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
악녀는 두 번 산다 12화
3. 손을 잡다.
세드릭은 그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하면 제가 전하를 황제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단아한 소녀의 얼굴이 눈꺼풀 밑에 어른거렸다.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황제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은 황제가 되고 싶은가? 그 고민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에게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아르티제아만 있지는 않았다.
그녀보다 더 그럴 듯한 위치의 사람이 은밀히 찾아온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세드릭은 한 번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없었다.
황제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황제가 되어 부모의 복수를 해라.
그에게 황좌를 언급한 사람은 언제나 그 두 가지를 말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무고하게 역모로 몰려 처형당한 것이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일을 잊었다. 그는 살아남아 에브론 대공가를 계승했고, 부모는 복권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한 번도 자기가 사선 위에 서 있음을 잊지 않았다.
어쩌면 그레고르 황제는 어린 누이동생을 죽인 것이 미안해서, 또는 세드릭에게 자신을 위협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차기 황제는 다르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세드릭의 혈통이 너무 짙었다.
에브론 대공령의 신하들은 세드릭이 선대 대공 부부와 같은 위험에 처하게 되면, 그때야말로 진짜로 군사를 일으켜 에브론의 힘을 보여주겠노라고 벼르곤 했다.
세드릭은 항상 그들을 말리는 입장이었다.
그들이 세드릭을 지키기 위해 그러는 것처럼, 세드릭도 그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숨겼다.
중앙 정계를 멀리하고, 권력을 혐오한다는 듯이 굴었다. 에브론 대공령은 더욱 철저하게 제국의 방패가 되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대공령을 포기하고 아무 힘도 없는 혈혈단신이 될 게 아니라면, 확실하게 살아남을 방법은 그 자신이 황제가 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는 대공령과 대공가를 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세드릭의 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승이니 제위이니 하는 말을 지금까지 혀끝에조차도 올리지 않은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 더러운 일에 손을 담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느니 세드릭은 그냥 깨끗하게 죽기를 바랐다.
복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해서 황좌에 올라 복수의 피로 손을 적시면, 그의 부모가 기뻐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에브론 대공령의 사람들이 칭송하는 것처럼 선하고 깨끗한 사람이었다면, 세드릭이 복수하기를 바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르티제아가 먼저 말한 것은 생존도, 복수도 아니라 크라테스 제국의 백성이었다.
세드릭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오로지 에브론 대공령만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 왔다. 자신의 터전,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에도 버거웠다.
하지만 크라테스 제국 자체를 외면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제국의 방패였다.
제국 황실에 대한 충성심은 티끌만큼도 없었으나 제국민을 지키는 일은 늘 그의 마음 중심에 있었다.
세드릭은 아무와도 이 고민을 나눌 수 없었다.
측근들은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던지려 들었다.
만일에 세드릭이 계승전에 참여하겠다고 한다면, 모두가 기뻐하며 행동에 나설 것이었다.
아르티제아와 다시 한 번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그녀라면 안개 낀 미로 속에서라도 명확하게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킬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밤새 눈 한 번 붙이지 못한 채 고민했으나 아침 해가 뜰 때쯤에는 결국 자신의 마음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밤사이에 주무시지 못했습니까?”
아침에 막사로 들어온 에브론 대공가의 집사 안스가르가 물었다.
세드릭은 이미 일어나 혼자서 면도를 하고 있었다. 얼굴이 초췌하고, 눈 밑이 휑하게 어두웠다.
안스가르는 전쟁터까지 따라다니며 세드릭의 시중을 들었다.
세드릭은 시중을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하는 편이 아니었다. 늙은 집사에게 무슨 일이나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 더 피곤했다.
하지만 편안한 저택에서 머물러 쉬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안스가르가 주인 부부를 비참하게 잃은 이후로 세드릭마저 그렇게 잃을까봐 불안하고 염려하여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뒤척였어.”
안스가르는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가 관여할 수 있는 분야는 집안 일에 한한 것이다. 공무로 고민하는 주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보살펴주는 것 뿐이었다.
안스가르는 가지고 들어온 뜨거운 물을 대야에 부었다. 그리고 수건을 적셔 짰다.
“잠시 앉아 보십시오, 세드 님.”
“음.”
세드릭은 순순히 그가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안스가르가 쿠션을 가져다가 그를 편안하게 기대게 하고 목을 젖힌 다음 얼굴 위에 따끈따끈한 수건을 얹었다.
“잠들 것 같아.”
“잠깐 주무시겠습니까?”
“아니야. 내가 늦잠 잘 만큼 한가한 사람은 아니지. 오늘은 입궁할 거야.”
세드릭이 그렇게 말했다. 안스가르가 군복 대신 예복을 꺼냈다.
세드릭은 옷을 갈아입고 호위 두 명을 거느리고 수도로 향했다.
* * *
세드릭이 황궁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즈음이었다.
황제는 오전 중에 가벼운 알현을 하거나 개인적인 손님을 맞이했다.
세드릭이 이 시간을 택한 것은, 그와 함께 점심까지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도착했을 때에는 유니스 백작 부인 샬럿이 두 딸을 데리고 와 있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아르티제아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나이가 이제 36세, 큰딸이 올해로 15살이 되었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이제 멋대로 굴거나 미운 짓을 해도 예쁠, 마냥 귀여운 나이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면, 부친의 기분을 맞추고 환심을 사야 했다.
제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황제는 딱히 내키지 않는 때까지 자식을 보듬는 성격이 아니었고, 그럴 필요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유니스 백작 부인이 반항기에 접어들고, 비슷한 시기에 로렌스가 태어난 뒤로는 부녀간에 개인적인 시간을 거의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여워하던 딸을 갑자기 미워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냥 만날 때마다 짜증이 나므로 후순위에 돌려놓았을 뿐이다.
오늘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 마음을 맞춰 주려는 유니스 백작 부인의 속내를 황제도 모르지 않았다.
어쩌면 어제 자신의 안전을 어지럽힌 일로 죄책감이 생겨서 제 나름대로 용서를 받으려고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쨌든 간에 오랜만에 딸은 마음을 돌려 효도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는 좋은 날씨와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
아르티제아가 준 호박 브로치도 그를 기쁘게 했다.
그는 아르티제아를 밀라이라의 부속물로 받아들인 지 오래였다.
가끔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딸처럼 생각한다거나 정이 들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딱히 미워할 만큼 아르티제아가 못된 짓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딱히 성욕의 대상이 아니라도, 어리고 고운 소녀가 사랑받고 싶어서 눈치를 살피는 것은 그를 적지 않게 기분 좋게 했다.
만일에 어제의 일로 아르티제아가 울고 밀라이라가 하소연했다면 황제는 몹시 기분이 나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창 토라지기 쉬운 나이의 소녀가 뺨을 맞고도 원망하지 않고 슬기롭게 황제의 마음을 풀어주려 했으니 기특했다.
게다가 반항적으로 굴던 딸이 사랑스럽게 굴며 눈치를 보니, 황제로서는 손대지 않고 이득을 본 기분이었다.
황제는 이제 나이가 많았다. 젊은 시절과 달리 이제 아름다운 정부가 유혹해오는 것만큼이나 자식과 손자의 재롱이 즐거웠다.
그러던 중에 세드릭의 방문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흔쾌히 세드릭을 불러들였다.
“어서 오려무나. 마침 쉬고 있던 참이란다.”
세드릭은 시종장의 안내를 받아 황제의 거실로 들어서려다가 멈칫했다.
서재나 알현실이 아니라 거실로 안내되었을 때에도 놀랐다.
게다가 유니스 백작 부인과 아이들까지 있으니 완전히 사적인 자리였다.
“황공합니다. 유니스 백작 부인께서 와 계신 줄 알았으면 방해하지 않았을 텐데요.”
세드릭은 형식적인 인사를 마치고 첫 마디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황제가 하하 웃었다.
“왜 그리 섭섭하게 딱딱한 말을 하느냐? 샬럿은 짐의 딸이고, 너는 짐의 조카이고, 너희 둘은 사촌지간인데. 우리가 다 한 가족인 걸.”
황제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마치 지금까지 서부군 문제로 세드릭이 수도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세드릭은 이따금 황제가 자신의 부모를 죽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고까지 느낄 때가 있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황제가 시시때때로 그를 굴복시키려 들 이유가 없었으니까.
세드릭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황제가 명랑하게 말했다.
“너희 둘은 만나지 않은 지 오래 되었지? 사촌이라고는 하지만, 세드에게는 달리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친남매처럼 가깝게 지내려무나. 짐도 자주 보러 오고, 수도 밖에 진을 치고 도무지 들어오지를 않으니 짐이 서운한 생각을 할 뻔했다.”
황제가 그렇게 말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가 정말로 서운하게 생각했더라면, 세드릭에게 복잡한 정세는 제쳐 두고 사적인 알현부터 하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혹은 이야기라도 들어주려 할 수도 있었다.
황제는 그러지 않았다. 서부군을 해산하고 세드릭이 혼자 몸으로 수도로 들어와 부절을 반납하라는 황명만 내렸다.
그것은 서부군의 미래가 자기 손에 달렸으니, 와서 머리를 숙이라는 의미였다.
황제가 말했다.
“티아와도 친하게 지내주고 말이다.”
“아바마마는 또 그 말씀을 하시는군요. 군무로 늘 나다니는 세드릭과 로산 후작 영애가 마주칠 일이 얼마나 있을 거라고요.”
“무슨 소리. 사람이 인연이 되면 어디에서인들 못 만나겠느냐? 게다가 티아는 로렌스의 동생이 아니냐? 피는 섞여 있지 않다고 하지만, 완전한 남과는 다르지.”
“로산 후 영애……, 말씀입니까?”
세드릭은 놀라서 되물었다.
황제의 입에서 그 이름이 먼저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제 기사를 보내 티아를 배웅시켰다면서?”
그 이야기는 키쇼어가 황제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별일도 아니었는데 벌써 알고 계시는군요. 사원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호위를 한 명도 데리고 있지 않기에 그랬습니다.”
“그러면, 내내 수도 주위만 빙빙 돌다가 오늘 짐을 알현하러 온 것이 로산 후작 영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이냐?”
세드릭은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미였기 때문에 바로 부정하지 못했다. 황제는 유쾌하게 웃었다.
“고지식한 너도 그럴 때가 있구나. 어제 외로운 생각을 했을 테니, 오늘 한 번 방문해주면 좋아할게다.”
“로산 후작 영애 때문에 입궁한 것이 아닙니다. 폐하, 서부군에 관해…….”
“어허. 굳이 내실로 부른 이유를 모르겠느냐?”
황제가 짐짓 호통 치듯 말했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그런 일 이야기를 하지 않는 법이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려무나. 그 이야기는 사흘 후에 다시 하자. 짐이 설마 하니 서부군이 이번에 세운 공적을 잊겠느냐?”
황제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에게 손수 차를 따라주었다.
세드릭은 떨떠름한 입 안을 차로 축였다.
고작해야 그가 아르티제아와 마주쳤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뿐인데, 황제의 태도는 벌써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