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0
악녀는 두 번 산다 100화
상대에게 시선을 빼앗긴 것은 리시아만이 아니었다.
로렌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살롱에 거의 매일 드나들었다. 살롱의 단골손님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혹 황후나 다른 황후의 시녀와 인연 있는 사람일까 싶어 간혹 오는 사람도 모두 조사해서 기억해 두었다.
그러나 이 화사한 금발머리 소녀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타입이었다.
용모 자체가 각별히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제아무리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로렌스의 눈에 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그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그 자신도 어머니를 쏙 빼닮은 아름다운 용모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리시아는 충분히 남의 시선을 끌 만했다.
보통 때라면 관심 가질 만한 타입이 아니었다. 차림새는 그런대로 수도의 의상실에서 맞춘 듯 나름 세련되었다.
하지만 어리버리한 태도를 보면 틀림없이 올해 처음으로 데뷔한 지방 귀족의 여식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로렌스는 정확히 말할 수가 없었다. 멀리에서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빛의 맹아 같은 것이 리시아의 안에 깃들어 있어, 생기 넘치는 팔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주위 공기를 다른 색으로 물들였다.
그런 아우라는 밀라이라조차 갖지 못한 것이다. 우아한 동작이나 절도 있는 태도는 교육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타고난 생기는 다르다.
수도의 어떤 여자도 그녀를 흉내 내지 못할 것이다.
로렌스는 머릿속 깊은 곳에서 바늘로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저는 그런 여자가 아니에요! 왜 믿지 못하세요? 확인을 하셨잖아요!」
「제발, 제발! 폐하!」
비명소리와 울부짖음이 순간적으로 귓속에서 아우성쳤다가 사라졌다.
무언가가 가슴 안쪽에서 비틀어지는 소리가 났다.
로렌스는 표정을 숨기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한 환청은 금세 사라졌다.
기묘한 답답함과 두통의 잔여물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그가 자기 손을 쳐다봤다고 생각하고 리시아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얼른 손을 뒤로 돌렸다.
“아, 그러니까, 이게요.”
리시아는 더듬거렸다.
이렇게 우아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남자 앞에서 먹을 걸 챙기다가 걸리다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으……. 비 전하의 명예에 해를 입힌 건 아니겠지?’
그녀는 쩔쩔맸다.
피식 로렌스의 입가가 허물어졌다. 리시아는 더 안절부절 못했다.
“다과가 마음에 든다면 하인에게 말하면 돼. 마르타 백작 부인과 친분이 있다면 직접 말해 주면 더 좋고.”
“네.”
“살롱이는 연회장이든 만찬이든, 준비된 음식을 마음에 들어 해주는 손님을 싫어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로렌스가 손가락을 딸깍 울려 하인을 불렀다. 제 집처럼 익숙한 태도였다.
“여기 숙녀 분께서 다과가 마음에 드시는 듯하니, 돌아가실 때에 빈손이 아니도록 하게.”
“예.”
하인이 로렌스에게 공손히 대답했다. 그리고 리시아에게도 인사하고 물러갔다.
리시아는 민망함을 다 숨기지 못한 채 어색하게 말했다.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아니.”
로렌스는 조금 당황하고, 갑자기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왜 자신이 친절한 마음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여자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설령 정말로 처음이라 서툴다 하더라도 그것을 남에게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약점이 되기 때문이다.
귀족이라면 사교계에 처음 나서는 날이라 해도 겉으로는 완벽한 차분함과 우아함을 갖추어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리시아의 솔직한 태도에는 천진난만함마저 느껴졌다. 어리석은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크고 맑은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는 게 불편해져서 로렌스는 몸을 돌리려고 했다.
예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두 번 인사를 나눌 일이 있는 상대도 아닐 것이다.
“아, 저어.”
리시아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로렌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
아르티제아가 양산을 떨어뜨린 채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비 전하.”
리시아가 무릎을 구부려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아르티제아에게 다가가 떨어뜨린 양산을 주웠다. 그제야 아르티제아는 부스스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리시아를 바라보지 않고 로렌스를 향해 말했다.
“오라버니.”
그가 리시아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르티제아는 몹시 당황했다.
실은 황후궁으로 리시아가 따라오겠다고 했을 때부터 불안했다. 그래서 데려오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려온 것은 리시아가 꼭 수행하겠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마르타 백작 부인의 살롱은 리시아가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게다가 수도에 온 이상 어차피 언젠가는 로렌스와 마주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별일 없을 거라고 믿었다.
리시아는 예뻤지만, 로렌스가 좋아하는 타입의 미인이 아니었다.
그가 좋아하는 여자는 하나 같이 퇴폐적이고 풍만했으며, 자기주장이 없고 굴종적이었다. 강렬한 권력욕이나 향상심도 갖고 있지 않았다.
로렌스는 자기 앞에서 감히 똑바로 눈을 뜨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성품이었다.
신분으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지방의 소남작 같은 것은 로렌스의 눈에 차는 상대가 아니다.
자신이 직접 소개하기 전까지는 시녀라 해도 로렌스가 관심을 가질 턱이 없었다.
그러니 같은 공간 안에 있다 하더라도 대화를 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여겼다.
아르티제아는 마음을 애써 가다듬었다.
로렌스는 아마 리시아를 보고도 별다르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 전에도, 대화를 나눈 것 같긴 하지만 로렌스는 자리를 뜨려고 하고 있었다.
로렌스가 말했다.
“오래간만이구나.”
“네. 그간 별고 없으셨어요?”
“지루한 것이 별고라면 별고였지. 너야말로 신혼여행 도중인데 큰일이 생겨 곤란했겠구나. 에브론 대공은 별일 없고?”
“네.”
아르티제아는 짧게 대답했다. 마음이 어지러워 말이 매끄럽게 나오지 않았다.
로렌스가 리시아를 흘깃 눈짓하며 물었다.
“네 시녀냐?”
“네.”
“그렇구나. 못 보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이라면 이쯤에서 리시아를 소개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그러지 않았다.
굳이 여기에서 소개를 하지 않아도 로렌스는 곧 리시아의 신분을 알게 될 것이다.
에브론 대공가의 가신인 모르텐 소남작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런 것은 너무 공개적이라서 정보라고조차 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입으로 둘을 서로 소개시켜 주는 말 같은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돌아보자 리시아가 사죄하듯 고개를 숙였다. 뺨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상대가 그 로렌스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알았다면 좀 더 경계했을 것이다.
이것은 아르티제아의 실수였다.
수도 사람들에게 밀라이라의 용모는 상식 수준으로 잘 알려진 것이었다.
초상화와 보도용 그림이 수시로 신문에 실렸고, 뚜껑이 열린 마차를 타거나 퍼레이드를 할 때에, 또는 황궁 발코니에 나섰을 때에 얼굴을 본 사람이 많았다.
적어도 용모 특징 정도는 황궁 근처에 올 일조차 없는 사람도 다 알았다.
그렇기에 아르티제아는 미리 밀라이라의 초상화를 리시아에게 보여주어 익히게 하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밀라이라나 로렌스와 마주쳤을 때에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말을 섞지 말라고 미리 경고는 했지만 말이다.
고개를 숙인 그녀를 보고 아르티제아는 다시 로렌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잠시, 산책이라도 하시겠어요?”
로렌스가 약간 이채가 도는 눈으로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그는 아르티제아와 단 한 번도 같이 거닐거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려고 생각한 적도 없다. 함께 시간을 보낼 만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선택이었다. 살롱의 손님들이 이쪽을 신경 쓰지 않는 듯 하면서도 슬쩍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려면 따로 만나거나, 아니면 정원으로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로렌스는 아르티제아에게 팔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팔을 잡고, 리시아의 손에서 양산을 받아들었다.
“넌 여기 있으렴. 곧 마르타 백작 부인이 돌아올 거야.”
“네.”
리시아가 물러섰다.
두 사람은 천천히 살롱 밖으로 나섰다.
햇살이 따사로웠다.
산책하는 사람은 몇몇 더 있었다. 황후가 때때로 정원을 산책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마주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로렌스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대낮에 정원 산책을 하는 것 따위는 지겨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눈도 장을 찍으려면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 정원에서 황후와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 사람은 없었다. 호위와 시중꾼들이 철저하게 황후의 동선 주위에서 사람을 치워냈기 때문이다.
“네가 돌아와서 기쁘구나.”
로렌스는 조금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황후 폐하의 환심을 사는 것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지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리시아에게서 멀어지자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목소리에도 침착성이 돌아왔다.
로렌스가 대답했다.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까다로워. 황후 폐하를 뵙기 어려운 것은 둘째 치고 시녀들조차도 입이 무겁고 가드가 단단해.”
“이제까지 황후궁이 높은 벽을 세우고 있어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황후 폐하를 섬겨온 사람들이니까요. 어지간한 보상으로서는 협력을 구하기 어렵겠지요.”
“그렇더군. 주인을 위해 스스로 생각하려는 자도 없어 보이더구나.”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로렌스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황후 입장에서는 로렌스가 황제가 된다고 해서 로이가르 대공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었다.
황후에게는 황태후가 되고자 하는 바람이 없었다. 게다가 정쟁에 깊이 관여할수록 여생이 위태로워질 확률도 높아지는 법이다.
“단기간에 평판이 꽤 좋아지셨더군요. 애인도 다 정리하셨다지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로렌스가 잠깐 말을 아꼈다.
“동생이라고 해서 사양하실 필요 없어요. 그 정도 정보도 없이 사교계에서 대공비 노릇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흠.”
“안데만 남작 부인의 집에서 나와서 사벨린 가에 있는 저택으로 들어가셨다면서요? 오라버니가 쓰시기에는 좁으실 텐데요.”
“살롱이 열렸으니 이런저런 사교계의 소문이 황후 폐하의 귀로 들어가겠다 싶더구나.”
그래서 우선 몸가짐부터 바르게 했다.
여자관계를 모두 정리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상대였던 안데만 남작 부인과의 관계도 청산했다. 황후가 불륜에 예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을 불러들인 것은 좀처럼 시녀들이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