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0
악녀는 두 번 산다 110화
“빚?”
“나는 경의 발언에 대해 아무 지적도 하지 않았네.”
아말리에가 말없이 가산을 바라보았다. 가얀은 싱긋 웃었다.
리아간 공작가는 황제와 황후 사이의 문제였다.
로렌스는 이미 황후의 인정을 얻기 위해 밀라이라를 외면했다. 황제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로렌스에 대한 총애는 이미 예전 같지 않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히 황제 자신이 직접 택한 리아간 공작을 황후를 위해서 건드리는 것이다.
차라리 강대한 귀족이나 정부 요직 인사를 건드리는 것은 괜찮다.
린 재상을 짓밟는 데에 성공하거나, 아말리에나 가산을 희생양으로 삼아 조정에 대한 장악력을 키웠다면 황제는 기특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리아간 공작은 황제의 개이다.
다 자란 미운 아들이 18년 동안 키워 온 늙은 개를 걷어차면 화가 나게 마련이다. 그 개가 비록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운이 좋다면 모든 것을 얻겠지만, 그보다는 황후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황제의 노여움을 살 가능성이 크다.
가얀은 그 사실을 로렌스 앞에서 지적하지 않았다.
그런 리스크 높은 제안을 아말리에가 할 리가 없다는 지적도 하지 않았다.
“…….”
아말리에가 굳이 부정하지 않고 도로 시선을 돌렸다.
충고를 해도 로렌스는 좀처럼 귀담아 듣지 않는다. 아말리에가 진즉부터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가얀은 알고 있었다.
실제로 최근에 그녀의 발언은 극히 줄어들었다.
그것을 종합해볼 때에 오늘 발언한 것이 로렌스를 위해서 한 것일 리는 없었다. 아말리에는 공적을 쌓는 것에 급급한 젊은 관리가 아니다.
가얀이 말했다.
“로렌스 경은 황제 폐하를 두려워할 줄 몰라.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나만이 아닐 걸세.”
“예전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랬지.”
가얀의 마차가 현관 앞에 당도했다. 그런데도 가얀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말했다.
“밀라이라 님은 아직 건재해.”
“…….”
“솔직히 말해서 폐하께서 노여워 하신다고 해도, 로렌스 님을 포기하실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네.”
“그런가?”
“유니스 백작 부인은 고작해야 자기 가족 문제에밖에 시야가 닿지 않는 사람이고, 조시아 백작 부인은 겁이 많아서 아예 수도에서 달아나 버렸어. 그 남편들도, 폐하께서 일부러 조용하고 소극적인 자를 골랐었고……. 이제 와서 제왕학을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가얀이 황제의 다른 두 사생아 딸을 그렇게 평가했다.
그러니 황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자식에게 관을 물려주기로 마음먹었다면, 다른 대안이 없다는 뜻이다.
가얀은 아말리에가 누구에게 무릎 꿇기로 했는지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어차피 황제의 자식들과 로이가르 대공을 소거법으로 지우고 나면 남은 황족은 하나뿐이다.
그리고 사람만 두고 따졌을 때에 아말리에의 선택이 그들 입장에서 최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반면, 누가 왕재이냐 하는 것보다 황제의 뜻이 더 중하다고 판단한 것이기도 했다.
아말리에가 말했다.
“원래 흐르는 강 위에 있는 배에서 내리는 게 어려운 줄 누가 모르겠는가?”
“이해해줘서 고맙군. 나는 하퍼 경의 안목을 신뢰한다네. 잘 전해주시게.”
그 말은 구명줄을 걸쳐 두고 자신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그는 로렌스의 배가 침몰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순간 이쪽으로 확 돌아설 것이다.
가시적으로 세력을 늘리는 것보다 그게 나을 수도 있었다. 로렌스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에도.
가얀이 아말리에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아말리에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마주 인사했다. 그리고 떠나는 가얀의 마차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로렌스 경이 폐하의 노여움을 사게 한다라……. 고작 그것뿐인 단순한 일일 리가 있나.”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 * *
얼마 전에 16살이 된 유니스 백작의 장녀 피오나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옷차림을 곱게 꾸미고 머리를 올리자 제법 숙녀 태가 났다. 황제는 싱글벙글거리며 그 곁에 서서 악보를 넘겨주었다.
피오나의 실력은 솔직히 보잘 것 없었다. 황제까지 옆에 서 있으니 압박감에 초조해서 더 실수를 저질렀다.
외조부라고 해도 황제다. 그리고 피오나는 권력이 무엇인지 이미 아는 나이였다.
헤일리는 피아노 연주를 해본 적이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을 때에 그렇게 째지는 소리가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심지어 정원 쪽으로 공간이 탁 트인 테라스였는데도 말이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유니스 백작 부인마저도 안색이 안 좋았다.
피오나는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지나치게 솜씨를 부리려고 애쓰다가 실패한 셈이었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웃어 주었다.
피오나의 그런 속보이는 태도는 유니스 백작 부인을 닮은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황제에게는 귀여웠다.
연주가 끝나자 황제가 피오나를 에스코트해서 티 테이블로 되돌아오면서 말했다.
“연습을 많이 했구나.”
“아, 네. 폐하.”
“너무 어려운 곡을 연습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피오나. 귀부인의 연주 솜씨는 살롱에서 가족을 즐겁게 할 수 있을 정도라면 충분하지.”
“네…….”
피오나가 어렵사리 대답했다. 그렇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는 테라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리고 개중 만만하고 어린 리시아를 지적했다.
“모르텐 소남작은 어떠신가요?”
“네?”
토끼 인형을 가지고 열 살 난 차녀 라르니와 놀아주고 있던 리시아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저요?”
“그래요. 모르텐 소남작께서는 요즘 뭘 배우고 계신가요?”
리시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사격이요.”
“잘하시는 건요?”
“석궁이에요.”
“그건 교양이 아니잖아요.”
“교양에 가깝지 않나요? 실전에는 거의 쓸모가 없어요.”
피오나는 떨떠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피오나가 원했던 대답은 악기나 자수 같은 것이었다. 에브론 같은 촌에서 배워 봐야 뭘 제대로 배웠겠나. 뭘 들고 나와도 비웃어줄 작정으로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사격은 그렇다 치고 석궁이라니. 대화하면서 격차를 보여줄 수도 없었고, 이 자리에서 해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황제가 껄껄 웃었다.
“네가 졌구나, 피오나. 에브론에서 석궁이 교양이라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지.”
“화살던지기 정도라면 피오나 영애와 라르니 영애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리시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기가 배운 것으로는 이 자리의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싶어서 신났던 것이다.
“화살던지기?”
라르니가 물었다.
“해본 적 없으세요?”
“없어.”
활달한 성격의 라르니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모처럼 새 옷을 입었는데.”
“괜찮아요. 화살 던지기는 뛰거나 바닥을 구르는 게 아니니까.”
“바닥을 굴러요?”
피오나가 경악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리시아가 그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이건 안 굴러요.”라고 대답했다.
“할아버지, 나 해볼래.”
라르니가 황제의 무릎을 흔들며 말했다.
황제가 또다시 껄껄 웃었다. 그리고 시종을 불러 화살던지기에 쓸 만한 화살과 통을 가져오도록 명했다.
“그런 걸 언제 해봤는지 기억도 가물거리는구나.”
“요즘에 누가 그런 걸 하고 놀아요? 차라리 제대로 활쏘기를 가르쳤으면 가르쳤지.”
유니스 백작 부인이 눈을 흘겼다.
갑자기 명령한 건데도 시종들은 추를 단 화살과 장식이 아름다운 바구니를 가져왔다.
리시아는 다정하게 라르니의 손을 잡고 계단을 밟아 정원으로 나갔다. 시종들이 바구니를 놓았다.
피오나는 신경질적인 얼굴을 했다. 하지만 황제가 라르니를 데리고 나가는 대신에 흐뭇한 얼굴로 지켜만 보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헤일리는 리시아를 따라가야 할지 남아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아르티제아가 피곤한 얼굴로 손짓했다. 헤일리는 그 자리에 앉아서 아르티제아의 옷자락을 고쳐 주었다.
황제가 라르니가 껴안고 있던 토끼 인형을 들어 올려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어울리지 않는 시녀를 들였구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측근은 귀중한 법이지. 소중히 여겨라.”
“황공합니다.”
“똑똑한 아이도 하나 얻은 것 같고.”
“에브론에는 숨은 인재가 많으니까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도 그렇고.”
그러자 황제가 또다시 웃었다.
헤일리는 긴장을 숨기지 못한 채로 눈을 내리깔았다.
헤일리는 처음에는 이렇게 황제가 사적인 공간으로 불러들인 것을 무시당한 것이라 생각했다.
알현실에서 정식으로 예의를 다 갖추어 에브론 대공비를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이 자리야말로 진짜 권력이 있는 자리였다.
황제는 에브론 대공비를 접견하는 것이 아니라 조카며느리의 문안을 받는 것으로 에브론을 황실과 같은 자리에 앉혀 준 것이다.
에브론 대공령에서 가져온 진상품은 모두 정식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에 대한 답례로 하사품도 내려졌다. 공식적인 예의는 그것으로 다한 셈이다.
“피곤해 보이는구나.”
황제가 아르티제아를 향해 말했다. 아르티제아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의 앞에서 피곤함을 내비치는 것은 예의도 아니었고, 현명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무지 태연한 척을 할 수가 없었다. 화장으로 가리지도 못해서 눈 밑에 그늘이 검게 졌다.
아르티제아는 솔직하게 말했다.
“원행하고 온 길이라 아무래도 피곤이 가시질 않습니다.”
“겨울 여행이라는 게 쉽지 않지. 너야 그만큼의 이익을 생각하고 왔을 테지만.”
황제의 말에 유니스 백작 부인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는 아르티제아가 전쟁을 피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익을 생각했다니, 놀란 것이었다.
황제가 말을 이었다.
“로이가르 대공의 앞에서 꽤 건방진 소리를 했더구나.”
“없는 말도, 틀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르티제아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황제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에브론 대공령이 정말로 위험하기라도 하단 말이냐? 아니면, 네 배포가 갑자기 쪼그라들어서 두려워지기라도 한 게냐?”
“황공합니다, 폐하. 전 배포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면, 상인에게 사기를 당해서 서부에 그리 많은 땅과 곡물을 샀더냐? 농은 그만두려무나. 짐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 텐데.”
그 말에 황제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아르티제아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면, 저를 알현실로 부르셨겠지요. 테라스가 아니라.”
그러면서 그녀는 정원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봄바람이 산들거리면서 꽃향기를 실어 날랐다. 일부러 치우지 않은 작은 꽃잎들이 테라스 가장자리에서 굴러다녔다.
라르니가 화살을 바구니 안에 던져 넣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불만스러운 얼굴의 피오나도 조금 흥분한 듯했다. 리시아의 화살은 백발백중이었다.
아르티제아는 다시 시선을 돌려 황제를 바라보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살아남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납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