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6
악녀는 두 번 산다 116화
『이 편지가 도착할 즈음에 그쪽 날씨는 더워지기 시작하겠군요.
이쪽은 아직 서늘합니다. 당신은 아직 겨울이라고 하겠군요. 그래도 얼마 전에 꽃이 핀 것을 보았습니다.
톨드 요새 안에 꽃나무가 있더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누가 기른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싹을 틔운 것이 있어서,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고 합니다. 이제 무릎 높이 정도입니다.
전령이 황제 폐하의 사신보다 먼저 당도하여 수도의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프레일이 보낸 보고서도 몇 번 왔습니다.
당신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짐작이 갑니다. 서부 환곡 사업을 맡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당신이라면 잘해내겠지요. 다만, 무리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리스크의 이야기가 아니라 건강의 이야기입니다. 적당한 사람이 있다면 전면적으로 맡기고 손을 뗄 생각도 해두십시오.
몸 편히 잘 지내고 있습니까? 제대로 식사를 하고, 수면시간은 잘 지키고 있습니까?
따뜻한 곳이니 북부보다는 낫겠지요. 안스가르도 저보다는 나을 테고요. 그래도 당신은 스스로를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니 걱정이 됩니다.
다른 일은 몰라도 당신의 몸에 관한 일은 안스가르의 말이 우선이라고, 리시아와 헤일리에게도 따로 편지를 보내두었습니다. 소피에게도요.
혹시 그 세 사람이 거역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화내지 말고, 제 말이라고 생각하고 꼭 들으십시오.
전황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카람에서 원군이 보충되어 한 차례 국지적인 교전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양측에 모두 큰 피해 없이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오히려 이 기회에 아예 위쪽까지 밀고 올라가자는 주장을 하는 자도 있습니다.
몇 년, 운이 좋으면 몇십 년까지도 전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전파의 의견입니다.
어차피 톨드 관문 너머에서 인간은 거주할 수 없고, 카람의 성장 속도를 생각한다면, 그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 텐데 말입니다. 에브론 군만으로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요.
확전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뜻을 같이 하는 이를 만났습니다.
당신이 함께 만나주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다시 북쪽에 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죠. 몇 년 안에, 라는 단서를 달아 약속만 해두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를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삶이 영원처럼 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오늘이 전부인 것처럼 서두를 것도 없으니까요.
당신이 멀리 내다보는 사람이라, 미래를 위해 준비할 것이 많다고 여기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앞으로 20년, 30년, 그보다 긴 세월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요. 만난 지 아직 채 1년도 되지 않았는 데, 벌써 그때에는 상상도 못했던 상황에 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는 건 저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편지가 먼 거리를 갈 것이라 적을 수 없는 이야기가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니 내가 쓰지 못한 것이 어떤 이야기인지 짐작해 주리라고 믿습니다.
여름이 될 때쯤에는 수도에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에게 해야만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디 그때까지 몸 건강하길. 다시 만났을 때에는 이 팔이 기억하는 것보다 조금 무거워져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심곡을 담아,
세드릭.』
편지지는 하얗고, 번진 글씨 하나 없이 깨끗했다.
줄을 맞춰 가지런히 쓴 문장에서 여러 차례 정서한 것이 보였다. 행여 기밀이나 에브론의 상황이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염려한 탓이리라.
그가 편지 안에서 말한 것처럼 먼 거리를 오가는 편지이다. 분실의 우려도 있고, 누가 감쪽같이 뜯어보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정담이나 밀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세드릭은 그런 말을 문장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주변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쩐지 아르티제아는 그 편지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세드릭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세드릭이 편지 안에 다 쓰지 않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만나주었으면 한다는 게 카람일 것이라든가 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와 있다거나…….
‘…….’
아르티제아는 편지를 반으로 접어 놓고 고개를 숙였다. 심장 언저리를 뭔가로 문질러 누르는 것처럼 아팠다.
함께 책이 한 권 당도해 있었다. 아르티제아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연감이었다.
처음에 아르티제아는 왜 그 책을 보냈는가 고민했다. 무언가 암호라도 숨겨둔 것인가.
하지만 책을 한 번 펼쳐보고 바로 이유를 알았다. 책 안에서 눌린 꽃가지가 하나 떨어졌다.
그것이 세드릭이 말한 톨드 요새 안에 자란 꽃나무의 꽃이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올해 처음 본 꽃이다.
그냥 무작정 책에 끼우기만 한다고 제대로 된 압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굵기가 있는 꽃줄기가 눌리면서 습기가 종이에 배어 잉크가 번져 있었다. 그 덕분에 본래는 흰색이었을 꽃 잎에도 얼룩이 묻었다.
쓴웃음을 지어야 했는데, 이제 그럴 수가 없었다. 뺨에 열이 올랐다. 그것이 두근거림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려고 해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정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르티제아는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하얀 무명 손수건을 가져다가 꽃가지를 놓고, 떨어진 꽃잎 하나도 주워 제 위치에 놓았다. 그리고 제대로 덮었지만, 어디 달리 둘 곳도 없어서 보내진 책에 다시 끼웠다.
편지도 어쩌나 싶었다.
굳이 태워야 할 필요는 없는 편지였다. 하지만 보관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르티제아는 남과 개인적인 편지를 주고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소중하게 간직할 방법이라면, 실행할 수 있는가와는 별개로 이것저것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평범하게 보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괜스레 남의 서재들을 생각하며 주스 잔을 끌어당기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르티제아는 편지를 다시 반듯하게 봉투에 넣어 책 위에 올려놓았다.
들어온 것은 프레일이었다. 손에 한입 크기로 튀겨진 크로켓 접시를 들고 있었다.
“이제는 경도 간식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나?”
“전락이라뇨. 비 전하와 독대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입니다만.”
“설령 내가 직접 황제가 되더라도 경을 화장실 관리 시종보다는 귀중하게 대접할 테니 그런 것에 신경 쓸 필요는 없어.”
프레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안스가르 님의 명령은 이 저택 한정으로 세드릭 님의 말보다 권위가 있으니까요.”
그건 그랬다.
아르티제아는 혹시라도 기름얼룩이 묻지 않도록 책과 편지봉투를 치워 놓고 포크를 들었다.
그녀는 입 안이 데지 않도록 조심하며 바삭한 튀김을 깨물었다. 몰랐는데, 속이 좀 허전했던 모양이었다.
프레일이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의사를 만나보신 적 있으십니까?”
“없네.”
“비 전하는 건강한 편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본다고 해서 딱히 달리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햇볕을 쬐고, 운동도 좀 하고, 잘 먹고, 잘 쉬라고 말하겠지.”
아르티제아는 태연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두 조각 째의 크로켓을 오물거렸다.
프레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스가르도, 마커스도, 지금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괜히 설레발을 쳤다가 부담을 주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두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는 프레일로서는 답답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이 여주인이 늙은 집사들이 소원하는 것만큼 마음 편히 쉴 것 같지 않았다.
그가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고 아르티제아가 물었다.
“진짜로 간식을 가져다주러 온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프레일은 자세를 경건하게 고쳤다. 그리고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헤일리 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청혼은 직접 해.”
허를 찔린 프레일이 뻥하게 입을 벌렸다.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동료로 주십시오, 동료로.”
아르티제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레일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언성을 높였다.
“비 전하께서 절 일 더미에 생매장 하려고 하고 계시니까요! 갑자기 남부에서 정보를 퍼오란다고 그게 되겠습니까?”
“조직은 만들었잖아.”
“관리하는 게 저 혼자입니다! 제가 비 전하가 시키는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본업은 북부에서 오는 정보와 에브론의 연락망을 관리하는 거라고요!”
프레일이 연달아 말하고 쌕쌕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냉정하게 말했다.
“헤일리는 안 돼.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보게.”
“그런 사람 찾는 것도 제 일이잖습니까? 심지어 비 전하의 인증까지 받아야 되잖아요! 저한테 걸리는 부담을 좀 줄여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경은 앞으로도 30년은 쌩쌩하게 구를 수 있으니까 괜찮네.”
아르티제아는 불평하는 프레일을 미소 띤 얼굴로 쳐다보았다.
“헤일리는 안 돼, 아직.”
그에게 단시간에 비밀을 맡길 수 있었던 것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프레일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일리는 그렇지 못했다.
프레일이 그 뜻을 알아듣고 또 한숨을 내쉬었다.
“비 전하는 이상한 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뜻 믿으시는 것 같은데, 또 사람을 시험하는 버릇도 있으시죠.”
“일을 맡길 만한가 아닌가 알려면 시험해보는 게 제일 빠르니까.”
“가신들은 그렇다 쳐도 고용인들을 시험하는 건 이제 적당히 하십시오. 대공저에 아주 촘촘하게 그물을 쳐 놓으셨더군요.”
“내 뇌물을 받는 사람은 다른 자의 뇌물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니까, 확인해둔 것뿐이라네.”
“그 결과를 알게 된 제가 괴롭단 말입니다.”
“모르는 척하게. 경의 일도 아니지 않은가?”
“비 전하는 뭐든 쉽게 말씀하시지만요.”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그래서요?”
“남부에서 소식이 왔겠지? 경은 실적을 거둔 다음에 휴가를 요청해야 잘 받아들여지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비 전하는 실적 있는 사람에게는 휴가를 주지 않고, 실적 없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휴가를 줄 분이시죠.”
프레일이 투덜거리면서도 고분고분 말했다.
“하퍼 경이 포섭한 자가 렉센 부인과 접촉했습니다.”
“하퍼 경이 포섭한 건 호덴 자작의 수하였지?”
“예. 호덴 자작이 소년이었던 시절부터 그의 말을 보살피던 말구종입니다.”
“그렇군.”
“주시할까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네. 하퍼 경은 일처리를 제대로 했을 테니까. 그냥 궁금했을 뿐일세.”
그냥 궁금한 걸로 그렇게 일을 시키냐고 프레일이 꿍얼거렸다.
“톨드에는 별일 없다고 합니까?”
“경이 나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에브론 대공가의 정보는 경의 손에 모이니까.”
빈정대는 소리였으나 프레일은 반격하는 대신에 정색하고 말했다.
“대공 전하의 편지를 뜯어보지는 않았으니까요. 아니면, 정보가 아닌 내용만 잔뜩 있습니까?”
아르티제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프레일이 만족스럽게 추격타를 먹였다.
“아니면, 혹시 두 분끼리만 통하는 암호 같은 게 있다거나 합니까?”
“경은…….”
아르티제아가 뭐라고 말하려던 때였다. 누가 문을 두 번 두드리고 열었다.
“비 전하, 말씀드릴 게 있어요. 아, 프레일 경이 계셨군요.”
헤일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