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8
악녀는 두 번 산다 108화
아말리에 하퍼는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이었다.
로렌스는 마중까지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말리에가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만한 그의 성품에 그만 하면 예의를 갖춘 것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하퍼 경.”
“이렇게 여러 사람을 불러들인 것을 보니 중요한 용건이라도 있는가 봅니다, 로렌스 경.”
“황후에게서 반응이 있었습니다.”
로렌스 대신 가얀이 대답했다. 그는 황제의 근위 기사 중 한 명이었다.
아말리에는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았다. 로렌스를 지지하는 귀족 중 의견을 낼 만한 사람은 모두 와 있었다. 작년의 사건으로 완전히 위세를 잃어버린 에이슨 백작만 빠졌다.
아말리에가 자리에 앉자 시종이 공손한 태도로 그녀의 앞자리에 간단한 안주와 와인을 내려놓았다.
아말리에는 술을 즐기지 않았으므로 잔을 흘끗 바라보기만 하고 손을 대지 않았다.
2이가르 대공저에서 열리는 모임과 달리 여기에는 우아함도, 은근한 말도, 호화로운 음악도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는 그런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다.
아말리에도 그랬다.
아말리에는 서부군 출신이었다. 처음 활약했던 것은 24년 전의 몬스터 웨이브였다. 그때에 그녀는 22살의 젊은 하급 기사였다.
그해의 몬스터 웨이브는 다른 때보다도 월등히 혹독했다. 다른 해보다 배 이상 되는 수의 몬스터가 빠른 속도로 몰려들었다.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서부의 거점이 모조리 무너졌다.
사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그레고르 황제는 견제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고 빠르게 중앙군을 투입했다.
그러나 너무 빠르게 휩쓸렸기 때문에 전방에 있었던 적지 않은 수의 부대가 몬스터 무리 사이에 고립되었다.
아말리에는 그중 하나였다.
그녀는 죽음의 앞에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처음으로 알았다.
아말리에는 무능한 대장을 사살하고 부대를 장악했다. 그리고 지옥도에 빠진 다른 부대를 구하여 합류시켜 가며 군력을 늘리고, 안전하게 후퇴하며 몬스터의 수를 줄였다.
중앙군의 방어선과 만나 합류했을 때에 아말리에는 서부군에서 가장 중요한 지휘관이 되어 있었다.
그레고르 황제는 그녀에게 군무부의 참모장과 명예 백작의 작위를 제안했다.
아말리에는 서부에 남아 세력과 인맥을 지키고 제국의 압박을 받는 대신에 황제의 총신이 되는 쪽을 택했다. 그게 더 안전하고, 이익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아말리에를 부족함 없이 대해 주었다. 그녀가 받은 작위는 단승작에 불과했다. 그러나 24년 동안 아말리에는 백작들과 나란히 앉았고, 언제든 황제와 독대할 수 있었다. 부와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아말리에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었던 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늘 느끼고 있었다. 사치와 쾌락에 골수까지 절어버린 동지도 있었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겪어보지 못했을 때에는 수도의 사교계를 동경했었다.
그러나 정작 그 안에서 살아보고 나니 자신은 결코 그 삶에 녹아들지 못하리라는 것만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녀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랬다.
완벽하게 귀족적인 로렌스와는 생래적으로 기질이 맞지 않았다. 다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로렌스를 지지하는 이 중에 전통 있는 대귀족은 많지 않았다. 그 점에서 로이가르 파벌과는 대척점에 완전히 달랐다.
사실 적통을 중시하는 귀족 가문의 특성상 로렌스의 출생에서 눈을 감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로렌스는 청년 귀족들과 두루 친했지만, 놀이상대가 정치적 뒷받침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가얀이 말했다.
“늦게 오신 하퍼 경을 위해 제가 요약해서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황후 폐하께서 리아간 공작가를 원하신다고 합니다. 물론 그 ‘원한다’라는 뜻이, 단순한 화해를 바라는 것일 리는 없지요.”
“실질적으로 공작가를 되찾기를 바란다는 뜻입니까?”
누군가가 되묻는 말에 좌중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이것은 몹시 예민한 문제였다.
황제가 공식적으로 현 리아간 공작과의 관계를 밝힌 적은 없었다. 선대공작 부부의 사망도 공식적으로는 사고사일 뿐이다.
모두가 아는 비밀이다. 그러나 모르는 척할 수는 없는 비밀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사실 관계만 지적했다.
“황후 폐하께서 리아간 공작의 작위를 되찾으실 수는 없습니다. 이미 작위 계승을 포기하셨으니까요.”
“그러나 적녀이십니다. 지금의 리아간 공작으로부터 시작하는 혈통이 새로운 적계로 인정받는 것은 황후 폐하께서 돌아가신 이후의 일이 되겠지요.”
“에브론 대공비가 결혼을 언급했다고 하셨지요?”
로렌스가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리아간 공작 가의 여식과 혼인하면 어떤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톡톡 테이블을 두드렸다. 사람들이 그에게 집중했다.
“아바마마께서 선대 리아간 공작 부부의 일로 황후 폐하께 서운한 마음이 들게 하셨다는 건 알고 있네. 그렇지만 황후 폐하께서는 리아간 공작가의 명예가 허공에 흩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귀경들의 중론이 아닌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렇다면 황후 폐하께서 총애하는, 공작의 작위를 물려주고 싶은 친척을 찾아서 작위를 이어주는 것이 제일 좋지 않을까? 어차피 지금의 리아간 공작은 자신의 힘으로는 작위를 유지할 수 없어.”
그렇게 하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리아간 공작가는 2대에 걸쳐 황후를 배출한 가문이 되고, 로렌스는 황후의 인정과 리아간 공작가의 이름과 재력을 등에 업을 수 있다.
황후는 리아간 공작가를 원하는 사람에게 상속해줄 수 있게 된다.
물론 현 리아간 공작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었다. 제 자식에게 작위를 상속하여 제대로 새로운 리아간 공작가를 만들어 나가고 싶을 테니까.
“그게 황후 폐하의 직접적인 뜻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에브론 대공비도 황후 폐하에게 신붓감에 대해서 여쭤보겠다고 말했을 뿐이 아닙니까?”
가얀이 말했다.
아말리에는 에브론 대공비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다시 생각하시지요. 토사구팽당하고 싶으신 게 아니라면.」
몇 주 전에 아르티제아의 편지를 받고 그녀는 혼자 원행을 했다.
그리고 수도에서 사흘거리에 있는 북쪽의 소도시에서 아르티제아를 만났다. 아직 에브론 대공령에서 돌아오는 일행이 수도에 당도하지 않았던 때의 일이다.
대화를 시작하고 몇 분 되지도 않아 나온 말에 아말리에는 당혹하며 되물었다.
「토사구팽이라고 하셨습니까?」
「로렌스 오라버니는 남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남이 무언가를 바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죠.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아르티제아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충성은 감사받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원칙적인 말씀을 하실 필요는 없어요. 경이 로렌스 오라버니를 택한 이유는 알고 있으니까요.」
아말리에를 포함해서 황제의 총신들이 로렌스를 지지하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황제의 뜻이 로렌스에게 있다는 점이다.
황제의 태도에 애매한 구석이 있긴 했다. 그는 바로 곁을 지키는 시종에게라면 모를까, 조정 중신에게는 결코 후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상 정치적인 부담을 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로서는 아무리 적자가 하나도 없다고 해도 사생아인 로렌스를 이만큼 지지해주는 것 자체가 이미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황제의 성품상 조금이라도 가까운 핏줄에게 물려주려고 하리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황제를 잘 아는 현명한 신하일수록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둘째로는 로이가르 대공 파벌의 인사들과 황제의 총신들이 서로 물과 기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레고르 황제는 대귀족을 견제하면서 지방 소귀족이나 평민 중에서 인재를 뽑아 썼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총애와 신뢰만이 권력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로이가르 대공이 제위에 오르면, 이제까지 그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대귀족들에게 뽑혀나갈 것이다.
그를 지지한다 해도 가얀 후작을 비롯해서 막강한 귀족들 사이에서 공적을 인정받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대귀족들처럼 몇십 년이나 황권의 압박을 받으며 버틸 힘이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셔야 해요. 로이가르 대공이든 로렌스 오라버니 이는 즉위하고 나면 황권을 높이려고 할 텐데, 그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공신이에요. 오라버니는 과거의 공을 들어 자신을 막으려 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무척 확신하고 말씀하시는군요.」
아르티제아가 엷은 미소를 짓고 그것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말리에 한 사람이 아니라 그녀와 같은 입장의 모든 사람을 하나의 그룹으로 지칭하여 말했다.
「‘여러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오라버니가 제위에 올라 왕관을 움켜쥐고 정통성을 획득하는 순간 거기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즉위 후를 따졌을 때에, 차라리 로이가르 대공에게 중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아말리에도 알고 있었다.
결국 루덴 후작을 비롯해서 공신가가 될 대귀족들과 싸울 때에 전면에 나서서 황제의 수족이 될 사람이 필요해질 것이다.
이제까지 그레고르 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말리에는 로이가르 대공을 선택하지 못했다. 그 때까지 자신이 살아남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힘과 권위는 황제 폐하에게서 나옵니다. 저는 그것을 알면서도 서부의 군벌이 아니라 폐하의 신하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때에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이미 포기한 셈입니다.」
「충의를 말씀하실 생각은 아니실 테고…….」
「뒤를 봐줄 사람이 없이는 실질적인 힘을 가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과거에 영주들이 제아무리 가난한 영지라도 황제에게 넘기려 하지 않았던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지었다.
「젊었을 때에 했던 선택을 후회하시나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전 군인입니다, 에브론 대공비 전하. 남의 명령을 듣고, 남이 제공하는 환경 안에서 전술적인 승리를 얻는 자이지요.」
「로렌스 오라버니가 하퍼 경이 생각하는 전술적인 승리의 가능성이로군요.」
「그렇습니다. 로이가르 대공은 장사꾼이자 정치꾼이니까요. 로렌스 경 이상으로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전술가의 한계로군요.」
그 말에 아말리에는 진중한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비 전하. 로렌스 경은 비 전하의 친오빠입니다.」
「친남매라고 해서 무조건 지지할 만큼 황제의 자리는 가볍지 않으니까요.」
「로렌스 경은 훌륭한 왕재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군주가 쾌락을 밝히는 일은 그러지 않는 경우보다 많습니다. 오만하고 잔인한 면모가 있으나 그것도 개인적인 결함에 불과합니다. 통치는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이지요.」
「오라버니는 열등감과 억울함을 느끼고 있어요.」
아말리에처럼 생각했던 때가 아르티제아에게도 있었다. 그레고르 황제에게도 비슷한 면모가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믿었다.
「당연히 얻었어야 할 황태자의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래서 무엇을 얻어도 고마워하지 않아요. 세상이 본래는 오라버니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차라리 진짜 황자로 태어났다면 그렇게까지 비틀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아르티제아는 생각했다.
「현명한 사람의 말일수록 귀담아 듣지 않게 되고, 공적이 있는 사람일수록 증오하며, 정당한 지위를 가진 사람을 멀리할 겁니다. 종국에는 의식적으로 간신을 모아들인 후에 모든 사람을 변덕으로 휘두르며 자신이 지위만이 아니라 개인으로서도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을 즐기게 되겠죠.」
「그렇다면 비 전하께서는 로이가르 대공을 지지하실 작정이십니까? 에브론 대공 전하께서도 같은 뜻이신가요?」
아말리에는 이 만남을, 아르티제아가 자신에게 줄을 바꿔 설 기회를 주려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아말리에를 가만히 바라보고 부드럽게 말했다.
「충의를 바친 만큼 보답하고, 공적에는 마땅한 명예를 내리며, 신하를 질투하지 않고, 절대 신의를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지요.」
아말리에는 전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