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2
악녀는 두 번 산다. 122화
15. 황후 탄신연
키쇼어가 복귀한 것은 미엘르가 눈을 뜨고 2주 뒤의 일이었다.
황제는 조금 의아하고, 상당히 흥미로워하는 얼굴로 키쇼어를 바라보았다.
“미에르가 병석에서 일어났다지? 축하하네.”
“황공합니다. 폐하께서 귀한 약과 의사를 보내주신 성은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실제로 도움이 되지를 않았는데, 무얼. 정말 다행이로군. 축하하네.”
키쇼어가 말없이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만 표시했다. 황제가 싱글거리고 웃었다.
“그런데 좀 의외이긴 했네.”
“예?”
“좀 더 쉴 거라고 생각했거든. 미엘르가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쾌유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완치될 때까지 옆에 있어주려 할 줄 알았거든.”
“의사 말로는 어차피 완치는 없을 거라고 합니다. 이제는 일어나서 저택 안에서는 편안하게 돌아다닐 수 있기도 하고요.”
키쇼어가 말했다.
“친구들이 병문안을 올 수 있게 되니까 아비가 온종일 집에 붙어 있는 게 불편한 것 같습니다.”
“서운하겠구먼.”
황제의 말에 키쇼어가 씁쓸하고 엷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 애가 건강해져서 친구들과 놀 수 있게 되는 것이 제 평생소원이었습니다. 서운하냐고 하면,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제 곧 성인이니까요.”
“흠.”
“그 애 친구들 중에도 벌써 결혼한 사람이 있는데, 부모가 들여다보고 자꾸 잔소리하는 게 좋을 리 없지요.”
“충분히 그럴 나이지.”
황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은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네. 번잡한 수도보다는 어디 동부나 남부로 요양 가는 것이 미엘르의 건강에도 나을 테니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폐하의 성은에는 보답하지 못할 길이 되지만 그게 나을지도 모르고…….”
“나보다 미엘르가 걱정되는 게 당연하지.”
황제의 말 속에 섞인 짓궂음을 눈치 채고 시종들이 숨을 죽이며 고개를 숙였다.
형식적으로야 그게 우선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식 사랑이 충성보다 우선이냐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쇼어는 알면서도 태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황제의 이런 시험 같은 장난에 한 번도 걸려 든 적이 없었다.
“폐하의 은혜 덕분에 딸을 보살필 수 있는 것이니까요.”
“하긴. 그러니 자네가 그런 사람이니까, 티아가 성녀 올가상까지 들고 찾아갔던 것이겠지.”
역시나 황제는 전부 알고 있었다. 예상했었기에 키쇼어는 쓴 미소가 들키지 않도록 고개를 조금 숙인 채로 답했다.
“황금과 보석으로 성녀 올가상을 새로 만들어 아르티제아 님과 제 딸의 건강을 기원하는 글귀를 새겨 사원에 봉헌하기로 했습니다.”
“호오.”
“치유의 기적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가호 같은 것이 조금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키쇼어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그 성녀상에 가호가 남아 있었으면 하고요. 마음 써주신 아르티제아 님께도 감사드리는 의미도 있습니다.”
거짓말을 해봤자 황제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아르티제아가 황후에게 받은 결혼 선물을 미엘르에게 빌려준 것이 둘 사이의 친분 때문이 아니라 키쇼어의 지위 때문이라는 건 명백했다.
그래서 키쇼어는 선을 그은 것이다.
딸이 기적적으로 눈을 떴다는 사실에 대해 신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그 계기가 되어 준 사람을 위해 신에게 기원한다.
앞뒤가 잘 맞고, 도를 넘어서지도 않는다.
동시에 아르티제아의 이름을 넣어 사원에 황금 성녀상을 봉헌하는 것은, 사원에 아르티제아를 대신하여 보내는 간접적인 뇌물이 될 수 있었다.
황제가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한 태도로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키쇼어도 알고 하는 일일 것이다.
황제가 생각하기에도 그 정도라면 적당한 보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사원에 뇌물을 좀 준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서부 환곡 사업을 맡았다. 모름지기 구휼이란 사원의 지원을 받아야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법이다.
감사의 뜻을 표하는 동시에 그녀에게 주는 도움도 간접적인 것에 한한다고 한계도 정한 셈이었다.
황제는 곧 미소를 짓고 키쇼어를 바라보았다.
“그렇군. 그런데 자네에게는 좀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겠어, 황금 성녀 상이라니.”
“미엘르가 눈을 떴는데, 그것이 문제이겠습니까? 성녀 올가상이 정말로 기적을 일으켜 완치라도 시켜준다면, 기꺼이 전 재산을 헌납하고 맨발로 수도원에 들어갈 겁니다.”
“그러면 안 되지. 처자식이 먹고 살 것은 남겨야 할 것 아닌가?”
황제가 농담처럼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시종에게 금괴를 두 개 가져오게 했다.
“자네가 맨발이 되기 전에 축하 선물을 좀 주어야겠군. 새 성녀상을 만드는 데에 보태 쓰게.”
“성은이 망극합니다.”
키쇼어가 무릎을 꿇고 공손히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 * *
황후의 탄신연은 막힘없이 차곡차곡 준비되었다.
장소는 루미너스 홀로 결정되었다. 황궁의 정면에 있는 그 3층 건물은 작았지만 매우 위엄 있고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제국 초창기에 처음으로 세워진 황궁으로, 지금은 오로지 가장 중요한 행사만 그곳에서 열렸다.
대관식과 황태자 책봉식, 국혼, 장례식, 대승을 거둔 승전의 개선식 같은 일 말이다.
그 외에는 매년 각국에서 보내는 신년 축하 사절을 맞이하여 책력을 나누어주는 것과 기사 서임식이 관습에 따라 루미너스 홀에서 열렸다.
황제 탄신연조차도 특별히 기념할 만한 때가 아니라면 루미너스 홀을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는 루미너스 홀을 여는 것이 과하다고 막지는 않았다. 18년 만에 궁을 열고 나온 황후를 압박할 만한 명분이 없었던 탓이다.
황후가 로렌스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랬다.
사생아라도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아내를 압박하는 것과 정부를 위해 그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아르티제아는 연회장의 장식부터 황후의 옷과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골랐다.
날씨가 변덕스러운 계절이었기 때문에 춥거나 더울 것을 대비해 화로와 얼음이 모두 준비되었다. 호화로운 선물이 산처럼 쌓였다.
이언츠 왕국에서는 그날까지 새 옷감의 출시를 미루기로 했다.
황후의 탄신연 드레스에 사용하기로 선정된 데다가, 심지어 그날은 황후가 18년 만에 실질적으로 상복을 벗는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첫 선을 보이기에는 아주 제격인 자리였다.
새롭고, 아름답고, 값비싼 것은 언제나 인기 있는 법이다.
하물며 황후가 그것으로 새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루미너스 홀에 나선다고 하니, 이보다 더 대단한 홍보는 없었다.
돈이 있는 귀부인은 모조리 새 옷감을 찾았다. 예의에 어긋나니 옷은 만들지 못해도, 부채나 장갑 같은 작은 소품은 괜찮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남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화려한 천은 행커치프나 옷깃의 장식으로 쓸 수 있다. 잔잔하게 반짝거리는 정도의 수수한 천으로는 셔츠나 크라바트를 만들어 입으면 된다.
그러나 의상실은 철저하게 거절했다.
아르티제아가 모아들인 어린 숙녀들은 이런 일에 철저했다. 그리고 부모들도 당파와 관계없이 일을 도와주었다.
모처럼 딸이 황후궁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 하게 되었는데, 그다지 옷이나 장신구의 문제로 황후의 비위를 거스르게 할 필요는 없었다.
상대는 나이가 든, 황태자의 책봉 권한을 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는 황후였다.
게다가 이번처럼 옷에 깊은 의미가 깃든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었다.
로이가르 대공비조차도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도 입고 싶었는데.”라는 정도로만 말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황후와 위세를 겨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옷감 몇 개 가져오라는데 그게 무리야?”
쨍그랑!
밀라이라가 찻잔을 집어던졌다.
다행히 찻잔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뜨거운 찻물이 뿌려졌다.
허벅지에 찻물이 끼얹어진 견습 재봉사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하녀와 재봉사들이 겁을 집어먹고 무릎을 꿇었다.
의상실에서 패악을 부리는 귀부인이 결코 적지는 않았다. 저택 하녀 와 의상실 직원에게 하는 것을 보면, 우아하고 품위 있다고 소문 난 사람과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경우도 있었다.
밀라이라는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편이었다.
그녀는 극심한 기분파였다. 옷이 마음에 들 때라면 말단 하녀에 이르기까지 자개단추를 하나씩 사주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을 때에는 진열되어 있는 천이란 천은 모조리 찢어버리고 남의 머리를 잘라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밀라이라가 올 때에는 모두가 재단용 가위며 바늘을 숨기느라 야단이었다.
마담 에밀리는 얼른 화상을 입은 재봉사를 데리고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새로 온 남자 견습의 얼굴이 준수했기에, 조금이라도 밀라이라의 분노를 달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설명을 시켰었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로산 후작 대부인. 하지만 황후궁이 문제가 아니라, 이언츠 왕국 쪽에서 공급을 해주지 않아요.”
“그걸 어떻게 해보라는 거잖아. 내가 누군데, 그깟 옷 한 벌을 못 해 입는단 말이야? 돈이라면 주겠다고 했잖아!”
밀라이라가 고함을 질렀다. 에밀리가 죄인처럼 말했다.
“원래부터 이언츠에서는 첫 출시 전까지는 드레스 한 벌을 완성할 정도로 많은 양의 옷감을 보내주지 않아요. 저희도 기껏해야 샘플로 손수건 한 장씩밖에 받지 못했어요.”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이미 다른 의상실과 포목상에도 모두 연락 넣어 봤어요. 정 원하신다면, 드레스 가슴 쪽이나 치마 일부에 이용해서 만들어 드릴 수는 있어요.”
에밀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해도 충분히 아름다우실 거예요. 옷깃 쪽에 넣으면 보석 목걸이를 하지 않으셔도 될 정도로 아주 화사하게…….”
나이 많은 황후가 전체를 새 옷감으로 해 입는 것보다 밀라이라가 훨씬 아름다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밀라이라가 진정할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황후와 아름다움을 겨루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려워서 황후의 이름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에밀리, 이제 아주 날 우습게보네?”
밀라이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분노로 미쳐 버리기 직전이었다.
로렌스가 카네이션 꽃잎 모양으로 깎은 보석관을 두 개 만들어 각각 황제와 황후에게 바칠 예정이라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 그것을 아르티제아가 주문했다는 것도.
밀라이라는 울분에 차서 사벨린 가에 있는 로렌스의 저택으로 달려갔었다.
그러나 로렌스는 아예 그녀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로렌스의 집사는 난처하면서도 정중한 태도로 축객령을 내렸다.
「죄송합니다, 대부인, 주인님께서 요즘 많이 바쁘셔서요. 돌아가서 로산 저택에서 조용하게 지내고 계시면, 시간이 나실 때에 방문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밀라이라는 하소연 같은 것을 할 상대가 없었다.
무슨 비밀을 말해도 지켜주는 아르티제아는 이제 집에 없었다.
에브론 대공저의 고용인들은 밀라이라가 왔다는 소식을 결코 아르티제아에게 전하지 않았다.
밀라이라는 그 집에서는 집사에게 축객령을 듣지조차 못했다. 대문 앞에서 기사가 칼을 겨누며 돌아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황제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 정말로 로렌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러면 자신은 대체 누구를 기대어 살아가면 좋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