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5
악녀는 두 번 산다. 135화
알폰스는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나섰다. 워낙 체구가 큰 데다가 무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그렇다면 저 혼자라도 들어가 비 전하를 뵙고 가겠습니다.”
“지금 사원에서 로산 후작을 억지로 붙들고 있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원에서 비 전하를 감금하고 있다고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알폰스는 별생각 없이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사제들이 술렁거렸다. 에브론 대공비와 감금이라는 단어를 연결시킴으로써 의혹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에브론 대공비가 자발적으로 참회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면, 잠깐 얼굴을 내밀어 기사들을 안심시켜 주면 될 일이 아닌가.
물론 아킴 주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아르티제아가 실신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기사단에게 지금 상태의 그녀를 보여주는 것은 자신이 억류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녀라는 증인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고 달려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킴 주교는 마음속으로 아르티제아를 감시하던 사제들을 욕했다.
자신에게 보고하는 것이 터무니없이 늦었든지, 아니면 밖으로 소식이 전해지는 것을 하나도 막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일단은 막아야 했다. 시간을 끄는 사이에 아르티제아와 헤일리를 우선 다른 곳으로 옮길 작정이었다.
협상은 아르티제아와 해야 한다. 저 멍청한 에브론 기사는 지금 그런 것처럼 사방팔방 소문을 흘릴 게 틀림없었다. 그러면 사원 안에 동요가 생긴다.
모처럼 하급 사제들 사이에서 사기가 오르던 참이었다. 내외로 일치단결하여 이단심문관을 따르고 있다. 그 분위기를 망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물러나면 권위에 손상이 온다.
“물러나게.”
“이게 마지막으로 양해를 구하는 겁니다, 주교님. 그다음에는 부탁이 아니게 될 겁니다.”
알폰스가 천천히 칼자루에 왼손을 얹었다.
그것이 당장 칼을 뽑겠다는 신호는 아니었다. 자신이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러나 그 뒤를 따라 기사단이 일제히 칼자루를 만졌다.
철컥.
한 자루도 뽑지 않았는데도 쇠가 마찰하는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전쟁터처럼 곧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세가 회오리쳤다.
사제들이 숨을 들이켰다. 뒷걸음질을 치는 자도 있었다. 알폰스가 진심으로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킴 주교는 무력에 굴복할 만큼 겁쟁이가 아니었다. 그는 몸을 꼿꼿하게 펴고 오만하게 호통 쳤다.
“경의 주군은 신실한 사람일 터. 이 신성한 사원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을 알고나 있는가!”
그러나 그 말은 반대로 그 자신에게 돌아왔다.
기사단의 뒤에서 세드릭이 나타났다. 심지어 대주교까지 세드릭과 함께 있었다.
“그건 제가 여쭙고 싶군요, 아킴 주교님. 무엇 때문에 제가 아내를 지키라고 명령한 호위기사가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건지.”
세드릭이 말했다.
“이보게, 아킴!”
대주교가 언성을 높였다. 아킴 주교는 긴장한 나머지 숨을 헐떡였다.
“대주교님, 이게, 어떻게…….”
“대공 전하!”
알폰스도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그는 세드릭이 수도에 도착한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기사들도 길을 열어주면서도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사제들이 대주교를 보고 일제히 한쪽 무릎을 구부려 절을 올렸다.
세드릭이 싸늘한 목소리로 아킴 주교에게 다시 말했다.
“제 아내가 여기 감금되어 있다는 제 기사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막을 이유가 없겠지요, 주교님.”
“에브론 대공…….”
아킴 주교는 신음했다.
세드릭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가. 이것은 말이 안 되었다.
에브론 대공비를 상대로 일을 꾸미면서 세드릭의 동향을 살피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톨드 관문의 전쟁 소식 때문에 로이가르 대공의 첩보망이 최대한으로 가동되고 있던 중이었다.
로이가르 대공만이 아니라 황제의 정보망도, 로렌스의 정보망도 움직였다. 대상단들도 북녘의 전황을 알고 싶어 했다.
그 전쟁이 정치적인 이유로 전에 없이 대규모의 보급물자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전서구가 수십 마리씩 날았다. 바다가 풀리자 예년에는 가지도 않는 상단들마저도 소규모로 상행을 꾸려 북으로 향했다.
아킴 주교도 본토의 사제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소식을 물었다.
그러나 어느 루트로 알려지는 소식이라도 모두 비슷비슷했다.
톨드 관문 앞에 모여든 카람 부대는 두 차례 충돌하여 손해를 봤음에도 해산하지 않았다. 병력은 야금야금 보충되어 지금은 2만 5천까지 수를 늘렸다.
전쟁을 하다가도 카람은 날이 따스해지면 도로 북쪽으로 올라가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포격이 닿는 거리 안에서 아예 자리를 잡고 눌러앉았다.
이것은 실은 카람과 협상하는 것을 눈가림하려고 그릇된 정보를 일부러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킴 주교로서는 여러 루트로 취합된 정보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몇 주 전에 해로가 열렸다는 것은 아킴 주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전쟁 중이다. 세드릭이 톨드 관문을 비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왜 세드릭이 여기에 있는가?
이건 모든 전제 조건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아르티제아를 반역으로 몰겠다는 음모는 세드릭이 로이가르 대공의 보상안을 받아들일 거라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다.
그가 북부 국경의 일에 집중하는 동안 모든 일을 끝내야 했다.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 뒤에 알게 되면, 세드릭도 보상을 받는 쪽이 낫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었다. 아내를 위해서라도.
그러나 아킴 주교는 이때에 깨달았다. 세드릭은 가족을 두고 결코 협상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세드릭이 다시 말했다.
“제가 들어가겠다고 해도 막아 보시겠습니까?”
아킴 주교는 대주교를 바라보았다.
대주교가 길을 열라고 손짓했다. 사제들은 아킴 주교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바다가 갈라지듯이 좌우로 움직여 길을 열었다.
세드릭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기사단이 그 뒤를 따랐다.
헤일리는 밖에서 들리는 소란에 초조하게 발을 구르고 있었다.
아무튼 제일 중요한 것은 의사였다. 그런데 혼란에 빠진 사제들은 무엇부터 해야 좋을지를 모르는 듯 했다.
얼굴을 모르는 사제 세 명이 들것을 가지고 들어왔다. 헤일리는 벌떡 일어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사제들이 들어오면서 인사조차 하지 않고 대뜸 아르티제아에게 가까이 다가섰기 때문이다.
“거기 서세요. 의사는요?”
헤일리는 물었다.
“곧 올 겁니다.”
사제 하나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신경이 온통 바깥으로 쏠린 듯했다.
헤일리는 불길함을 느끼고 그와 아르티제아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의사는요? 비 전하를 어디로 모시려는 거죠?”
“우선 편안한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의사는 그쪽으로 올 겁니다.”
“비 전하의 몸에 손대지 마세요.”
헤일리는 빠르게 말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 사제 셋만이 아니라 다른 사제들이 바깥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르티제아를 보살피러 오거나 당황하여 쓰러진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사제 하나가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헤일리의 옆으로 돌아서 접근했다.
“한시가 촉박합니다.”
헤일리는 그것이 유사시 자신을 제압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한시가 촉박하다는 것은 아르티제아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그녀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헤일리는 주머니에서 총을 꺼냈다.
“헉.”
“이런.”
사제 셋이 동시에 멈췄다. 헤일리는 손이 떨리는 것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다가오지 마세요.”
“이러지 마십시오, 조르딘 영애.”
“전 군인도, 기사도 아니라서 총을 잘 쏘지 못해요, 사제님. 불의의 사고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아무리 쏠 줄 몰라도 총알을 가져왔어야 했다고 헤일리는 생각했다. 한 발만 있어도 충분했을 텐데.
위협사격을 겸하여 위치를 알리기 위해 허공에 한 발 쏴주면, 알폰스가 문을 때려 부숴서라도 곧바로 달려올 것이다.
허세를 부리고 있는 어깨가 몹시 아팠다.
사제들은 머뭇거렸다. 아킴 주교의 명령은 지엄했다. 그러나 총을 든 사람에게 달려들어 단숨에 제압할 만큼 그들은 무력을 쓰는 일에 능숙하지 않았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영애.”
“밖에서 무슨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사제님들이 정직하게 알려주신다면, 기꺼이 따라가도록 할게요.”
헤일리가 말했다.
그대로 잠시 대치하고 있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사라지고, 발걸음소리가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쿵, 쿵. 그리고 기사들이 내는 묵중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헤일리는 어깨가 들썩이도록 숨을 몰아쉬었다.
작은 기도실로 제일 먼저 들어선 것은 세드릭이었다.
“대공 전하……!”
그가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헤일리는 반쯤 소리를 지르며 총을 던져버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사제 셋이 달아나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기사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 셋을 비틀어 잡았다.
세드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르티제아의 옆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살짝 뺨에 대어 보았다.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고, 체온은 차가웠다.
그는 조심스럽게 아르티제아의 등과 무릎 아래쪽에 손을 넣어 그녀를 안아들었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당부를 하나도 지키지 않은 것 같았다.
조금 무거워지기는 했다. 그러나 안색은 전보다 더 안 좋은 듯했다.
“전하.”
“이야기는 나중에 듣겠다, 헤일리.”
“저자들은 납치미수범입니다.”
헤일리는 기어이 제 할 말을 했다. 기사들에게 붙들린 세 명의 사제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세드릭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킴 주교를 바라보았다. 아킴 주교가 흠칫 반걸음 물러섰다. 그럴 작정은 아니었지만, 기세에 눌린 것이었다.
세드릭은 이번에는 대주교를 바라보았다.
그는 기사단이 저택에서 출발하는 것을 보고, 안스가르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기사단을 뒤따르는 대신에 대주교의 거처로 갔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든 간에 대주교와 동행하는 쪽이 온건하게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아르티제아도 그쪽을 원하리라고 생각했다. 사원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자신이 드러나는 방식으로는 좀처럼 일을 꾸미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것을 조금 후회했다.
돌아오는 길은 고작해야 이십여 분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 시간만큼 더 아르티제아는 이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헤일리가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다른 곳으로 빼돌려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기사단이 달려나갔는데, 온건한 해결 따위를 생각한 것이 어리석었다.
“저는 이제까지 사원에 충분히 도리를 다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대주교님.”
대주교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목 아래까지 시뻘겋게 물들었으나 표정은 가까스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안하네, 세드릭. 대공비가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들었으나 자발적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해서…….”
“제 아내가 몸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텐데요. 모르셨어도 시녀가 알렸겠지요.”
“내 할 말이 없네.”
대주교가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