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6
악녀는 두 번 산다. 136화
세드릭이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원에서 저를 이렇게 대접하실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전 대주교님이 제 아내를 보호해주실 거라고 믿었는데요.”
대주교는 대답하지 못했다.
세드릭은 이번에는 아킴 주교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그에게 눈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납치미수범을 끌고 가라. 누가 사주했는지 밝혀내도록.”
“예.”
알폰스가 절도 있게 대답했다.
“아킴 주교님.”
세드릭은 그다음에야 아킴 주교를 불렀다. 아킴 주교가 흠칫 몸을 떨었다.
“제 아내가, 로산 저택 조사에 자발적으로 협력하려고 여기로 왔다고 들었습니다.”
세드릭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의 시선을 맞받고 있는 아킴 주교의 등골은 오한이라도 든 것처럼 쉬지 않고 떨렸다.
아킴 주교는 그의 앞에서 굴욕적인 모습을 보일 생각이 없었다.
아직 자신이 패배한 것은 아니다. 아르티제아가 쓰러진 것이 사원의 책임이라는 법도 없다.
세드릭이 화를 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신을 결정적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 판단하기에 앞서 몸이 살기를 느꼈다.
아킴 주교는 자신이 한겨울에 찬물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벌벌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여태까지 타인의 위엄에 짓눌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황제의 앞에서도 늘 당당했다.
그러나 철이 막 들었을 때부터 전쟁터를 오가며 사람의 생사를 좌우해온 이의 살기에는 이길 수 없었다.
세드릭이 느릿하게 말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겁니다. 제 아내는 누구의 손에도 끌려 다니지 않고, 또 그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이 일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아킴 주교님.”
세드릭은 그렇게 말하고 아르티제아를 안은 채로 몸을 돌렸다.
대주교가 마차를 내주라고 말하는 소리가 이명 너머로 들렸다.
기사들이 세드릭의 뒤를 따라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대주교의 명에 따라 사제들도 흩어졌다.
수군거림이 넓은 사원 전체에 퍼졌다.
아킴 주교는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다가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손바닥 안에 땀이 고여, 주먹을 쥐려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그는 그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목덜미도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세드릭이 한 말 중에 기억에 남은 것은 마지막 문장뿐이었다.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살기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이성이 돌아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짓눌렸던 딱 그만큼, 분노가 치솟았다.
“감히 사원을 뭐로 보고……!”
그러나 그 분노를 다 터뜨리지는 못했다. 대주교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대주교는 이제 얼굴까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대주교는 사람 좋은 호인으로 여겨지곤 했다. 온후한 성품으로 적이 없었고, 남과 싸우는 것을 피했다. 자기 파벌이 없었고, 적도 없었기에 대주교로 추대되었다.
그런 대주교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아킴,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나!”
“……대주교님.”
“함부로 대공비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른 것도 아니고 역모라는 말을 대공비에게 엮으려고 하다니, 에브론에서 그것을 참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킴 주교는 어이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대주교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반대한 적이 없었다. 지나친 일을 했다가 일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표시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아킴 주교는 대주교에게 말했다.
“대주교님은 이 일이 제가 혼자 몰래 저지른 어리석은 짓이라고 주장해서 벗어나실 수 없으실 겁니다.”
“뭣?”
“로산 후작이 여기 온 것을 몰랐었다는 말을 대공이 믿을 것 같습니까? 결국 보호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대주교님도 동죄입니다. 혹시라도 로산 후작이 반역자로 몰렸을 때를 대비해서 선을 그어두고 싶으셨던 거겠죠.”
“아킴, 자네…….”
“뇌물도 꽤나 받으셨고요.”
“아킴!”
대주교가 노성을 내질렀다. 아킴 주교는 그를 무시하고 돌아섰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이미 돌아갔을까? 서둘러 후속 조치를 논의해야 했다.
대공저에는 가신과 고용인들이 모조리 몰려나와 초조하게 대공 부부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에서 세드릭이 혼절한 아르티제아를 안고 내렸다. 안스가르와 마커스가 다급하게 앞길을 열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의사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단이 출동할 정도의 급한 일이 생겼다. 혹시 모를 사태가 있을지도 모른다 싶어 미리 의사를 불러 둔 것이었다.
세드릭이 직접 아르티제아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창백한 안색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앨리스와 소피가 달려들어 아르티제아의 겉옷을 벗기고 손발을 주물 렀다. 새파랗게 질린 마커스가 따뜻한 설탕물을 가지고 달려들어왔다.
의사가 그녀의 안색을 살피고 호흡과 박동을 확인했다.
그러는 동안에 세드릭은 어두운 얼굴로 아르티제아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드 님.”
안스가르가 조심스럽게 그의 팔을 쓰다듬고 잡아당겼다.
“의사가 잘 살필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세드릭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안스가르가 잡아끄는 대로 거실로 나왔다.
한쪽 머리가 긴 꼬챙이로 쑤시는 것처럼 아팠다. 그는 손가락으로 눈머리를 눌렀다.
“죄송합니다.”
안스가르와 알폰스가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마님께서 그런 대접을 받으실 줄 알았더라면 절대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에요.”
헤일리가 끼어들어 그 곁에 무릎을 꿇고 대신 변명했다.
“비 전하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안스가르 님이나 알폰스 경이 어떻게 막을 수 있었겠어요. 죄송합니다. 모두 제가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탓입니다.”
헤일리가 고개를 숙였다.
“사원에서 내준 방이 수도자가 쓰는 방이라는 것을 봤을 때에 억지로라도 비 전하를 모시고 나왔어야 했습니다.”
“일어나라. 네 말대로, 저 사람이 결정한 일인데 네가 어떻게 막을 수 있었겠느냐. 나라고 해도 막을 수 있었을지 어떨지 모르는데.”
세드릭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헤일리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아르티제아 대신 변명하듯이 말했다.
“비 전하께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대사원에는 보통 손님들이 머무를 수 있는 객실이 충분히 있고, 별채에서 요양하는 노부인들도 적지 않게 있으니까요.”
“그런데, 수도자가 쓰는 험한 방을 내주었단 말이지?”
“네. 벽과 바닥에서 제법 한기가 올라오는데 매트리스가 짚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건강에 좋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
“아마도 별채나 객실에 머무르게 하면, 바깥으로 소문이 퍼질 것을 우려한 탓일 거라고 비 전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드릭은 들고 있던 빈 잔을 만지작거렸다. 목이 타는 건지, 속이 타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헤일리가 말을 이었다.
“비 전하께서는 아킴 주교를 조용히 만나서 협상할 생각이셨습니다. 이삼일이면 끝날 거라고 예상하셨어요.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으신 거죠.”
“콜튼 수사 때문인가?”
세드릭이 다른 사정을 더 묻지도 않고 곧바로 아르티제아와 같은 결론을 냈기 때문에 헤일리는 놀랐다.
세드릭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킴 주교를 비이성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지. 그래서?”
“비 전하의 추측으로는 아킴 주교가 로이가르 대공과 손을 잡은 게 아닌가 하셨습니다. 비 전하가 역모죄를 뒤집어쓰면, 비 전하의 후원을 받은 콜튼 수사님도 함께 죄인이 되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아르티제아가 추측한 것이라면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확신 없이 입 밖에 내어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충분히 꾸며질 만한 음모이기도 했다. 로이가르 대공이 혈연을 강조하며 호의를 말했었지만, 세드릭은 그 말을 믿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수도를 시끄럽게 하겠다더니…….”
세드릭이 다시 눈머리를 손으로 눌렀다.
설마 이런 식으로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나 아킴 주교에게는 의혹에 불과한 일이, 세드릭에게는 마치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진실처럼 명확했다.
아르티제아는 로렌스의 입지를 줄이기 위해서 이 일을 계획한 것이다.
그녀의 계략 중심에는 항상 황제가 있다. 평생 동안 눈치를 보고 이 자리의 주인이 누구인가 살피면서 살아온 것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밀라이라 하나만 쳐내도록 중재안을 제시한 것은 황제의 인내심의 한계를 살핀 결과였다.
로렌스와 밀라이라를 한꺼번에 제거하려다가는, 황제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참지 못하고 나서서 일을 덮어주려 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황제가 명분과 민의를 두려워한다지만, 그는 이미 자식을 여럿 잃어 본 사람이었다.
그러니 먼저 밀라이라를 제거하여 방패를 없애고, 그다음 로렌스가 죄를 지어 분노를 사게 만든다.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순서이다.
그리고 아마 세드릭 자신을 조금 염려하기도 했을 것이다. 역모로 몰아서 일이 커지면 필연적으로 아르티제아와 결혼한 자신도 휘말려들게 되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세드릭은 밀라이라가 황후를 저주하다가 걸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던 것이다. 아르티제아가 무리한 일을 할 것 같아서.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으로는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같았다.
그녀는 하려는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물밑에서 음모를 꾸미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고 협상하는 일에서는 특히나.
그리고 이 일에서 상대해야 할 사람은 모두 그녀가 아주 잘 아는 사람들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이 늘 생각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이번처럼 말이다.
아르티제아가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 것은 실패했을 때의 비용을 자기가 직접 치르기 때문이다. 받는 자의 손에 쥐어지는 결과는 항상 성공 뿐이다.
“헤일리. 설마 티아가 스스로 뭔가를 마시거나 해서 쓰러진 것은 아니겠지?”
세드릭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헤일리가 움찔했다.
가문의 주군은 세드릭이었으나 지금 그녀의 주인은 아르티제아였다.
세드릭이 화낼지도 모르는 내용을 함부로 짐작만으로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세드릭을 상대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헤일리의 대답이 늦는 것에서 세드릭은 답을 알아챈 듯했다. 헤일리는 변명처럼 말했다.
“제 짐작일 뿐입니다.”
“짐작하게 된 이유가 있겠지.”
서둘러 차를 준비한 안스가르가 세드릭의 손에 차갑게 식힌 찻잔을 쥐여 주었다.
세드릭은 그것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때, 의사가 나왔다.
세드릭은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의사에게 물었다.
“티아는 어떤가?”
“큰 병이 있으시거나 하신 것은 아닙니다. 실신 자체는 저혈압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피로가 누적된 데다가 몸이 많이 축나셨습니다.”
의사가 그다음 말했다.
“다행히 복중 아기씨도 무사하십니다.”
쨍그랑!
세드릭의 손에서 찻잔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