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3
악녀는 두 번 산다. 113화
성력에는 실질적인 힘이 있다.
리시아는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하루에 수천 명의 병자를 완치시킬 수 있었다.
2백 년 전의 성녀 올가는 한 번 성력을 내뿜은 것으로 작은 도시 하나에 있는 환자를 모두 고쳤다고 한다.
성력이 모두 치유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올가 이전의 성인 중에는 자신의 육체를 산과 같은 방패로 만들어 카람으로부터 인간을 지켰다는 자도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사원의 그런 기록을 믿지 않았었다. 그러나 리시아가 발하는 치유력의 파워를 생각하면, 그 대부분이 진실일 것이다.
콜튼 수사는 성인이 되는 것은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르티제아의 생각에는, 반대로 성력을 가지는 순간 성인은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면, 족히 나라를 구할 만한 힘이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의 경우에는 좀 달랐다.
아르티제아의 성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살짝 생채기를 낸 후에 성력과 직접 접촉시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치유의 힘은 전혀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 힘인가 싶어서 그녀는 새삼스럽게 성전과 사원의 기록을 뒤져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가 낸 결론은 자신의 성력은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성력은 생명력과 동질의 힘이다.
아르티제아는 미약하게 몇 차례 성력을 발휘해본 결과, 그 힘은 자신의 목숨을 뽑아서 쓰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수명이 줄어든다는 것은 별로 상관없었다. 대가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그냥 쓸모가 없었다.
믿음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힘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듯했다.
‘낫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없어서일까?’
굳이 쓰려고 한다면 마법을 쓸 수 있긴 할 것이었다.
마법진을 그리는 것은 피, 마법을 기동하는 것은 인신공양, 다시 말해 사람의 목숨이기 때문이다.
성력은 그것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 모든 것을 굽어보고 있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맞을지도 몰랐다. 신은 아르티제아가 마법을 쓴 것을 보고 이런 힘을 주었는지도 몰랐다.
죽어 마땅한 자를 살려 두었으니 목숨을 뽑아 갚으라는 것은 당연하게까지 느껴졌다.
본래대로라면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을 썼을 때에 아르티제아는 죽었어야 했다.
살아 있는 이 목숨은 잉여분의 것이다.
그러나 수명을 일부 뽑아 쓰는 수준의 마법으로는 세상을 단번에 바꿀 수 없다.
범용성이 높다는 것에 가치를 둘 수도 없었다. 절대적인 힘의 양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치유력을 쓴다 해도 기껏해야 편지 칼에 베인 상처를 고칠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있으나 없으나 아르티제아가 할 수 있는 일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대마법을 쓰려면 죽어야 한다. 그리고 목숨을 던질 거라면 굳이 성력으로 생명을 뽑아낼 필요가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마법 없이 한 번의 삶을 살았다.
이제 와 작은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해도, 어디에 그것이 쓰일 수 있을지 떠올리지 못했다.
오히려 드러내는 쪽이 공격의 빌미가 될 따름이다.
성력이든, 마법이든.
사원은 마법을 부정한다. 인신 공양의 역사가 그렇게 만들었다.
고대어가 실전되다시피 한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몇몇 학자들의 연구에나 남고, 사람들은 마법의 존재를 잊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마법사라는 건 살인귀로 여겨졌다.
‘성녀가 마법을 쓴다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긴 하군.’
아르티제아는 창밖을 내다보며 멍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되돌리라’는 신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짐작할 수 없었다.
마법의 시대를 되돌리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량학살을 통해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마법사들을 손수 징벌했다는 것은 성전에도 꽤 앞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신이 그녀의 목숨을 받아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차라리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때가 오면 알게 되겠지.’
콜튼 수사의 말이 맞다면 말이다.
하지만 왜 자신이 그 뜻을 따라야 하는가?
어쩌면 신이 무언가를 시키기 위해서 죽었어야 할 그녀의 목숨을 살려서 과거로 돌려보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생명이 성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설령 그 생명을 내준 것이 신이라 하더라도, 아르티제아는 그 뜻을 헤아려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세드릭을 주군으로 삼았다. 그리고 리시아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신의 큰 그림을 위한 조각이 되는 것보다 자신의 맹세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녀가 아는 미래는 망해 버린 제국뿐이다.
그 미래를 자기 손으로 되돌려서야, 과거로 돌아온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르티제아는 콜튼 수사에게 말했다.
「저는 성녀가 되지 않을 겁니다.」
아르티제아에게는 민중의 지지나 높은 평판이 필요 없었다.
오히려 햇빛 아래로 끌려나올수록 리스크만 커진다. 손발도 묶인다.
에브론 대공비라는 이름에 아르티제아 로산이라는 이름을 결부시켜 기억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하다못해 사원이라도 완전히 수중에 넣을 수 있다면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성녀는 사원의 우두머리가 아니다.
사원은 제국 정부 이상으로 계층이 잘 짜인 관료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녀는 그 체제 안에 포함된 존재가 아니었다.
설령 형식상으로 신의 말씀을 전하는 자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체제는 갑자기 생겨난 이물을 거부할 것이다.
신자와 수도사, 평사제들은 성녀를 진심으로 믿고 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사제와 사원의 행정 사무를 보는 봉사자들은 성녀의 명에 선뜻 따르지 못했다.
개인으로서는 몸을 던져서라도 그녀를 따를 수 있었으나 사원은 그런 식으로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주교들은 신심과 현실적인 권력 사이에서 타협한 자들이다.
그들은 리시아가 성녀로서 최초로 맞닥뜨렸던 거대한 벽이기도 했다.
주교들은 성녀를 존중하고 높이 받들기는 했다. 그러나 신의 대리인으로 여겨 그 말을 귀담아 듣기보다는 사원의 권위를 높여 줄 상징적인 존재로만 생각했다.
결국은 뇌물이 통하고 신탁의 조작에도 동참했던 작자들이다.
그들이 신탁을 조작한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성녀를 황후로 만듦으로써 세속적인 권력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원 안에서 성녀의 뜻을 따를 수 없는 것을 깨달은 하급 사제와 수도사들이 계속해서 이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황실과 사원이 합의 하에 리시아를 황후궁에 가둔 셈이었다.
그런 사원을 떠안고 움직일 수는 없다.
이런 미미한 성력으로 사원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도 않았고, 거기에 낭비할 시간도 없었다.
얻어낼 수 있는 힘은 적고 책임만 무거워진다. 적이 늘어나고, 공격당할 빌미와 견제당할 이유도 만들어질 것이다.
성녀라는 이름은 변수조차 아니다. 마이너스 상수이다.
다행히도 콜튼 수사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는 아르티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귀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저는 일개 수도사입니다. 사원에서는 제게 아무런 의무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공허한 얼굴로 말했다.
「귀하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 줄 압니다. 사원은 귀하를 따라 신탁을 행하지 않고, 그 신탁과 귀하를 사원의 권세를 위해 이용하려 하겠지요.」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신께서 귀하를 이곳으로 모셔오는 역할을 제게 맡기신 것에도 아마 그런 이유가 있을 겁니다.」
콜튼 수사는 그렇게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문득 리시아에게 물었다.
“리시아.”
“네.”
“신을 믿어?”
“네?”
리시아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아르티제아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부르기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거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줄 알았다.
“그냥 궁금해서.”
아르티제아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충동적인 질문이었다. 그녀라면 처음 신탁을 받았을 때에 어땠을까, 싶어서.
리시아는 신실하지만, 신앙에 의지하는 사람이나 수도사들처럼 신을 삶의 중심에 넣고 성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르티제아는 과거에 성녀가 되기 전의 리시아를 몰랐다. 막연하게 성녀가 될 만한 인품과 능력, 신심을 모두 갖추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리시아의 얼굴이 약간 빨개졌다.
“전 잘 모르겠어요. 불신자는 아니지만, 사원에 자주 가질 않아서…….”
“넌 성전 끝까지 읽어본 적도 없잖아?”
헤일리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리시아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아르티제아가 피식 웃었다.
“성전을 읽고 외운 사람이 신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나야말로 신자 중의 신자일 텐데. 헤일리, 넌 어떠니?”
“전 무신론자예요.”
헤일리가 대뜸 말했다가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자기가 과격하게 말 했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정확히는, 신이 있든 없든 인간사에는 관심 없어 보인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고서야 세상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 놓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전 그래도, 신은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사원의 가르침을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요.”
리시아가 쪼물거리며 반박했다.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어도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어떤 선한 의지가 계실 거라고 믿어요.”
“…….”
아르티제아는 가만히 리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시선을 돌렸다.
역시 신은 사람을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헤일리가 물었다.
“그런 건 왜 궁금해지셨어요?”
“그냥. 콜튼 수사님과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나서.”
아르티제아는 그렇게만 대꾸했다. 이것은 누구와도 의논할 수 없는 일이었다.
* * *
그날 저녁의 일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일찌감치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미리 안스가르에게 다음날 만나야 할 사람들 목록을 정하여 알려주었다. 서부 지방 환곡 사업에 관한 문제는 형식적인 것이나마 황후하고도 의논해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침대에 들어가 따뜻한 물 주머니로 차가운 발가락을 꼼질거리며 겨우 녹였을 때쯤이었다.
앨리스가 조용히 침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 있니?”
아르티제아는 눈을 뜨고 물었다. 앨리스가 외출용 망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앨리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멜리아 후작 영애께서 마님을 은밀히 뵙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그렇구나.”
아르티제아는 잠시 눈을 감고 졸음을 쫓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