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9
악녀는 두 번 산다 109화
놀라웠다.
아말리에는 머리 한쪽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자신이 놀라울 정도였다.
‘여태까지 에브론 대공은 철저하게 에브론 대공으로만 행동했으니까.’
그러나 세드릭은 황실의 직계나 다름없다.
적장자 상속 원칙에 따르면, 본래의 계승 1순위는 죽은 세드릭의 모친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당연히 세드릭이다.
사람들은 좀처럼 그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사람들은 세드릭을 에브론 대공이자 군의 영웅으로 생각하지, 권력자나 정치가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드릭이 어릴 때에는 그를 이용해 황제와 맞서려던 자들이 있었다.
특히 황제의 적자들이 모두 죽은 직후에는 그를 차기 황제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가진 자들이 여럿이었다.
그러나 세드릭은 흔들림 없이 에브론 대공, 그리고 군부인사로서의 위치를 지켰다.
천성이 그러하기도 했겠지만, 생존 전략이기도 했으리라고 아말리에는 생각했다.
세드릭은 황제가 불러들이지 않으면 수도에 좀처럼 오지 않으려 했다. 그것이 에브론 대공령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만 비롯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부당한 줄 알면서도 황제의 명령에 전쟁터로 향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었던 적이 있는 아말리에는 세드릭이 전장에 직접 뛰어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고 생각했다.
제가 사랑하는 것이 따로 있는 사람은 그렇게 쉽사리 목숨을 내버리지 못하는 법이다.
세드릭이 에브론을 사랑한다면, 서부를 위해서 자신을 내던져서는 안 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는 서부군을 위해서 황제와 신경전한 적은 있어도 자기 목숨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로이가르 대공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지만,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그 의심 많은 황제마저도 세드릭을 타고난 군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는 세드릭의 부모를 주살한 일로 원한을 샀으리라고 염려했다. 에브론 대공령이 창날을 돌려 그 막강한 무력을 제국 황실을 겨눌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드릭이 권력을 노리고 있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니 세드릭이 아르티제아와 약혼했을 때에는 마침내 그가 원한을 풀고 개인의 행복을 찾게 되었으리라고 여기고 안심한 것이다.
후계 다툼에 한 발 들이게 된 것도 본의가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하필 아내가 로렌스의 동생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도, 다음 세대의 에브론을 위한 일 이상일 리 없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세드릭은 전처럼 정치를 기피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이츠 남작의 때로부터, 아니, 정확히는.
‘대공비와 약혼했을 때부터이다.’
시위가 일어났을 때에 그가 상황을 주도했던 것, 뇌물 장부를 황제에게 넘긴 것, 인간 사냥 문제를 처리한 것, 모두 다 분노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적인 요소를 빼고, 단순히 사실 관계만 따져 생각했을 때에, 그건 분명히 정치적인 행위였다.
그때 이미 마음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아말리에는 확신했다.
그리고 세드릭의 위상은 이미 변경의 세력가나 군부인사에 머무르지 않았다.
귀족들은 그를 킹메이커로 여겼고, 살롱과 커피하우스들은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문필가와 철학자들도 관심을 기울였다.
에브론 대공령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민중의 여론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것이 사원과 결합한다면 황제조차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된다.
한두 가지 인상적인 사건만으로도 세드릭의 위치는 또 한 번 확 달라질 수 있었다.
마치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품으로 짜 맞춰지는 듯한 쾌감마저 있었다.
아말리에는 이제까지 아르티제아의 행보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드디어 아귀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에브론 대공이 대공령에 파묻힐 생각이 아닌 거라면, 그 이상의 선택지는 없다.’
아말리에가 서부의 기사였던 시기는 고작 2년 남짓하다. 그것의 열 배는 되는 세월을 그녀는 정치군인으로 살아왔다.
그녀는 권력을 사랑했고, 충분히 그것을 누려왔다. 그리고 권력을 놓을 생각이 없어 로렌스에게 붙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권력과 향락을 위해서라면 제국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타락한 것은 아니었다.
아말리에만이 아니라 아르티제아가 말한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랬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제국을 밑받침해온 기둥이었다.
세드릭을 황제의 자리에 올리면 권력 쟁투와 정변으로 나라가 어지럽혀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사람의 목숨을 자신의 욕망과 달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을 판단할 재료는 아직 없다. 그러나 적어도 유능한 신하가 바로 그 이유로 처형당한다거나, 황제의 비위를 거스를까 두려워 간언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군대는 확실하게 제 기능을 다할 것이다. 서부와 남부는 보호받을 것이다.
아말리에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마음 한편에 지금까지 서부 문제가 빚처럼 매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르티제아가 그녀를 첫 번째 포섭 대상으로 삼은 것은 지극히 옳은 일이었다.
아말리에는 군대가 오로지 황제의 권력을 지키는 기능만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싫었다.
고립된 지옥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보급줄을 권력 수단으로 삼는 것에는 염증을 느꼈다.
아말리에는 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아르티제아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세드릭에게는 그럴 마음이 있는가?
아말리에는 그것을 굳이 아르티제아에게 묻지 않았다. 가망이 있다면, 그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제위까지 밀어 올려야 했다.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아르티제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가능성을 하퍼 경께서 만들어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말리에는 그러기 위해 와 있었다.
재무부 관료인 벨론이 말했다.
“에브론 대공비가 나이에 맞지 않게 현명하고, 황후 폐하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니라 리아간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각별히 신경 쓰시는 곳이지요.”
남부 지방에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공작가 하나를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데, 그것을 손에서 놓을 이유가 없었다. 남해 소금의 전매권까지 생각해보지 않아도 그랬다.
잠시간 회의실 안에 불안정한 침묵이 감돌았다.
로렌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벨론 경의 제안은 무엇인가?”
“오히려 로렌스 경께서는 현 리아간 공작의 여식과 약혼하시는 게 낫습니다. 그렇게 해서 리아간 공작가와 맺어지면, 지금은 황제 폐하의 충신과 가까운 관계가 되는 것이고, 장차 황후 폐하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남부의 대귀족과 통혼한 것이 되는 겁니다.”
“계속 말해보게.”
“리아간 공작가에 대해 황실이 막강한 영향력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황후 폐하께서 차기 리아간 공작을 결정하신다면, 그렇게 되지는 못하겠지요.”
로렌스의 입가가 미세하게 비틀렸다.
아말리에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벨론 경의 말에 일리가 있군.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의 일까지 생각한다면 확실히.”
“다른 고견이 있으십니까?”
“아니. 다만 황후 폐하의 인정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하고 빠른 수단이라는 데에 모두가 동의하지 않았는가? 황후 폐하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생각했을 뿐이네.”
그리고 로렌스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벨론 경의 조카가 남부 귀족과 결혼했었지, 아마?”
벨론의 안색이 나빠졌다. 그러자 로렌스의 입가가 다시 엷게 움직였다.
아말리에는 새삼스럽게 아르티제아의 말을 떠올렸다. 로렌스가 의도적으로 간신을 모아들인 후에 우월감을 느끼리라는 것 말이다.
아말리에는 그 대화가 끝나고 나서 신중하게 시간을 재어서 마치 곰곰이 고민 끝에 말한 듯이 발언했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반대?”
“지금 로렌스 경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황후 폐하의 인정입니다. 황제 폐하보다 황후 폐하가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황제 폐하께서는 어차피 로렌스 경을 모든 것을 물려주실 아드님으로 여기고 계십니다.”
이것은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왜곡이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 황후 폐하의 인정만 있다면, 유일하게 합법적인 황실의 후손이 됩니다. 그렇다면 단기적으로는 다소의 노여움을 사더라도 황후 폐하를 우선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하퍼 경의 의견은 황후 폐하에게 로렌스 경의 혼사를 부탁하자는 것입니까?”
“그것도 그것대로 꺼려집니다. 미래의 황후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황후 폐하께서 황태후가 되고, 그 후계자가 황후가 된다면 리아간 공작가에 너무 막대한 권력을 나누어주는 셈이지요.”
“흠.”
“황제 폐하의 노여움을 정면으로 받는 것 자체도 위험부담이 큽니다. 무엇보다도 혼사 문제를 결정하고 나서 황제 폐하에게 일방적으로 고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경은 그 문제를 내가 어머니와 아바마마와 의논해야 한다고 하는 건가?”
“밀라이라 님은 제외해도 되지만, 황제 폐하께는 그러실 수 없지요. 하물며 리아간 공작가의 주인을 바꾸는 문제라면요.”
로렌스가 권태로운 얼굴로 아말리에를 쳐다보았다.
“그럼 경은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인가?”
“황후 폐하께서 리아간 공작가를 되찾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정말로 가문과 작위를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실 겁니다. 아마 물려주고 싶은 후계도 딱히 없으실 겁니다.”
아말리에는 로렌스와 눈을 맞춘 채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 선대 리아간 공작 부부의 한만 풀어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벨론 경이 곧바로 외쳤다. 아말리에가 침착하게 말했다.
“벨론 경, 저는 황후 폐하께서 현재의 리아간 공작을 마음에 차지 않아 한다는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그, 그러나…….”
“위로까지만 하자는 거로군.”
“꼭 황후 폐하께서 차기 공작을 직접 지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혼사에 관해 에브론 대공비가 말한 것은 참고 정도로만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에브론 대공비의 사견에 불과합니다.”
아말리에가 말했다.
“18년이 지났습니다. 리아간 공작은 방만해져 있습니다. 자기 자손을 적계로 만들 때가 빨리 오기를 바라고 들떠 있지요. 괘씸한 일이 아닙니까? 한 번쯤 경각심을 줄 필요도 있습니다.”
그녀는 마치 황제의 앞에서 책론하듯이 말했다. 그 말의 내용만큼이나 발언의 방식이 로렌스의 마음에 들었다.
“분수 모르는 현 리아간 공작을 끌어내림으로써 황후 폐하의 마음을 달래되, 공작가에 대한 황실의 영향력은 오히려 강화함으로써 폐하의 분노를 피해가자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의견은 훌륭하지만, 과연 가능하겠나?”
“알아볼 만한 가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동안에 로렌스 경의 처음 안처럼 황후 폐하와 직접 연이 닿을 만한 리아간 공작가의 방계 여식이 있는지도 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남부 정세에 밝은 사람이 좋겠군. 어느 쪽이든 리아간 공작가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 할 테니까.”
로렌스의 시선이 벨론에게 닿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갔다. 남부 출신이거나 그쪽에 인척이 있는 이들이 활발하게 토의를 시작했다.
아말리에는 더 이상 발언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그녀는 오늘의 역할을 다했다.
로렌스가 보낸 누군가가 남부에 가서 리아간 공작가와 접촉한다. 중요한 것은 그 자체였다.
회의가 끝나고, 몇몇 사람은 남았다. 모처럼 여러 사람이 모였으니 술을 마시고 가볍게 대화도 하면서 친목을 다질 작정이었던 것이다.
아말리에는 일찌감치 일어섰다.
이왕 말을 갈아타기로 했다면, 확률을 좀 더 높여야 한다. 개별적으로 대화를 나눠봐야 할 사람이 몇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말리에는 저택 현관을 나설 때에야 알았다. 가얀이 뒤따라 오고 있었다.
아말리에가 발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내게 빚을 졌다는 걸 잊지 말게, 하퍼 경.”
가얀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