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2
악녀는 두 번 산다 132화
아킴 주교가 내심을 드러낸 순간은 짧았다. 그는 곧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알량한 친분 관계를 내세워 이번 사건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면 틀렸습니다, 로산 후작 님. 콜튼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으니까요.”
“…….”
아르티제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콜튼 수사가 자신을 따르게 된 것은 계획을 세울 때에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오차가 발생하는 게 당연했다.
‘성녀라니. 골치 아픈 변수가 될 줄 알았지.’
아킴 주교가 콜튼 수사를 싫어하는 것은 굳이 따로 조사하지 않아도 아는 일이었다.
콜튼 수사는 사원의 복잡한 전례와 지나치게 어려운 교리를 부정하고 주교직을 벗었다.
참회와 봉사, 신앙만이 신의 뜻을 진실로 따르고 구원받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사원에 환멸을 느낀 많은 사제들이 콜튼 수사를 따랐다. 평민들도 가난한 수도사를 존경했다.
신심 깊은 노귀족들은 아킴 주교를 존경하면서도 콜튼 수사를 첫 손가락에 꼽곤 했다.
독선적인 아킴 주교에게는 그 모든 게 눈엣가시였으리라. 자신보다 콜튼 수사가 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것을 그가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것은 사원 안에서 교리를 중시하는 계파와 수도를 중시하는 계파 사이의 분쟁이다. 동시에 아킴 주교의 감정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싸우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아르티제아는 기억을 돌이켰다.
그때에는 리시아가 있었다.
아킴 주교는 리시아를 통해 영광을 얻으려 했고, 콜튼 수사는 리시아가 성녀이기에 따르고 그녀를 지켜주려 했었다.
세부적인 행동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일단 리시아가 황후가 되고 나자 그녀의 편에 서서 움직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콜튼 수사가 수도원에서 벗어나 환곡 사업 같은 세속적인 일에 참여했다. 그리고 아킴 주교는 그 이유를 모른다.
콜튼 수사가 마음이 바뀌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영향력을 넓히려 한다고 오해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거기에 사원 전체에 막대한 뇌물을 뿌린 자신이 함께하고 있다.
아킴 주교는 그것을 분명히 자신이 콜튼 수사를 지원하여 사원의 힘을 손에 넣기 위해 그랬다고 해석했을 것이다.
세상을 오로지 그런 식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나마 다행이군.’
감정이 섞였다는 점에서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인 것보다는 심각한 사태였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최악의 사태는 아니었다.
아르티제아는 아킴 주교가 ‘돌아온 자’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랬다면 사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한숨을 내심에 숨기고 말했다.
“사원에서는 이제 광인을 어머니로 둔 것까지 죄를 물으시려는 건가요?”
“광인이라니. 그런 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역모입니다.”
아킴 주교가 그렇게 말했다.
“주교님께서 역모를 조사할 권리를 갖고 계시는 줄 처음 알았네요.”
“교묘한 말로 빠져나가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전 어머니와 절연하고 황후 폐하의 시녀가 되었어요. 사연이 적지 않은 것을 주교님께서도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해요.”
“세간의 소문이라는 것은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지요. 음모가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세상의 어느 음모가가 자신의 권력 기반을 암살하려고 하던가요?”
아르티제아는 엷게 웃었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면, 아킴 주교와 손잡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주교님, 로이가르 대공과 손을 잡으셨나요?”
“허.”
“콜튼 수사님이 에브론 대공비를 등에 업었다면, 그것을 대적하려면 로이가르 대공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나요?”
“로산 후작님, 함부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를 역모로 엮고 싶지만, 에브론 대공가와 척지는 것은 또 곤란하시니, 그렇게 부르시는 거지요.”
아르티제아는 무심결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저와 오라버니까지 엮어서 역모로 벌하면 원한은 소멸할 테니 사원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 남편은 북부에서 카람과 싸우고 있으니 여기까지 손쓸 수가 없다고 생각하셨겠군요? 사원이 나서서 역모의 증거를 찾아오면 폐하께서도 어쩌실 수 없을 테고요.”
그리고 로이가르 대공은 이 역모에 자신과 로렌스까지 확실하게 엮고 싶은 것이다.
밀라이라 한 사람이 한 일이라면, 변덕스러운 여자가 질투에 미쳐 한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거기에 아르티제아까지 참여하고 있다면, 그것은 확실한 역모였다.
“주교님, 조심하시는 게 좋아요. 저는 황제 폐하를 위하여 중재안을 낸 것이랍니다. 이 일과는 관계가 없어요.”
“그렇다면 증명해 보시지요.”
그렇게 말하고서 아킴 주교가 두 장의 종이를 아르티제아의 앞에 내려놓았다.
“듣자 하니 후작님은 총명한 분으로, 고대어도 상당히 열심히 공부하셨다고 하더군요.”
“…….”
“정말로 이 이단 행위에 한 가지도 연루되지 않은 겁니까?”
아르티제아는 종이를 끌어당겼다.
한 장은 아킴 주교가 옮겨 적은 저주의 말이었고, 다른 한 장은 빈 종이였다.
아르티제아는 아킴 주교가 적어놓은 것은 보지도 않고 빈 종이에 능숙한 필체로 고대어를 적었다.
《 ————의 죽음을 기원한다.》
대상의 자리를 공백으로 비워서 그녀는 짧게 그렇게 적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왼손으로 적었다. 서투른 왼손 글씨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미워하는 자,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자가 불행에 빠지기를 기원한다.》
아르티제아는 그 종이를 아킴 주교에게 돌려주었다. 아킴 주교가 종이를 보고 움찔 놀라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유감스럽지만, 아킴 주교님, 이게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고 계시죠? 제가 저주에 관여했다면, 어머니에게 정확한 문장을 적어드리고 베낀 뒤 태우게 했을 거예요. 책자 따위를 저택에 남겨두지 않고.”
“…….”
“이쪽이 훨씬 효과 있는 문장이리라는 것을 주교님도, 저도 알지요.”
아킴 주교는 증거를 잡을 수 없다. 아르티제아가 서투르게 베끼려고 애써도 로산 저택에서 나온 저주의 말과 같은 글자체는 쓸 수 없다.
아마도 아킴 주교는 아르티제아의 하녀들에게도 베껴보도록 시키겠지만, 역시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베낀 자는 이미 죽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주교님.”
“…….”
“저는 몸이 약한 편이랍니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 일 때문에 몹시 피곤해요. 지금 같은 환경에서 오래 버티기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아킴 주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를 꾸짖으려 하지는 않았다.
아킴 주교는 아르티제아가 그 저주의 책을 쓴 사람일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윽박질러서 어린 대공비를 자백시킬 작정이었다.
일단 필적을 확보하고 그 책을 쓴 게 자신이라는 증언만 듣고 나면, 다음은 어르고 구슬려 뜻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너무 태연했다. 심지어 그가 필적을 의심하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왼손 글씨까지 넘겨주었다.
아킴 주교는 머릿속이 복잡한 것을 느꼈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였다.
아르티제아는 피곤한 기분으로 아킴 주교의 서재 밖으로 나왔다. 헤일리가 물었다.
“별일 없으셨나요?”
“예상이 어긋났어.”
아르티제아는 짧게 말하고 그 복도를 벗어났다. 그러고 나서야 헤일리가 손에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건 뭐니?”
“주방에서 챙겨줬어요.”
바구니 안에는 달콤한 오렌지 타르트와 사과 주스가 들어 있었다. 사원에서 쉽사리 만들 만한 것이 아니었다.
“안스가르 님이 밖에서 부탁한 것 같아요. 니코스 주교님이 비 전하를 신경 써주라고 따로 이야기도 한 모양이고요.”
“그렇구나.”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잠시 안뜰로 산책이라도 할까? 거기에서 먹으면 좋을 것 같구나.”
“네.”
하지만 두 사람은 안뜰로 나가지 못했다. 아킴 주교의 명령을 받은 견습 사제들이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헤일리는 거의 화를 내려 했다.
“지금 우리를 죄수 취급하는 건가요?”
아르티제아는 그녀를 말렸다. 공연히 분쟁을 만들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쩔쩔매는 견습 사제들에게는 자신들을 밖에 내보낼지 말지 결정할 권리도 없는 게 분명했다.
둘은 좁은 처소로 돌아와 침대에 간식거리를 펴놓고 마주 앉았다.
“이제 너도 대충 사원의 분위기를 이해했겠지?”
“네. 처소도 그렇고, 바깥출입을 금지한다거나, 비 전하를 기도실에 가도록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행동 통제는 무척 억압적이지만, 주방도 그렇고 어떤 사제들은 상당히 조심스러워요. 아까 일부러 와서 바깥소식을 전해준 사람도 있었어요.”
“콜튼 수사님의 영향이 있겠지. 아킴 주교가 상당히 무리하고 있기도 하고, 대주교님은 온건파이고, 하급 사제들의 대다수는 지금처럼 세속 정치에 직접적으로 깊게 관여하는 것을 원치 않을 거야.”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니코스 주교가 주방에 우리를 신경 써주라고 말한 것도 그래. 그는 안전주의자이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내 불쾌감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려 두려고 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감금 같은 행위를 못하게 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이단 심문이라는 것 자체가 아킴 주교의 영역인 데다가 시민의 지지도 받고 있으니까.”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런 식으로 감금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셨지요?”
“알았다면 자발적으로 오지 않았겠지. 나는 하루 이틀 시간을 투자해서 사원의 체면을 세워주고 협상을 할 작정이었을 뿐이니까. 글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킴 주교를 만나기 전까지는 니코스 주교를 이용하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아킴 주교가 로이가르 대공과 손을 잡았더구나.”
“로이가르 대공과 손을 잡았다면, 비 전하를 역모로 몰 셈인 건가요?”
“그래. 로이가르 대공은 오라버니까지 역모로 몰아 처형하는 게 목적이고, 아킴 주교는 콜튼 수사와 친한 나를 이단자이자 역모자로 만듦으로써 사원 안에서 수사님이 발붙일 자리가 없게 만드는 게 목적인 거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삼일이면 증거를 위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에요.”
아르티제아는 오렌지 타르트를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 위조라……. 할 법하구나.”
로산 저택의 그 책을 아르티제아가 직접 썼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녀나 하인 누군가를 매수해서 아르티제아가 그 책을 어딘가에서 구해 왔다고 고발하게끔 만들 수는 있으리라.
이왕 증거를 위조하기로 결정했다면, 인신공양을 당할 뻔한 아이들을 사들이는 데에 관여했다는 증인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밀라이라와 함께 저주를 행하려던 노파는 지금 사원의 손에 있다.
헤일리가 물었다.
“알폰스 경에게 연락할까요?”
“그만둬. 사원과 전쟁을 하는 미친 짓이 될 것 같으니. 그냥 나가면 되잖니? 대주교님에게 연통만 넣어도 되는 일인데.”
“아킴 주교와 전쟁하는 건 할 만 하죠.”
“헤일리.”
“염려마세요. 저는 정도를 아니까. 정도를 모르는 건 비 전하이시죠.”
“…….”
아르티제아는 부정은 하지 않고 고개만 살래살래 저었다.
신속하게 끝낼 것인가, 신중하게 정리할 것인가.
명분을 가져오고 아킴 주교의 입지를 좁히면, 나머지는 온건파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아킴 주교만이 아니라 아르티제아도 저울질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