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9
악녀는 두 번 산다 129화
가얀은 특별히 수하들에 대해 인간적인 정을 느끼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자신도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기사였다. 근위대원들이 모두 출세이는 명예이든 혹은 자식의 미래이든, 중요한 것을 걸고 죽도록 노력한 자들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 나름대로 성취한 결과로서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오물 투척을 몸으로 막기 위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면 명분을 잃게 됩니다. 사원에서 주된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이단 행위이지만, 시위대가 분노하고 있는 것은 무고한 아이를 희생시키려 했다고 하는 부분이니까요.”
가얀이 말했다.
“무력 진압은 과거에 인신매매에 얽혀 무고한 아이를 살해했다는 로렌스 경의 이미지를 더 심각하게 만들 겁니다.”
“젠장.”
로렌스가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티아가 사원에 출두했다면서?”
“그 표현은 부적절합니다. 심문을 받으러 간 것이 아니니까요.”
“사실상 심문이 목적이지 않나. 로산 저택에 있었던 고서와 고대어 필사본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에 협력을 요청했다고 들었네.”
“고서는 로산 후작가의 오래된 장서들일 뿐입니다. 에브론 대공비가 로산 후작이니, 사원에서 대공비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말이 안 되지 않나. 정말로 서재의 책에 관해 알고 싶다면 집사를 부르는 게 정상이야. 티아의 옆에 있는 그 늙은 옛날 집사라면 아마 책 틈에 끼워진 낙서까지 다 알고 있을 텐데.”
“…….”
“티아에게 책임의 일부를 지우려는 시도가 아닌가?”
“설령 그런 시도가 있다고 해도, 상대는 에브론입니다.”
가얀은 감정 없이 말했다.
“사원에서 압박해서 강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요. 오늘도 기사단이 완전 군장을 갖추고 사원까지 호위해서 갔다고 합니다.”
“경은 티아가 자발적으로 갔으니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에브론에서 제일 먼저 대응이 나올 겁니다. 에브론 대공은 이런 문제로 아내를 내칠 사람이 아닙니다.”
설령 그럴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아직은 소식이 전달될 만큼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에브론 기사들은 명령도 없는데 시류를 따라 자기 판단대로 안주인을 박대하거나 할 수 있는 부류의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가얀은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고 있었다.
아르티제아가 자발적으로 조사에 임한 것은 일부 황제와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아르티제아가 보낸 긴 편지를 읽은 후에 가얀에게 이렇게 말했다.
「티아가 아킴 주교를 만나보겠다고 하는군.」
「에브론 대공비께서 말씀입니까? 그분은 밀라이라 님과 절연하신 줄 알았는데요.」
「부모 자식 사이에 절연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히 되겠는가? 별일 없을 때 왕래 없이 지내는 것과 어머니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완전히 모르는 척하는 것은 다른 일이지.」
황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티아는 로산 저택을 사원에 기부하여 수도원으로 만들겠다는군.」
「후작가의 본가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협상 재료로 쓸 만하겠지. 티아 말로는 로산 저택을 수도원으로 만들고, 밀라이라를 거기에 연금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하면 어떻겠느냐는 거야.」
「가망이 있겠습니까? 아킴 주교는 녹록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택 하나를 받고 끝낼까요?」
「저택만은 아니겠지. 아마 더 많은 재산을 넘겨야 하겠지. 어쩌면 이권도 일부 떼어 줘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도 여태까지 티아가 헌납한 기부금이 상당한 모양이야. 사원과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도 많이 해왔으니까 아예 무시할 수는 없을 걸세.」
황제의 말은 다분히 희망적이었다.
「티아는 잘할 걸세. 워낙 똑똑한 아이이니까. 사원에서도 에브론 대공가를 무시할 수는 없을 테고, 최근에는 서부 환곡 사업 때문에 얽힌 것도 있으니. 세드릭과의 연애담 때문에 평민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편이지 않은가.」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짐보다는, 티아가 나서주는 것이 여러모로 모양새가 좋지. 훗날 짐이 보충해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쓰라고 일렀다네.」
그렇게 말하고, 황제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눈을 허공에 두고 중얼거렸다.
「그만 한 자식이 짐에게도 하나만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폐하…….」
황제는 지친 얼굴이었다.
그날 황제는 로렌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기대조차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로렌스 파벌인 가얀에게 말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글렀어.’
그날 가얀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얀은 이 사태가 벌어진 첫날에 황제가 로렌스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알리게 한 것을 알고 있었다.
로렌스가 먼저 안다고 해서 사건을 해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황제조차도 어찌하지 못한 일을 그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사원에 맞서 싸우는 척은 했어야 했다. 황제와 달리 친아들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었을 터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모함이라고 주장하거나, 밀라이라를 빼돌리거나, 또는 아르티제아처럼 협상을 통해 사태를 축소시키려고 할 수도 있었다.
혹은 위로하러 갈 수도 있었다.
밀라이라는 잘못 알고 있었다. 키쇼어는 그녀가 로렌스를 만날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 만나는 것을 거절한 것은 로렌스 쪽이었다.
키쇼어는 밀라이라를 조금이나마 동정했기 때문에, 일부러 자기 쪽에서 로렌스에게 연통을 넣어주기까지 했었다.
로렌스가 택한 것은 밀라이라와의 관계를 더 철저히 끊고, 자신이 그 저주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로렌스는 결국 자신이 힘없는 부모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여준 셈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젊은 그는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그것은 황제나 황후처럼 나이 든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황후 폐하의 인정을 받는다 해도 그다음에는 사원이 버티고 있어….」
아말리에는 느긋한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은 아닐세. 법적으로는 여전히 황후 폐하의 양자가 되면 되니까. 그러나 이미 상황이 이 지경이야.」
「휴우.」
「설령 로이가르 대공보다 앞서 나간다고 해도 제대로 황권을 세우기는 어려울 걸세.」
「대관식 날부터 사원과 시민의 저항에 부딪칠 테지.」
「맞아. 그리고 로렌스 경은 자기 힘으로 그것을 뚫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고관이 되고 싶은 것이지, 보모가 되고 싶지는 않다네.」
가얀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얀은 야심가이다.
로렌스의 인간성에 회의를 느꼈더라도, 여전히 권좌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로렌스의 옆에 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리 한 발이나마 다른 곳에 걸쳐두려 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이렇게 된 다음에 돌아서는 것보다 미리 줄을 대놓는 쪽이 훨씬 낫다.
그런 가얀의 속내를 짐작한 듯, 로렌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배신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걸세, 가얀 경.”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로이가르 숙부님은 뒤끝이 길어. 경을 받아들일 리가 없지. 그 휘하의 사람들은 경 같은 사람을 멸시하고.”
“…….”
“아직 끝나지 않았네.”
로렌스가 말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남부로 간 호덴 자작에게 빨리 수도로 돌아오라고 전갈을 보냈네.”
“…….”
“이번 일에 황후 폐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더군.”
사교계는 황후가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까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사교계의 여왕으로 행세하던 남편의 오래된 정부가 자신을 저주하다가 붙들렸다.
이쯤 되면, 옛일을 잊어주기로 했더라도 도로 원한과 분노가 솟을 판국이었다.
그러나 황후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황후궁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밀라이라가 어찌 되든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옛 친구들을 만나고 옛날에 즐겼던 취미를 다시 시작했다.
특히, 손자뻘인 페셔 자작가의 아이 셋에게 손수 교양과 예법을 가르치는 것에 하루의 대부분을 쓰고 있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어 아무도 페셔 자작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관심을 가졌어도, 황후에게 페셔 자작가를 두고 왈가왈부 할 수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저주당할 뻔한 당사자가 아닌가.
가얀이 로렌스에게 말했다.
“황후 폐하의 양자가 되는 일이 가망 있다고 아직도 생각하십니까?”
“이제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어머니가 없어진다면 오히려 더 상황이 나을 수도 있어.”
가얀은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였다.
그러나 밀라이라가 없다고 해서 황후가 그를 더 좋게 생각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티아가 황후 폐하에게 생각만큼 총애 받고 있는 게 아니었더군.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서 천천히 진행했지만, 어쩌면 아예 황후 폐하에게 호감을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몰라.”
“예.”
“그렇다면 확실하게 손익을 보여주는 쪽이 좋겠지. 황후 폐하께서 옛 리아간 공작가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도 알겠고, 그래서 호덴 자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네.”
“정보가 있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리아간 공작을 갈아치울 생각이십니까?”
“그래. 혹시라도 남아 있는 자손이 없나 찾아보라고 했다네.”
가얀이 생각하기에는 가망 없는 이야기였다.
로렌스의 옆얼굴은 울적한 조각상처럼 보였다.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있으나 아마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날이 이미 저물었다는 것을.
반면, 로이가르 대공의 얼굴은 아주 활짝 피어 있었다. 근래에 이렇게 기분 좋았던 때가 없었다.
“처형, 한 잔 받으십시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그것이 못내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기쁘지 않은 얼굴입니다, 처형.”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대공 전하.”
“제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로이가르 대공이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로산 후작 대부인을 역모로 처벌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역풍이 불까 봐 저는 걱정됩니다.”
로이가르 대공은 공식적으로 사원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그의 영향력 아래 있는 관리들이 일제히 밀라이라를 역모로 처벌하라고 간언했다.
그의 말을 받아 적는 몇 개의 언론과 지식인도 같은 주장을 했다.
이번 일이 어리석은 여자의 충동적인 실수가 아니라 황후를 살해하고자 하는 역모라고 말이다.
그것 말고도 유언비어를 나포하는 등 몇 가지 음모가 움직이고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으로서도 승부수를 띄운 것이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사원에서 정식으로 로산 후작 대부인을 이단 재판에 걸 겁니다. 로렌스가 황후 폐하의 양자가 된다고 해도 제위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해요. 대주교가 파문당한 자의 자식에게 관을 씌워줄 리가 없으니까요. 절대로 대관식을 집전하지 않을 겁니다.”
“그것으로는 안 돼요, 처형.”
로이가르 대공이 단호하게 말했다.
“사원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오래 가지 않을 겁니다. 옛날과는 다르니까요. 일단 황태자가 되고 나면, 대주교가 대관식을 집전하지 않아도 즉위하면 결국 언젠가는 인정받게 될 겁니다. 혹은 황제 폐하께서 직접 머리에서 관을 벗어 로렌스의 머리에 얹기라도 하면 소용없는 일이지요.”
“폐하의 마음은 로렌스에게서 떠나고 있어요.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그 떠난 마음이 제게 오지는 않을 겁니다.”
로이가르 대공이 말했다.
“아니면 역시, 에브론 대공비가 걱정되십니까?”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당혹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이가르 대공이 그림자 진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