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40
악녀는 두 번 산다 140화
로렌스가 멈춰 섰다. 그가 애써 표정을 정돈하려고 노력했다.
“언제 돌아왔나?”
“오늘 오후에.”
세드릭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쟁은 끝났나?”
“아니. 하지만 수도의 소식을 들었으니까.”
로렌스가 얼굴을 무표정하게 만들었다가 도로 반쯤 일그러뜨렸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감정을 억누르기 쉽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는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억누를 줄 몰랐다. 타고나기를 밀라이라를 닮아 격정적인 기질이 있었다. 게다가 참을성을 훈련할 필요도 거의 없었다.
로렌스는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그가 싫은지 알 수 없었다.
아르티제아와 결혼했다고 해서 세드릭이 바로 자신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를 끌어들이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세드릭이 이 일에 개입하지 않고 거리를 두려면 돌아오는 대신에 끝까지 모르는 체하고 북부에 있었을 것이다. 국경의 일이 더 긴급하고, 소식이 늦게 당도했다는 핑계가 얼마든지 통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세드릭은 그러지 않고 서둘러 돌아왔다. 그것은 그가 로렌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아르티제아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되는 일이라고는 없는 와중에 그나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드릭은 명성이 높았고,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가 도와준다면, 이번 일의 여파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지나갈 수도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도 에브론 대공가까지 역모로 모는 위험한 일은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좋은 얼굴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세드릭을 모르는 체하고 지나가는 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로렌스는 늘 세드릭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그것은 마음이 맞지 않고, 자주 비교되는 비슷한 또래의 친척을 향한 것 정도였다.
딱히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미워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깊은 곳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참을 수 없이 진득한 감정이 있었다. 심장 깊은 곳을 발톱 같은 것으로 긁어, 그 안에 찬 고름이 독기를 내뿜는 것 같았다.
증오스러웠다. 저 무표정과 무관심 속에 틀림없이 자신에 대한 경멸과 혐오가 숨어 있으리라고 로렌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음에도, 세드릭이 그 혐오를 표시하는 끔찍한 표정을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리시아.
그녀가 그런 얼굴을 하는 것도.
그 시녀가 여전히 머릿속 한쪽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것이 로렌스의 머릿속에 있는 그 증오를 건드렸다.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 관심이 가는 여자에 불과했다. 뺏거나 빼앗기거나, 아예 그런 상대가 아니었다. 제대로 말조차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찾아오라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올 거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결국은 에브론의 여자였다. 정념보다도 사명이 더 중요한 에브론의 여자.
그리고 애당초 리시아를 서부로 보낸 것은 아르티제아였다. 세드릭과는 상관없었다.
‘이 자식이 내 것을 빼앗아갈 것이다.’
그런데도 로렌스는 근거 없이 그런 생각에 발목을 잡혀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예전에 아말리에는 로렌스에게 에브론 대공 하나 포용하지 못하고서 어떻게 황제가 되겠느냐고 말했었다. 로렌스는 그녀의 말에 동의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세상에는 결코 참고 넘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를 제 편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시 자리를 비켜주게.”
세드릭이 가볍게 손을 들고 말했다. 아말리에와 가얀, 키쇼어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로렌스를 인도하던 시종도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급히 물러섰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로렌스는 적대감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며 물었다.
세드릭이 눈을 가늘게 떴다. 로렌스와 달리 그의 적대감과 불쾌감 표시는 그것이 전부였다.
“물을 게 그것뿐인가?”
“무슨 소리야?”
“내게 물을 게 전쟁 이야기뿐이냐는 말이다. 티아에게 별일 없는지 궁금하지도 않은가? 동생인데?”
그 말에 로렌스가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렇군. 별일 없겠지?”
로렌스는 무덤덤하게 그렇게 말했다. 아르티제아 자체에 대해서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세드릭은 로렌스 쪽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로렌스는 그의 기세에 눌리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세드릭이 손을 뻗었다. 로렌스는 놀라서 얼른 뒷걸음질을 쳤지만, 피할 수 없었다.
세드릭은 그대로 왼팔로 로렌스의 멱살을 움켜쥐고 벽에 꽂았다.
쿵!
“큭……!”
등에 가해지는 충격에 로렌스가 숨을 헉 몰아쉬었다.
세드릭이 어금니를 물고 이를 갈 듯이 내뱉었다.
“너 따위 것을 위해서 바쳐진 인생들이 너무 아깝다.”
“무슨, 개소리…… 으윽!”
로렌스는 세드릭의 손을 뿌리치려고 발버둥 쳤다.
로렌스는 나름대로는 제법 무기를 다루고, 사냥도 잘했다. 보통 이상의 완력을 가진 젊은 남자였다.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도 몹시 익숙했다.
그러나 그는 온힘을 다 쓰고도 세드릭의 왼손 하나조차 밀어낼 수 없었다. 세드릭을 걷어차려고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힘으로 발끝이 들렸다. 숨이 막혀서 로렌스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희고 고운 용모가 간 곳 없었다.
“네 친동생이잖나! 네 친모의 일을 중재하려다가 생긴 일이고, 지켜줘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 정도는 하는 게 보통 아니냐?”
시종이 황급히 달려들어 막으려 했다. 가얀이 그를 잡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로렌스는 더 이상 황제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아니다. 그리고 세드릭은 이제 황족으로 살겠다고 결심한 이였다.
그런 높으신 분들끼리의 싸움에는 끼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너는 적어도 네 어머니와 동생, 아내는 지켰어야 했어.”
“뭘, 잘난 척.”
“그런 헌신을 받으면서 대체 뭐가 부족했던 거냐, 너는?”
“주절주절, 남에게 충고씩이나, 으윽!”
로렌스가 목이 졸리면서도 조롱조로 내뱉었다. 세드릭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려고 손아귀 힘을 조금 풀어주었다. 그러자 로렌스가 입꼬리까지 올리고 비웃음을 띠었다.
“더러운 위선자 새끼야, 누가 누굴 지켜? 네가 눈물 몇 방울 흘려준 다음 사지로 떠민 시체를 수레로 실어내도 실어내도 끝이 안 날 텐데, 헌신 같은 소릴 지껄여?”
“…….”
“손 더럽히는 게 싫어서 도망친 패배자가, 커흑!”
세드릭이 다시 한 번 로렌스를 벽에 세차게 밀쳤다. 그리고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쿨룩, 큭…….”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도망쳤었지. 너부터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세드릭이 그렇게 내뱉었다.
로렌스는 킥 웃었다. 어쩐지 속이 시원한 느낌까지 들었다. 자기 안에 있는 이 울화와 증오가 일방적인 것도, 착각도 아니라는 것도 확실해졌기 때문이었다.
“해보든가? 결국 넌 이 복도에서 칼을 뽑을 용기도 없는 놈이잖아.”
“네 혈관에 흐르는 피가 칼까지 막아줄 것 같으냐?”
“으, 욱……!”
“넌 황제가 되지 못할 거다, 로렌스.”
세드릭이 그렇게 내뱉었다.
“그렇게 두고 보지 않을 테니까.”
“네가 뭔데 감히……!”
“기억해둬라. 나한테 널 언제든 죽일 능력이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소리로 세드릭이 말했다. 그리고 로렌스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로렌스는 내던져진 충격에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세드릭은 그를 내려다보고 내뱉었다.
“그러니까 내 아내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기나 빌고 있어.”
그가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
가얀과 아말리에, 키쇼어가 당황하며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전하.”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으므로 세드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황궁을 가로질러 빠져나갔다. 로렌스의 말이 무엇 하나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
시종이 조심스럽게 로렌스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벽에 부딪친 등이 몹시 아팠다. 그러나 로렌스의 입가에는 비틀린 조소가 걸려 있었다.
제 입에서 뱉어진 말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을 다한 듯이 좀 속이 시원했다.
로렌스는 구겨진 옷깃을 털어 다듬었다. 그리고 시종에게 말했다.
“난 돌아가겠다. 아바마마에게는 그렇다고 말씀 올려라. 근위대가 저 자식을 따라가는 것을 보니 만나 뵐 필요도 없을 것 같군.”
“예.”
“그리고.”
“예?”
퍽!
로렌스의 손바닥이 시종의 뺨을 후려쳤다. 시종은 말 한 마디 없이 고개를 숙였다. 로렌스가 멱살을 잡혔을 때부터 화풀이 대상이 될 것은 각오했던 바였다.
그렇지만 로렌스는 뺨에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두 대 때린 것으로 만족했다.
“넌 아바마마의 앞에 가야 하지?”
“예. 예…….”
로렌스가 주먹을 쥐었다. 시종은 겁에 질린 채 눈을 감고 배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로렌스가 몇 번 소리 내어 웃고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 * *
아르티제아가 쓰러지기 전에 헤일리에게 지시한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서부의 콜튼 수사에게 연락할 것.
둘째, 니코스 주교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대주교에게 호소할 것.
셋째, 과한 분쟁이 되지 않도록 기사단을 제어할 것.
그것 외에도 정보 통제에 관해서 몇 가지 디테일한 지시가 있었다.
그러나 헤일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세드릭이 온 이상 기사단 문제는 헤일리의 손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사건이 커지지 않도록 정보를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기사단이 군사행동을 일으키고, 거기에 근위대와 중앙군이 반응한 이상 이 일을 시민들이 모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대주교를 만나는 것도 일단은 보류했다.
세드릭이 대사원을 향해 군사를 일으킨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자신이 나서서 아르티제아의 뜻은 사원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전달할 수는 없었다.
협상을 하더라도 며칠 시간을 들여 사원을 위축시킬 필요가 있었다.
다만, 니코스 주교에게 편지를 써서 아르티제아가 회임했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사원에 머무르는 동안 그가 편의를 봐준 것을 기억하고 있노라고 감사의 인사도 썼다.
사원 전체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쪽에서 인지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그것을 제외하고 헤일리가 당장 할 수 있었던 일은 콜튼 수사와 리시아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것 정도였다.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자신의 몸을 던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에는 에브론답게 해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정작 일이 이렇게 되자 적당한 선에서 일을 끝내야 한다는 아르티제아의 명령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비 전하께서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커져서는 안 된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리시아가 그리웠다. 리시아라면 분명히 이럴 때에 상식을 지키면서도 중도를 잡아 줄 텐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자정까지의 일이었다.
“헤일리 언니, 비 전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그날 밤에 리시아가 불쑥 대공저에 나타났다. 콜튼 수사와 단둘뿐인 단출한 차림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