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7
악녀는 두 번 산다 127화
로렌스와 아르티제아는 연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르티제아도 아르티제아였으나, 로렌스가 나타나지 않자 손님들이 다소 웅성거렸다.
그가 황후에게 카네이션을 본떠 만든 붉은 보석관을 선물하기로 했다는 것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 사실 연회장 손님 다수가 그것에 관한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밀라이라가 나타나 발광하며 황후의 머리를 쥐어뜯거나 한다면, 모두가 원하는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로렌스는 갑자기 루미너스 홀을 떠났다.
황후는 그 붉은 보석관이 아니라 푸른 수정으로 만든 소박한 티아라를 쓰고 나왔다.
물론 황후의 지위와 연령에 비해 보석이 수수하다는 것이다. 그 티아라는 황후가 미혼이었던 시절에 조모에게서 물려받은 리아간 공작 영애의 티아라였다.
황후를 에스코트한 것은 14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다. 잔뜩 긴장해 있었고, 예법에도 서툴렀다. 커다란 연회는커녕 작은 사교계 모임에도 참석해본 적이 없는 게 분명했다.
황후는 그 소년을 다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에스코트를 받는다기보다는 오히려 황후가 그를 보호하며 고귀한 여성을 에스코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보였다.
그 소년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페셔 소자작의 아들이라고요? 살아 있었어요?”
작은 소곤거림이 연회장에 가득 퍼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좀 더 사정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있었다.
“페셔 자작 부부가 자살하고 그 일가는 행방불명되었으니까요. 소자작이 아마 유니스 백작 부인과 비슷한 나이였을 거예요.”
“세상에, 그럼 살아서 아이까지 낳았다는 거네요?”
“작위는 어떻게 된 거죠? 계승식을 하지 않았어도 상속은 자동으로 되는 거잖아요. 황실로 환수된 게 아니니까요.”
“지금은 어떻게 되었기에 나타나지 않은 거죠?”
신흥 귀족이 아니라 사라진 줄 알았던 가문의 자손이 나타났다. 그것도 대역죄를 쓰지는 않았지만, 황제의 노기를 사서 부부가 자살한 가문이었다.
그냥 나타난 것도 아니고 황후의 손을 잡고 사교계에 데뷔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황후 폐하가 숨겨서 보호하신 걸까요?”
“황제 폐하께서는 알고도 묵인하신 걸까요? 그보다, 로렌스 경은 어떻게 되는 거죠?”
“어떻게 되다니요?”
“황후 폐하께서 지금 로렌스 경을 양자로 입적하실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지 않아요?”
그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한 자는 많지 않았다.
로이가르 대공은 무슨 이야기라도 좋으니 서둘러 사정을 알아오라고 아랫사람들을 닦달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은폐되기에는 너무 컸다. 정보망이 탄탄한 사람부터 하나씩 소식을 알게 되었다.
황후의 탄신연이다. 경거망동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러나 물밑에서 소란이 일었다.
* * *
밀라이라가 저지른 일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황제는 루미너스 홀에서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보고를 받았다.
그는 원초적인 두려움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의 인과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제국의 정점에서 살면서 세상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기에 업을 믿었다.
그러나 밀라이라처럼 악령이라거나 저주, 강령 같은 것을 직접적으로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밀라이라가 황후를 저주하려 했다는 일 자체를 크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고대 마법이라니. 밀라이라가 그런 것을 성공시킬 수 있을 거라고 황제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덮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덮어주기에는 사건이 너무 컸다.
마법은 사원에서 금지하고 있는 일이다. 게다가 실제 힘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장난삼아 강령술을 하거나 푼돈을 주고 자칭 예언자의 예언을 구하는 것과는 성질이 달랐다.
무엇보다도 인신공양 시도를 숨길 수가 없었다. 이번에 헤젤을 도와 사실을 밝혀낸 것은 벨몬드 지의 기자들이었다.
언론의 입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막고 또 막아도 결국 어딘가에서는 새어나온다.
비밀을 지키려면 처음부터 백성이 아예 모르게 해야만 한다.
황제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밀라이라를 아예 만나지 않았다. 굳이 은폐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키쇼어는 황제를 위로하듯이 말했다.
“로산 후작 대부인이 조사를 받으시는 동안 불편하지 않도록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쉽사리 사원에 넘겨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말은 반대로 하자면, 이번 사건이 황제도 어찌할 수 없이 사원의 관할이라는 뜻이었다.
“자네만 믿겠네.”
황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가 한 일은 로렌스에게 먼저 알려주게 한 것이 전부였다. 이 일로 인해 가장 큰 위기를 겪을 것은 로렌스였기 때문이었다.
사원에서는 마법진을 조사하기 위해 발 빠르게 사제단을 파견했다. 오랫동안 유명무실했던 이단심문관의 직책이 새로 힘을 얻었다.
고대어에 박식한 주교 아킴의 주도로 조사가 시작되었다.
황제는 학자들을 파견했다. 밀라이라를 조금이라도 변호해주기 위해서였다.
학자들은 노파를 주범으로 하고, 밀라이라를 사기꾼에게 속은 피해자로 만들어 문제를 축소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워낙에 증거가 확실했다.
마법진에 새겨진 글은 황후의 불행을 빌고, 빨리 죽기를 바라는 저주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글이 로산 저택에 있던 옛 역사서에서 나온 문장들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마법진의 문장이 명확하게 ‘황후가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지 않은 것은 문장을 그대로 베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조차도 이 일이 밀라이라가 한 일이라는 것의 정황증거가 되었다.
아이는 노파가 사들였다.
인신매매 사건이 재점화되었다.
작년에 한 차례 인신매매 사건이 크게 터진 이래, 아직까지는 사람을 사고파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혀 없지는 않았다. 비숙련공으로도 꾸려갈 수 있는 공장은 최소한의 임금조차도 주고 싶지 않아 했다.
어떤 길드는 도제 교육이라는 형식을 빌렸으나 실상은 어린애를 사서 노예처럼 부리기도 했다. 빚의 변제 기한이 다가오면, 제 자식을 데리고 와서 얼마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 자도 많았다.
그러나 아이를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주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사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론은 들끓어 올랐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동자는 밀라이라였다.
지난 번 인신매매와 인간 사냥 사건에 로렌스가 연루되었다는 것까지 다시 한 번 끌려나왔다.
“황제의 정부와 그 아들을 화형해라!”
시위는 로산 저택 앞에서 시작되었다가 별궁까지 번져 나갔다.
“황제는 정말로 그 사실을 몰랐나?”
“짐승 같은 모자를 끌어내라!”
로산 저택에 수차례 방화 시도가 있었다. 키쇼어는 근위대를 겹겹이 둘러쳐서 저택을 지켰다. 시위대는 횃불과 기름통을 들고 맞섰다.
밀라이라는 겁에 질린 채 저택에 처박혀 있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병적으로 흥분한 시기조차도 사라져 이제 그녀는 덜덜 떨기만 했다.
“폐하, 폐하를 뵙게 해줘요.”
밀라이라는 키쇼어를 잡고 그렇게 사정했다.
황제에게 변명할 시간과 기회가 필요했다. 그러면 황제는 틀림없이 용서해줄 것이다.
황제가 용서해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그러나 키쇼어는 고개를 저었다.
황제는 이 일을 막을 수 없었다.
이번 일은 로산 후작가의 직계 혈족을 독살했을 때와는 문제가 달랐다.
그때는 귀족끼리의 문제였다. 관련 자는 소수였고, 그나마도 대부분 귀족이었다. 거래와 이권, 보상과 공포로 그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아르티제아라고 하는 직계 혈족 하나가 남아 있었다. 황제로서도 대강 상황을 얼버무려 뭉개 없앨 수 있었다.
차라리 황후를 독살하려 했다면 그는 수월하게 밀라이라를 지켜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최고의 권력자라고 해도, 완전히 짓밟을 수 없는 게 둘 있다. 하나는 민의이고, 하나는 사원이었다.
황제는 민의를 두려워했다. 시위를 진압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백성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도, 그것은 언젠가 정통성에 대한 약점으로 돌아온다. 인과이고, 업이다. 사람의 입은 결코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사원은 더 부담스러웠다. 사원을 억압한다 해도 뿌리 뽑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원 역시 황좌에 대한 정통성의 일부를 쥐고 있다. 파문당한 왕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심지어 형체 없는 민의와 달리 사원은 조직적인 권력이었다.
그리고 사원은 이 사건을 가볍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마법이라는 금기 자체도 그랬으나 이것 자체가 사원에 큰 기회이기도 했다.
죄인이 황제의 정부였다. 세상의 이목이 주목되었으니 사원의 권위를 널리 떨칠 기회였다.
아킴 주교는 지금까지 사원이 지나치게 세속 권력에 짓눌려 있었다고 생각했다.
황제도, 신의 아래에서는 결국 일개 인간에 불과하다. 마땅히 사원을 존중하고 그 의사에 따라야 한다.
주교들의 결정은 신의 뜻을 대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그 사실을 널리 알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죄송합니다.”
황제를 보게 해달라는 말에 키쇼어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만 숙였다. 밀라이라는 처음에는 망연자실한 얼굴을 했다.
“그렇구나.”
그러나 곧, 납득한 듯한 묘하게 맑은 얼굴로 밀라이라는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렇구나.”
그럴 것이다. 밀라이라는 황제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중요한 존재였던 적은 없으니까.
그리고 황제는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로렌스도 만날 수 없겠네요.”
“폐하께서, 그러지 않으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렌스 경을 위해서요. 지금 로렌스 경만이 아니라 아르티제아 님까지도 위험스러운 상황에 처해 계십니다.”
“그렇군요.”
밀라이라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황제를 만나고 싶다고 애원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로산 저택 앞에서 장작을 쌓고 밀라이라를 흉내 내어 만든 허수아비를 가져다가 불태웠다.
그 시위대를 진정시킨 것은 아킴 주교였다.
그는 새하얀 전례복을 갖추어 입고 혼자 흥분한 시위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속했다.
“아이를 제물로 삼으려고 돈을 주고 사들인 것은 물론 비할 바 없이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비단 그것만이 아닙니다.”
아킴 주교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수놓은 비단 영대를 벗어 불타오르는 화형대에 던졌다.
“황실의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여러분은 압니까?”
“황제의 여자입니다!”
“황제는 죄 없는 아이를 사악한 마법의 희생물로 삼아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그런 악독한 여자를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곁에 두었습니다. 신의 종이 이런 현실을 어찌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아킴 주교는 그리고 절을 올렸다. 그것은 시위대를 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하늘을 향해 그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원은 결코 이 일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원을 믿고 돌아가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사원과 자신의 존재를 한순간에 시위대에게 각인시켰다.
시위대는 그날 주교와 함께 그 자리에서 기도를 올리고 간단한 예배를 드렸다.
성녀 올가가 죽은 이래 사원이 이토록 존숭된 적은 없었다.
사원의 표적이 되는 것은 로렌스와 아르티제아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시위대는 지난번 인신매매 사건을 지혜롭게 처리한 에브론 대공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에브론 대공저까지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원은 달랐다.
아킴 주교가 사제단을 이끌고 방문했을 때, 에브론 대공저는 단호하게 대처했다. 기사단을 동원하여 저택을 철통처럼 지키고, 사제단을 안에 들이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는 안스가르를 불러 말했다.
“아킴 주교님을 따라가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