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3
악녀는 두 번 산다 123화
밀라이라는 의상실을 죄다 뒤집어서 새 옷감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곳을 떴다.
다행히 다친 종업원은 더 나오지 않았다.
에밀리는 이런 일을 한두 번 겪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밀라이라를 진정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원하는 것을 전부 들어주었다.
밀라이라는 옷감 서랍이며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함까지 모조리 뒤집어엎었다.
마침내 폭풍이 지나가듯 밀라이라가 가게를 나섰을 때에는 마치 떼도둑이라도 든 듯했다.
“하아, 진짜, 지독하네요, 대부인은.”
종업원 하나가 진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다 언제 정리하나 싶었다.
에밀리가 기운 없이 말했다.
“그래도 다친 사람이 많진 않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처음 겪는 것도 아닌데.”
“정말 너무해요. 우리가 무슨 노예인가? 따님인 에브론 대공비 전하께서는 점잖으신 분인데 말이에요.”
“대부인도,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거야.”
에밀리는 밀라이라를 동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에밀리의 밑에 있는 수석 재봉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옛날 생각나네요. 전에는 대부인이 황후 폐하에게 옷으로 굴욕을 준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요?”
나이 어린 종업원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그게 한 25년 전 일일 거야. 로렌스 경이 태어나기 전의 일이니까. 황후 폐하께서 참석한 무도회에서 똑같은 옷을 입은 코르티잔 다섯 명을 시녀처럼 거느리고 들어갔거든.”
“우와. 대담하네요.”
“그리고 본인도 황후 폐하의 옷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돈을 많이 들인 고급스러운 옷을 해 입고 갔고.”
로산 후작 대부인의 용모가 용모라, 황후 폐하와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공간 안에 서 있으면…….”
종업원이 으아, 하고 입을 벌렸다. 에밀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황후 폐하도 예사 분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코르티잔들의 옷을 속옷만 남기고 벗겨 내쫓으셨지.”
“로산 후작 대부인도요? 황제 폐하께서 안 계신 자리였나 봐요.”
“황제 폐하가 없는 자리에서라도, 일단은 로산 후작 부인인데 그렇게 했다가는 로산 후작가와의 문제가 되니까. 대신 페셔 자작 부인이 칼을 가져다가 스커트를 찢어버렸지.”
“세상에.”
종업원들이 탄식했다.
에밀리가 아련하게 말했다.
“화무십일홍이라더니, 작년에만 해도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게요. 에브론 대공비 전하의 옷을 처음 맞춰드리러 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죠. 전 하나도 안 불쌍해요. 얼마나 지랄 같은 엄마였으면 아들딸이 둘 다 엄마를 버려요?”
종업원 하나가 식식대며 말했다.
“이거 다 언제 치우냐구요.”
“그건 좀 네가 익숙해지는 게 좋겠다.”
수석 디자이너가 한탄했다.
“로산 후작 대부인이 유난스럽긴 하지만, 그분만 그러는 것도 아니거든.”
“좀 쉬었다 치우지 뭐.”
에밀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밀라이라는 마차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한 차례 울분을 쏟아내며 화를 폭발시킨 뒤라, 지금은 오히려 으슬으슬 춥고 뱃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밀라이라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극단적으로 화를 내거나 흥분한 상태에 빠졌다가 침체되기를 반복하곤 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렇게까지 매일 아무 때에나 눈물이 흘렀던 적은 없었다.
밀라이라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눈물 따위는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인 줄 알았는데.
몹시 피곤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를 냈는지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언츠 왕국에서 원단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했으면 에밀리가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따.
아마 대형 포목상 주인과 직접 대화해도 구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옷감을 구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어 입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밀라이라도 알고 있었다. 설령 궁에서 황후의 탄신연과 같은 날에 더 화려하고 더 대단한 연회를 열어 그 주인공이 된다고 해도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밀라이라는 로렌스가 자란 뒤로는 한 번도 생일선물다운 생일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다.
꽃 같은 것을 가져다주었던 것은 아주 어릴 때뿐이다. 가정교사가 함께 챙겨줄 때가 지난 이후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일은 과연 알고나 있을까? 황제가 생일선물을 주거나 파티를 열어줄 때에나 겨우 알았을 것이다.
‘나쁜 놈.’
로렌스는 밀라이라가 이 세상에 내보낸 것 중에 가치 있다고 칭찬받은 유일한 것이었다.
그런데 떳떳하지 못해서, 그녀는 로렌스에게 늘 미안했다.
황제의 아들이면서도 황자가 아닌 몸으로 낳아서 미안했다. 떳떳하지 못한 몸으로 낳아서 미안했다.
당연히 황태자가 되어야 할 귀한 몸인데, 자기 때문에 흠이 생겨서 그러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다.
잘 키우고 싶었다. 사랑했다.
그래서 무엇이든 했다.
싫다는 것은 하나도 시키지 않았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게 해줬다.
제 목숨을 갈아서라도 줄 수 있었다. 로렌스가 가져야 할 본래의 합당한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서 밀라이라는 무엇이든 해줄 수 있었다.
그런 마음을 로렌스도 알아줄 줄 알았다.
‘아들놈은 키워봤자 소용도 없다더니.’
그래도 로렌스만은 다를 줄 알았다.
밀라이라는 지친 채로 목을 젖혀 기대었다.
겁먹은 하녀가 안절부절 못하며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모기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님.”
“왜?”
“어디로…… 가자고 할까요?”
마부도 조심스러워서 묻지를 못했다. 그래서 마차는 한참이나 가만히 서 있었다.
밀라이라는 텅 빈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황궁으로 갈까? 그렇지만 가봤자 할 일도 없었다.
밀라이라의 곁에 있었던 권력자들은 자연스러운 과정에 따라 로렌스의 주위로 옮겨갔다.
그리고 로렌스가 등을 돌린 지금, 밀라이라에게는 적당한 선을 긋고 예의 바른 중신과 궁정의 귀부인 사이가 되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들은 한 번도 밀라이라의 편이었던 적이 없었다. 황제가 총애하는 아들을 옹위하려는 세력이었을 뿐이다.
황제는 환영해줄 테지만, 만난다고 별반 달라질 것도 없었다. 의상실에서 푸대접을 받았다고 해도 황제는 빈말로 위로하거나 그 의상실을 벌 줄까 하는 이야기밖에 하지 않을 것이다.
황제는 옷과 장신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자잘한 위세 싸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로서 권위를 세운 후에는 결코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 벌어져야 할 싸움이지, 황제가 끼어들 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밀라이라에게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도 별반 없었다.
곁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부분 아첨하는 무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자들은 얼마 전까지 밀라이라의 연회에 오고 싶어 했듯이 이번에는 황후 탄신연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까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집에 가자.”
갈 곳이라고는 결국 그곳뿐이었다.
밀라이라는 지옥 같은 기분으로 로산 저택으로 돌아왔다.
“다녀오셨습니까?”
집사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밀라이라는 대충 손을 내저었다. 화장을 지우고 쉬고 싶었다.
죽은 빌이었다면, 밀라이라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붙임성 있게 말을 걸고, 아첨하고, 기분이 나아질 만한 것을 이것저것 준비하여 마음을 풀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집사는 그러지 않았다. 집사로서 해야 할 일과 시키는 일은 완벽하게 하지만, 시키지 않는 일을 먼저 나서서 하는 일은 없었다. 용건 없이 말을 붙이는 일도 없었다.
일은 빈틈없이 잘했다. 저택은 완벽하게 관리되었다. 빌이 관리하던 때보다 배는 쾌적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밀라이라는 이 집사가 집을 관리하는 기계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자격지심은, 이자가 자신을 경멸하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굳이 갈아치우지 않은 것은, 집사를 보낸 것이 황제의 시종장이었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다. 밀라이라는 이제 젊은 시절처럼 적극적으로 사람을 찾고 견주어 보는 것이 피곤하고 힘들었다.
밀라이라는 요즘 이 집이 어렸을 때 살던 집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집은 역사가 긴 저택이었다. 그러나 고용인 하나 없어 정원에는 잡초가 허벅지까지 자랐고, 도둑들이 벽지까지 뜯어가 폐가나 다름없었다.
집사가 말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찾아올 사람이 없었기에 밀라이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벨몬드 가문의 헤젤 영애입니다.”
“영애가?”
벨몬드 가문이라면 밀라이라도 알고 있었다.
벨몬드 가문에서는 총 세 개의 신문과 밀라이라가 잘 모르는 몇 종류의 잡지가 나왔다. 벨몬드 커피하우스는 수도의 지식인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다.
린 재상이 때때로 벨몬드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반면, 수도에서 가장 선정적인 가십지도 벨몬드 가문의 것이었다.
옐로우 벨몬드는 밀라이라의 구두 굽이 닳았다거나 머리에 꽂은 장식이 어떻다거나 하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싣곤 했다.
밀라이라도 옐로우 벨몬드는 챙겨보았다. 그리고 어떤 내용에는 분통을 터뜨리며 신문사를 뒤집어엎고, 또 어떤 날에는 일부러 기사거리를 던져준 적도 있었다.
초상화를 쉽게 그릴 수 있도록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어떤 살롱의 발코 니에 오래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다.
황제의 정부와 가십지는 공생 관계였다. 로렌스가 글을 읽게 된 뒤로는 너무 심한 내용은 못 싣게 하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어쨌든 벨몬드 가문의 영애라면 전통 있는 가문의 귀족은 아니라도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길러진 딸일 터였다.
나이도 어릴 텐데 무슨 일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전 같았다면, 벨몬드 가문의 영애 같은 것과 일일이 만나주지 않았을 것이다. 벨몬드 부인이라면 또 모를까. 이런 우울한 기분일 때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밀라이라는 헤젤을 만나기로 했다. 혹시 아르티제아가 보낸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밀라이라도 유력 가문의 영애들이 황후 탄신연 준비를 돕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응접실로 들어가자 헤젤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산 후작 대부인. 헤젤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어요.”
밀라이라가 앉으라고 손짓했다.
헤젤이 잔뜩 긴장한 태도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자리에 앉았다.
헤젤은 밀라이라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다. 밀라이라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르티제아가 맞는 것을 말리다가 밀라이라에게 몇 대 맞은 것이 그녀였었다.
하지만 헤젤은 궁금한 것은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갑작스럽게 방문했는데도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방문한 것은 무례할지도 모르지만, 대부인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
“그게 뭔가요?”
“대부인께서 한동안 객으로 데리고 계셨던 그 강령술사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까요?”
헤젤의 물음에 밀라이라는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