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45
악녀는 두 번 산다 145화
세드릭은 대공저까지 서둘러 질주했다.
재상관저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인데 이렇게 답답했던 적이 없었다. 거리에 사람이 있는 것마저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가 대공저로 뛰어들자 고용인들이 당황했다.
세드릭은 로비에서 멈칫했다. 그리고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서두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하인이 손 씻을 물과 수건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세드릭은 손을 씻고 얼굴도 닦았다.
자신의 얼굴이 부디 평정을 유지하고 있기를 바랐다.
안스가르가 초조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티아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상세가 나빠졌나?”
“아닙니다. 의사의 말로는 하루 사이에 놀랄 만큼 좋아지셨다고 합니다. 주무시는 사이에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 것도 별문제가 안 될 만큼 낯빛도 회복되셨다고…….”
“그런데?”
“그게, 지금, 울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안스가르가 몹시 당혹해하며 말했다.
닫힌 문 너머로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울음소리만은 확실하게 들려왔다.
고용인들은 모두 지금까지 아르티제아가 미소 짓는 얼굴과 위엄 있는 여주인의 모습만 보아 왔다.
안스가르는 그녀가 이 집으로 처음 온 날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아르티제아는 멍들고 쥐어뜯긴 처참한 얼굴을 하고서도 귀족적인 모습을 버리지 않았었다.
의사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말했다.
“회임하셨던 것을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불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계셨던 것 같아서……, 충격을 받으신 듯합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세드릭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먼지 묻은 겉옷을 벗었다. 안스가르가 옷을 받아들었다.
아르티제아의 거실로 들어가자 문 앞에 서 있던 마커스가 펄쩍 뛰듯이 세드릭에게 다가왔다. 소피도 반 울고 있었다.
리시아와 알폰스도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있다가 세드릭을 보고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똑똑.
세드릭은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아르티제아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자신을 맞이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아르티제아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갑옷을 두르고 대한다 해도, 자신에게 그래서는 안 되었다.
“히끅!”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아르티제아가 깜짝 놀라 딸꾹질을 했다.
앨리스가 아르티제아를 감싸듯이 껴안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세드릭은 문 안으로 한 걸음을 들였다. 그리고 손을 뒤로 돌려 문을 닫았다.
“세드릭 님, 어, 어떻게…….”
아르티제아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당신이 쓰러진 날에 돌아왔습니다. 일부러 날을 맞췄던 것은 아니지만.”
아르티제아는 혼란한 채로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앨리스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맞아요.”
“어, 어째서?”
“톨드 관문에서 해야 할 일은 물론 평생을 걸어야 할 일이지만, 당신보다 중요하지는 않으니까요.”
세드릭은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놀람으로 경직되었던 아르티제아의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앨리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세드릭은 말했다.
“앨리스, 네 걱정이 내 걱정에 비해 못하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으면 좋겠구나.”
세드릭이 조금이라도 강하게 나왔다면 앨리스는 아르티제아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중하면서도 아주 조용히 움직였다.
아르티제아가 앨리스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앨리스는 그 손을 살짝 밀어내고 공손히 세드릭에게 절을 올리고 물러갔다.
세드릭이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아르티제아는 흠칫 놀라 도망가듯이 엉덩이를 뒤로 물렸다. 하지만 금세 침대 끄트머리에 닿았다.
그녀가 침대에서 떨어지기 전에 세드릭이 허리를 당겨 품에 안았다.
아르티제아는 완전히 겁에 질린 채로 그를 밀어냈다. 세드릭은 발버둥치는 그녀를 억지로 붙잡아 안고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르티제아의 딸꾹질이 겨우 멎었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알려줘야 할 것도 많고, 물을 것도 많고, 책망도 해야 했다.
가장 먼저 약속시킨 것이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아르티제아는 여전히 그것조차 지키지 않고 있었다.
“일어나서 물은 마셨습니까?”
아르티제아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세드릭은 그녀의 머리를 제 가슴에 기대게 하고 뒷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잘 먹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건…… 노력……하려고.”
아르티제아가 더듬거렸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아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드릭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의사가 알았으니, 에브론 대공가의 모든 사람이 알았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할지 너무 두려웠다. 기뻐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무서웠다.
하지만 세드릭은 자기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아르티제아에게 물었다.
“아이가 무섭습니까?”
아르티제아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세드릭은 그녀가 더 이상 도망가려고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침대에 부드럽게 눕혔다.
그리고 엄지로 눈물로 젖은 눈가를 한 번 쓸고, 미간에 입술을 눌렀다.
“낳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싫다면.”
“읏……!”
아르티제아의 몸이 경련하듯이 떨렸다. 세드릭이 그녀의 이마를 쓸어넘겼다.
아르티제아가 아이가 있는 것을 알고도 약을 마시거나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그는 지난 이틀 밤 동안 한잠도 자지 못하고 수없이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는 아이를 없앨 겸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어차피 유산시킬 거라면, 그것이 최적의 효율을 거둘 수 있는 순간을 찾아서 계략의 일부로 삼았을지도 모른다고.
세드릭은 아르티제아가 목표를 정해 놓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 목표는 처음 결혼할 때에 제시했던 2년의 기한에 딸린 목적도, 자신이 대관하는 날도 아니다.
이 이상 판세가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때, 혹은, 자신이 더 이상 세드릭의 세력에 기여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때가 오면 그녀는 떠날 것이다.
그러니 아이를 계획에 방해되는 요소로 여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과 남녀로서의 관계가 된 것도 그저 휩쓸려서 그렇게 된 것이고, 가정을 꾸리거나 아이 같은 결속을 만드는 것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르티제아는 그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몸이 약하고,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무래도 운신도 편치 않을 테지요.”
세드릭의 가슴 안에서 뭔가가 씻겨 내려간 듯했다.
어쩌면 일부러 약 같은 것을 마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이미 결정했던 일이었다.
아이를 낳든, 그러지 않든, 아르티제아의 선택에 맡기자고.
그러면서도 못내 괴로웠다.
하지만 이제 괜찮았다. 그녀가 이렇게 울면서 결정한 일이라면, 자신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당신이 아이를 없애려 했다고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치 않는다면, 낳지 않아도 됩니다.”
세드릭이 그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아르티제아가 머뭇거렸다.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퍼진 것은 안도가 아니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혈관을 타고 퍼져서 손발을 떨리게 했다.
역시 세드릭도 아이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밀라이라의 외손녀이고 로렌스의 생질이 되지 않는가.
세드릭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도 못했다.
아르티제아는 미친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제대로 된 생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온갖 종류의 상념이 요동치는 것을 아는 듯이 세드릭은 아르티제아의 눈가에 손을 얹었다. 마치 처음으로 하나가 되었던 그날 밤 같은 손짓이었다.
“하지만 내 아이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면.”
그때에도, 지금도 눈이 가려진다는 것은 아르티제아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저 눈이 가려졌을 뿐인데, 마치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드릭의 손은 크고 따뜻했고, 그녀의 눈물에 젖어서 축축했다. 그 감촉이 아르티제아의 머릿속에 가득한 것을 녹여 없앴다.
“그렇다면 낳아요.”
“하지, 하지만, 잘못, 되면 어떻게 해요? 저는, 저는, 제대로 키울 자신이. 흑…….”
“제가 잘 키우겠습니다.”
“아니면, 저를 닮거나, 어머니나, 오라버니를 닮아버리면, 아니면 생부도, 이런 피를 물려주게 되면.”
아르티제아는 헐떡거리면서 뜨문뜨문 말을 이었다.
자기가 하는 말이 제대로 문장이 되고 있는지 어떤지도 분간이 가질 않았다. 가슴에서 솟구치는 말이 머리를 통하지 않고 그대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당신은 제 핏줄에 황실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군요.”
“그건…….”
“나쁜 피라고 말할 거라면 그게 으뜸일 겁니다. 황실이 어떤 식으로 피를 피로 씻어 왔는지 당신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세드릭, 님.”
“티아, 당신은 나쁜 피를 타고난 게 아닙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 겁니다.”
세드릭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에게 몸을 기울이고 다정하게 말했다.
“저도 무섭습니다.”
아르티제아가 숨을 들이켰다.
“전 부모님 얼굴조차 기억이 안 납니다. 제가 그 아이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는커녕 짐만 잔뜩 남길 수도 있겠죠.”
“……그럴, 리가.”
“운이 나쁘면, 당신과 내가 둘 다 숙청당하고, 아이 혼자 남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폐하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아주 잘 짚어내는 분이니까.”
아르티제아는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래도 저는 원합니다. 당신이 내 아내가 된 것처럼, 당신과 내가 같이 가야 하는 길에 있는 아이이니까요.”
아르티제아가 신음했다.
“……그래도 안 돼요. 제가, 제가,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자신이 세드릭의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그냥 세드릭과 자신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이기만 하면 괜찮았다.
하지만 낳으면 이 아이는 적법한 결혼에 의해서 태어난 에브론 대공가의 장자가 된다. 무조건 후계자였다.
세드릭이 손바닥으로 그녀의 눈가를 다시 닦았다.
“그렇게 울다가 탈수 증상이 옵니다.”
“안 돼요, 저는.”
아르티제아가 의미 없는 말을 몇 마디 웅얼거렸다.
세드릭이 그녀를 다시 끌어안아 제 어깨에 얼굴을 묻게 했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 하지만…….”
“아무 생각하지 말아요. 나중에 나랑 같이 생각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가 다독이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말인가 하고 아르티제아는 생각했다. 세드릭이 곁에 있는 것이야말로 지금 그녀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토닥이는 손길에 따라 머릿속에서 나머지 생각이 녹아 나갔다. 이제 자신이 왜 울기 시작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품에서 목을 놓아서 통곡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까무룩 잠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