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3
악녀는 두 번 산다 133화
아르티제아는 하루를 더 기다렸다.
그러나 아킴 주교가 그녀를 다시 부르는 일은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그가 생각을 돌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대주교나 니코스 주교가 아킴 주교를 말려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조금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는 아예 그녀를 배제해놓고 움직일 작정인 듯했다.
아르티제아로부터 그럴 듯한 증거를 얻어내거나 말실수를 시키지 못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좋은 식사를 하고, 대공저에 있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맛있는 간식을 먹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감시하는 사제들에게 귀띔했는지, 안뜰 정도는 산책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아킴 주교가 허락한 일은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는 또다시 참회를 요구받았다.
아르티제아는 작은 기도실에 들어서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성상을 바라보고 무릎 꿇고 앉았다.
참회는커녕 기도할 생각도 없었지만, 이 공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피워진 향초의 향기와 오래된 목재 냄새가 어우러져 그윽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풍겼다.
생각에 집중하기에는 딱 좋았다.
“자칫하면 번뇌에도 집중되겠는 걸.”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기도실 안에 울렸다.
문제는 기도실 자체가 아니라 참회를 요구한다는 그 자체에 있었다.
참회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사원의 죄인이 아니고서야 이런 것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이런 식으로 압박을 주는 수단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아킴 주교도 이미 짐작했을 텐데 말이다.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킴 주교 같은 사람은 자기 나이의 1/3밖에 되지 않는 여자애를 뜻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를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리시아를 괴롭혔던 것도 결국 그게 문제였었지.’
아킴 주교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말을 들으면 개인적인 영광이 있고, 또 신의 권위도 떨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리시아가 왜 거부하고 따르지 않는지 말이다.
‘어떻게 할까?’
제일 빠른 해결책은 성녀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문제는 곧바로 끝날 것이다. 성녀를 이단자라고 말할 수 있는 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역모로 몰아갈 수도 없었다. 특히나 사원에서는 절대, 그런 말을 언급조차 할 수 없다.
아킴 주교는 곧바로 이쪽으로 돌아설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리시아와 입장이 달랐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에 옳은가 그른가, 그 사람이 선인인가 악인인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러니 아킴 주교의 충성을 끌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그는 아르티제아의 좋은 동업자가 되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성녀가 에브론 대공비라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황후가 된다면 더욱 더 좋을 것이다. 그러니 곧바로 입장을 뒤집어 세드릭을 황제의 자리에 올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킴 주교 같은 자는 세드릭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에게 공적을 세우게 하면, 훗날 두통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니코스 주교 쪽에 연락해볼 것인가.
이쪽은 신중한 방법이다. 아르티제아가 겉으로 드러나고 싶지 않다면, 이쪽이 훨씬 나았다.
사제들의 다수는 안정 지향적이다.
그들은 사원의 권위를 높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아킴 주교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서 세속 권력과 싸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그들은 적당한 정도의 존중과 상당한 부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황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 형식적인 존경을 얻기에는 더 좋다.
대주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누구의 반대도 없이 대주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분쟁을 키우고 적당한 명분을 주면, 그들의 협력을 얻어 아킴 주교를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아킴 주교의 행동 원리에 사적인 감정이 섞여 있다는 것이지.’
그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틀림없이 그랬다.
냉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에 설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기합리화가 끝난 다음일 테니까.
대주교가 아킴 주교를 간단히 말릴 수 있었다면, 벌써 그렇게 했을 것이다.
싸움을 싫어하는 자들을 이용하려면 상당히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자신이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행동하고 권력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의 행동은 예측할 수가 있다.
밀라이라처럼 아예 감정으로만 움직이는 사람도 관찰의 결과로써 그 다음 행동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킴 주교처럼 복잡한 사람의 행동을 완전히 예측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행동의 진짜 동기와 내적 논리를 각자 따로 구성시켜 놓았다.
아르티제아는 그가 어느 쪽을 따라갈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은 한 번 오차를 발생시켰다. 그것이 더 커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성녀라는 변수는 쉽게 다루기에는 너무 커.’
침착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사이에 아킴 주교가 과감하게 일을 진행시키면 곤란했다.
지금처럼 갇혀서 제한적인 정보만 얻고 있는 상황에서는 적확한 대처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르티제아도 전과는 입장이 조금 달랐다. 일이 잘못되면 이혼으로 세드릭과 자신을 분리하면 된다고 대뜸 말할 수가 없었다.
‘역시 빨리 끝내자. 며칠 푹 자지, 뭐. 피곤하던 참이니.’
아르티제아는 끼고 있던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만약을 대비해서 평소에 잘 끼지 않는 진주 반지를 끼고 왔다. 그 진주는 가짜로, 안에는 가벼운 약물이 들어 있다. 약간 독한 수면제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음날 저녁쯤에 깨어날 것이다. 아니면, 하루를 꼬박 자고 이틀째 아침에 일어나거나.
아르티제아에게는 좀 더 심하게 듣는다. 잠들기 전에 마시면 이삼일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침 피로도 쌓였다. 숙면한 게 언제 일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급박한 사태를 손수 지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헤일리에게도 여러 가지 만일의 경우에 대해 일러두었고, 프레일도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안스가르와 마커스를 걱정시키는 것은 본의가 아니지만, 이게 제일 신속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에게는 그 약을 마실 기회가 없었다.
저녁에 자기 전에 마셔두기로 마음먹고 일어섰을 때였다.
눈앞이 핑 돌았다. 평소 같은 기립성 빈혈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캄캄해졌다. 아르티제아는 제단을 붙잡아 기대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
아르티제아는 쿵 하고 쓰러졌다.
기도실 문 바로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헤일리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아르티제아를 발견했다.
“의사!”
헤일리는 안으로 달려 들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의사를 불러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성거리면서 두 사람을 지키고 있던 사제 둘이 그 소리를 듣고 허둥지둥했다.
헤일리는 아르티제아의 옷자락을 서둘러 풀어헤쳤다. 호흡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코 밑에 손을 대어 확인했다. 숨결은 뜨겁고, 불규칙했다.
“의사를 부르라고 했잖아요! 뭘 하고 있는 거예요?”
그녀가 고함을 지르자 사제 하나가 깜짝 놀라 밖으로 달려 나갔다. 헤일리는 다른 사제에게 소리쳤다.
“물을 갖고 와요! 주방에 가서 소금과 설탕도 가져오고요! 몸도 약한 분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뭘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사제도 기겁했다. 아킴 주교로부터 자리를 비우지 말고 둘을 지켜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닌 듯했다.
헤일리는 아르티제아의 뺨을 몇 번 때렸다. 그러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단순한 실신이 아닌 것 같았다.
“비 전하! 일부러 이러신 거죠?”
헤일리는 낮은 소리로 울분을 터뜨렸다.
어쩐지 전날 밤에 그런 이야기를 했더랬다.
「만일에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주방을 통해서 니코스 주교에게 연락을 넣어보도록 해. 아마 니코스 주교 측에서 우리를 관찰할 사람을 주방에 심어뒀을 거야.」
「비 전하에게 ‘만일’ 같은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나라고 세상 모든 일을 알겠니? ‘만일’이라고 했잖아.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 내가 이런 데에서 오래 버틸 체력은 없잖아.」
그러면서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여기에서 나가게 되면 최대한 빠르게 서부의 콜튼 수사에게 연락을 넣어서 여기에서 있었던 일을 알리도록 해. 하나도 남김없이. 그게 제일 급해. 그다음에는 대주교님에게 호소하고.」
「네.」
「과한 분쟁이 되지 않도록, 기사들을 통제해. 나는 싸움이 되는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아킴 주교가 물러나고 다른 사제가 이번 일을 담당하게 되기를 바라는 거야.」
아르티제아는 ‘만일’이라고 했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미리 그런 방침을 알려두었을 리가 없으니까.
헤일리는 울화 때문에 시뻘겋게 변한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르티제아의 생각을 그녀는 용이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몸 약한 대공비가 자진해서 사원에 협조하러 왔다가 사실상 감금되었다. 그리고 참회를 강요당해 좁은 기도실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가 혼절했다.
이 정도면 에브론에서 얼마든지 따져도 된다. 온건한 대주교도 아킴 주교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본래부터 그녀와 에브론에게 호의적이었던 시민들은 아킴 주교에게 의혹을 품게 될 것이다.
콜튼 수사에게 연락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사원 안에서 아킴 주교의 반대파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이런 게 틀림없었다.
역시 정도를 모르는 건 아르티제아 쪽이다.
그녀는 에브론이 그녀를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렇게 쉽사리 희생시킬 사람을 위해서 세드릭이 오브리를 처형하고 조르딘을 내쳤겠는가.
아르티제아는 과한 분쟁이 되지 않도록 기사들을 통제하라고 했지만, 헤일리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주 에브론답게 행동해줄 작정이었다.
그녀는 회랑까지 달려 나갔다. 그리고 신호탄을 꺼냈다.
그리고 신호탄에 불을 붙여 바닥에 꽂았다. 신호탄이 쉬이익 소리를 내며 노란 연기를 뿜었다.
* * *
이때에 세드릭은 수도의 에브론 대공저에 있었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소식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뒷문으로 들어온 그를 안스가르가 황급히 놀라 맞이했다.
“운이 좋았어. 뱃길로 왔는데, 3주 내내 날씨가 좋은 데다가 순풍이 엄청나게 불더군.”
안스가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는?”
세드릭이 그다음에 물은 것은 그 것이었다.
“전서구를 여러 차례 보냈는데, 받지 못하셨습니까?”
“서둘러 오느라 출항 전에 받은 게 마지막일세. 밀라이라가 큰일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출발했네.”
“항구에서는 아무 말씀 못 들으셨고요?”
세드릭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스가르는 탄식했다.
“거리가 있어서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군요. 항구 쪽으로는 따로 알리지는 않았으니까요. 비 전하께서는 그제부터 사원에 계십니다.”
“사원?”
“로산 저택의 조사에 대한 협조 요청이 있었습니다. 비 전하께서도 은밀히 사원과 논의할 계기라고 생각하고 가셨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그때였다.
정문 쪽에서 기사단이 우르르 뛰쳐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세드릭의 안색이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