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7
악녀는 두 번 산다. 117화
아르티제아는 헤일리를 쳐다보았다. 프레일도 그랬다.
잠깐 거실에 감도는 공기가 어색해졌다.
프레일이 말했다.
“비 전하께서 말도 안 되는 농을 하신 것이잖습니까?”
“경의 말마따나 농담을 한 건데 뭘 그리 어색해 하나?”
프레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헤일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농담을 하시던 중인지는 몰라도, 제 이야기를 하신 건 아니겠지요?”
“프레일 경이…….”
“헤일리 님이 제 일을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비 전하에게 청했습니다.”
아르티제아가 공연한 말을 하기 전에 프레일이 선수 쳐서 말했다. 아르티제아가 피식 웃었다.
“일 더미에 생매장당할 것 같다고 헤일리 너를 원군으로 보내달라는데.”
“저도 이미 있는 일 더미에 깔려 죽을 것 같으니 사양하겠어요.”
헤일리가 말했다. 그리고 프레일을 흘겨보았다.
“설마 준비하는 게 꽃과 음식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아닙니다. 설마요. 저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 보이는 일입니다.”
“어렵긴 어려워요. 이곳 사람들은 정말이지, 어째서 이렇게까지 빙빙 돌아가면서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헤일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꽃의 종류는 둘째 치고 크기와 몇 송이인지 수에 따라서도 의미가 달라지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습니다만.”
“저도 알고는 있었죠.”
헤일리가 탄식했다.
“그걸 실생활에서 쓴다고는 생각도 못했다고요.”
그리고 헤일리에게는 리시아처럼 사랑스럽게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볼 능력이 없었다.
상식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새삼스럽게 외워서 응용까지 해야 했다.
헤일리와 리시아는 황후의 탄신연 준비 일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어 있었다.
초대장, 그것과 함께 보낼 작은 선물, 탄신연의 음식, 파티장의 장식에 이어 황후에게 보내지는 축하 선물의 정리에 이르기까지 쉽게 생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단순히 고귀한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르티제아의 결혼식에 참석한 이래에 첫 공식석상이다. 친지가 모인 결혼식과 달리 이번에는 황궁에서 열리는 큰 연회였다.
제국 귀족과 관료 중 중요한 자는 모두 참석할 것이다. 멀리에서부터 이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쯤 되면 축하연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연회였다.
헤일리는 잡담을 그만두고 말했다.
“비 전하, 손님이 오셨어요.”
“헤젤 영애가 오기로 했었지?”
“네. 약속보다 약간 이르게 도착했기에 응접실로 일단 안내했어요.”
“알았다.”
아르티제아가 몸을 일으켰다.
헤일리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프레일은 한 박자 늦게 결단을 내렸다. 청혼만이 아니라 스카우트도 직접 해야 하는 법이었다.
꼭 아르티제아가 시키는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에브론의 정보망 일 부만 맡아주어도 숨통이 트일 것이었다.
“헤일리 님!”
“네?”
헤일리가 걸음을 멈추었다.
“보직을 변경해볼 생각 없으십니까?”
헤일리가 이 사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고 어이없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프레일은 뻔뻔해지려고 애썼다.
“지금 하시는 일보다 훨씬 헤일리 님에게 딱 맞고 쉬운 일이 있습니다. 에브론을 위해서 중요한 일이니 보람도 있으실 거고요.”
자기가 말해도 약팔이 같았다.
헤일리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왜 조르딘 가의 딸이면서 몸도 건강한데 기사가 안 되었는지 아세요?”
프레일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군대 싫어하거든요. 기사는 더 싫어하고요. 일 떠넘기고 싶으시면 군사정보망 말고 비 전하가 따로 운용하시는 비밀조직 쪽이나 부탁해요. 그쪽에는 흥미가 있으니까요.”
프레일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헤젤은 긴장한 채로 안내된 응접실을 둘러보았다.
가구는 고급스럽지만, 호화롭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봄꽃이 화병 가득 꽂혀 있어 화사했다.
황후의 탄신 축하연에 장식용 물품을 대고자 하는 상단에서 샘플이라고 보내온 꽃들이 아르티제아의 거실을 장식하고도 남아 응접실까지 흘러넘친 것이었다.
일찍 도착했기에 헤젤은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아르티제아가 달리 사람을 만나고 있거나 급한 일을 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대공비가 시간을 쪼개어 자신을 빨리 만나러 나올 필요는 없으니까.
신분이나 명성 차이를 생각한다면, 몇 시간을 기다리게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일찍 온 것은 단순히 예의를 지키려고 그런 것이었다. 헤젤은 아예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때울 준비도 하고 왔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헤젤이 미처 핸드백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기도 전에 응접실로 나왔다.
헤젤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에브론 대공비 전하.”
“오랜만이에요, 헤젤 영애.”
헤젤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일전에 뵈었을 때에는 아직 로산 후작 영애이셨는데 말이에요. 그때에도 물론 에브론 대공 전하의 약혼녀이셨지만요.”
헤젤이 말한 것은 아르티제아가 밀라이라에게 티파티에서 끌려나와 폭행당하고, 세드릭이 구하러 왔던 날의 일이다.
그날 헤젤은 아르티제아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에 아르티제아는 제 권리조차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힘없는 귀족 영애에 불과했다. 세드릭과 약혼하기 전에는 헤젤보다 못한 처지였다.
약혼한 후에도, 여전히 헤젤과 큰 차이가 나는 위치는 아니었다. 사교계의 지위는 단순히 작위의 고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에브론의 여주인이자 황제가 총애하는 귀부인 중 하나였다.
설마 이렇게까지 단시간에 대단한 존재가 되리라고는 짐작한 사람은 많지 않았으리라.
아르티제아는 그녀의 말뜻을 알아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때에는 참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지요. 고마웠어요. 헤젤 영애가 어머니를 말려주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어요.”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그럼 제국 제일의 권세가에게 은혜를 입힌 셈이로군요?”
헤젤이 농담을 섞어 명랑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고 온화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헤젤 영애가 아니었다면, 로산 후작답게 되는 데에도, 결혼식을 치르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헤젤은 아르티제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한 박자 늦게 이해하고 입을 벌렸다가 물었다.
“비 전하의 말씀은 그게, 아, 죄송해요.”
헤젤은 얼른 다시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입 밖에 내서 말할 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가 말한 것은 헤젤이 그때에 밀라이라가 아르티제아를 폭행했다는 사실을 소문냈다는 것이었다.
그런 소문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이 좋았다.
결국에는 구설수가 될 뿐이다. 평판이란 본래 양날의 검이었다.
물론 당시에 아르티제아의 상황은 몹시 좋지 않고, 원래도 평판이 바닥이었다.
더 떨어질 자리가 없는 데다가 사건 자체가 로맨틱하게 말할 만했기 때문에 동정을 사서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긴 했다. 헤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순전히 재미로 한 것은 아니고 아르티제아를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이 조금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흥밋거리로 사람들이 이야깃거리로 삼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헤젤은 이번에 그때 일에 대한 질책을 듣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직접 말로 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로 자기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느라고 티 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헤젤이 고개를 숙였다. 아르티제아는 빙긋 웃었다.
“하지만 제국 제일의 권세가라는 말은 납득할 수 없군요. 나를 두고 사람들이 겁에 질려 달아난 대공비, 황제 폐하에게 이용당한 어린 여자라고 말하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답니다.”
“세상사람 절반은 어리석으니까요. 하지만 비 전하께서는 황후궁의 문을 여셨고, 게다가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아 서부의 환곡 사업을 맡으셨는걸요. 그 의미를 아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아르티제아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살롱과 커피하우스의 여론은 분분했다.
그러나 그것까지 포함해서, 지금 이 순간 누가 가장 인기 있는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는가를 포함하여 말한다면 틀림없이 아르티제아였다.
그녀가 정계를 주도하는 권력자는 아닐지 몰라도, 그런 의미에서 사교계 제일의 귀부인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헤젤이 약간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무엇보다도, 로산 후작 대부인의 총애와 위세가 비 전하를 넘어서지 못했으니까요.”
밀라이라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이, 황궁에서 아르티제아가 밀라이라를 외면했던 것도 이미 소문 나 있었다.
아르티제아가 너무 냉정했다거나, 당연히 그랬어야 했다거나, 밀라이라의 자업자득이라거나, 여러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어댔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부분은 아르티제아나 밀라이라 자체가 아니었다.
황제가 아르티제아에게 노기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부분이었다.
황제는 모든 사정을 알고서도, 밀라이라가 직접 하소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체 했다.
그는 그날 우는 밀라이라를 달래기만 했다.
딸과 외손녀들보다도 밀라이라를 우선시하기는 했다. 황제는 시종에게 밀라이라가 복도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유니스 백작 부인에게 돌아가라고 일렀다. 그리고 밀라이라를 데리러 가서 손수 안아 일으켜 자기 침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밀라이라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권했다. 황궁에 밀라이라의 것으로 마련된 처소가 있지만, 거기에 있으라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자신의 침실에 그냥 있으라고 말한 것이었다.
황실의 문장이 새겨진 자신의 반지를 뽑아서 밀라이라의 엄지손가락에 끼워 주고, 어깨에는 황금으로 자수를 놓은 망토를 둘러주었다.
그러나 밀라이라에게 왜 그러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를 불러다 꾸짖거나 에둘러서 어머니에게 잘하라고 타이르지도 않았다.
명분을 만들어 준 아르티제아의 공적은 칭찬받아야 했다.
서부 환곡 사업을 맡긴 이상 당분간 일에 관한 실패 말고 다른 이유로 그 권위를 떨어뜨려서도 안 되었다.
세드릭을 서운하게 해도 안 되었다.
황제는 밀라이라를 이용해 신하들에게 주종을 명백하게 깨닫게 하고, 때로는 일부러 도발하여 짓밟음으로써 권위를 공고하게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었다.
밀라이라가 아르티제아와 모녀지간이고, 결혼 때의 일이 있었기에 더 건드릴 수 없었다.
밟아 누르되 도가 지나쳐서 배수의 진을 치게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황제는 아르티제아의 협박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위험성은, 선대 에브론 대공이나 세드릭의 됨됨이와 별개로 상존하는 것이다.
대대로 황실이 식량 공급줄을 쥐고 흔들면서도, 위협만 하지 않고 명예나 재물로 회유해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황제의 태도야말로 아르티제아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는 가장 큰 증거였다.
헤젤은 관찰하는 시선으로 아르티제아를 살폈다.
1년 전만 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해낸 사람이 궁금했다.
아르티제아는 결코 헤젤이 알고 있던 로산 후작 영애가 아니다. 대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