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
악녀는 두 번 산다 13화
세드릭은 황제의 앞에서 차 한 잔 만 마시고 물러나왔다. 그리고 처음의 예정대로 로산 후작가로 향했다.
에브론 대공의 방문에 집사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그가 만나러 온 상대가 로렌스도, 하다못해 밀라이라도 아니라 아르티제아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아가씨께서는 외출하셨습니다.”
“어딜 가셨다고 하던가?”
집사는 이번에도 당황했다.
세드릭은 이 집 안에서 아르티제아의 입지가 얼마나 나쁜지 알았다.
아르티제아는 로산 후작가의 유일한 자손으로서, 2년 후에는 작위를 계승할 후계자이다.
그런데 집사가 행선지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니.
집사는 그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몇 번이나 굽실거린 후에 하녀들을 뒤집어엎었다.
세드릭은 로비에 서서 기다렸다.
화가 났다. 에브론 대공가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드릭은 비록 어린 시절에 부모를 비참하게 잃고, 그를 친아들이나 친손자처럼 아껴주던 가신을 몇 명이나 비명에 보냈다.
하지만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날조차도 집은 그에게 집이었다.
황제에게 짓눌리고 비통한 생각을 했던 날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날에, 차라리 정말로 굴복하여 무장을 집어던지고 초라한 마음으로 일신의 안락함이나 추구할까 하는 생각을 한 날에도, 그에게 집은 집이었다.
안온하게 쉴 곳이고, 또 지켜내야 할 곳이었다.
집사나 하인들도 그에게는 단순한 고용인이 아니었다.
세드릭은 잃어버린 부모 대신 그들을 가족으로 여겼고, 그들도 세드릭을 제 자식처럼, 손자처럼, 형제처럼 보살펴 주었다.
로산 후작가의 집사는 그가 서서 기다리자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르티제아가 신뢰하는 하녀들은 입이 무거워 함부로 그녀의 행선지를 밝히지 않았다.
결국 세드릭은 한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대답을 들을 수 있겠다.
“죄송합니다, 대공 전하. 아가씨께서는 엔다르 백작가의 무도회에 가셨다고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신다면, 곧 돌아오시도록 하겠습니다.”
“이 집에서 자네는 영애보다 높은 사람인가?”
“예?”
집사가 눈을 끔벅거렸다. 세드릭은 냉랭하게 말했다.
“로산 후작 영애는 후작가를 물려받을 후계자의 신분으로 알고 있는 데, 일개 집사인 자네가 오라가라 할 수 있는 건가 의아하여 물었네.”
“아, 아닙니다.”
집사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변 명했다.
“다만 저는, 로렌스 도련님이 이제 곧 돌아오실 것이니 전하께서 도련님과 담소라도 나누시면 그 사이에 아가씨를 모셔서…….”
그 변명에 세드릭은 더욱 화가 났다.
“내가 착오를 한 모양이로군.”
“예?”
“내가 질문한 상대는 로산 후작가의 집사인데, 자네는 아무래도 로렌스 경의 집사 같으니 말일세.”
어쨌든 세드릭이 그렇게 말하자 집사의 낯빛은 흙색이 되었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아 잊고 있었지만, 로산 후작가의 주인은 본디 아르티제아였다.
그는 밀라이라의 심복이었지만, 로산 후작가의 집사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이 사실이었다.
“죄송합니다.”
집사는 깍듯이 절했다.
까다롭고 고지식한 고위 귀족들 중에는 실세가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예법이며 형식에 따라 인사하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물며 세드릭은 밀라이라를 싫어했다.
집사는 트집을 잡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트집에 대응하는 방법은 사과하는 것뿐이었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를 생각해서 그런다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왜 아르티제아를 만나러 왔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요즘 때때로 좋은 생각을 해내서 밀라이라의 칭찬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집사의 머릿속에서 아르티제아는 밀라이라의 샌드백에 불과했다.
“이 일은 영애에게 말해야겠네.”
자기 집의 일이 아니므로 세드릭은 결국 그렇게만 말하고 로산 후작가를 등졌다.
「제가 원하는 것은 로산 후작가를 온전히 상속받아 독립하는 겁니다. 형식상의 결혼을 2년만 유지하며 저를 보호해주십시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세드릭은 비로소 그녀가 필요로 하는 ‘보호’가 무엇인지 이해할 것 같았다.
엔다르 백작가의 무도회에 참석한 아르티제아는 벽의 꽃으로 화해 있었다.
이렇게 한낮에 열리는 무도회는 흥청망청 즐기고 노는 장소가 아니었다.
어른들의 관리 아래 젊은 남녀가 모여 건전하게 교제하는 자리였다.
물론 그 교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좋은 혼처를 찾는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결혼은 가문의 주인과 부모가 양가의 신분과 재산을 고려하여 결정했다.
그러나 혈기 방장한 젊은이들의 만남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부모들은 자기들이 통제할 수 있는 장소에서 통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덕분에 이제 결혼 적령기의 젊은 귀족들은 미약하지만 나름대로 선택권을 가지고 있었다.
동성 간에는 친교를 쌓고, 이성과는 설레는 시간을 나누며 사교 시즌을 경험한다.
혼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문인지 아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연을 만들어야 할 가문인지, 아니면 적당히 무시해야 할 가문인지 가능하는 법도 이때 배웠다.
아르티제아는 이런 무도회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는 소녀 중 하나였다.
로산 후작가의 후계자라는 입장을 생각한다면, 마땅히 사교 시즌의 여왕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밀라이라의 딸이었다. 밀라이라를 경멸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녀를 기피했다.
그러나 밀라이라에게 붙어 아첨하는 무리들은 또 그런 대로 밀라이라를 따라 아르티제아를 무시하고 구박했다. 아르티제아에게 잘해 주면 밀라이라가 신경질을 내거나 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나이에는 결국 외모가 권력이지.’
테이블에서 살구 주스를 가져다가 홀짝홀짝 마시면서 아르티제아는 생각했다.
결국은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소년소녀들이다.
아르티제아의 등 뒤로 로산 후작가의 막대한 재력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설령 그것을 볼 수 있는 소년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름다운 용모와 상냥한 성품이야말로 그 재력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상냥한 성품에는 가치가 있지.’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로산 후작가를 열 개 갖다준다 해도 리시아의 고운 마음씨와 바꿀 수는 없었으리라.
그녀는 로산 후작가를 다 바치더라도 그것의 절반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로산 후작 영애.”
아르티제아는 가능하다면 조용히 아무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고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원하는 대로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말을 건 것은 아름다운 아티야 백작 영애였다.
“왜 그리 우울한 얼굴을 하고 계신가요? 일찍 오셔서는, 내내 춤 한 곡 추지 않으시고.”
“누군가는 벽을 장식해야 하니까요.”
“어머나. 그렇게 말씀하시면 서운하지요. 이 무도회에 오신 남자분들은 모두 다 예의도 없고 무정하시군요. 이렇게 한 곡도 춤을 추지 못한 숙녀분이 계시도록 내버려두다니.”
그렇게 말하면서 아티야 백작 영애가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로산 후작 영애에게도 잘못이 있어요. 벌써 네 번째 똑같은 옷만 입고 오시니, 진정한 신사분이라 한들 오늘 영애가 춤을 추었는지, 그게 지난번 무도회 때의 일인지, 구별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녀를 뒤따라 다니는 젊은 남자들이 어깨를 떨며 웃었다.
아르티제아는 헛웃음을 머금었다.
옛날에는 용모에 자신이 없고 옷이 낡은 것이 수치스러워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고개도 들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티야 백작 영애는 무슨 용기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싶었다.
그녀가 아무리 아름다운 무도회의 꽃이라 해도 아르티제아는 로산 후작이 될 사람이었다.
무시하기에는 아티야 백작가가 너무 시시했다.
아티야 백작 부부는 밀라이라와 친하지도 않았다.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못난 얼굴에 수십만 골드 짜리 옷을 걸친다 한들 낭비에 불과하지 않겠어요? 특히 그 옷……. 남쪽의 이언츠 왕국에서 가져온 자수를 놓은 벨벳이지요? 그렇게 귀한 옷은 영애처럼 아름다운 숙녀가 입어주어야 만드는 사람도 보람이 있을 테지요.”
“어머. 안목이 있으시군요.”
“그런데, 괜찮은가요?”
“뭐가요?”
“이언츠 자수 벨벳은 너무 비싸서 그렇게 아낌없이 옷감을 이용해서 드레스를 만들면 원재료 값만 만 골드가 넘을 텐데요. 제가 보니 벌써 이언츠 자수 벨벳으로 만든 드레스만 네 벌째이시고, 그렇다면 아티야 백작가는 영지에서 나오는 연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영애의 드레스에 투자한 셈이군요.”
“뭐라고요?”
“아, 아티야 백작 부부께서는 영애를 무척 사랑하시니 이런 말씀은 안 해주시던가요? 백작가의 주수입원인 대리석 광산은 이제 채산성이 낮아 아마 한두 해 사이에 폐쇄하게 될 거예요. 지금도 이미 수입이 엄청나게 줄어들었을 테고요. 파산 직전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티야 백작 영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긴, 참. 그냥 단순히 돈을 쓰는 거라면 너무 큰돈이지만, 가문의 명운을 건 대형 투자로서는 그렇게 큰 액수도 아니긴 하군요. 영애는 미인이니까 분명히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실 수 있을 거예요.”
아르티제아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 부모님이 날 팔아넘길 거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티야 백작 영애가 사람들의 시선도 잊고 소리를 질렀을 때였다.
입구 쪽에서 약간 소란한 소리가 들려오나 싶더니,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모두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세드릭이 차고 있던 장검을 풀어 하인에게 맡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소곤거림마저 멈춰 조용해진 홀에 음악만 흘렀다.
“에브론 대공 전하, 이렇게 소식도 없이 왕림하시다니 어쩐 일이신가요?”
엔다르 백작부인이 공손히 한쪽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말했다.
세드릭 에브론은 잘생긴 용모와 남자다운 자태로 수많은 소녀들의 가슴을 불태우면서도 댄스 파트너 한 번 없던 사람이었다.
피치 못하게 참석해야만 하는 황궁 무도회가 아니라면, 무도회나 파티에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젊은 남녀의 사교 장소에 나타났다.
그가 참석했다는 것이 엔다르 백작가의 무도회를 어떤 위상에 올려 놓을 것인가. 그녀의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만날 사람이 있는데, 여기 와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초대장도 없이 실례했소. 들어가도 되겠소?”
“물론이지요. 대공 전하께서 열지 못하실 문은 이 크라테스 사교계의 어디에도 없답니다.”
엔다르 백작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여러 가지 복잡하고 위태로운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세드릭은 최고의 신랑감 중 하나였다.
그는 젊었고, 이미 대공의 작위를 상속했으며, 부유하고, 군공을 세운 영웅이었다.
세드릭 에브론은 킹 메이커가 될 수 있었다. 만일에 그가 로렌스나 로이가르 중 한 사람을 택하여 충성을 맹세한다면, 지금의 후계 구도가 바뀔 수도 있었다.
세드릭 자신은 목숨조차 불안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으나, 그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황제조차도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대체 누굴 만나러 왔는가. 설마 여자는 아니겠지.’
그런 의문들이 허공을 떠다녔다.
하지만 세드릭은 전혀 눈치 채지도 못한 듯이 홀을 가로질러 곧바로 아르티제아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