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8
악녀는 두 번 산다 138화
헤일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의사가 과로와 저혈압 탓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헤일리의 의혹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르티제아는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헤일리는 아직 아르티제아의 건강 상태에 대해 들을 정도로 신뢰받는 측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가 자기 몸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상태는 파악하고 있었으리라고 믿었다.
꼭 독물 같은 것을 사용했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의사도 잠시 진단했을 뿐이다. 의사가 눈치 채지 못한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었다.
회임한 상태가 아니라면, 헤일리는 망설이지 않고 모든 것을 세드릭에게 알렸을 것이다.
아르티제아의 남편으로서, 그는 아르티제아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결정했는지 당연히 알아야 했다.
하지만 아이가 있다.
만일에 아르티제아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것은 에브론 대공가에서는 큰 문제였다. 후계자에게 위협을 가한 셈이기 때문이었다.
세드릭이 그것을 공론화하여 문제 삼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헤일리 자신이 입에 담을 일은 아니었다. 자칫하면 아르티제아가 대공가의 후계자를 위협했다는 증언이 되고 만다. 세드릭이 말했다.
“내가 저이를 모르겠느냐?”
“…….”
“자신의 몸을 인질로 삼아 명분을 가져오려고 했든, 단순히 무리해서 쓰러진 것이든, 네게 만약의 경우를 대비시켰을 것이다.”
헤일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드릭은 대답을 들은 듯이 말했다.
“실행해라.”
“그건, 비 전하와 복중 아가씨를 위태롭게 했으니 그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헤일리가 대가라고 말한 것은 복수하겠느냐는 의미가 아니었다.
세드릭의 태도에서는 다른 것보다 아르티제아의 계책을 우선시하겠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것은 세드릭다운 일도, 에브론다운 일도 아니었다.
결국 아르티제아가 하려고 했던 대로, 그녀와 태아의 목숨을 대가로 명분을 가져와 이익으로 보상받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드릭이 물끄러미 헤일리를 바라보았다가 말했다.
“너는 티아의 시녀이니, 티아가 시킨 일을 하라는 뜻이다. 그녀가 스스로 몸을 내던지기까지 했는데, 네가 나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야 안 될 일이지.”
“전하…….”
“나도 내 뜻대로 하겠다.”
세드릭이 그렇게 말하고 성큼성큼 거실 밖으로 나갔다.
헤일리는 긴장이 풀려 부스스 주저앉았다. 어쩐지 조금 안심되었다.
늘 세드릭이 답답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가 정말로 복수하는 대신에 이것을 기회로 삼았더라면, 헤일리는 실망했을 것이었다.
해질 무렵에 그날 두 번째로 에브론 기사단이 움직였다.
세드릭은 본래 대공저를 지키고 있던 70인에 자신을 호위해온 기사 중 30인을 더해 총원 100인을 알폰스에게 맡겼다. 거기에 딸린 병사가 또 여럿이었다.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사실 수도에 황제의 명령을 받지 않는 군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다.
평소에 에브론 기사단의 존재를 알면서도 수도 시민들은 크게 위협을 느낀 적이 없었다.
에브론 기사단은 군기가 엄정했고, 평소에는 무장 또한 검 한 자루를 차는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를 사원까지 호위한 날처럼 집단으로 움직이는 날에도 병사까지 소집하여 대규모로 군사행동을 하는 일은 없었다.
말하자면, 수도의 에브론 기사단이 대공 부부를 호위하여 움직이는 것은 예전부터 내려온 관습적인 것이다.
에브론 대공가가 어떤 가문인가 하는 것에 대해 보여주려는 의전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에는 달랐다.
기사들은 완전무장을 갖추었고, 병사들도 소총을 메고 뒤따랐다. 그 정도면 호위대라기보다는 군대를 형성했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규모였다.
일단의 군대가 성문을 통과하자 황제의 중앙군은 바짝 긴장했다. 하루를 끝낼 시간이었으나 수도는 순식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성벽과 군데군데에 배치된 감시탑, 군대 주둔지에 횃불이 켜지며 환해졌다. 전령이 사방팔방으로 달렸다.
에브론 기사단은 자신들을 주시하는 시선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알폰스는 세드릭으로부터 전권을 받아 기사들을 대사원 인근의 숲에 배치했다.
사원 전체를 포위할 정도의 숫자는 되지 못했다.
그러나 세드릭은 그 근방에서 서부군을 데리고 수개월이나 주둔했던 적이 있었다. 지리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했다.
요소요소를 막아 보통 사람이라면 에브론 기사단을 통하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 없도록 했다.
당연히 사원에서는 크게 반발했다.
“대사원을 핍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알폰스는 항의하러 온 사제들에게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그냥 여기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저희는 길을 막지 않았습니다. 지나가십시오.”
알폰스는 사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들이 막으라고 명령받은 것은 아킴 주교와 그의 심복들뿐이었다. 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겸하여 사원을 위협하는 것이다. 알면서도 사원은 그 이상 항의하지 못했다.
대주교가 보낸 심부름꾼이 사제들에게 반드시 외출해야 할 일이 있다면 조용히 지나가고, 아니라면 사원으로 돌아오라고 권했다.
대사원에서 가까운 곳이라고 해도 어차피 숲 전부가 다 사원의 것은 아니었다.
대사원에서 강제로 비키라고 말할 자격이 없었다. 지금은 몸을 숙여야 할 때였다.
황제에게 소식이 들어간 것은 성벽에 횃불이 오르던 그 시점의 일이었다.
그때에 황제는 안락의자에 반쯤 잠들듯이 누워 있었다.
그는 심기가 몹시 불편한 상태였다. 피곤하지만 졸음은 오지 않았다.
솜씨 좋은 첼로 주자 한 명이 고요를 지우기 위해 느릿한 곡을 밤늦게까지 연주하고 있었다.
나이 든 안마사가 다리를 주물러 주고 있었지만, 좀처럼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불야성의 황궁도 요즘 같은 시기에는 조용했다.
연회는 물론이고 사소한 모임조차도 열리지 않은 지 몇 달째였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신하나 밀라이라의 친구들이 열던 조그만 모임들이 없어진 탓이었다.
한때에는 유니스 백작 부인이 황제의 허락을 받아 티파티를 열곤 했으나 그것도 사라졌다.
살롱도 닫혔고, 황궁의 별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하던 관료나 중신도 없었다.
전령은 두려운 듯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황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전령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도로 피곤하게 눈을 감았다.
“가얀은? 와 있나?”
“근위 기사 전원과 중앙군 간부들이 알현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전령을 데리고 들어온 시종이 공손하게 말했다.
“나가봐야지.”
황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령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다시 묻지도 않았다.
시종이 소리 없이 밖으로 물러갔다. 전령도 눈을 굴리다가 시종이 손짓하는 것을 보고 재빨리 뒷걸음질 쳤다.
황제는 눈을 감은 채로 물었다.
“어찌 생각하는가?”
“소인 따위에게 어찌 생각이 있겠습니까?”
안마사는 그렇게 대답하며 일념으로 황제의 무릎과 종아리를 마사지 했다. 황제가 중얼거렸다.
“부럽군.”
“…….”
“자네는 자네 기술로 황궁에까지 들어와서, 그저 능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 자네 인생을 살고 있지.”
“폐하의 은총 덕분입니다.”
“자네가 누구의 아들이든, 누구를 낳았든, 누구에게 아첨하고 누구와 줄을 댔든, 그 기술은 자네의 것이지 않은가. 어디에서라도 자네는 능력을 발휘하며 잘 살았겠지.”
“폐하께서 총애해주시지 않았다면, 소인이 어찌 지금 같은 부귀를 누리며 살고 있겠습니까?”
“사람은 자네처럼 살아야 해. 자기 기술, 자기 능력으로.”
황제는 안마사의 대답은 들리지 않는 듯이 혼잣말했다.
안마사의 말도 어차피 그냥 형식적인 대답에 불과하여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
“짐에게는 생각이 많아. 가끔은 그만두고 싶지만, 도저히 멈춰지질 않는다네.”
“영명하시기 때문입니다.”
“짐에게 제대로 된 자식이 있었더라면 이번 같은 일이 어찌 있었겠는가? 짐이야말로 업을 받은 것이야.”
황제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시종장이 들어왔다.
“가얀이 빨리 황명을 내려달라고 재촉이라도 하던가?”
황제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게 말했다. 시종장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송구해 했다.
“에브론 대공 전하께서 알현을 청하셨습니다.”
그때까지도 일어설 생각조차 없이 의자에 몸을 묻고 있던 황제가 눈을 반개했다.
“세드릭이?”
“예.”
시종장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오늘 오후에 수도에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에브론 기사단의 움직임은 대공 전하의 명에 따른 것인 듯 합니다.”
“그렇겠지. 그 머리 굳은 놈들이 자발적으로 여기까지 전략적으로 행동했을 리가.”
황제는 나직하게 대꾸했다.
시종장은 몰랐지만, 황제는 에브론 대공가의 배가 항구에 들어왔다는 것도, 세드릭이 수도에 온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 사원에서 일어난 분쟁에 대해서도, 아르티제아가 대주교의 마차를 타고 돌아간 것도 알고 있었다.
황제만이 아니라 정보망에 빈틈이 없는 자들은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흥미롭군.”
이것은 늦기도 하고, 빠르기도 한 일이다.
그가 알고 있는 세드릭이라면 분노와 정의감에 몸을 맡긴 채 자신부터 찾아왔을 것이다. 아니면, 일단 일을 모두 저지르고 나서 자신을 알현하고 자기 행동의 당당함을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세드릭은 동시에 움직였다. 기사단을 움직이고, 자신을 알현했으니, 아마 다른 행동도 한둘쯤 더 있다고 보여졌다.
‘티아가 쓰러졌다고 들었는데. 의식은 있는 건가?’
그렇다면 이 행동은 세드릭이 아니라 아르티제아가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황제가 생각하는 사이에 안마사가 주무르던 손을 멈추었다.
그가 황제의 다리를 뜨거운 물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걷어 올린 바지를 내리고 슬리퍼를 신겨 주었다.
“옷을 갈아입으시겠습니까?”
시종장이 물었다.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늦은 시간이다.”
일단 축객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호위 기사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세드릭이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세드릭은 혼자였다. 무장 역시 모두 해제한 다음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렇게 내밀한 곳까지 아무리 해도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황제는 손가락을 딸각 울렸다. 그러자 호위 기사들이 길을 열어 주었다.
세드릭이 성큼성큼 황제의 침실 안으로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야심한 시간에 무례를 저질러서 황공합니다.”
“괜찮다. 늙은이는 잠이 없는 법이니. 어쩐 일이냐? 북부에서 출발한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는데. 처의 일로 마음이 쓰여서 국경을 비워 놓고 이곳까지 왔더냐?”
“예. 청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황제 폐하. 아니, 외백부님!”
세드릭이 고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