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4
악녀는 두 번 산다 124화
강령술사 노릇을 하던 라이가 떠난 것은 한 달이 조금 더 된 일이었다.
집사는 라이가 사기꾼이라고 말했다. 그는 떠날 때에 긁어낼 수 있는 돈은 전부 긁어냈다.
뇌물을 받아 밀라이라에게 청탁을 했을 뿐만 아니라 떠나는 대가로 집사에게 거액을 요구했다고 했다.
하지만 밀라이라는 어쩐지 라이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라이는 하고자 한다면 저주를 막는 의식을 하거나 악령 퇴치 부적 같은 것을 만든다며 더 큰 돈을 우려낼 수도 있었다. 진짜 사기꾼이었다면, 사라질 때에 저택의 패물까지 훔쳐갔을 것이다.
집사는 라이가 달아났다고 말했지만, 사실 밀라이라는 그에게 작별인사를 받았다.
그는 밀라이라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다.
「전 사기꾼입니다, 대부인.」
「하지만 선생님은 빛을 만들고 강령 의식도…….」
「그건 강령 의식이 아니라 마법이었습니다.」
라이는 그렇게 말하고, 밀라이라에게 마법을 시연해 보여주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잔재주로 벌어 먹고 살려다가 중간에 멈추지를 못 해서, 이렇게까지 되어버렸습니다.」
「…….」
「하지만 대부인, 악령은 없습니다. 저는 사기꾼일 뿐이니까요.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람을 저주할 수 있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밀라이라는 다음날 아침에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더 생각났지만, 이미 짐을 싸서 사라져 버린 뒤였다.
집사는 밀라이라가 원한다면 라이를 추적해서 잡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밀라이라는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그는 돈보다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주었던 것 같았다.
기회를 주었는데도 자신에게 달려들지 않은 몇 안 되는 남자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인간적인 사람이었다고 밀라이라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기분과 별개로 사람들이 자신더러 사기당했다고 수군거린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아르티제아가 돌아오면서 에브론 대공령의 전황, 서부 환곡 사업, 황후 탄신연에 관한 이야기가 차례대로 사교계를 휩쓸어 소문을 묻어 버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도 상당히 조롱거리가 되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밀라이라는 불쾌한 눈으로 헤젤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묻고 싶은 건데요, 영애는? 내가 사기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것으로 아는데. 지금 날 조롱하려고 그래? 감히?”
“죄송합니다, 대부인. 제게 어찌 그런 의도가 있겠어요?”
헤젤이 황급히 사과했다. 뾰족하게 치솟는 밀라이라의 어조에서 예의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밀라이라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여자라는 사실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이다. 헤젤 같이 사교계 말석의 어린 영애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헤젤의 부모가 신문사를 가지고 있다지만, 밀라이라는 평판이 원래 좋지 못하고 수많은 가십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서 그게 헤젤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은 못 되었다.
“그냥 순수하게 그 강령술사를 한 번 만나보고 싶을 뿐이에요.”
헤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키쇼어 가의 미엘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몸이 약해서 부모를 걱정시키던 그 아가씨 말인가?”
“네! 알고 계시는군요.”
밀라이라는 떨떠름해졌다. 그녀가 기대했던 것은 황후 탄신연이나 아르티제아에 관한 소식이었다.
키쇼어와 자주 보긴 했지만 친하지도 않았고, 그 딸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르티제아가 때때로 만나러 갔던 것 같긴 했다.
“미엘르가 한동안 많이 아팠어요. 키쇼어 경께서 알려주지 않으셔서 몰랐지만,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셨던 모양이더라고요.”
“그런데?”
“에브론 대공비 전하께서 성녀 올가상을 빌려주신 날에 의식이 돌아 왔거든요. 이제는 완전히 회복세에요.”
밀라이라는 눈가를 꿈틀거렸다. 황후가 선물로 주었다는 성녀 올가상의 이야기는 듣기도 싫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의 근황이 궁금하긴 했다.
복잡한 기분인 채로 밀라이라는 헤젤의 이야기를 끝까지 참고 들었다.
“성녀 올가상은 이미 치유의 기적을 잃었다고 해요. 하지만 사제님 말씀으로는, 그런 성물은 힘을 잃었어도 여전히 신성한 기운이 품고 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와 미엘르가 생각해봤는데요.”
“그래서?”
“저희는 강령술 의식을 한 적이 있어요. 대부인께서 손님으로 맞이하셨던 그 강령술사를 초빙해서요. 도중에 의식이 망쳐졌지만요. 저는 혹시나 그것 때문에 미엘르가 아팠던 게 아닌가 싶어서……. 그러니까 성녀 올가상을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회복된 게 아닌가 하고 말이에요.”
사제는 미엘르의 몸에 실제로 신성한 기운이 머물러 있다고 했다. 성녀 올가상에서 치유력은 사라졌어도 강력한 가호가 남아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사원에서는 매우 기뻐하며 발표했다.
요즘 미엘르의 방은 병문안의 꽃에 더하여 성녀상에 대신 바쳐달라고 보내지는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말하다 말고 헤젤은 스스로도 어이 없다는 듯이 웃어버렸다.
부모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왜 그런 어리석은 미신을 믿느냐고 꾸중들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젤은 아르티제아에게 상담했다. 그녀라면 현명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아르티제아와 이야기할 때에 헤젤은 또래의 소녀가 아니라 마치 어머니나 다른 어떤 현명한 귀부인과 대화하며 교육받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혹시 그런 거였다면 엄청 후회될 거예요. 미엘르는 자기도 궁금해서 같이 한 일이라고 말해 주지만, 제가 조르지 않았다면 관심을 갖지 않았을 거니까요.」
「헤젤 영애는 강령술을 믿나요?」
「아뇨. 아니, 불안해하면서 이런 말씀 드리니까 이상하지만, 그런 건 믿은 적 없어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들여서 예언을 한다거나 미래를 좌우한다거나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하지만 미엘르는 워낙 몸이 약하니까 나쁜 기운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아프다가 성녀상의 가호가 가까이 오자 나아버린 게 아닐까요? 아, 네, 저 좀 믿고 있는 것 같아요.」
헤젤은 새로운 발견에 깜짝 놀랐다.
「그러면 확인해 보세요.」
「확인이요?」
「혹시나, 하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겠죠?」
아르티제아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 강령술사를 만나서 확인해 보면 그 이유에 근거가 있는지, 아 니면 공연한 상상인지 확실해지겠죠.」
「하지만…….」
헤젤은 그래도 머뭇거렸다.
「그자도 적당한 금액을 치르면 아마 제대로 이야기해줄 거예요. 이미 더는 수도에서 활동하기 어렵게 되었으니까요.」
「만나보나마나 어차피 사기일 텐데요.」
「전에 영애는 그 강령술사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었죠?」
「아, 네. 벨몬드 지에서는 결국 실어주지 않았지만요.」
헤젤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기사를 쓰긴 했지만, 제대로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옐로우 벨몬드에조차 싣지 못하고 아주 영세한 가십지에 투고했었다.
그것을 아르티제아가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왕 알아보는 거, 후속 기사를 쓰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제대로 알아보세요.」
「후속 기사요?」
「그럴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알아보라는 뜻이에요. 속임수를 전부 공개할 수 있다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사기인지 아닌지 근거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줄 수 있을 테니까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는 쪽이 영애가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미엘르 영애의 병이 그 일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고 싶은 거잖아요.」
그래서 헤젤은 이곳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밀라이라가 강령술사의 행선지를 알고 있다면 제일 좋다.
그러지 않더라도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자를 가장 오래 머무르게 했으니까 말이다.
헤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아르티제아가 애당초 헤젤을 불러들여 가까이에 두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헤젤이 강령술사에 대한 기사를 썼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이렇게 밀라이라를 방문하도록 유도할 작정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밀라이라가 라이가 했던 말을 한 번 더 상기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미엘르의 일이 생겨 헤젤이 먼저 의견을 구한 것은 우연이었다. 그 덕분에 상황은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밀라이라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제 입으로 사기당했노라 말하는 것이 유쾌할 리 없었다.
“그는…… 강령술사가 아니야.”
“그럼 그 빛나는 술법은 뭐였을까요? 대부인께서도 보셨지요?”
“그건 마법이라고 했어.”
밀라이라는 쌀쌀맞은 태도로 말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몰라. 알아보라고 하지도 않았고, 영애의 용건은 그것뿐인가?”
“네. 하지만…….”
헤젤은 궁금한 것이 더 있었지만, 밀라이라가 손을 내저었다.
“그럼 됐어. 딴 데 가서 알아봐.”
밀라이라는 빠른 어조로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헤젤이 그녀를 뒤따라 일어섰다.
밀라이라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응접실에서 나왔다.
기분이 나아질 만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조금도 그럴 요소가 없었다.
집사가 뒤따라오며 물었다.
“영애를 돌려보낼까요?”
“집에 가라고 해. 그리고…….”
“예.”
밀라이라는 명령을 기다리는 집사를 잠시 쳐다보고 있다가 내뱉었다.
“됐어.”
에밀리의 의상실을 짓밟거나 헤젤에게 심술을 부린다고 해서 무엇이 나아지겠는가.
잠시 솟았던 의지력이 또다시 말라붙어 머릿속 깊은 곳까지 찢어질 정도로 뻐근했다.
밀라이라는 다리를 질질 끌고 침실로 올라가려다가 다시 한 번 라이의 말을 떠올렸다.
「영혼에는 사람을 저주할 힘이 없습니다, 대부인.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사람이죠.」
라이는 강령술사가 아니다. 그러니 그가 영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옳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밀라이라는 왜인지 그 말이 믿어졌다. 악령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을 저주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저주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마법은 방법만 알면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바라는 내용을 피로 쓰고 생명력을 부으면 됩니다. 피만으로 시전되는 마법은 이렇게 잠깐 빛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요.」
그러나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 불가능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밀라이라는 멍하게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퍼뜩 떠오른 생각이 뇌리를 사로잡았다.
황후를 마법으로 저주할 수 없을까?
황후만 없어지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어려울 뿐이지, 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본능적인 거부감과 공포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한 번 선을 넘은 적이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저주 같은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누가 믿겠는가? 사람을 저주로 죽였다고.
필요한 것은 내용을 정확하게 쓸 수 있는 고대어와 제물뿐이다.
그리고 로산 후작가는 오래된 가문이다. 서재에 수집된 책 중에도 고대어로 된 것이 여럿 남아 있었다.
아르티제아가 읽을 수 있게 되었다며 먼지 냄새 풀풀 나는 책을 가지고 오곤 했던 것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베낄 수 있는 문장이 있다면 좋고, 아니라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황후를 저주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의 문장으로 어디서 얻어올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