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6
악녀는 두 번 산다 106화
조금 더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리시아가 가져다준 과자라도 좀 먹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르티제아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도사를 따라 나섰다. 하녀에게 리시아가 돌아오면 빨리 따라오라고 전언을 남겼다.
그녀는 콜튼 수사와 면식이 없었다. 돌아오기 전의 기준으로도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다.
콜튼 수사는 청백하지만, 친절한 성품은 아니었다. 그는 지혜롭고 까다로우며, 돈으로 신앙을 사려는 자를 혐오했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명성과 학식이 있으면서도 주교의 자리를 벗어버리고 일개 수도사로 남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마 콜튼 수사는 이미 아르티제아가 사원에 뇌물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만나준다고 할 때에 만나야지, 섣불리 늦었다가 대귀족의 오만함으로 받아들여지면 두 번의 기회는 없을 수도 있었다.
일단 만나고 나면 리시아가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사는 아르티제아를 사원의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도착한 것은 세월이 느껴지는 낡고 조그만 기도실이었다.
“이곳에 혼자 들어가 기다려 주십시오.”
“비 전하 혼자 말입니까?”
알폰스가 딱딱한 얼굴로 물었다.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수사님, 제 호위를 가까운 곳에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세요.”
“안 됩니다.”
“그럼 여기 서 있게.”
그렇게 말하면서 아르티제아가 기도실의 문을 열었다.
기도실은 몹시 좁았다. 창문 하나 없었다.
작은 1인용 기도대가 하나 있었다. 기도대 위에는 낡은 성전이 놓여 있고, 정면에 나무로 깎은 성표가 세워져 있었다. 손때가 타서 반질반질했다.
“이런 기도실이니 위험할 일은 없겠지. 방해되지 않도록 입구가 보이는 곳에 물러나 있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런 곳에서 만나실 생각이십니까?”
“내게 무슨 교훈이라도 주시려는 게지.”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콜튼 수사는 더 거만하게 굴어도 되는 사람이었다. 아르티제아는 그가 만나주지 않으려고 하면 대주교에게 뇌물을 써서 만남을 주선할 작정까지 하고 있었다.
약간의 고행을 요구하는 것쯤이야, 그렇게 해서 첫 만남을 나쁘지 않게 풀어갈 수 있다면 충분히 들어줄 수 있었다.
“잠시 기도하고 계십시오. 곧 오실 겁니다.”
여기까지 그녀를 안내해준 수도사가 공손하게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알폰스는 어쩔 수 없이 물러 서서 수도사를 따라갔다.
아르티제아는 기도대에 놓인 성전을 만져 보았다. 본래는 고급 가죽으로 장정했을 표지가 너무 낡아서 천처럼 너덜거렸다.
아르티제아는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가 덮었다. 성전을 공부하느라 암기는 했지만, 여유가 있을 때에 펼쳐보는 적은 없었다. 그녀는 신을 믿지 않았다.
아니,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르티제아는 성녀를 보았고, 성녀가 일으키는 이적을 목격했다. 그보다 더 확실하게 신이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신에게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많은 불의하고 잔인한 일에 대해서 신이 한 일이라고는, 오로지 리시아 하나를 내려 보낸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성녀로서 가진 힘은 자기 자신의 몸 하나 지키기에도 모자란 것이었다.
그러니 신은 무능하거나 의로운 인간조차 보살피지 않을 만큼 관심이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 존재를 의지한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해도 의지하지는 않겠지만.’
자기 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지은 죄를 다 갚지도 못한 채 신이 용서하면 다 끝나는 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르티제아는 사제는커녕 성실한 신자조차 아니다. 신의 용서라는 게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의 이야기인지도 알지 못했다.
아르티제아는 성전을 도로 폈다. 그리고 치맛자락을 정돈하며 기도대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콜튼 수사가 왔을 때에 조금이라도 신실해 보이는 모습을 보일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아직 아르티제아는 콜튼 수사의 눈에 띌 만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사원에 뇌물을 주었다지만, 그 정도는 뭔가를 하려는 귀족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었다.
‘교화 대상이 되면서, 리시아를 소개하고, 자선 사업에 대한 조언 이상으로 친분을…….’
생각하면서 형식적으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을 때였다.
무언가가 벼락처럼 아르티제아의 몸에 내리꽂혔다.
《되돌려라!》
아르티제아는 의식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 * *
톨드 요새의 성문 앞에 천막이 쳐졌다.
백기가 하나, 에브론 대공가의 깃발이 하나, 크라테스 제국의 깃발이 하나, 이렇게 세 개의 깃발이 세워졌다.
반대편에는 다른 깃발을 세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꼭 직접 나가셔야 하겠습니까?”
요새 사령관이 염려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세드릭이 말했다.
“내가 직접 만나보지 않아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저쪽에서도 신뢰하지 않을 텐데.”
“하오나…….”
“염려 말게. 내 실력 못 믿나?”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만…….”
“상호간에 위험도는 동등해. 이쪽에서도 성의를 보여야지.”
이쪽에서는 성문을 열고 나가는 위험을 감수한다. 대신 저쪽에서는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위험을 감수한다.
그러나 요새 사령관이 걱정을 숨기지 못하는 채 말했다.
“대공 전하께서는 에브론의 군주이십니다. 저쪽에서 요인이 온다고 해도, 카람의 왕이 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카람에서 날 죽이기 위해 협상 자리를 마련한다는 술책까지 부렸을 것 같지는 않군. 그래도 혹 모르니, 내가 나가자마자 성문을 굳건히 닫고 무너지지 않게 지키게. 그게 경의 일일세.”
“대공 전하.”
저 멀리에서 백기를 손에 든 카람 무리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숫자는 스물 남짓했다.
세드릭은 호위의 숫자도 맞추도록 명했다. 성문 안쪽에서는 중장비를 갖춘 기사단 하나가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도록 대기했다. 성문 열리는 시간이 늦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인근 언덕 숲에 다른 기사단 하나를 더 숨겼다. 만약의 경우에는 양쪽에서 구원군으로 뛰쳐들어갈 것이다.
그렇다 해도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는 것은 아니다. 회담장이 총포 사정거리 안에 있어도, 세드릭이 있는데 포격으로 쏘아 부술 수는 없지 않은가. 육탄전이 되면, 그것도 양측이 경무장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싸움이 되면 인간은 절대 카람을 이길 수 없다.
그런 주위 사람의 걱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세드릭은 모르는 체하고 밖으로 향했다.
성문에 달린 작은 문이 열렸다.
대공가의 가신들은 이것도 불만스럽게 여겼다. 위험성을 생각해서 성문 전체를 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세드릭이 쪽문으로 나가는 것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드릭은 호위 스물을 데리고 회담장으로 향했다. 회담장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기나 복병을 숨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한나가 대기하고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 곁에 서 있던 두건 쓴 남자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네, 보로크, 곁에 있는 것이 데크인가?”
남자가 곁에 선 카람의 옆구리를 찔렀다. 카람이 허둥지둥 고개를 숙였다.
크르릉거리는 소리였다. 보로크가 말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에브론 대공 전하. 동생도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건을 벗어도 좋네.”
보로크가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곧 두건을 풀어 내렸다.
보로크의 두건 안에는 하나의 눈이 더 있었다. 반대로 데크는 팔이 넷이었으나 눈은 둘뿐이었다.
톨드 요새에 주둔하는 기사들은 혼혈에게도, 카람에게도 익숙했다. 인간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이는 그 모습을 보고서도 경악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네들 덕분에 오늘의 회담이 성사되었으니 고맙게 생각하네. 특별한 성과가 없어도 자네 둘에게는 그 공적을 충분히 인정할 걸세.”
“싸움이 멈출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보로크가 말했다.
대화 의사를 상호 확실하게 한 것은 아르티제아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러나 통역을 구하는 것에만 한 달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물물교환 정도라면 바디 랭귀지로도 그럭저럭 의사소통이 된다. 하지만 두 세력이 만나 회담하는 것에는 제대로 된 언어가 필요했다. 그것도 믿을 만한 통역이.
이 혼혈 형제가 없었다면 아직도 회담장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보로크와 데크는 쌍둥이였다. 한쪽은 인간을 닮았고, 한쪽은 카람을 닮았다.
성대의 구조가 달랐으나 평생을 함께 살았으니 말이 통했다. 상대방의 언어를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혼혈 가족이나 카람과 인접해 사는 자들 중에도 의사소통이 되는 경우가 꽤 많았다. 한나의 마을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혼혈을 위해 마을 안에서만 통하는 수화가 따로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빠르게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용모가 닮은 혼혈 형제는 흔치 않았다. 이 둘을 찾아낸 것은 한나의 공적이었다. 그들 가족은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했기 때문에 국경 근처에 집을 숨 겨두고 사냥꾼과 약초꾼 노릇을 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도 지난한 협상을 거쳐 회담 장소의 조건을 협의했다.
곧 카람측 사절이 도착했다.
카람에는 본래 백기를 드는 관습이 없었다. 그러나 선두에 선 자가 백기를 들고, 그 뒤에 오는 자도 형식적이나마 새로 만든 깃발을 들고 있었다.
가장 먼저 천막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전에 성벽의 위아래에서 세드릭과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는 그자였다.
직접 마주보는 건 그날 이래이니 한 달 반만이었다. 그러나 세드릭은 확실하게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카람의 얼굴에 깃드는 표정도 인간과 매한가지였다. 어린 얼굴에 깃든 노인의 현기는 그를 다른 카람과 구별시켰다.
보로크가 낮은 소리로 세드릭에게 말했다.
“저분이 아푸아입니다. 카람에서 가장 큰 부족의 왕자입니다.”
본래의 호칭은 더 길고 복잡했다. 지위는 인간의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보로크는 간략하게 말했다.
보로크가 말하는 것을 데크가 카람측에 옮겼다. 보로크는 반대로 데크의 말을 옮겼다. 상호간에 오가는 말을 모두 전달하기로 되어 있었다.
“전하를 에브론의 주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앉지.”
세드릭이 자리를 권했을 때였다.
아푸아가 주머니에 한 손을 넣었다. 무기를 꺼낼까 염려한 세드릭의 기사가 일제히 총집에 손을 올렸다. 미리 권총을 장전해둔 채로 온 것이었다.
그러나 아푸아가 꺼낸 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
데크가 머뭇거리며 그 종이를 받아다 보로크에게 전해주었다. 보로크가 종이를 펴서 세드릭에게 보여주었다.
안에는 어린아이처럼 서툴고 비뚤거리는 글씨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20년 후에 있을 일을 당기러 왔다.』
세드릭은 그 글을 보고 아푸아를 한 번 바라보고, 다시 그 밑의 문장을 읽었다.
『힘이 있는 인간 중에 오직 그대만이 말이 통하는 자라는 것을 안다. 패망한 군주여.』
세드릭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아푸아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