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39
악녀는 두 번 산다 139화
“흡!”
시종장이 숨을 들이켰다.
실제로 외삼촌과 조카 사이였음에도 세드릭은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황제를 외삼촌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열 살 이전에 수도에서 자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세드릭이 신하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인 동시에, 황제를 혈연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황제가 생각 깊은 눈동자로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네가 짐을 그리 부르는 것은 처음이로구나.”
“황공합니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느냐?”
세드릭이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표정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저는 이제까지 제 몸에 흐르는 피의 절반이 크라테스라는 것을 잊고자 했습니다. 알고 계셨겠지만…….”
“…….”
“외백부님을 원망했던 것도 사실이고, 두려워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이상으로 제 가문, 제 영지의 안전을 지키고 싶었고요.”
“그랬지.”
“이제 그러지 않을 셈입니다.”
표정을 완전히 가라앉힌 세드릭이 시선을 들었다.
황제는 그의 내심을 읽어내지 못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미처 스치기도 전에 세드릭이 말했다.
“오늘 제 아내가 사원의 핍박으로 혼절했습니다.”
“자발적으로 로산 저택의 조사에 협조하러 갔다고 들었다. 변명 같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짐도 일러두었단다.”
“예, 그것까지는 압니다.”
“그런데?”
“시녀의 말로는 수도자들이 쓰는 험한 쪽방에 머무르게 하고, 차가운 기도실에서 참회하라고 강요했다고 하더군요.”
“티아가 그것을 참았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황제가 태연하게 말했다. 떠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세드릭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유가 있어서 참았다고 해도, 제 아내가 부당하게 죄인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너는 티아가 제 힘으로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고 믿느냐?”
“실제로 제 눈으로 보았으니까요. 제 아내는 기도실의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져 혼절한 채 한 시간 가까이 방치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녀가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신호탄을 쏘아 기사단을 불러들인 겁니다.”
세드릭이 강하게 말했다.
“심지어 사원은 호위기사가 면회라도 하겠다는 것을 거부하고 숫자로 막으려 들었습니다.”
“…….”
“고작해야 시녀 한 사람이 따라갔습니다. 심지어 몸까지 약한 사람입니다. 강경하게 힘으로 가로막히면, 뚫고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세드릭.”
“제가 우연히 수도에 일찍 도착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생겼어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사원에서는 제 기사들을 막고 있는 동안에 몰래 혼절해 있는 제 아내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했고요.”
세드릭이 다음 말을 천천히 말했다. 이 말을 태연하게 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말을 몇 번이나 입 안에서 굴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 아내는 임신 중입니다.”
황제가 멈칫했다. 놀람과 당혹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임신하고 있다면, 그 태중 아이는 대공가의 후계자였다.
그런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대공비를 사원이 핍박했다면, 예삿일이 아니었다.
“축하한다고 먼저 말해야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구나. 별일 없는 게냐? 쓰러졌다면…….”
“요행히 아이가 무사하기는 합니다.”
세드릭은 단어를 골랐다.
그리고 그것을 듣고, 황제는 그의 뜻을 완전히 깨달았다. 그가 폐하라고 부르는 대신에 외백부라고 부른 이유도.
“아킴 주교를 역모죄로 처벌하기를 원하느냐?”
“예.”
세드릭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가 주먹을 꾹 쥐는 것을 황제는 놓치지 않았다.
“제가 외백부님의 조카입니다. 비록 방계일망정 이 몸에 흐르는 피의 절반은 황실의 것이며, 저는 황족입니다.”
세드릭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제 아내와 아이 역시 황족입니다.”
황제는 정수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희열로 몸이 떨렸다.
세드릭이 자신과 같은 세상으로 굴러 떨어지기로 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큰소리로 웃고 싶었다. 죽은 세드릭의 아비를 향해 말해주고 싶었다.
죽을 때까지 고결했던 황녀의 기사에게. 너와 똑 닮았던 네 자식도 결국은 절반은 나와 같은 피를 타고 났으며, 나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노라고.
핍박하고 핍박하고, 마침내 목을 자르는 순간까지도 그는 결국 레오프릭 에브론을 굴복시키지 못했었다.
온갖 부귀와 권력으로 유혹해도, 쾌락을 제공해도, 식량이라고 하는 영지의 생명줄을 잡고 협박해도 그 자는 반듯한 눈빛을 변화시키는 법이 없었다.
예의를 다하여 황태자에게, 또 새 황제에게 무릎을 꿇기는 했어도, 그것뿐이었다.
그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행동했고, 마음에는 오롯하게 주군으로서 적황녀를, 섬기는 레이디로서 아내를 품었다.
하지만 지금 세드릭은 어떤가? 그는 복수하기 위해서 자신의 앞에 무릎 꿇는 것을 선택했다.
처자식의 안위와 미래를 위해 부모의 원한도, 에브론이 당한 부당한 처우도 잊고 굽히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욕이다. 그는 결국 세상에 굴복한 것이다.
황제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말했다.
“네 뜻을 알겠다.”
“…….”
“아무렴. 너는 짐의 조카이고, 네 자식은 짐의 종손이지. 만일에 유산이라도 되었다면 어찌할 뻔했느냐?”
황제의 말에 세드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정확히 그가 의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세드릭은 참았다.
자신의 청명을 위해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르티제아가 그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 뱃속의 아이야말로 세드릭이 가장 지켜야 할 존재였다.
황제가 물었다.
“짐이 어떻게 해줄까?”
“아내를 납치하여 증거를 인멸하고 제가 이 상황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려던 자들이 있습니다. 아킴 주교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흠.”
“믿을 만한 근위 기사 둘을 심문에 증인으로 참석시켜 주십시오. 사원에서 심문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알았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시위대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그에 관해서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느냐? 강경 진압할 생각이라면 군사를 빌려주마.”
“이단 심문은 달리 믿을 만한 성직자에게 주도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것으로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콜튼 수사가 네 처의 일을 돕고 있었지. 하지만 네 말을 듣겠느냐? 짐의 말도 듣지 않는 자인데. 게다가 사원은 쉽게 생각할 상대가 아니다.”
“설득해 봐야지요. 적어도 대주교님은 제게 협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하긴, 사원이 세속 권력을 탐한 나머지 반역했으니 사제라면 누구도 모르는 척할 수 없겠구나. 게다가 대주교도 지금까지 너와 제법 친하게 지내왔는데, 이런 일을 외면했으니 염치가 없을 테고.”
세드릭이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로산 후작 대부인의 일도 제게 맡겨주십시오.”
“…….”
황제는 이 청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폐하께서 불안하게 여기시는 것은 이해합니다. 제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요.”
“…….”
“그렇지만, 아내의 어머니이고 태어날 아이의 외할머니입니다. 걱정하시는 일까지는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처분을 전면적으로 맡겨주십시오.”
황제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자신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상관없는 일이라고 매정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역모로 아이를 잃을 뻔한 아비가 역모죄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시민들도 그쪽을 납득하기 쉬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황제 자신은 비난받지 않을 것이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넌 인망이 있으니 잘해내겠지. 네게 전면적으로 맡기겠다.”
“감사합니다.”
세드릭이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의 뜻을 담아 절을 올렸다.
“할 일이 많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러거라. 그렇지 않아도 근위대와 중앙군의 간부들이 모여 있다고 하니, 지금 나가면서 짐에게 전권을 받았노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다.”
황제가 그렇게 말하고 그때까지 옆에 공손히 서 있었던 시종장을 불렀다.
“짐의 명을 우선 대기실에 전달하고, 서기관을 시켜서 황령을 작성하여 세드릭에게 주도록 하라.”
“황공합니다.”
시종장이 절을 올렸다.
그리고 먼저 물러나며 세드릭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세드릭이 다시 황제에게 절하고 밖으로 나갔다.
황제는 그제야 입을 함박 벌리며 참았던 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시종을 불러 지시했다.
“아킴이 욕심 많은 자이기는 하나, 혼자서 이런 일을 저지를 배짱은 없을 것이다. 배후를 캐도록 해라.”
시종은 말없이 절하고 나갔다. 물론 세드릭도 배후를 조사할 테지만, 자신이 먼저 알아내야 했다.
이것은 로이가르 대공을 확실하게 휘어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
세드릭은 시종장의 안내로 우선 알현 대기실에 가서 가얀과 아말리에를 비롯하여 군부의 인사들을 만났다.
“정말로 큰일을 당할 뻔하셨습니다.”
가얀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에브론 대공가에는 혈손이 이제까지 대공 전하 한 분밖에 없었으니까요. 경하드려야 할 일인데, 쉽게 그런 말씀을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유감입니다.”
“에브론 기사단이 무력 행동에 나서서 몹시 놀랐습니다. 역모를 의심하는 자들도 몇 있었고요.”
아말리에가 말했다.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몇 시간 동안 그녀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세드릭의 편에 서기로 마음먹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차기 권력으로서 세드릭을 지지한다는 것이지, 지금 당장 황제를 배신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반역은 아니지, 하퍼 경. 에브론 기사단은 오히려 수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나. 쿠데타라면, 황궁으로 목표로 했겠지.”
“가얀 경, 아무리 농이라도 위험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닐세. 나는 그런 사소한 빌미라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하는 말일세.”
아말리에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대꾸했다.
“아무튼 폐하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근위대와 중앙군도 말씀만 하시면 언제든 협력하겠습니다.”
가얀이 말했다.
키쇼어가 끼어들었다.
“그보다 비 전하의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원체 허약한 분이라 잘 버티실 수 있을지…….”
“의사 말로는 당분간 절대 안정이라고 하지만,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하니까. 무사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세드릭이 대답했을 때였다.
복도 저편에서 사람이 다가왔다.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가 긴 황궁 복도에 울렸다.
세드릭은 걸음을 멈췄다.
저쪽에서도 걸음을 멈췄다. 등불 빛은 약했으나 그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은 그림자만 있어도 알아볼 수 있었다.
로렌스였다.
로렌스 쪽에서도 세드릭을 알아본 것 같았다. 그가 놀란 기색을 띠었다. 세드릭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아직 전해 듣지 못했던 것이다.
로렌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운 입술이 악다물어졌다.
그리고 세드릭을 무시하기로 마음 먹은 듯 지나치려 했다.
“로렌스.”
세드릭은 그를 불러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