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18
악녀는 두 번 산다. 118화
아르티제아는 헤젤의 시선을 알아챘다.
헤젤은 타고나기를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관찰력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그런 눈치를 다 숨기지 못했다.
아르티제아는 무례하다고 생각하여 꾸짖거나 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헤젤이 유용한 사람이었으니까.
헤젤은 자신의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민망한 얼굴을 했다.
“그런 분께서 불러주셔서 영광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때 한 번 만나긴 했지만, 교분을 쌓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으니까요.”
아르티제아의 대답에 헤젤이 말했다.
“네. 이렇게 가까이에서 말씀을 나눌 일은 영영 없지 않을까 생각 했었거든요.”
“나는 아무나 초청하지 않는답니다. 헤젤 영애도, 미엘르 영애도, 충실하고 품위 있는 숙녀잖아요.”
아르티제아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두 분의 부모님이 비록 전통 있는 귀족 가문 출신은 아니지만, 요즘 세상에 혈통이란 그렇게까지 중요한 요소도 아니지요.”
“어머.”
“미엘르 영애는 키쇼어 경의 딸이고, 헤젤 영애의 어머니는 수도에서 가장 큰 신문사의 상속자, 아버지는 명성 높은 문필가이니, 오히려 몇백 년 전 선조의 명예에 기댈 뿐인 자들보다 월등히 낫다고 볼 수 있지 않겠어요?”
“비 전하의 말씀에는 모순이 있네요. 미엘르도, 저도, 결국 훌륭한 부모님의 딸이라는 것뿐이니까요. 그것은 핏줄로 물려받은 것이 중하다는 말씀이 아니신가요?”
“훌륭한 부모에게서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오래된 혈통을 중시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지요.”
아르티제아의 말에 헤젤의 얼굴이 밝아졌다.
“부모님을 인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는 무척 자랑스러운 분들이에요.”
“자랑스러워할 만한 부모님이시고, 또 그런 점에서 헤젤 영애에게 무척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답니다.”
“제가 비 전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
겸양하면서도 헤젤이 설렘을 숨기지 못하고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황후 폐하의 탄신 축하연에 제국을 대표할 만한 학자와 문필가를 여럿 초청하려고 해요. 또, 신문에서도 흥미 위주로 가십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취재 기사를 써주기를 원하고요.”
아르티제아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런 일을 잘 알지 못하고, 사실 이번에 연회 준비를 돕기로 한 영애들도 그런 부분에는 많이 어두워요.”
“네.”
“그렇다고 해서 아랫사람에게 그냥 내맡겨 두기에는 중요한 일이니까요. 헤젤 영애라면 이 부분을 맡아서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군요.”
“네, 제가 있는 힘껏 해보겠습니다!”
헤젤이 말했다. 실은 부름을 받았을 때에도 무슨 일을 맡게 될지 조금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감격했다.
헤젤은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헤젤의 꿈은 장차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문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헤젤의 부모는 아직 그녀를 어린 아이로 여겼다. 하지만 18살이라면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나이였다.
인맥을 늘리고, 작은 것이나마 정보를 사고팔거나 작은 소문을 흘려 어떻게 퍼뜨려지는지 살펴보는 것은 모두 미래를 위한 일이었다.
그녀는 종종 부모의 신문사에 실릴 수 있는 기사를 쓰려고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거의 받아 들여지지 못했다.
그런데 아르티제아가 학자와 문필가를 초대하는 일을 맡긴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인을 선별하라고 말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날의 작은 인연이 자신에게는 평생 최대의 기회가 되었다.
사실 헤젤이 미래에 아무리 큰 신문사의 주인이 되거나 이름 있는 저널리스트가 된다 하더라도, 에브론 대공비 같은 대귀족과 직접 얼굴을 마주할 기회는 그리 쉽게 오지 않을 것이었다.
헤젤에게 감사할 것 없다고 우아하게 사양하고 나서 아르티제아는 물었다.
“그런데, 미엘르 영애는 함께 오지 않았군요. 미엘르 영애는 황궁에 익숙하니, 헤젤 영애와 서로 도와 일을 맡아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 요즘 몸이 안 좋아요.”
헤젤이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비 전하께 사과의 말씀을 전해 달라고 했어요. 좀 나아지면 편지를 쓸 거예요.”
“편지조차 쓰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안 좋은가요?”
아르티제아는 짐짓 놀라며 되물었다. 헤젤이 억지로 웃었다.
“한동안 무척 몸이 좋았거든요. 그래서 너무 많이 놀았나 봐요. 갑자기 기력이 빠져서 좀 쉬고 있긴 한데……. 곧 좋아질 거예요.”
“저런…….”
“미엘르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거든요. 워낙 몸이 약해서, 한 번씩 크게 앓았거든요. 하지만 늘 다시 일어났어요.”
“언제 한 번 병문안을 가야겠군요. 미엘르 영애가 힘들지 않다면요.”
아르티제아의 말에 헤젤이 미소를 지었다.
“기뻐할 거예요. 앓아누울 때마다. 항상 아픈 것보다 심심한 게 괴롭다고 하거든요.”
“그렇군요.”
“미에르는 몸은 약해도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참 안 된 일이라고 아르티제아는 헤젤에게 대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로서 헤젤과 미엘르에게 편지를 보낸 목적 중 하나가 달성되었다. 아르티제아는 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전해 듣고, 병문안까지 연결시킬 필요가 있었다.
헤젤은 곧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미엘르가 다시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19살의 생일을 맞이하지 못했다. 딸을 잃은 키쇼어는 황제에게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수도의 저택을 떠났다.
아르티제아는 그 상황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다.
성녀가 되어서 해낼 수 있는 가장 극적이고 결정적인 일이었다.
* * *
로렌스가 방문한 것은 며칠 후의 일이었다.
“어쩐 일이세요, 오라버니?”
아르티제아는 의아하게 물었다.
그녀와 로렌스는 이유도 없이 서로의 집을 방문할 만큼 다정한 남매 사이가 아니다.
로렌스의 얼굴은 약간 불편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그것이 더 이상했다.
만일에 첩자를 들켰다거나, 아말리에가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로렌스는 미친 듯이 화를 낼 것이다.
혹, 밀라이라의 일로 뭔가 의논해야 할 만큼 난처한 일이 생겼다면, 짜증스러워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아르티제아의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다면, 온화하고 부드러운 얼굴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로렌스의 얼굴은 그 셋 모두 아니었다.
그 외에는 달리 있을 법한 급한 용건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갈 참이었나 보구나.”
로렌스가 응접실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리다가 아르티제아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외출용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아, 네. 잠시 병문안을 할 사람이 있어서요. 중요한 일은 아니에요. 오라버니의 용건이 중요하다면 그쪽을 우선시해야죠.”
“내 용건도 대단한 것은 아니다.”
로렌스는 일찍이 아르티제아가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앉으세요.”
“오래 방해할 생각은 없다. 나도 곧 돌아갈 거야.”
로렌스가 선 채로 말했기 때문에 아르티제아도 굳이 망토를 벗고 자리에 앉지 않았다.
로렌스가 빠른 어조로 말했다.
“황후 폐하께 드릴 선물을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해서 말이다. 단순히 비싼 것으로 해서 될 것도 아니고, 옷은 네가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아, 제가 그렇지 않아도 연락 드리려고 했었어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카네이션 꽃잎을 엮은 모양으로 보석관을 만들 거예요. 월계관처럼요. 잠시만요. 어딘가에 디자인화가 있을 거예요.”
“아니, 굳이 보지 않아도 괜찮아. 카네이션 꽃잎 모양이라니, 너무 유치한 게 아니냐?”
“어린애가 봐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쪽이 좋아요. 결국 오라버니가 황후 폐하를 어머니로 모시게 되리라는 것을요.”
“공연히 황후 폐하의 노기를 사지는 않겠지?”
“황후 폐하께서는 정치적인 분이세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로렌스를 양자로 입적하는 서류에 서명하기 전까지, 황후는 무엇을 받든, 무슨 소문이 나든,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어차피 로렌스의 경쟁자는 황제의 자식이 아니라 동생이기 때문이다. 로이가르 대공의 상속권은 황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로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티제아의 말은 그레고르 황제의 평가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 관을 오라버니가 황후 폐하께 선물로 드리는 것으로 하세요. 같은 것을 황제 폐하께도 드리고요. 꼭 실제로 두 분이 사용하실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했다는 소문은 공방에서 퍼뜨리면 돼요.”
로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에게 주는 한 쌍의 선물을 진상하는 것은 그가 생각하기에도 몹시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사원에는 부모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가 될 만한 물건을 봉납하는 게 좋겠어요.”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었으니까. 준비시켰다. 아바마마와 황후 폐하의 존함을 새긴 대모갑을 황금으로 만든 함에 봉인해서 탄신 축하연 사흘 전에 사원에 봉납할 예정이다.”
“잘하셨어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선물로 보내실 보석관에 관해서는 며칠 안에 정리해서 인편으로 보내드리도록 할게요. 황후 폐하께서 입으실 옷과도 관련된 일이라서 완성까지는 제가 손을 써야 할 것 같아요.”
“알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러 굳이 직접 오실 필요는 없으셨을 텐데.”
“…….”
로렌스가 잠시 응접실 여기저기에 시선을 주었다. 돌아본다고 해서 없는 사람이 나타날 리도 없는데 말이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아니.”
로렌스가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로렌스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
굳이 직접 올 필요가 없었다는 아르티제아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황후의 생일선물은 믿을 만한 심부름꾼을 보내거나 간단한 편지로도 해결할 수 있는 용무였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제대로 약속을 잡아 만나는 게 옳았다. 용건이 없어도, 우애를 두텁게 한다는 명목은 있을 터였다.
로렌스는 자신이 온 이유가 새삼 핑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려고 마차에 올랐을 때까지도 계속해서 핑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후회스러웠다.
“별것도 아닌 용건으로 괜히 방해했구나. 나는 이만 돌아가겠다.”
“네.”
“배웅은 필요 없으니까 너 할 일 해라.”
“네. 안녕히 가세요.”
아르티제아는 애써 태연한 신색을 유지했다. 저도 모르게 쌀쌀한 목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참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로렌스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에브론 대공저를 나섰다. 쓸데없는 짓이었고,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이름도 듣지 못한 그 시녀의 얼굴이 왜 자꾸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때마다 등뼈 어딘가를 찔리는 듯한 초조감에 사로잡혔다.
로렌스가 마차에 막 올랐을 때였다.
금발을 하나로 올려 묶은 리시아가 큰 말을 타고 속보로 들어왔다. 그리고 정문 앞에 마차가 서 있는 것을 알고는 말을 멈췄다.
“누가 오셨어요?”
리시아가 현관 앞의 마차를 보고 배웅 중이던 부집사에게 물었다.
로렌스는 마차에서 내렸다. 말 위에 올라앉은 리시아의 얼굴이 해를 등진 탓에 눈부시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