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43
악녀는 두 번 산다 143화
그렇기 때문에 로이가르 대공은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세드릭이 만든 일은 아닐 겁니다.”
에브론 대공가 입장에서, 후계자라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 희생시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드릭과 로이가르 대공 자신은 살아온 방식은 달랐으나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황족이었으나 황실은 혈연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세력이 약했던 외가는 누이 부부가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을 때에 함께 멸문했다.
세드릭과 서로 친척이기는 했다. 그러나 가족이라고 할 만큼 정을 쌓을 기회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철이 들기도 전에 각자 다른 가문의 주인이 되었다.
대신 루덴 후작가가 오랫동안 그의 강력한 지지 기반으로서 기능했다.
지금도 처가이자 아이들의 외가로서, 가장 가까운 인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루덴 후작가와 그의 관계는 거래적인 관계였다.
그래서 로이가르 대공에게 아내와 아이라는 존재는 의미가 깊었다.
언제 죽어도 피를 이은 아이가 살아서 내 뒤를 잇는다.
살아남아 한 가지라도 무언가를 얻어내면 그것을 물려받을 아이가 있다.
삶의 의미가 완전히 새로 생겼다.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에 로이가르 대공은 살아남기 위해 살았다.
그리고 아이가 생긴 뒤에는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기 위해 살고 있었다.
그러니 그 아이를 낳아준 아내가 소중했다.
그는 자식을 얻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핏줄과 가족에 얽힌 책임이라는 것의 실체를 이해했다.
처자식이 생기면 사람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러니 세드릭이 타협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
반대로, 지금은 타협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렸다. 자신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로이가르 대공은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바라보고 말했다.
“처형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군요. 죄송합니다.”
아마도 이 일은 야심가인 아르티제아 자신이 꾸민 일일 것이다.
제 뱃속의 아이까지 희생시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경계할 것은 아르티제아였던 셈이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말했던 것처럼.
그런 의미를 담은 사과였다.
“아닙니다, 전하. 어쩌면 대공비 자신도 몰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말했다.
“아직 어린 나이로, 결혼한 언니가 있다거나 모친의 출산 경험을 겪은 적이 없으니까요. 믿을 만한 유모나 친정어른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군요.”
루덴 후작이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말을 받아 이었다.
“어쨌든 황제 폐하께서 명분을 얻으셨습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북부로 보낼 물자 징발에 이어 두 번째였다.
어디까지 공격이 들어올지 알 수 없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결론을 내렸다.
“지금 세드릭과 맞서거나 역모죄 자체에 대해서 반발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로산 후작 대부인을 역모로 처벌해야겠다고 공격했던 것은 그냥 놓아두도록 하지요.”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 자체는 얼마든지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에브론 대공비가 사원의 핍박을 받았다고 해서 로산 후작 대부인이 황후 폐하를 저주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결코 역모라는 단어로 엮일 수 없지요.”
“이제 와서 태도를 바꾸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요. 그러니 그냥 내버려둡시다. 완전히, 손을 놔버리는 겁니다.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황제는 그 이상 로산 후작 대부인을 걸고 넘어지지 않겠다는 로이가르 대공의 뜻을 알아들을 것이다.
루덴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가르 대공은 화제를 돌렸다.
“문제는 사원 쪽입니다.”
로이가르 대공이 카멜리아 후작 부인을 바라보고 말했다.
“손절매를 해야겠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이미 모두 준비해 두었습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이 공손히 말했다.
“역시 처형이 제일 믿음직합니다.”
로이가르 대공이 미소를 지었다.
* * *
그런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에브론 대공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했다.
세드릭은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러 새벽 일찍 나갔다. 기사들은 작전에 투입되었다.
고용인들은 행여나 잠든 대공비의 휴식을 방해할세라 꼭 필요한 말조차 소곤소곤 귓속말로 했다.
아르티제아가 눈을 뜬 것은 쓰러진 것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익숙한 침구였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커튼너머로 들어와 침실을 환하게 만드는 광경도 익숙했다.
아르티제아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돌아누웠다. 계속해서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는지, 엉덩이와 날개죽지 뼈 언저리가 아팠다.
한동안 극도로 피곤한 나머지 좀처럼 숙면하지 못했었다. 오래간만에 맛본 제대로 된 잠이 달콤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딱히 급한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아니, 있었던가?
몽롱한 채로 아르티제아는 해야만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하나씩 셈했다.
그러다가 눈을 번쩍 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탓인지 몸에서 열이 훅 솟구쳤다. 아랫배가 콕콕 아팠다.
아르티제아는 낯익은 침실을 돌아보았다.
‘기도실에서……. 약을 먹었던가?’
기억이 불분명했다.
아르티제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골골거리며 수하들을 걱정시키고 살았던 서른다섯 이후에도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한 적은 있을망정 이렇게 기억이 툭 하고 끊긴 적은 없었는데.
역시 약의 부작용이 나온 것일까?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몸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과거에도 수면제를 먹고 기억이 끊긴 적은 없었다.
좀 더 자고 싶긴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헤일리는 잘하고 있나.’
일어나야 앨리스와 소피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움직거렸을 때에, 인기척을 들은 앨리스가 방구석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가씨!”
바뀐 호칭조차 잊어버릴 만큼 앨리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리고 밖에 소리 질렀다.
“깨어나셨어요!”
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제일 앞서서 움직인 알폰스가 걸음을 멈추고 후우 후우 심호흡했다. 흥분하여 침실을 시끄럽게 했다가 아르티제아에게 충격을 줄까 봐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큰 몸에 막힌 다른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그러나 알폰스 덕분에 조금 진정한 듯했다.
아르티제아는 약간 멍한 채로 그 쪽을 바라보았다.
‘아, 혼절했었으니까.’
걱정을 했겠구나. 앨리스와 소피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과거에 그녀를 걱정했던 사람들은 퍽 이성적이었다.
아르티제아를 걱정은 했으되, 그 걱정은 컨트롤 타워가 사라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알폰스도, 안스가르도, 그 밖의 고용인 대부분이 그녀가 하고 있는 진짜 역할을 모르는 채로도 그냥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르티제아를 몹시 이상한 기분으로 만들었다.
알폰스가 우선 의사만 통과시켰다. 그리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걱정이 되시겠지만, 진료가 우선입니다.”
그리고 꾸벅 아르티제아에게 말없이 절을 올리고 문을 닫았다.
아르티제아는 약간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았다.
“뭐 그렇게까지.”
“그렇게 말씀하실 때가 아니에요. 쓰러지셔서 혼절한 채 이틀이나 깨어나지 못하셨단 말이에요.”
앨리스가 아르티제아의 침구를 정리하고 쿠션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가 기대어 앉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오랫동안 주무셨으니, 우선 물을 좀 드시지요.”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앨리스가 곧바로 아르티제아에게 따뜻한 물잔을 쥐여 주었다.
은제 사모바르를 방 한쪽에 가져다두고 계속 물을 끓여 방 안의 습도를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아르티제아가 깨어나면 언제든지 마실 수 있도록 했던 것이었다.
아르티제아가 물 한 잔으로 마른 목을 적시고 나자 의사가 그녀의 상세를 살폈다.
열을 재고 맥박을 짚으며 의사가 물었다.
“어디 불편하시거나 한 점은 없으십니까?”
“배가 고프군.”
“우선은 묽게 끓인 수프부터 시작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푹 주무시는 게 좋겠다고는 했지만, 이 이상 안 깨어나시면 목구멍에 유리관으로 수프를 흘려넣는 방법을 강구할 뻔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의사가 말했다.
“배가 쑤시거나 하지는 않으십니까? 하혈이 없는 것은 확인하고 있었지만, 조그만 이상이라도 놓치면, 안 됩니다.”
“배?”
아르티제아는 그 말에 반사적으로 자신의 배에 손을 얹었다.
“조금 당기는 거 같기도 하고…….”
아르티제아는 별생각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많이 먹게 되면서부터 뱃속이 완전히 편했던 날이 별로 없었다. 콕콕 쑤시거나 묵직하거나 하는 일이 제법 있었다.
그것을 크게 신경 쓴 적이 없었다. 속이 불편하다고 원래 양보다 많이 먹어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의사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대공 전하의 말씀대로라면 14주 정도로 추정되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침대에서 나오지 말고 절대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송구스럽지만, 제가 한 번 더 보겠습니다.”
“뭐?”
아르티제아는 눈을 깜박거렸다.
앨리스가 그녀의 곁에 앉아서 어깨를 감쌌다. 하녀가 감히 할 수 없는 무례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쓰러지거나 할까 봐 염려가 되어 어쩔 수 없었다.
앨리스의 태도와 아르티제아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의사도 머뭇거렸다.
“회임 중이십니다만……. 모르셨습니까?”
“임신……?”
아르티제아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앨리스가 그녀의 어깨를 꽉 잡고 안았다. 아르티제아는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의사가 당혹한 기색을 애써 숨겼다.
아르티제아가 몇 번이나 숨을 들썩거렸다. 의사가 얼른 달려와 앨리스와 함께 황급히 그녀를 쿠션 사이에 안정적으로 눕혔다.
“심호흡하십시오. 진정하시고요. 지금은 정말 조심하셔야 하는 시기입니다.”
“내가, 임신을 했다고? 뭘 잘못 안 게 아닌가?”
아르티제아가 의사의 팔을 잡았다. 손가락이 새하얗게 되도록 힘을 주었지만, 마른 가지처럼 악력이라고는 없었다.
“달거리가 끊기셨을 텐데, 정말 모르셨습니까?”
“몰, 랐네. 원래도, 거의 한 적이 없어서.”
아르티제아는 덜덜 떨면서 말했다.
초경도 남들보다 늦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많아야 1년에 한두 번 하다가 서른 초반에 완전히 끊겼었다.
애초에 규칙적으로 한 적 자체가 거의 없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당연히 불임일 거라고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확률이 무척 낮기는 합니다만.”
의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어렵게 찾아온 아기씨였군요. 경하드립니다.”
그 말을 아르티제아는 거의 듣지도 못했다.
그녀는 반쯤 멍한 채로 말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물러가게.”
겨우 그 한 마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