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46
악녀는 두 번 산다 146화
아르티제아가 다시 깨어난 것은 다음날 오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세드릭은 그녀의 옆에서 밤을 지새웠다.
행여나 눈을 떴을 때에 또다시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거나 발작을 일으킬까 봐 염려한 탓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문득 눈을 떴을 때에, 아르티제아는 조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티아. 잘 잤어요?”
세드릭은 일부러 더 여상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심정은 복잡했지만, 자신이라도 평정한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가 이불 속에 파묻힌 채로 부은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제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눈이 쓰려요.”
“많이 울었으니까요. 목은 아프지 않습니까?”
“아파요.”
거의 쉬다시피 한 목소리로 아르티제아가 대답했다.
세드릭이 말했다.
“의사부터 부르겠습니다. 진료를 다시 보고, 얼굴을 씻고, 뭘 좀 먹도록 하죠.”
“나가 보세요.”
아르티제아의 말에 세드릭은 멈칫했다.
“북부에서 여기까지 오셨어요. 반향이 작지 않았겠죠?”
아르티제아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다가 손으로 목을 짚었다.
“말하지 말아요.”
세드릭이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 대신 말했다.
“맞습니다. 당신이 쓰러진 일도 있고 해서, 내가 상황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북부 일은…….”
“그것도 염려 마십시오. 충분히 양해를 구했습니다. 당신과 그것에 관해서도 의논해야 합니다. 전해줄 편지도 있고요.”
세드릭이 말했다.
인간끼리였다면 그렇게 수월하게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카람의 왕자 아푸아는 의심하는 법을 알면서도 인간들이 하는 변명까지 완전히 잘 알지는 못했다.
아내의 집안에 문제가 생겼다는 세드릭의 말을 그는 순수하게 받아 들이고 이해해주었다.
『짝에게 걱정이 생기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법이지. 이번의 대화는 여기에서 끝내도록 하자. 대화 자체를 중단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그대가 몇 달 더 머물러 나와 말을 더 주고받는다고 해서 갑자기 톨드 관문을 허물 수도 없는 일이다.』
「이해해주어 고맙군.」
『그리고 그대의 짝은 빛을 품은 여자가 아닌가? 간신히 되찾았으니, 소중히 여겨야지.』
아푸아의 말을 어디에서부터 설명하고 정정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세드릭은 쓴웃음을 지었었다.
“아무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왔다는 것만 지금은 이야기하겠습니다. 당장 더 급한 일이 많으니까요.”
“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의 손가락에 입술을 눌렀다.
“나머지 일은 내가 처리하겠습니다. 당신은 지금은 쉬면서 몸을 회복할 생각만 해요. 아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 몸이 축난 것도 문제입니다.”
아르티제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나가보세요. 하실 일이 있으실 거잖아요.”
“티아.”
세드릭이 책망하는 목소리를 냈다.
아르티제아의 말이 맞긴 했다. 원래는 오늘 오전에도 내무부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미리 양해를 구해둔 바도 있었다. 아르티제아의 상세에 변화가 생기면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좀 더 오래, 제대로 옆에 있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가 갈라진 소리로 말했다.
“저도,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같이 생각해야죠.”
“지금은, 조금, 혼자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어요.”
세드릭은 그 말에는 더 고집 부리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만 몇 가지 처리하고 곧 돌아올 테니, 당신은 푹 쉬는 겁니다.”
아르티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드릭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돌리고 이불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세드릭은 부드럽게 그녀를 이불 안에서 끌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완강했다.
힘으로 끌어내는 대신에 세드릭은 이불 위에서 그녀의 뺨에 입술을 눌렀다.
여름 이불이 얇았기 때문에 아르티제아는 제 뺨에 눌리는 압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나가보세요.”
“나가보세요, 말고 다른 인사말이 있지 않습니까?”
“…….”
아르티제아는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아 입을 벌린 채로 마른 침을 삼켰다.
목이 몹시 아프고 찢어진 입술도 아팠다. 전 같으면 그런대로 간지러움과 괴로움이 뒤섞인 달콤한 고통이었을 순간이 지금은 쓰린 눈과 목만큼이나 아프게 느껴졌다.
한 번 무너진 둑은 두 번째에도 좀처럼 버티지 못했다.
아르티제아는 이불 아래에서 웅크리고 숨을 죽였다. 그냥 모든 게 다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조용한 침실 안에서, 얇은 이불 한 겹을 사이에 두고 흐느끼는 소리를 숨길 수 있을 리 만무하건만.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드릭이 이불째로 그녀를 껴안았다.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녀오라는 인사를 들을 생각이었다.
언제이든, 그녀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뜻을 담아서.
하지만 아르티제아에게는 아직 그것조차도 무리인 것 같았다.
그는 아르티제아의 흐느낌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아르티제아가 일어난 것은 세드릭이 결국 부관에게 불려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된 다음의 일이었다.
눈물이 멎은 후에 가장 먼지 한 것은 몸을 씻는 것이었다.
하녀장과 가장 신뢰할 만한 하녀 둘이서 서둘러 욕조 안에 미지근한 물을 채웠다. 마커스와 안스가르가 욕실의 모든 물건을 직접 점검했다.
목욕시중은 앨리스와 소피 두 사람이 들기로 했다.
보통 때에도 시중인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몸이 많이 지쳐 있는데도 그렇게 했다.
나이 든 두 집사는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 시기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별히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면, 아르티제아의 주위에 들이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평소에는 좀 더 뜨거운 물을 선호했지만, 의사가 좋지 않다며 물의 온도까지 직접 조절했다.
의사는 아르티제아가 물에 들어가 있는 동안 약재와 고기를 넣어 끓인 묽은 수프를 마시게 했다.
수분 보충도, 영양 섭취도 더 늦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흘간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으니, 일단 따뜻한 음식으로 위장을 달래시는 게 좋겠습니다. 경과를 보아 몸을 보하는 약재를 쓰려고 합니다.”
“피곤할 뿐이지, 딱히 아픈 곳은 없네.”
“너무 쇠약한 상태여서 느끼지 못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르티제아는 이제 내 몸은 내가 잘 안다는 말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머리를 감겨주고 있던 소피가 의사의 말에 동의했다.
“의사 선생님이 잘 봐주시겠죠. 마님은 항상 몸이 약하셨으니까 어지간히 안 좋은 상태도 보통이라고 해 버리시잖아요.”
“응…….”
“약도 잘 챙겨 드시고요. 임신 중에 약 먹는 거 좋지 않은 거라고 듣진 했지만…….”
“음식으로 골고루 영양섭취를 해서 건강을 챙기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기력보충부터 하셔야 하니까요.”
의사가 말했다.
“그래야 출산을 버티실 수 있습니다.”
“알았네.”
아르티제아는 대강 들어 넘기며 수프를 마셨다.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잘 넘어갔다. 심지어 맛있기까지 했다.
속이 풀어지자 이번에는 맹렬하게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아르티제아가 쪼르륵거리는 것을 알고는 소피가 의사를 바라보았다.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것부터라도 일단 드실 수 있는 만큼 드시는 게 좋습니다.”
“네, 준비해오라고 할게요.”
소피가 서둘러 욕실 밖으로 나갔다.
앨리스가 아르티제아의 머리를 마저 헹구고, 수건으로 감싸 말렸다. 그러면서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 아기씨가 엄청 튼튼하신가 봐요. 마님이 그동안 잘 드시면서도 왜 이렇게 수척해지시나 했는데, 다 아기씨한테 간 거죠, 이거?”
“건강한 아기씨라서 다행 아닙니까?”
“분명히 주인님을 닮아서 대식가일 거예요.”
그래도 앨리스는 불평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불평이면서 위로이기도 했다. 아이가 세드릭을 닮았으리라는.
아르티제아는 멍하게 그런 대화를 듣고 있었다.
앨리스가 머리를 수건으로 말아 올려준 다음 욕조에서 일어나게끔 부축해주었다.
씻고 나자 비로소 진짜로 정신이 든 기분이었다.
오늘 아침까지의 일이 꿈처럼 아련했다. 아직도 눈이 쓰리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데, 그렇게 울었던 것도 실감 나지 않았다.
세드릭이 와 있다는 것도.
아르티제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세드릭은 올해 여름쯤에나 오거나, 아니면 아예 올해는 수도에 오지 않고 북부에서 해를 넘기는 쪽이 나았다.
그랬다면 적어도 로렌스는 완전히 끝장내고, 로이가르 대공이 무너질 단초까지 마련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세드릭은 이런 일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는 쪽이 좋았다.
자신이 밀라이라의 딸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밀라이라를 엄격하게 처벌하면 장모를 가혹하게 대한 자가 된다.
그러나 적당한 선에서 끝내면, 친족이라고 하여 처벌하지 않은 불공정한 자가 된다.
그러니 가혹하게 대해도, 그렇지 않아도, 모두 결점이 된다.
자신이 맡았어야 할 일이다. 자신이 친딸이기에 얻을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그리고 세드릭이 직접 한 일이 아니기에 피해갈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그게 모두 무산되었다.
하지만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그가 왔다는 사실에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위안과 위로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님.”
소피가 그녀의 머리를 마저 말려주고, 가벼운 옷을 꺼내주었다.
마커스가 여러 개의 작은 접시를 아르티제아의 앞에 늘어놓았다.
여러 종류의 과일, 한입 크기로 잘라 소스를 발라 구운 칠면조 고기, 그동안 간식으로 자주 먹었던 작은 고기 파이 등등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조금씩 내온 셈이었다.
“거북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조리법을 바꾸거나 다음에는 내오지 않도록 할 테니까요.”
“아니, 괜찮아.”
위장이 먼저 따뜻하게 풀어진 덕분인지 식욕이 돌았다.
아르티제아는 제일 끝 접시에 손을 댔다. 으깬 곤들매기 살로 만든 테린이 입 안에서 고소하게 부서졌다. 안에 들어 있는 버섯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한 접시에 대부분의 음식이 두 개씩 놓여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접시를 여러 개 비웠다. 어이없게도, 전보다 더 맛있었다.
이 아이는 어지간히도 살고 싶은 모양이라고, 아르티제아는 생각했다.
‘이런 세상에, 이런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나 봤자 좋은 일도 없을 텐데.’
하지만 무얼 좀 먹은 덕분인지 속은 많이 진정되었고 기운도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제 심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마커스가 안심한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
“뭐가 제일 드실 만합니까? 점심에도 같은 재료를 쓰게 할까요?”
“다 괜찮아. 준비된 것이 있으면 아무 것이라도.”
아르티제아가 대답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앨리스가 무슨 일인가 하고 내다보러 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에게 조금 조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리시아 님이 뵙고 싶다고 하세요.”
아르티제아가 움찔했다.