 이야기를 하렴. 뭐라도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면, 이런 것은 정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팔지 않았던 작은 이야기도 쉽사리 내줄 테니. 전체적인 평판이 올라가고 신임을 얻으면 지금까지 돈을 받은 적 없는 사람도 정보를 팔러 오게 될 거야.」
전체적인 그림은 아르티제아 자신이 그리면 된다. 일단 중요한 것은 많은 양의 정보였다.
정보의 질은 그 정보가 담고 있는 크기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입에서 나왔느냐 아니냐가 좌우하는 법이다.
앨리스는 그런 이유로 아르티제아가 돈주머니를 마련해두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염려스럽게 말했다.
“아가씨가 올해 쓰실 수 있는 예산의 거의 절반인 걸요.”
“괜찮아.”
어차피 세드릭과 결혼하게 된다면 로산 후작가가 그녀의 손에 들어올 것이다. 하지 않게 된다면 돈이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앨리스는 두 번 묻지 않았다. 공손히 고개를 숙여 알았다는 뜻을 표시해 보이고 서둘러 아르티제아의 방으로 갔다.
앨리스를 보내놓고 나서 아르티제아는 밀라이라의 투왈렛 룸으로 향했다.
황제에게 인사를 할 생각이었다.
밀라이라는 그녀가 황제의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밀라이라의 마음을 생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황제에게 눈도장을 찍을 기회를 날릴 필요는 없다.
근위 기사와 시종들이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묵례했다. 아르티제아도 묵례하며 다가가 문 앞의 시종에게 말했다.
“밀라이라의 딸 아르티제아가 인사를 올리고자 한다고 알려주세요.”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 주머니에서 작은 실크 주머니를 꺼내서 시종에게 건넸다.
앨리스에게 뿌리라고 시킨 것과 같은 주머니였다. 아르티제아는 이것을 늘 몇 개씩 직접 가지고 다녔다.
벌써 몇 번이나 이것을 받아본 적이 있는 시종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피아노 소리에 섞여 까르르 웃는 밀라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즐거운 듯한 대화 소리가 잠깐 멈추더니 이내 문이 활짝 열렸다.
“들어가십시오, 아르티제아 님.”
“고맙습니다. 아참, 혹시 제가 안에 있는 동안에 밖에 손님이 오신다면, 제게 먼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폐하와 어머니께서 함께 계시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제가 처리하고 싶어서요.”
“물론입니다.”
아르티제아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황제는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밀라이라는 속치마만 입은 차림이었다. 하녀들이 갈아입은 옷을 한쪽에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었다.
그레고르 황제는 이기적이고 냉혹한 자였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보다 자기 권력을 확인하는 것을 더 좋아했고, 의심이 많았으며, 호색하고 탐욕스러웠다.
그러나 밀라이라에 대한 사랑만은 진심이었다.
그가 건드린 여자의 수는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25년이나 곁을 지키게 한 것은 밀라이라뿐이었다.
심지어는 밀라이라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음에도, 그녀를 멀리한 것은 고작해야 1년 안쪽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밀라이라의 딸이라는 이유로 아르티제아에게 제법 다정하기까지 했다.
아르티제아로서는 그 사랑이라는 것을 알 길이 없었다.
한때는 사랑에 대해서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밀라이라를 사랑하며, 좀처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황제에게 조아렸다.
“제국의 태양이 누옥에 강림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밀라이라의 딸 아르티제아가 황제 폐하께 인사를 올립니다. 만수무강하소서.”
“오랜만이로구나. 못 본 사이에 쑥 자라버렸어.”
황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가 뱀처럼 웃으며 가느다란 눈으로 아르티제아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보았다. 품평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네 엄마를 닮았다면 훨씬 귀여웠을 텐데.”
“예쁜 건 알아가지고.”
밀라이라가 사뿐사뿐 다가와 그의 허벅지에 앉으며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뭐 어쩌겠어요? 못난 얼굴도 내 딸이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왜? 티아가 비록 자네를 닮진 않았지만, 그래도 미인의 피가 어딜 가나. 살만 조금 더 붙고 어른다운 태가 나면 순식간에 예뻐질 거야.”
“쟤는 오냐오냐 자란 데다가 철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하면 진짜라고 생각해버려요, 여보.”
다정스럽게 부르며 밀라이라가 그의 뺨을 쓸었다. 황제가 싱긋 웃었다.
“짐이 자네의 환심을 사려고 농을 하는 것 같아서? 너도 그리 생각하느냐, 티아?”
아르티제아는 공손히 눈을 내리깔았다.
아주 어렸던 시절에, 밀라이라는 아르티제아가 자기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때렸다.
네가 나를 절반만 닮았더라도 황제 폐하께서 널 친딸처럼 여겨주시지 않았겠느냐고 괴롭혔다.
아르티제아도 그 말을 믿고 죄송하다고 울고, 때로는 밤에 자기도 황제의 딸로 태어나 로렌스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사랑을 모두 받는 꿈을 꿀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었다.
만일에 그녀가 밀라이라를 쏙 빼 닮았더라면, 틀림없이 16살이 되자마자 황제의 침실에 끌려들어 갔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어머니를 닮지 않은 얼굴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황공합니다. 폐하께서 어머니를 사랑하셔서 저까지 귀엽게 보아주시니, 그 이상의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올해 몇 살이지?”
“18살입니다.”
“정말 어른이 다 되었구나. 짐이 좋은 혼처를 알아봐야겠어.”
“아니, 18살밖에 안 된 애한테 무슨 결혼이에요?”
밀라이라가 뾰족하게 말했다. 황제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밀라이라의 손목을 잡고 다정하게 손바닥에 입 맞추었다.
“딸을 끼고 살고 싶다는 자네 뜻은 알지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미리 약혼이라도 해두어야지.”
“으응. 그래도…….”
“짐이 오죽 좋은 자리를 구해 줄까. 언제까지고 오라비에게 신세 지며 사는 누이로 놓아둘 수는 없지 않은가?”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자리란 아르티제아를 위한 좋은 혼처가 아니라 로렌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략결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밀라이라는 잘못 알아듣고 못마땅하게 투정을 부렸다. 그조차도 황제에게는 귀여워 보이는 듯했다.
아르티제아는 공손히 고개만 숙였다.
밀라이라는 화가 나서 발딱 일어섰다.
황제의 앞에서 이 옷 저 옷을 갈아입었지만, 그건 그냥 옷을 벗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고, 실제로 입을 옷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등이 깊게 파이고 풍만한 가슴이 뚫린 옆구리로 슬쩍 들여다보일 듯한 요염한 녹색 공단 드레스가 그녀의 몸에 걸쳐졌다.
그때였다. 시종이 들어와 공손히 말했다.
“아르티제아 님을 찾는 손님이 계십니다.”
아르티제아는 서둘러 말했다.
“황공합니다. 물러가겠습니다.”
황제가 가보라고 손짓했다. 밀라이라가 흘깃 돌아보았다.
아르티제아는 뒷걸음으로 투왈렛 룸에서 물러나왔다. 시종이 그녀를 뒤따라 나오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께서 지금 로비에 와 계십니다. 폐하를 꼭 뵙겠다고 소란을 피웁니다.”
“네. 제가 처리할게요.”
“유니스 백작 부인이 올 줄 알고 계셨습니까?”
“네. 짐작이었지만요.”
아르티제아는 별달리 정보를 모아 미리 안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시종은 감탄한 태도로 말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뭐가요?”
“모처럼 폐하께서 무척 좋은 기분으로 계시는데, 백작 부인 때문에 흥을 망치시면 분명히 저희가 경을 칠 테니까요.”
“제 집에 온 손님을 제가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걸요. 그리고 아직 모르는 일이에요. 백작 부인을 제가 달래는 데에 성공하지 못하면, 소란을 피우긴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르티제아는 로비로 향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지르는 소리가 2층까지 울렸다.
“그 더러운 계집년 때문에 딸인 나조차도 만나주실 수 없단 말이야?”
집사가 쩔쩔매며 굽실댔다.
아르티제아는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유니스 백작 부인. 어쩐 일로…….”
짜악!
다짜고짜 유니스 백작 부인이 손을 들어 힘껏 아르티제아의 뺨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