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4
악녀는 두 번 산다 104화
“이쪽은 제 딸이랍니다. 뵌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곁에 시녀처럼 지키고 선 젊은 여자를 소개해 주었다. 카멜리아 후작가의 장녀 스카일라였다.
스카일라가 공손히 절을 올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에브론 대공비 전하. 스카일라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네, 카멜리아 소후작.”
아르티제아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결혼 전에 면식 정도는 있었지만,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상대였다. 인사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허를 찔린 셈이라 좋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여기 와 있다면, 살롱에는 로이가르 대공이 있을 가능성이 있겠군. 대공비만 있다면 괜찮겠지만…….’
헤일리가 잘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염려가 되었지만,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잠깐 걸으실까요?”
아르티제아가 앞장섰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스카일라에게 그 자리에 남아 있으라고 하고 아르티제아의 뒤를 따랐다.
첫 만남 때에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권세가였고, 그녀는 실권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초라한 옷을 입은 불쌍한 계집애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신분이 뒤바뀌어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그녀를 반걸음 뒤에서 따랐다.
수도에 있는 사원이라도 조용함을 유지하기 위해 인근에 녹지를 두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두 사람은 곧 숲처럼 꾸며진 정원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호위들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한 거리에서 뒤따랐다.
“이 사원에는 자주 오시나요?”
아르티제아의 말에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작게 웃었다.
“그럴 리가요. 왜 모르는 척을 하실까요?”
“글쎄요. 이 사원에 온 것은 변덕스럽게 결정한 것인데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께서 같은 변덕을 부리다니, 놀라운 우연이로군요.”
“변덕이 아니라 대공비 전하께서 방문하실지도 모른다는 작은 가능성에 걸었답니다. 이곳에 계시는 콜튼 수사님은 서부 출신이시니까요.”
콜튼 수사라는 것은 아르티제아가 만나려는 은퇴한 노주교를 이르는 것이었다.
“그분의 명성이나 내력을 생각하면, 서부에서 농민들을 대상으로 자선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조언을 구해야 할 분이지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아르티제아가 서부의 땅을 사들였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는 놀라지 않았다. 본토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마커스에게 인편으로 소식을 보냈다.
차명으로 사들인 곡물상 중 일부를 로산 후작가의 것으로 돌리고, 그것과 별개로 또 서부 지역의 제분 소와 땅에 투자하도록 했다.
의도적으로 공개한 것이었다. 그러니 로이가르 대공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돈의 흐름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던가.
“네. 서부는 이제부터 투자할 만한 가치가 생길 땅이니까요.”
“그렇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대공비 전하뿐일 거예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미소를 지었다.
“저도 조금 투자해 봐야겠어요. 비 전하를 따라가면 실패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지난 반년 동안 비 전하께서 에브론 대공 전하의 자산을 운용하신 솜씨에는 정말 감탄했답니다.”
“작은 돈이었는데, 잘 알고 계시는군요.”
아르티제아가 느릿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본토에 있는 세드릭의 개인 재산은 안스가르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에브론 대공가의 부동산이었다. 그러나 세드릭 개인의 재산도 있었다.
세드릭의 모친이 지참금으로 가져온 것과 선대 황제의 계후가 죽을 때에 손자에게 상속해준 것이다.
그 대부분이 제분소, 농장, 와이너리 같은 보수적인 자산이었다. 작은 귀족 가문에서 나오는 수입 정도는 되었다.
세드릭은 거기에 딱히 큰 관심이 없었다. 에브론 대공령의 규모를 생각하면 더욱 더 그랬다.
그 수입을 에브론 대공령의 예산에 보태보았자 강물에 우물물을 붓는 것 정도밖에는 보탬이 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자산을 늘리려고 시도할 성격도 못 되었으나 그것이 역모로 몰려 죽은 모친에게 물려받은 재산이라는 점도 있어서 상속했을 때부터 그냥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안스가르에게 수도의 저택과 별장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쓰도록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르티제아가 손을 댔다. 돈을 쓸어 담을 기회가 있는데도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동부의 안정 자산을 대부분 팔아치웠다.
그 돈을 모조리 투자하여 양잠 농장을 사들이고 명주실을 사재기했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하지만, 아르티제아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실크가 불패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더 그랬다. 이언츠에서 자수 벨벳에 이어 유행시킬 새 직물 역시 실크였기 때문이다.
이언츠 직물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그 원재료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은 크라테스 제국이었다.
최고급으로 여겨지는 이언츠 직물을 제외하고 그 다음 단계의 직물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도 제국이었다.
아르티제아는 그 원재료를 대량으로 확보한 것이었다.
그 일은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다. 실크는 사치품이다. 양잠 농장은 동부에 있으며, 명주실의 구매자는 이언츠 왕국이다. 그리고 소비는 본토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에브론 대공령 자체의 성장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
황제가 경계하는 것은 에브론을 통제할 수단을 잃는 것이다. 동부와 남부에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세드릭의 재산이 늘어난다고는 해도, 황제의 입장에서는 신경 쓸 만큼 큰 액수가 아니었다.
물론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를 아직 모르기 때문에 무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양잠업에는 카멜리아 후작가도 꽤 투자하고 있었으니까요. 이언츠 왕국에서 비밀 정보를 얻어 누에를 확보하려고 했을 때에는 이미 대공비 전하께서 싹 쓸어 가셨더군요.”
“실크 사업은 절대로 망하지 않으니까요.”
“이언츠에서 자수 벨벳의 다음 유행은 모슬린일 거라고 정보를 흘렸는데도 믿지 않으셨나요?”
“새로운 실크 옷감의 출시를 앞두고 일시적으로 명주실의 가격을 떨어뜨려 대량으로 원재료를 확보해두기 위해서 그런 거겠죠. 가장 비싼 것이 가장 큰 돈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언츠가 모슬린을 선택할 리 없으니까요.”
“이런. 저는 비 전하께서 이언츠 왕국에 정보원을 심어두신 줄 알았는데.”
아르티제아는 흘깃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뭔가를 알고 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께서는 사소한 사업 이야기를 하려고 오셨나요? 그런 이야기라면, 집에서 차분하게 차라도 마시면서 하면 좋았을 텐데.”
“아, 이런. 제가 너무 오래 샛길로 샜군요. 개인적으로 몹시 놀랐기 때문에 궁금증을 갖고 있었거든요. 덕분에 비 전하의 현명함이 궁정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네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후후 웃었다.
“서부에서 하시려는 일에 대해 여쭤 보고 싶었어요. 제아무리 자선사업을 위주로 한다고 해도, 황제 폐하께서 내켜하시지 않을 텐데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계획이신가 궁금해서요.”
“글쎄요.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필요한 일이니 최선을 다해서 황제 폐하를 설득해볼 수밖에 없겠지요.”
“에브론 대공령에 안정적으로 곡물을 공급할 수 있는 후방 기지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황제 폐하께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으실 거예요.”
“에브론 대공가가 아니라 로산 후작가의 재산을 쓰는 일이니까 불쾌한 내색은 하셔도 드러내놓고 막지는 못하시겠죠.”
“황제 폐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수단이 정치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공비 전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말했다.
“로이가르 대공 전하께서는 에브론 대공 전하께 그 정도도 챙겨드리지 못하겠느냐는 말씀을 하셨지만요.”
“…….”
“북부의 방패, 서부의 영웅이신 걸요. 에브론이 무너지면 본토도 무너질 텐데. 황제 폐하께서는 황권을 중히 여기신 나머지 때때로 가혹하실 때가 있지요.”
아르티제아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돌아보았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께서는 에브론이 무너진다면 본토도 무너진다는 말씀을, 진짜로 그 의미를 알기는 하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르티제아가 적대적인 어조로 말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르티제아는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표정을 완전히 통제할 줄 알았다.
제 결혼식에서 밀라이라를 쫓아냈을 때에도 얼굴에는 항상 때에 적절한 온화하고 화사한 기색이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날 것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저는 카람에게 습격당한 적이 있답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지요.”
“세상에.”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정말로 깜짝 놀랐다.
“그건 모르셨던 모양이로군요.”
그렇다는 것은 카드리올의 일도 완전히 숨겨졌다는 뜻이었다.
아르티제아는 만족했다. 그러나 미소 짓는 대신 얼굴을 굳히고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에브론이 충성스러운 이유를 아시나요?”
“대공비 전하.”
“북부인들이 타고나는 천성이 유난히 직선적이고 무인다워서? 인간이 그렇게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후작 부인께서는 아실 테지요.”
의식적으로 내는 냉랭한 목소리였기에 오히려 감정이 배어 나왔다. 그것은 분노 같기도 했고, 두려움 같기도 했다.
“저는 이번에 알았답니다. 북부인들은 원망의 마음을 품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하고, 공동체가 무너지면 북부의 방어도 무너질 테니까요.”
“…….”
“서부처럼 무너지면 유민이 된다는 선택지조차 없지요. 앨리아 장성이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기에 북부인들은 충성스러운 거예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에브론 대공가는 무거운 책임을 기꺼이 지고 있는 것이고요.”
거기까지는 모두가 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아르티제아가 내비치는 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일부러 과장된 감정을 드러낸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카람의 습격을 받아 목숨이 위험해지는 경험을 했다면, 진심일 수도 있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결코 아르티제아를 경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18살이라는 것까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지는 못했다.
만일에 그녀가 로이가르 대공비만큼만 나이가 들었어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것을 완전히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에브론의 초석은 언제, 어떤 일이 있어도 에브론 대공령에 있을 겁니다. 제 남편은 에브론과 그 땅을 사랑하고,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대공비 전하.”
“에브론만 희생해야 할 이유는 없어요.”
아르티제아가 낮게 말했다.
“서부에 자리를 만들어두려는 것은 물론 남편을 뒷받침하고 싶어서이지만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
“…….”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에 물러날 곳이 필요해서이기도 해요. 가능하면 남편이 아끼는 이들을 많이 보호해서.”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숨을 들이켰다.
아르티제아의 말은 만약의 경우 에브론이 영지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세드릭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최전선에 있다. 톨드 관문이 무너져 갑작스럽게 연락이 끊기거나, 그 이상의 무슨 일이 생길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르티제아가 에브론의 주인이다. 그리고 그녀는 본토까지 길을 열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아르티제아가 에브론 대공비로서 인정받은 뒤라면, 충성스러운 에브론 인들은 그 명을 따를 것이다.
그것은 실질적인 위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