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3
악녀는 두 번 산다 103화
로이가르 대공비가 고개를 갸웃했다.
“세드릭 덕분에요?”
“와인 만드는 건 노동력이 아주 많이 필요한 일이거든. 하지만 작년에는 인건비가 너무 높았다오. 빈티지는 훌륭했지만,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생산량이 적지. 우리 와이너리에서도 예년의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소.”
동부의 생산력은 막대하다.
수도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수도를 제외하면 동부야말로 가장 높은 인구 밀집도를 가지고 온갖 산업을 발전시킨 곳이었다.
특히 농업처럼 적절한 기후와 기름진 땅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산업은 동부가 잡고 있었다.
서부가 광대한 평야에 밀을 뿌려 거두고 양을 방목하는 동안 동부는 상품 작물을 키우고 가공 산업을 발달시켰다.
차, 와인, 실크, 담배, 약재, 과일 가공에 이르기까지 기술력과 노동력, 기반 시설을 모두 필요로 하는 산업은 주로 동부에 있다.
수도에서 소비되는 값비싼 기호품의 다수가 동부에서 생산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대지주와 상단이 성장했다.
동부의 산업 발달은 다른 무엇보다도 안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기적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는 서부에서는 기반 시설에 투자를 하기는커녕 여러 해를 가꾸어야 하는 과수원조차 만들기 쉽지 않았다.
또한 몬스터 웨이브는 동부 대지주와 거상들의 이익을 극대화시켰다.
몬스터 웨이브가 한 번 일어나면 유민이 발생한다.
이 재앙은 자연재해이면서도 홍수나 가뭄처럼 제국 전역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서부만 무너뜨렸다.
생활 기반이 무너진 서부민들은 유민이 되어 수도권과 동부로 흘러 들었다. 그리고 값싼 노동력이 된다.
몇 년이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도 생긴다. 그러나 상당수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정기적으로 동부와 수도권에 인구를 유입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동부 농민들은 착취에도 대응할 수가 없다. 대체할 노동력은 넘쳐난다. 서부에는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니 그곳으로 떠날 수도 없다.
그러나 세드릭이 지난번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냄으로써 상황이 좀 달라졌다.
몬스터 웨이브에 휩쓸린 땅이 적어 유민의 발생이 최소화되었다는 것은 일차적인 부분이다.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사람들의 인식 부분이었다.
이제까지 제국이 항상 몬스터 웨이브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아니다.
서부군이 좀 더 체계가 잡혀 있었던 때도 있었다. 때로는 우수한 사령관이 나와 막아내기도 했다. 서부군이 무너지더라도 그 뒤에는 중앙군이 투입되어 해결하곤 했다.
그러나 희망을 준 사람은 없었다. 어떤 훌륭한 장수가 몬스터 웨이브를 피해 없이 막아내도, 다음에 그 자리에 있으라는 법이 없었다.
능력과 야심이 둘 다 있으면 키워 놓은 수하들을 데리고 중앙군에 합류하거나 황제의 친위대가 된다.
능력은 있되 야심이 없으면 공적을 시기한 자에게 모함을 당해 축출되거나 황제의 미움을 사 숙청되기 일쑤였다.
영전되는 좌천되는 어차피 떠난다. 그리고 다음 몬스터 웨이브가 또 일어난다
서부인들은 체념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세드릭은 다르다.
그는 북부의 방패였고, 서부의 영웅이었다. 영전이나 좌천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체계를 갖추어 서부군을 재건했고, 그것을 황제에게 바치는 대신 서부 방어를 위해 남겼다.
그리고 황실의 일원이었다.
그 상징성은 작지 않았다. 서부인들은 황실이 자신들을 팽개치지 않았다는 믿음을 얻었다.
몇 년 후 다시 찾아올 몬스터 웨이브는 에브론 대공이 또 막아줄 것이다.
그렇다면 떠날 필요가 없다.
그 믿음에 세드릭이 실상은 황제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현실은 개입되어 있지 않다.
거기까지 잘 알고 있는 자도 적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안도감이라는 대세에 영향을 미칠 만큼은 아니었다.
유민은 발걸음을 돌려 황폐해진 제 땅으로 돌아갔다. 이웃과 도와가며 터전을 새로 닦았다. 서부군이 그것을 도왔다.
로이가르 대공으로서는 미묘한 일이었다.
서부가 탄탄해지는 것은 상관없다. 그러나 동부의 인건비가 상승하는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의 개인 재산은 동부에 집중되어 있다.
황제가 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로이가르 대공의 지지 세력은 대귀족과 거상의 연합 세력이다. 그들의 힘으로 황제가 된다면, 그 권력은 오롯이 자기 것이 아니라 지지 세력 위에 얹힌 힘이 된다.
결국 여러 귀족 중 선출된 자와 다를 바가 없다.
언젠가는 그들을 모두 찍어 누르고 황권을 되찾아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국 전체의 발전보다도 자기 개인의 재력이 더 중요했다.
그것이 앞으로 그가 자신의 공신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로이가르 대공을 움직이는 것은 탐욕이다. 그것을 기억해둬.」
아르티제아는 헤일리에게 수도의 주요 인물에 대해 말하면서, 그렇게 일러주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어. 천성과 경험이 일치한다면 더 그렇지.」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선황이 붕어하셨을 때에 로이가르 대공은 겨우 10살이었어. 선대 대공비 전하께서는 에브론 대공비가 됨으로써 최소한의 보호를 얻은 셈이지만, 로이가르 대공은 그때에도 황태후의 슬하에 있었지. 그로부터 얼마 후에 모후마저 잃었고.」
그리고 13살이 되었을 때에 동복 누이와 매형이 역모로 몰려 죽었다.
그때의 기억이 로이가르 대공에게 쉽사리 지워질 리 없었다.
「당시에 세드릭 님은 어린아이였지만, 그래도 에브론의 보호가 있었어. 애당초 세드릭 님을 살려두었던 이유가 에브론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니 당분간 목숨 자체가 위험하지는 않았지.」
「게다가 에브론 대공령은 독립성을 지니고 있고, 군사력이 있으니 위태로우나마 울타리가 될 수 있으니까요. 본토에 맞서 싸운다는 최후의 수단도 있고.」
「그래. 하지만 애당초 그것 자체가, 에브론이기에 가능한 거야.」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로이가르 대공에게는 상속받은 재산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보호자 역할을 할 만한 가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에브론처럼 영지 전체가 몸을 던져 지키거나 하지는 않았어.」
그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고, 이유 없는 신뢰 자체를 믿지 않게 되었다.
누구나 마지막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손에 쥐어진 힘이다. 그의 경우 그것은 재물이었다.
결국 제위는 그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불확실한 수단을 얻기 위해 지금 당장 쥔 힘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이란 본디 자기 자신에 비추어 남을 이해하는 법이지. 그렇다면, 로이가르 대공에게 있어서 가장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누구일까?」
헤일리는 그 대화를 기억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아르티제아가 탐욕이라는 한 마디로 로이가르 대공을 표현한 이유를 절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몬스터 웨이브라는 재앙을 비용으로밖에 계산하지 않는다. 그나마도 제국 전체를 아울러 계산하는 대신 개인 재산에 미친 영향을 먼저 생각한다.
게다가 그 말을 한 의미도 그냥 찔러본 게 전부였다.
당황하여 약점을 드러낸다면 좋고, 아니라도 상관없다. 애당초 뭔가를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갓 시녀가 된 자신은 협상은커녕 대화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헤일리는 정색했다.
자신이 함부로 대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 에브론 대공가의 사람으로서, 하물며 조르딘의 딸로서 할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뿐이다.
생각하고 생각해서 나온 결과는 멜이 생각 없이 당연하게 했을 말과 같은 것이었다.
“저희 전하께서는 책임감이 강한 분입니다. 서부를 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영예라고 생각지도 않으십니다. 그리고 서부에 3년이나 머무르셨으니 애정도 깊으실 테고요.”
실제로 세드릭과 그 일에 관해 대화해본 적은 없지만 헤일리는 확신하고 말했다. ‘구하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의식적인 일이다.
“로이가르 대공 전하께서 그처럼 서운하게 생각하셨다니, 당혹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러자 로이가르 대공이 빙긋 웃었다.
“내가 서운하다고 누가 그러던가?”
“…….”
“서부를 구한 것은 세드릭인데, 정작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였으니 안타깝게 생각한다네.”
그가 태연하게 말했기 때문에 헤일리는 일순간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헤맸다.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었지 않느냐.”라든가, 다시 한 번 “세드릭은 보상을 생각하고 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세련되지 못한 일일 것이다.
로이가르 대공이 너털웃음을 웃었다.
“서부 곡창이라…….”
지금까지 곡창을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그가 그렇게 말했다. 헤일리는 등골이 쭈뼛해졌다.
“비옥하고 좋은 땅이지.”
로이가르 대공의 얼굴에 화평한 기색이 머물렀다.
세드릭이 바라는 것이 서부 곡창 지대의 지배권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고 협상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황제가 된 후에 내줄 권리이므로 지금 당장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서부를 탐내는 세력가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내부 경쟁 우려도 적다.
이권을 나누기 위해 한배를 타는 것이야말로 로이가르 대공이 이해하기 쉬운 협력의 형태였다.
그가 로이가르 대공비를 바라보고 말했다.
“여보, 조만간에 당신이 한 번 초대하도록 해요. 아무래도 나보다는 당신 쪽이 나이도 가깝고 친하게 지내기 쉽지 않겠소? 귀한 선물에 어울리는 보답도 해야지.”
“알았어요.”
“헤일리 영애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로이가르 대공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헤일리는 그를 따라 일어섰다. 로이가르 대공이 말했다.
“내가 살롱 주인은 아니지만, 편히 있다 가게.”
“과분한 대접, 감사합니다. 혹 허락하실 수 있다면, 와인을 한 병 얻어갈 수 있을까요?”
“오. 마음에 드는가 보군.”
“저는 북부인이라 와인의 맛을 잘 모르니, 이 기회에 비 전하께 배워 볼까 합니다.”
헤일리의 말에 로이가르 대공이 빙긋 웃었다. 그리고 하인을 시켜 여러 병의 와인을 챙겨주도록 명했다.
* * *
황후궁에서 돌아가는 길에 아르티제아는 사원에 들렀다.
세드릭을 만났던 대사원은 아니고, 수도 안에 있는 조그만 사원이었다.
“사원에 자주 들르시나요?”
원래 일정에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길을 돌려서까지 사원으로 향했기 때문에 리시아는 의아하게 물었다.
아르티제아는 에브론에 있는 동안에 사원을 찾아간 일이 많지 않았다. 새삼스러웠다.
그녀가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그냥 좀. 시간이 남았으니까.”
“네.”
리시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가는 사원에는 은퇴한 노주교님이 한 분 계셔. 지금은 수도사 신분으로 조용하게 지내시는 분이지.”
“네.”
“그분을 뵐 작정이야. 흔치 않게 청백하고, 평민의 삶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거든. 자선 사업에 관한 조언을 얻을까 해.”
아르티제아는 원래 서부에서 곡물 사업과 더불어 시작할 자선 사업을 리시아에게 맡길 작정이었다.
지금까지 서두를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순위를 낮춰 놓은 일이었다. 하지만 빨리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리시아를 멀리 보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사원에 도착해서 의외의 사람과 마주쳤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
“오랜만이에요, 에브론 대공비 전하.”
소박한 갈색 드레스를 입고 베일로 얼굴을 절반쯤 가린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반갑게 인사했다.
아르티제아는 얼굴을 굳혔다. 살롱을 아끼는 그녀가 왜 이 시간에 살롱이 아니라 여기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