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2
악녀는 두 번 산다 112화
“티아.”
밀라이라는 아르티제아를 보고 움찔했다.
그러나 이내 결심한 듯 날카로운 얼굴로 주먹을 꾹 쥐고 아르티제아를 향해 다가왔다.
리시아와 헤일리도 밀라이라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보았다.
누구라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 용모에서 더 이상 젊음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들기 직전의 만개한 꽃처럼 지나치게 화려하고 느슨하며 향기가 짙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때 이 여자의 발밑에 제국에서 가장 높은 신분의 남자들이 몸을 던졌다는 것이 실감 났다.
이제는 주인이 결정되어 감히 손끝 하나 댈 수 없으면서도 호화로운 선물을 문 앞에 쌓아올리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미녀가 이 황궁에 둘이나 있을 리가 없었다. 황제의 사적인 처소가 바로 이 뒤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그랬다.
밀라이라가 곧바로 아르티제아에게 다가왔다.
헤일리는 망설였다. 아르티제아가 어머니와 인연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너희는 내 시녀이지만, 로산 후작가에 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어머니와 오라버니에 대해서는 더 그래. 일절 모르는 체하도록 해.」
하지만 상대는 로산 후작 대부인이었다. 작위를 생각하면 다가오는데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시녀이자 에브론의 가신인 두 사람에게는 그렇게 말했어도, 친딸인 아르티제아 자신은 또 어쩌려는지 알 수 없었다.
알폰스도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 없이 똑같이 움직였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태연하게 밀라이라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스쳐 지나쳤다.
“티아!”
밀라이라가 큰소리를 내서 그녀를 불렀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듣고서도 역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리시아와 알폰스가 동시에 막아섰다.
노기가 치민 밀라이라가 손을 들어 리시아의 뺨을 갈기려 했다.
리시아가 밀라이라의 손등을 가볍게 때려 그 손을 튕겨냈다.
그냥 한 대 맞아주는 게 수월하게 상황을 끝내는 방법이라는 생각은 떠올리지도 못했다.
손은 에브론 대공비의 시녀를 향해 휘두른 것이다. 그것을 맞아줄 수는 없었다.
상대가 설령 아르티제아의 어머니라고 해도 그랬다.
살짝 맞은 손등이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히 자신에게 그런 사람이 없었기에 밀라이라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폭발하여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촌년 따위가!”
“대부인!”
헤일리가 깜짝 놀라 소리치며 리시아의 곁으로 달려왔다.
밀라이라가 다시 손을 휘둘렀다. 리시아가 얼굴을 찌푸리고 그 손목을 잡아챘다가 천천히 놓아주었다.
알폰스가 느릿하게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기사인 그가 함부로 밀라이라를 붙들거나 했다가 어디 멍이라도 생기면 곤란하다. 손을 쓸 수는 없었다.
대신 큰 덩치로 울타리가 된 것이었다.
헤일리가 날카롭게 말했다.
“무례합니다, 로산 후작 대부인.”
“뭐?”
밀라이라가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너희 지금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내 딸 가둬 놓고 있는 거야, 지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법도는 없습니다, 로산 후작 대부인. 지금 고작해야 후작가의 신분으로 감히 에브론의 여주인을 불러 세우셨습니까?”
헤일리가 말했다.
“수십 년을 황궁에서 사셨다더니, 촌년인 저희조차 알고 있는 궁정 예법을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현실적으로 모녀지간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말이었다. 하물며 밀라이라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지난 세월 동안 밀라이라에게 감히 궁정 예법 같은 것을 말한 사람은 황후의 시녀뿐이었다.
로이가르 대공비조차도 밀라이라의 앞에서는 부드럽게 태도를 고쳤다.
밀라이라의 얼굴이 울분으로 새빨개졌다가, 혈색이 다시 빠져나갔다. 그녀가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아르티제아는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리시아와 헤일리가 그녀를 따라 몸을 돌렸을 때였다.
“잘못했어!”
밀라이라가 소리쳤다.
아르티제아의 발이 멈췄다.
“어, 엄마가 잘못했어. 맨날 화내서 미안해.”
밀라이라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쥐어짜내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이 끝날 때 쯤에 밀라이라는 반쯤 울먹이고 있었다.
“다시는 안 그럴게. 네가 하고 싶다는 거 방해 안 하고, 남들 앞에서 화내지도 않을게.”
커다란 고였던 눈물이 기어이 뺨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밀라이라가 화장이 망가지는 것도 잊고 손등으로 눈가를 문댔다. 그리고 아예 소리를 내서 울었다.
“맨날 심한 말해서 미안해. 앞으로 절대 때리거나 그러지도 않을게. 엄마가 잘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될까?”
복도에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밀라이라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기껏 치장한 것도, 남들의 눈도 신경 쓰지 않고 그녀는 펑펑 울었다.
귀족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언제나 우아하게 대처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귀족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경멸하기보다는 딱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불쌍한 모습이었다.
아르티제아를 뒤따르던 호위 기사와 고용인들이 동요를 일으켰다.
아르티제아가 결혼 전에 밀라이라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알면서도 그랬다.
헤일리는 난처하게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는 내심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을 하고 있었다.
“비 전하.”
리시아가 조심스럽게 아르티제아를 불렀다.
아르티제아가 느릿하게 밀라이라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알폰스가 한 걸음 물러서서 그녀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티아.”
밀라이라가 흐느끼면서 아르티제아를 올려다보았다.
아르티제아가 리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시아가 깜짝 놀라 얼른 그녀의 손에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어머니.”
아르티제아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구부렸다. 그리고 손수 건을 밀라이라의 눈가에 대어 주었다.
밀라이라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어렸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냉혹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어머니를 버린 건 어머니가 절 때리거나, 혹독하게 대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티, 티아…….”
“어머니가 제가 하려는 일에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건 정말이지 사실이었다.
아르티제아는 밀라이라에게서 어떤 지독한 일을 당해도 그녀를 원망하거나 버리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로렌스에게 배신을 당하고 죽어갈 때에도 밀라이라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밀라이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더 이상 자기 안에 감정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는 것을 느꼈을지언정 꼴좋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밀라이라는 아르티제아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었다.
“티아…….”
그녀는 망연자실했다.
아르티제아는 밀라이라의 손에 손수건을 쥐여 주고 몸을 일으켰다.
“가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르티제아는 우아하고 당당한 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밀라이라에게 잠시간 동정의 시선을 던졌던 그녀의 수행원들도 곧 잊은 듯이 아르티제아의 뒤를 따랐다.
밀라이라는 손수건을 움켜쥔 채로 그 자리에서 통곡했다.
밀라이라의 하녀들은 그녀를 동정하지도, 건드리지도 못한 채로 둘러싸고만 있었다.
마차에 오르자마자 아르티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유리를 끼운 창문에 머리를 기대었다.
리시아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살폈다. 피곤해하는 것은 근래 계속된 일이었다. 오히려 여행길에서보다 수도에 도착하고 나서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하니까.’
아르티제아는 본토에서의 생활이 정말로 한가했구나 싶을 정도로 움직였다.
외부 손님을 만나지 않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뒷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잠시간 혼자 있을 때조차도 그 흰 이마 안에 들어 있는 뇌는 쉬지 않고 복잡한 활동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을 비우고 몸으로 움직이는 일이 더 많은 리시아로서는 짐작조 차 가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서 오늘은 마음까지 좋지 않을 것이다.
아르티제아가 비록 냉정한 얼굴로 자리를 떴지만, 리시아는 그녀의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그렇게 냉정하게 하실 필요는 없었을 텐데…….”
리시아는 밀라이라를 동정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아르티제아가 괴로워 보였다.
아마도 아르티제아에게는 밀라이라를 용서한다고 말하는 쪽이 쉬웠으리라고 생각했다.
용서해주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 괴로운 것을 무릅쓰고 굳이 잔인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그냥 무시하고 잊는 쪽이 나을 것이다.
“황궁에 오는데, 어머니 만날 확률을 생각 못했겠어? 괜찮아.”
아르티제아가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필요해서 한 일이야.”
리시아의 생각이 옳았다.
아르티제아는 감정적인 문제 때문에 냉혹하게 대한 것이 아니다.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정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이다.
‘어머니도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하지만 밀라이라는 피상적으로 아르티제아가 자기보다 황후를 선택했다고 이해할 것이다.
복수심이나 원망보다도 권력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 밀라이라를 더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황제의 말이 옳다. 밀라이라는 불쌍한 여자였다.
힘없고 아름다운 여자가 금력과 권력 때문에 겪을 수 있는 불행을 그녀는 모두 겪었다.
밀라이라는 황제의 꽃이고, 무릎 위에 앉힌 사랑스러운 고양이이다. 황제의 뺨을 할퀴어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녀가 쥔 권력은 그녀의 것이 아니다.
아르티제아는 밀라이라가 자신을 왜 낳았는지, 왜 살려두고 키웠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자기만의 것이 갖고 싶어서 아르티제아를 낳았다.
즉흥적이고 변덕스러운 데다가 참을성 없는 성미 탓에 제멋대로 굴고 학대했다.
그러나 목숨 걸고 낳은 것은 사실이었다.
아르티제아는 밀라이라가 예쁘지 않다고 그녀를 구박하고 욕하면서도, 저 자신처럼 만들지는 않겠다고 결심했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식적으로 권력자로서 그녀를 팽개쳤다. 밀라이라가 벼랑에서 밀려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도록.
아르티제아는 필요하다면 누구에게라도 그럴 수 있었다.
‘이런 인간이 성녀라니, 그럴 리가 있나.’
아르티제아는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지 주위에 엷은 빛이 고리처럼 생겨났다.
알고 보지 않으면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리지만, 틀림없이 성력이었다.
이보다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헤일리나 리시아가 깨닫기 전에 그 빛을 도로 꺼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