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6
악녀는 두 번 산다 126화
아르티제아는 황제의 모습을 보고 놀라 절을 올렸다. 아르티제아를 뒤따라온 영애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황공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계시는 줄 몰랐습니다.”
로렌스도 고개를 숙여 절을 올렸다.
“오셨습니까, 아바마마?”
“벌써 시간이 된 게냐?”
“예.”
로렌스가 조금 망설였다.
오늘 황후의 에스코트는 그가 맡기로 되어 있었다. 오늘 황제의 참석 여부가 불투명했었기 때문이었다.
탄신연에서 황후를 에스코트한다면, 아들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식으로 입적하지 않아도, 그 정도면 우선 자신이 황후의 양자가 될 가능성이 극히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다음 황후와 제대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올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가 참석한다면, 에스코트는 당연히 황제의 역할이었다.
망설이는 로렌스 대신 아르티제아가 스카일라에게 손짓했다.
스카일라가 들고 있던 흑단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붉은 보석관이 하나 나왔다.
“훌륭하구나.”
황제가 말했다.
황제는 이 관이 한 쌍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굳이 다른 한쪽은 어디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무엇이라고 말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황제는 관을 쓰지 않고 황후만 쓰고 나간다면, 준비가 모두 무산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황제가 소식을 알리지 않고 갑자기 온 것은 그게 궁금해서이기도 했다. 과연 아르티제아는 황후의 불쾌감을 감수하고서라도 만약을 대비하여 보석관을 둘 모두 준비했을 것인가? 아니면, 황후를 중심에 두고 하나만 준비했을 것인가?
그리고 아르티제아는 양쪽의 경우에 모두 대비하고 있었다.
스카일라가 관을 들고 한쪽으로 물러나자 이번에는 헤일리가 흑단 상자를 받들어 올렸다. 그 안에는 황제 몫의 보석관이 들어 있었다.
“짐이 올 줄 짐작했느냐?”
“참석하지 않으셔도, 황후 폐하께 보여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물론 거짓말이었다. 황제가 오지 않았다면, 굳이 황후의 불쾌함을 무릅쓰고 이것을 내놓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까 헤일리가 들고 가장 뒤에서 눈에 띄지 않게 서 있었던 것이다.
황제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냥 웃어 넘겼다. 굳이 트집을 잡으려면 못할 건 없겠지만, 이만 하면 괜찮은 대처였다.
“짐은 연회에는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다.”
“모처럼 여기까지 오셨는데요, 아바마마.”
“너와 네 누이에게도 계획이 있을 텐데, 굳이 산통을 깨고 싶지 않구나. 짐은 황후의 얼굴을 보았으니 되었다.”
애정 깊은 표현이어야 할 그 말이 황무지의 바람처럼 건조하게 울렸다.
로렌스는 황제가 그 보석관을 꺼내어 황후의 머리에 얹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이만 돌아가겠소.”
황제가 말했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에게 마주 인사하지 않았다.
황제가 떠나고 나자 아르티제아가 데려온 영애들이 새처럼 재잘대며 투왈렛 룸으로 들어갔다.
“황후 폐하의 새 드레스가 정말로 보석 같아요!”
나이 든 시녀들도 그것이 싫지 않은 내색이었다. 황후는 본래 얻었어야 할 영광을 너무 오래 포기하고 있었다.
로렌스는 그 자리가 어색해졌다. 여자의 투왈렛에 참석한 경험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적인 의도가 없는 초대는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누구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초대받았다고 하기도 불분명한 자리에서 처신하는 방법은 더욱 낯설었다.
“저희는 이만 물러나죠.”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관은?”
“시녀들이 준비할 거예요.”
로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으로 직접 황후에게 관을 씌워준다는 것도,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저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리시겠죠. 오라버니는 달리 더 준비할 건 없으시지요?”
“그래.”
“그러면 잠시 휴게실에서 쉬시는 게 좋겠어요. 준비가 끝나면 사람을 보내도록 할게요.”
“알았다.”
로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너도 피곤해 보이는데…….”
그때였다.
젊은 남자 하나가 허둥지둥 뛰어들어왔다.
“로렌스 님, 로렌스 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황후 폐하의 대기실 앞이다. 소란 피우지 말아라.”
로렌스는 엄한 얼굴로 꾸짖었다.
“밀라이라 님이, 밀라이라 님이……!”
남자가 너무 흥분해서 그 말을 듣지 못하고 외쳤다.
“근위대에 체포되셨습니다!”
로렌스가 놀라서 아르티제아 쪽을 돌아보았다. 아르티제아가 뭔가를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무심코 주위를 돌아본 것뿐이었다.
아르티제아는 표정 없이 로렌스를 바라보았다. 로렌스가 흠칫 몸을 떨었다.
* * *
그때에, 로산 저택 앞에 있는 마차 안에서 헤젤은 벌벌 떨고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공명심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다음에는 미엘르가 아파서, 죄책감과 약간의 찝찝함 때문에 밀라이라를 만나러 왔을 뿐이다.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일 작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로산 저택에 방문했던 날로부터 며칠 후에 하녀 하나가 그녀를 찾아왔다. 헤젤은 그 하녀를 전혀 몰랐다. 하녀는 약간 두려움과 기대감이 섞인 얼굴로 말했다.
「영애께서는 신문 기자라고 들었어요.」
「기자는 아니에요.」
「벨몬드 신문의 영애이시잖아요?」
하녀는 강령술사에 관해서 팔고 싶은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밀라이라가 새로운 강령술사인지 예언자인지 하는 노파를 만나러 자주 혼자 나간다는 것이다.
감이 왔다. 분명히 이것은 큰 건이다.
부모에게 말하면, 어리석은 짓 그만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상대가 황제의 정부라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헤젤은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기사를 쓰겠다고 미엘르를 병들게까지 했으니, 이제 와서 겁난다고 물러설 수는 없다.
헤젤은 친하게 지내는 벨몬드 지의 기자 몇과 손을 잡고 밀라이라의 뒤를 밟았다. 그리고 그녀가 드나드는 슬럼가의 집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밀라이라가 미신을 믿는다는 증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피투성이가 된 동물이 쓰레기로 버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강령술사 노파가 아이까지 사들였다.
그 아이가 어디에 쓰일지 깨닫자 마자 헤젤은 키쇼어에게 달려갔다.
「그 집 지하실에 있는 건, 뭔지는 몰라도 안 좋은 것이에요, 이모부님. 로산 후작 대부인은 미신을 심하게 믿는 사람이에요. 벌써 개나 고양이를 죽인 적이 몇 번이나 있어요!」
키쇼어는 황제의 근위 기사로서, 허가 없이 아무 집에라도 기사단을 이끌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헤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곧바로 그 저택을 습격했다.
지하실 문을 부수자 피비린내가 훅 끼쳤다. 바닥에는 큰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마법진 한중간에 약물에 취해 멍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밀라이라는 그를 보고 경악하여 고함을 질렀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누가 들어와도 된다고 했어!”
키쇼어는 헤젤이 말하기 전에도 밀라이라가 흉험한 일을 벌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르티제아가 이미 그에게 언질했기 때문이었다.
「만일에 헤젤 영애가 제일 먼저 알게 된다면, 분명히 키쇼어 경에게 달려가겠지요. 반드시 잡으세요.」
청탁이라면 오히려 반대로 모친을 봐달라거나, 자신이 먼저 처리할 수 있도록 일을 늦추고 알려달라고 할 것 같은데, 아르티제아는 반대로 말했다.
「키쇼어 경이 잡는 게 위험도가 제일 낮아요. 폐하께서는 키쇼어 경에게 두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고 계시니까요. 제때 잡기만 한다면, 구체적인 다른 모든 일은 키쇼어 경에게 맡기겠어요.」
「희생이 나온 뒤에 체포해야 합니까?」
「키쇼어 경은 그렇게까지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시잖아요. 하셔야 할 일을 하세요.」
단기간에 사건이 벌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일이 생긴다.
혹, 헤젤을 통해 자극한 것만으로 밀라이라가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두 번째, 세 번째의 플랜이 있었다.
키쇼어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밀라이라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덕분에 헤젤의 전갈이 닿자마자 곧바로 기사단을 출동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후에 이 사실을 누군가가 알게 되면, 키쇼어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키쇼어는 행여나 헤젤이 상처를 받거나, 아르티제아에게 더 큰 악업이 쌓이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키쇼어는 마법의 원리를 몰랐다. 그러나 지금까지 죽어 나간 동물과 피로 그려진 마법진, 끌려나온 아이를 볼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했는지는 명백했다.
“로산 후작 대부인.”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려고 이러셨습니까?”
“누가, 누가 들어오라고 했어!”
밀라이라가 발악했다.
“누구야! 내 뒤를 밟았어? 황후야? 내가 누군 줄 알면서 이래?”
키쇼어는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다물었다.
밀라이라가 갑자기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밀라이라는 키쇼어에게 매달렸다.
“아직 아무 일도 없었어요, 키쇼어 경. 바로 치울게요.”
“로산 후작 대부인.”
“한 번만 눈감아 줘요. 제가 잠깐 돌았나 봐요. 폐하에게 말씀드리지 말아 주세요. 뭐든지 하겠어요. 우리 잠깐 알았던 사이 아니잖아요.”
키쇼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께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게 제가 대부인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의입니다.”
그리고 그는 밀라이라를 데리고 나가게 했다.
밀라이라는 처음에는 조용했다. 그러나 집 밖으로 끌려 나갈 때쯤에는 황후에 대한 온갖 저주의 말을 소리 치고 있었다.
밀라이라의 일을 돕던 노파도 끌려가며 울부짖었다.
키쇼어가 데려온 기사들이 지하실의 형상을 보고 소름 끼친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키쇼어는 아무것도 모르고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는 아이들을 모포로 감싸서 우선 자기 집으로 데려가도록 명했다.
그리고 현장을 지키도록 보초를 세우고, 헤젤의 옆으로 돌아왔다.
“역시 큰일이 생긴 건가요?”
헤젤은 겁에 질린 채 벌벌 떨며 물었다. 키쇼어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네 덕분에 오늘 아이 셋이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로산 후작 대부인도 대죄를 짓기 전에 멈출 수 있었어.”
“제가, 제가 더 일찍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그랬어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몰랐지 않으냐.”
“저 때문에 에브론 대공비 전하에게 큰일이 생기지는 않겠지요? 모녀 지간이니 연좌제를 쓰실 수도 있잖아요.”
“괜찮을 거다.”
키쇼어는 낮게 말했다.
“그분은 대부인이 죄를 저질렀을 때를 이미 대비하고 있을 테니까.”
키쇼어는 헤젤에게도 우선 자기 집에 가 있으라고 말했다. 헤젤의 집보다는 자신의 저택이 그녀에게 더 안전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헤젤의 부모에게 변명도 해주어야 했다.
헤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키쇼어는 헤젤이 탄 마차도 출발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황궁으로 향했다. 황제에게 직접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르티제아와 로렌스에게 소식이 들어온 것은 이때로부터 반시간이 지났을 무렵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