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1
악녀는 두 번 산다. 131화
다음날 아르티제아는 작은 기도실에서 마음을 정결히 하고 기도할 것을 권유받았다.
기도실은 좁고 험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굳이 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리지 않았다. 어차피 달리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화를 냈던 헤일리도 점심 즈음부터는 조용해졌다.
이것이 단순히 사원에서 기를 꺾으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사원에서 이렇게 나오는 것은 대부인을 완전히 파멸시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해서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헤일리는 약간 껄끄러웠다.
아르티제아의 앞에서 그 어머니를 대부인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남처럼 부르는 것도, 파멸 같은 단어와 결부시키는 것도 난처했다.
아르티제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사원에서 어머니를 화형하려고 한다고 생각해?”
“지금의 분위기로 봐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비 전하의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이렇게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것도 일리가 있구나.”
“저도 차라리.”
말하려다 말고 헤일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르티제아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 헤일리.”
헤일리는 죄송하다고 하지 않았다. 이대로 밀라이라가 화형이라도 된다면, 아르티제아는 비로소 어머니라고 하는 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아르티제아 자신을 위해서도 그것이 월등히 나은 일일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사원은 그럴 수가 없어. 어머니가 화형당하면, 이번에는 여론이 뒤집혀서 나와 오라버니가 피해자로 돌변할 테니까.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화형은 야만적인 행위라고 사원을 비난할 거야.”
사원을 지지하고 있는 여론이 단 번에 반으로 갈라질 것이다.
우선 무신론자들이 돌아설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지금도 시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신공양 사건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는 자들이 자기주장을 시작하게 된다.
언제든 냉정한 척하는 중립주의자들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사원의 가르침이 옛날 사람, 시골 사람이나 따르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은 아킴 주교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다.
“그래서 오라버니가 어리석은 거야. 어머니를 버리기로 결정했다면, 지금처럼 선을 긋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일을 꾸며야 해. 로산 저택을 불 지르거나 사원에서 화형시키게 한 다음, 황제 폐하의 앞에 나서서 통곡하면 좋겠지.”
“무서운 말씀이군요.”
“하지만 그게 가장 손해를 적게 보고 이 사태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야. 사건은 빠르게 종 결되고 어머니를 비참하게 잃은 불쌍한 아들만 남을 테니까.”
냉혹한 아르티제아의 말에 헤일리가 아랫입술을 물었다.
“비 전하께서는 그렇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다행히도 나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오라버니가 이익을 보는 것은 별로 원하는 바도 아니고.”
“네…….”
“우선은 아킴 주교를 만나보도록 하자.”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아킴 주교가 그녀를 찾은 것은 저녁이 넘어서의 일이었다.
아킴 주교는 권력 지향적인 사람이다. 그 자신이 스스로 인정하든 안 하든 그랬다.
그는 신심이 깊고, 교리에 박식했다. 학식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고 대어에도 능통했다.
그는 철학과 신학에 관한 어떤 논쟁이라도 모두 그 자리에서 풀어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로 잘 알았다.
성전에 있는 것 중 가장 사소해 보이는 문장도 그의 펜 끝에서는 깊은 의미를 지닌 아름다운 시처럼 변했다.
기품이 있고, 자태는 우아했으며, 설교 솜씨도 탁월했다. 귀족 중에는 그가 직접 집전하는 예배에만 참여하는 이도 상당수 있었다.
대주교조차도 아킴 주교에게는 한 수 물러주곤 했다.
‘평민이었기에 사제가 된 사람.’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그를 그렇게 평가했다.
만일에 그가 가난한 집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사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면, 그는 사원이 아니라 황궁에서 그 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는 신심은 신심이라기보다 사원에 대한 충성심이다.
그것은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종종 그러하듯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향한 충성심이기도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킴 주교 님.”
언뜻 소박하게 보이는 아킴 주교의 서재로 들어서서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투박한 목재 가구에는 금장식은커녕 황동조차 붙이지 않았다.
방을 장식한 것은 온갖 책뿐이었다. 천장까지 올라간 책장에도 다 꽂지 못해 쌓인 책들이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그런 것을 돌아보지 않았다.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그녀는 아킴 주교의 서재를 잘 알고 있었다.
아킴 주교가 응접실이 아니라 서재로 외부인을 불러 만나는 이유 중에는 위압감을 주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보통 사람은 아킴 주교의 서재에 들어가면 우선 엄청난 양의 책에 압도된다. 그리고 외경심을 품는다.
아르티제아는 아킴 주교가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서재를 꾸몄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독선적인 지식인은 반발을 사기 쉽다. 그러나 그는 학자나 지식인이 아니라 주교였다.
신심이 있는 이는 아킴 주교를 존경했고, 없는 자는 그의 학식에 위압되었다.
물론 아르티제아는 예외였다. 외경심을 품기에는 그녀는 아킴 주교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성녀님을 위한 일이니까요.」
아르티제아는 이 서재에 앉아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가장 고귀한 여자가 세속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앉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킴 주교님.」
「황실과 연이 있는 분이 그런 이치를 아시니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킴 주교는 리시아를 황후로 만들기 위해 신탁을 조작하는 일을 아르티제아와 더불어 주도한 사람이었다.
아르티제아는 그를 훌륭한 정치꾼이자 유능한 동업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직자나 학자로서 존경하는 마음은 없었다.
아르티제아의 생각을 짐작지도 못하고 아킴 주교가 물었다.
“마음을 정결하게 씻는 데에 하루의 시간이 짧지는 않으셨습니까, 후작님?”
“제 마음은 언제나 정결합니다, 주교님. 가련한 어머니를 두고 있을 따름이지요.”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가련하다는 것은 제물로 바쳐질 뻔한 어린아이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혼인성사로 맺어지지 않은 남자의 자식을 낳고, 그 남자의 부인을 저주하기 위해 인신공양을 하려던 사람이 아니라요.”
“…….”
아르티제아는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킴 주교가 정말로 밀라이라의 부도덕함에 놀랐다거나 충격을 받았을 리는 없다.
그는 필요하다면 그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덮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르티제아가 놀란 것은 그가 말하는 태도에서 타협의 여지는커녕 적개심까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먼저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닌 듯했다.
적대적인 태도로 원론을 말하는 사람에게 대뜸 협상안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온건하게 자신의 입장을 말했다.
“주교님은 현명한 분이시니, 제가 어머니를 가련하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를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당혹스럽군요.”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정서적으로 불안정했어요.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여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게 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그 책임을 통감하고 충분히 보상할 생각입니다.”
그녀는 밀라이라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다른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 것은 여론전을 할 때에나 퍼뜨려야 할 이야기이다. 아킴 주교를 상대로는 말해봐야 소용없었다.
대신 아르티제아는 이미 다른 루트를 통해 사원에 제공할 기부금의 규모를 알려두었다. 그것을 아킴 주교에게 일깨워 주었다.
어차피 사원이 원하는 것은 진짜로 이단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가짜 마법사도, 강령술사도, 예언자도 얼마든지 있다. 미신을 믿는 이단 집단도 있다.
그러나 사원은 그 대부분에게 관심도 없다.
결국 이 사건이 이렇게 커진 것은 범인이 밀라이라였기 때문이다.
사원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옛날의 권위를 되찾는 것이다. 그리고 밀라이라는 그 권위를 보이기에 절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 일을 극단까지 끌고 가는 것은 사원에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해산하면 사라지는 시위대와 달리 사원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황궁이 사원을 신경 쓰듯, 사원 또한 세속 권력을 신경 써야만 한다.
밀라이라를 화형하면, 황제도 황제이지만 그 자식들의 원한을 살 수 있었다
에브론 대공비가 밀라이라의 딸이다. 게다가 로렌스가 황제가 되면, 더욱 곤란했다.
지금 당장은 그냥 넘어가더라도, 로렌스의 치세 내내 사원은 그 부담을 안고 있어야만 한다. 그는 언제든 생모의 복수라는 명분으로 사원을 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원 안에서도 적당한 선에서 끝내자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므로 아르티제아의 중재안은 최선의 답이었다.
밀라이라를 파문하는 대신에 악마에 홀린 자로서 감금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광인을 보살피는 것은 본래부터 사원이 하는 일이기도 했다.
실질적으로는 로산 후작가의 본가를 수도원으로 만들고 밀라이라를 수련수녀라는 명목으로 평생 연금하게 될 것이다.
재판에 밀라이라가 나와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고, 아르티제아 자신이 가서 대신 비는 모습을 좀 보여준다면 더욱 나을 것이다.
혹 그렇지 않고 밀라이라가 저주의 말을 뱉으며 발광하더라도, 사원에서 끌고 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위엄을 보일 수 있다.
이만하면 사원의 권위를 충분히 세워주는 셈이다.
또한 친딸의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원한 또한 사라진다.
밀라이라가 험한 곳으로 옮겨지는 게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곳에 그대로 머무르는 것이기 때문에 황제의 마음을 위로하는 일도 될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손해가 없는 온건한 중재안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아르티제아는 감사의 뜻으로 밀라이라에게 주고 있는 연금을 그대로 일시불로 사원에 지급할 작정이었다.
지금 밀라이라가 가지고 있는 재산도 모두 기부될 것이다.
게다가 로산 저택에는 역사도 있고 재산으로서의 가치도 있다.
아킴 주교는 그 제안이 사원을 위해서도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나운 얼굴로 일갈했다.
“후작님, 사원을 뭘로 보시는 겁니까?”
“…….”
“나이도 어린 분이 벌써 나쁜 버릇이 들었군요. 그렇지 않아도 사원 안에서 후작님을 과하게 편드는 자가 많아 좀 조사해봤습니다.”
아킴 주교가 털썩 한 뭉치의 서류를 아르티제아의 앞에 내던졌다.
“심부름하는 사환부터 고위 사제까지, 후작님의 ‘성의 표시’를 안 받은 자가 없더군요.”
“…….”
“이 신성한 사원에서,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말 그대로 ‘성의 표시’에 불과한 일이에요.”
아르티제아는 의식적으로 엷은 웃음을 머금었다.
“설마 콜튼 수사님이 제 ‘성의 표시’ 때문에 저와 친교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짐작 가는 바가 두 가지 정도 있었다.
어느 쪽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르티제아는 한쪽을 골라 가볍게 떠보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아킴 주교의 안색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